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자전거에 ‘가치+가치’를 더하다
버려진 자전거에 ‘가치+가치’를 더하다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4.09.19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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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사이클링 브랜드 ‘리브리스’ 장민수 대표

소통라이브러리는 우리 사회의 소통문화를 새롭게 만들자는 취지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자유롭게 협력하는 코너로, 이종혁 광운대 교수와 함께 진행합니다.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들만의 방식으로 소통문화를 창출하고 이끌어가는 숨겨진 인물들이 인터뷰의 주인공입니다.

[더피알=강미혜 기자] 버려진 자전거가 디자인 소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체인링(앞쪽 기어부분)으로 만든 벽시계, 스프로켓(뒷바퀴에 달린 기어뭉치)을 활용한 탁상조명, 포크(자전거 앞바퀴 고정)로 제작한 병따개, 체인으로 포인트를 준 팔찌와 열쇠고리 등 종류도 꽤 다양하다. 버려진 물품을 재활용한다고 해서 퀄리티를 의심한다면 대단한 오판. 20대 청년 사업가의 첫 세상 도전기를 그리 만만히 보아선 안 된다.


‘리브리스(REBRIS)’는 폐자전거 부품을 활용해 디자인 소품을 만드는 업사이클링(Upcycling·Upgrade+recycling) 브랜드다. 대학을 갓 졸업한 장민수 대표(28)의 작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비즈니스 모델로 발전했다. 업사이클링 붐이 불고 있는 요즘, 국내에선 유일하게 자전거를 모태로 했다는 점에서 색다르다.

리브리스는 ‘쓰레기, 파편’이란 뜻의 영단어 ‘디브리스(Debris)’에 ‘다시’란 의미의 접두사 ‘리(Re)’를 조합한 이름이다. 그에 꼭 맞게 버려지는 자전거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소품들로 탈바꿈한다. 죽었던 부품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전 과정은 100% 수작업. 판매 수익금의 일부는 어려운 아이들에게 자전거를 기부하는 사업에도 사용된다. 가치에 가치를 더하는 진정한 업사이클링을 지향하고 있다.

최근 들어 제품별로 다양한 스토리가 있는 업사이클링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요, 수많은 버려지는 물품 가운데 특별히 폐자전거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오래 전부터 20대 때 내 브랜드를 갖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거리에 방치된 자전거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다 그 즈음 인터넷을 통해 자전거 휠로 만든 시계를 보게 됐고, 순간 ‘이거다’ 싶었습니다.(웃음) 평소에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해서 버려진 자전거로 내 브랜드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어요. 그것이 계기가 돼 폐자전거 부품을 업사이클링해 디자인 소품을 만들게 된 거죠.

다른 업사이클링 제품과 차별점이라면.
국내 업사이클링은 폐천막이나 폐타이어, 버려진 자투리 천·가죽 등을 활용해 가방이나 파우치, 액세서리 등을 만드는 경우가 많아요. 지금껏 폐자전거를 업사이클링 제품으로 브랜드화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 자체로 어느 정도 독창성은 있다고 생각해요. 또 정해진 제품을 여러 소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전거에서 나오는 부품을 자유롭게 제품화하는 과정 역시 차별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품을 만드는 과정은 어떤가요?
100% 수작업이에요. 처음엔 폐자전거 수거하는 일까지 했는데, 일이 많아지면서부터 사회적 기업 ‘두바퀴희망자전거’에서 도움을 줬습니다. 버스 타고 지나다가 엄청나게 쌓여 있는 자전거를 보고 우연히 찾아간 것이 인연이 됐어요. 두바퀴희망자전거는 방치 자전거를 수거, 수리해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거나 저소득층 가구에 기증하는 곳인데요, 그 곳에서도 재사용이 안되 버릴 수밖에 없는 자전거들 부품을 주기적으로 제공받게 된 거죠.
그러다 보니 대부분 녹이 많이 슬어있어요. 일일이 녹을 제거하고 씻고, 다시 녹이 생기지 않도록 1차 도색을 한 후에 제품에 맞는 컬러를 입혀 조립합니다. 획일화된 폐부품을 사용하는 게 아니다보니 공정 과정은 대부분 사람 손을 거쳐서 이뤄집니다. 힘도 들고 시간도 많이 걸리지만 그만큼 제품 하나하나에 정성과 감정을 담을 수 있어 보람이 큽니다.

▲ 리브리스 제품 만들기 전 부품 모습. (사진제공: 리브리스)

작업은 어디에서 하는지?

집에서 해요. 옥상과 제 방에서. 최근엔 두바퀴희망제작소에서 공간을 내어줬어요. 그래서 부품을 자르는 건 두바퀴희망제작소에서 하고 도색은 저희 집 옥상, 조립은 제 방, 이런 식으로 작업에 따라 세 군데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공간이 나눠지다 보니 아무래도 좀 번거롭긴 해요.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해서 올 겨울엔 작업실 하나 마련하고 싶습니다.(웃음)

리브리스는 디자인 자체가 세련되고 심플해서 굳이 착한 소비를 강요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는 듯합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좋은 일에 참여하는 의미에서 구매한다기보다, 예쁘니까 사고 싶은 업사이클링 제품이랄까.
최근 들어 업사이클링이 활발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부정적 인식들이 있어요. 버려진 것이라는 근본 때문에 제품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또 어느 경우엔 쓰레기로 만들면서 비싸게 판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는 게 사실이에요.
그런 편견을 깬 업사이클링 브랜드가 ‘프라이탁(Fre­itag)’입니다. 방수천으로 싸여 있는 트럭 짐칸을 보고 폐방수천을 재활용해 가방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전세계에서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으니까요. 폐방수천이라는 소재보다 예쁜 가방이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내세운 결과지요. 리브리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디자인으로 먼저 제품에 관심을 갖게 한 다음, 자연스레 업사이클링 브랜드라는 점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버려진 자전거 폐품으로 새로 태어난 리브리스 제품. (사진제공:리브리스)
제품을 만들기 위해 따로 디자인 공부를 한 건가요?

공대 출신이라 디자인과는 거리가 멀어요.(웃음) 이 일을 하기 전엔 해 본 적도 없고요. 이리저리 시도하면서 사람들의 호불호를 다음 제품에 반영해 나가는 식으로 개선시켜나가는 중입니다. 좀 더 커지면 제품 쪽 전문 디자이너와 협력할 생각도 있습니다.

업사이클링은 버려진 것에 가치를 더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이 참여합니다. 리브리스식 업사이클링에 공감해서 뜻을 같이 하며 협력한 사례도 많을 것 같은데.
얼마 전까지 홍대 앞에 위치한 ‘오브젝트’에서 전시 공간을 내어줬어요. 오브젝트 자체가 ‘현명한 소비’를 지향하는 곳이다 보니 저희가 만든 업사이클링 제품을 잘 봐주신 것 같아요. 또 디자인 네트워크 ‘디노마드’에선 디브리스 시계를 제작하는 워크숍을 열어 강사로 참석했고, ‘사회적기업가포럼’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하는 영광스런 기회도 있었습니다.
최근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을 통해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폐자전거 업사이클링을 통한 자전거 기부’를 목표로 십시일반 펀딩을 받기로 한 거죠. 제품 판매 수익금으로 어려운 친구들에게 자전거를 기부하려는데, 현 추세로는 올 겨울이나 돼야 가능할 것 같았거든요. 좀 더 빨리 기부하고 싶은 마음에 크라우드 펀딩을 생각했고, 제품 작업 동영상도 제작해 저희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텀블벅 사이트에 올렸습니다. 120만원이 목표금액이었는데 최종적으로 200만원을 훌쩍 넘겼어요. 많은 분들이 리브리스 이야기에 공감해 주셨다는 점에서 감사하고 기쁩니다.

이야기로 소통하면서 제품을 생산하는 선순환을 만들고 있는데요. 다양한 대상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업사이클링 과정 자체를 공유하는 것도 리브리스의 특징이자 강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은 졸업을 했지만 처음 제품을 만들었을 당시엔 대학생 신분이었습니다. 제품을 제작하면서 마케팅까지 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할 수 있는 선에서 소소한 이야기를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올리게 됐는데, 결과적으로 그러한 활동이 리브리스를 향한 관심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됐습니다. 블로그 글를 보고 한 비영리단체에서 인터뷰를 제의했고, 그 인터뷰가 나가고 나서 다른 매체에서도 연이어 인터뷰를 요청해오면서 점점 알려지게 됐거든요.
인터뷰나 강연 때도 느꼈던 건데 사람들은 리브리스 제품보다 업사이클링이라는 리브리스의 이야기에 더 공감을 하는 듯해요. 공감 안에서 제품을 바라보니깐 호감도나 구매욕구가 더 올라가는 것 같고요. 앞으로도 다양한 분들과 여러 이야기로 즐겁게 소통할 생각입니다.


리브리스의 확장성은 어디까지로 보세요? 지금보다 더 다양한 라인업을 갖추고, 다른 버려지는 물품들을 활용할 수도 있을 텐데요.

자전거는 대략 20가지 부품으로 구성되는데, 현재 리브리스는 6가지 품목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나머지 부품들도 많기 때문에 앞으로 제품화할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다만, 자전거 외 다른 폐품을 활용할 생각은 없어요. 리브리스가 버려지는 자전거로 만드는 브랜드라는 고유명사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의 계획 또는 목표는?
우선은 자전거의 모든 부품을 제품으로 업사이클링하는 게 1차 목표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업사이클링 문화를 알게 됐으면 합니다.
나아가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리브리스 제품은 손으로 만들기 때문에 아주 큰 기술을 요하지 않아요. 업의 문턱이 그리 높지 않은 셈이죠. 앞으로 제품이 확장되고 사업이 더 커지면 어려운 이웃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폐자전거로 제품을 만들지만 그 안에서 기부와 일자리 창출 등의 가치 있는 활동이 2차, 3차로 일어날 수 있다고 봅니다. 아직은 시작 단계지만 분명 길이 보이는 것 같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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