의사인가? 쇼호스트인가? ‘닥터테이너’의 탄생
의사인가? 쇼호스트인가? ‘닥터테이너’의 탄생
  • 유현재 (hyunjaeyu@gmail.com)
  • 승인 2014.09.01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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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재의 Now헬스컴] 종편-홈쇼핑 넘나들어

[더피알=유현재] 종편이 시작된 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종편은 뉴스 기능의 강화가 주목적 가운데 하나였으며, 현재 대중이 접할 수 있는 뉴스 프로그램의 종류와 양이 많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순기능도 있을 것이고, 오보와 선정성, 취재 경쟁에 따른 역효과들도 경험하고 있지만 대중이 접하는 정보원이 많아졌다는 상황 자체는 분명 긍정적 측면도 있다고 생각된다.

종편이 본격화되면서 한 사람의 시청자로서 인지한 또 하나의 현상은, 소위 ‘대담 프로그램’들이 상당히 많아졌다는 점이다. 공중파에서는 더 이상 보기 힘들었던 정치인들도 소위 논객이라는 이름으로 자주 얼굴을 내비치며, 연예계 주변 인사들을 한 곳에 불러놓고 연예계 뒷담화로만 한 두 시간을 꽉 채우는 프로그램들도 등장했다.

▲ 종편에서 방영되는 건강 프로그램들에는 그 동안 병원 밖에서 자주 볼 수 없었던 ‘의사 선생님들’이 실제로 등장한다. (자료사진) jtbc <닥터의 승부> 한 장면.

상기 프로그램들을 제외하고도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증가한 프로그램이 있으니 바로 건강과 관련된 대담 프로그램들이다. 건강 관련 이야기들이 중심 콘텐츠이기는 하지만, 대담에 다양한 예능적 요소를 넣어 구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대단히 광범위한 주변 주제들을 ‘건강’이라는 큰 테마에 엮어 제작하고 있다.

사실 공중파에 비해 개별 프로그램에 투입할 예산이 아직 충분하지 않은 종편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모든 게스트를 스튜디오에 불러내 한 방에 해결해 버리는(?) 대담 성격의 프로그램들이 선택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제약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현실에서 탄생하는 건강 관련 프로그램들의 수준과 유익함을 크게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이며, 때로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고 생각된다. 제공되는 정보가 어떠한 검증과정을 거쳐 대중에게 전달되는지도 명확치 않으며, 대담자가 밝히는 내용에 ‘출연자의 의견은 과학적 견해가 아닌 개인적 의견일 뿐입니다’라는 안내문이 가끔 같이 나온다고 해도, 과연 얼마나 많은 시청자들이 그같은 경고를 인지하며 정보를 판단하는지도 의문이다.

건강 프로그램와 의사들의 공생관계

종편에서 방영되는 건강 프로그램들에는 그 동안 병원 밖에서 자주 볼 수 없었던 ‘의사 선생님들’이 실제로 등장한다. 내과, 비뇨기과, 피부과, 안과, 정신건강의학과, 내분비과, 치과 등등 출연하는 의사들의 전공도 다양하며, 이들 가운데에는 심하다 싶을 만큼 여러 건강 프로그램들에 소위 겹치기 출연을 하는 인사들도 다수 존재한다.

종편을 포함한 각 방송사는 우리나라 국민 중 단 한 사람도 100% 외면할 수 없는 대단히 민감하고 현실적인 ‘건강 관련 이슈’를 이처럼 대중적 인지도를 보유한 연예인급(?) 의사들과 함께 꾸려가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건강 관련 프로그램들은 몇몇 의사들과 적당한 연예인들을 등장시키면서 예능과 정보 제공 위주 프로그램의 경계를 능숙하게 넘나들며 시청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필자를 포함한 많은 소비자들이 느끼고 있겠지만, 각 건강프로그램에서는 의료·건강 관련 지식을 정확하게 전달해주는 의사도 섭외하는 한편, 입담이 화려하고 유머감각이 적당히 있으며 여타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적 인지도를 갖춘 의사들을 위주로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있다.

▲ 건강 및 의료 등과 관련된 사항들을 손쉽게 설명하면서도 은근히 웃음을 주는 의사들은 가히 인기 연예인 못지않은 프로그램 출연 빈도를 기록하고 있다. 종편 프로그램에서 맹활약 중인 의사들(글 내용과 직접적 관련이 없음)/ 각 프로그램 방송 화면 캡처.

건강 및 의료 등과 관련된 사항들을 손쉽게 설명하면서도 은근히 웃음을 주는 의사들은 가히 인기 연예인 못지않은 프로그램 출연 빈도를 기록하고 있다. 필자는 이들을 감히 의사와 연예인의 중간인 ‘닥터테이너(Doctortainer)’라고 표현하고 싶다.

자신의 탁월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미디어에 노출함으로써 인지도가 높아지는 것은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를 통해 의사 개인이 속한 병원의 인기가 높아진다거나, 전문성의 산물인 저서, 강연의 횟수 등이 늘어난다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정상적이기도 하고 박수를 보낼 일임에 분명하다. 여기까지는 닥터테이너 등의 조어를 만들며 비판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문제는 이들이 자신들의 대중적 인기를 등에 업고 홈쇼핑 호스트로 등장하며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는 점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각 홈쇼핑 업체들은 ‘닥터테이너’들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으며, 수천만원의 사례비 지급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그들을 원한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닥터테이너들이 등장하면 너무나 짧은 시간에 충분한 의학적·과학적 설명, 부작용 등을 꼼꼼하게 제공하지 않아도 소비자가 쉽게 주문을 하기 때문이다. 일부 의사들과 한의사들은 하루에도 수 차례 홈쇼핑에 얼굴을 비치면서, 말 그대로 국민을 상대로 혹은 TV 앞에 앉아있을지 모를 환자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는 것이다. 물론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이같은 영업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방금 전 건강 프로그램에 등장해 전문적 지식을 전해주던 의사 혹은 한의사가, 갑자기 홈쇼핑에서 호스트로 나와 사람의 건강과 직결된 ‘특정’ 상품을 사라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 정부의 관련 부서나, 한의사협회, 의사협회에서는 이같은 상황에 대해 어떠한 의견을 갖고 있는지 매우 궁금하다.

모두 알다시피 쇼호스트로 등장한 사람이 과연 특정 건강 관련 상품이 가진 효능과 부작용, 특징 등을 충분히 설명할 수는 있는 것일까? 또한 해당 의사나 한의사는 팔고 있는 제품에 문제가 있을 경우 도대체 어떤 정도의 책임을 질 용의와 의무가 있을까?

닥터테이너의 상품 판매, 정말 문제없을까?

얼마 전 피부과 의사들이 팀을 구성해 장기간 연구, 특정 화장품 업체와 공조 생산한 화장품이 대박을 쳤다는 보도를 접한 적 있다. 아마도 해당 화장품을 만든 의사들은 자신들이 판매하는 상품의 성분을 결정하고 효과를 개선하는 전 과정에 관여했을 것이며, 그같은 성과를 이루어냈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과연 종편 탄생 및 건강 프로그램의 홍수에 의한 반사 이익으로 인지도를 높인 ‘한창 바쁜’ 닥터테이너들이, 자신이 쇼호스트로 나선 상품에 대해 얼마나 철저하게 파악하고 판매에 나서고 있는지 알아보고 싶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기 힘들 만큼 연예인 및 유명인(Celebrity)의 광고출연이 많은 나라다. 물론 효과가 있으니까 이 현상이 지속되고 있을 것이다. 최근 수년 동안 영화나 연극, 드라마 등 대중을 향한 콘텐츠를 단 하나도 생산하지 않은 연예인이 광고 출연만으로 거금을 벌어들이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그래서 특히 닥터테이너들의 활동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TV에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건강 관련 프로그램에 나와서 연예인보다 더 웃겼다는 이유만으로도 의사들이 팔고 있는 상품을 덥석 사서 보물처럼 섭취하는 소비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필자와 같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이같은 불합리를 지적하면 서서히 여론 형성이 일어날 수도 있겠고, 문제의식을 가진 시민단체가 뜻을 모아 시정을 요구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앞서 언급했듯, 관련 정부기관이나 의사들이 속한 단체에서 자체적으로 규칙을 정비할 수도 있겠다. 만약 도덕적으로 바르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한다면, 관련 규정의 제정을 고려해 보기를 권고하고 싶다. 주사위는 결국 우리 소비자들에게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화려한 TV 스튜디오 보다는 자신의 진료실에서 환자들을 위해 환부를 한 번이라도 더 만져주는 의사와 한의사, 다양한 군상들이 나름의 아픔을 호소하며 찾아왔을 때 최선의 판단으로 약을 추천해주는 대한민국의 골목골목 약사 선생님들에게 우리의 건강을 맡기시기를 희망한다. 그것이 아마도 더 좋은 답이지 싶다.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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