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레기’ 외침 이후 언론계는 얼마나 달라졌나
‘기레기’ 외침 이후 언론계는 얼마나 달라졌나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4.11.03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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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현주소] 전문가들에게 다시 물어보니…“변한 게 없다”

“요즘 취재 현장에서 KBS 기자는 ‘기레기 중 기레기’입니다. (중략) 순간순간 비겁함이 모여 지금의 ‘개XX’ 같은 상황을 만든 것 아닌가. 반성합니다. (중략) 침몰하는 KBS 저널리즘을 이대로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 (자료사진) 지난 5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기자들이 ‘반성합니다’는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뉴시스

[더피알=강미혜 기자]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지난 5월 KBS 기자가 사내 보도정보시스템에 올렸던 글 일부다. 일선 기자의 유례없는 양심고백에 언론계는 큰 충격에 빠졌고, 각종 오보와 선정보도로 얼룩진 뉴스생태계를 ‘정화’시키자는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비슷한 시기 <더피알>은 ‘기레기’(기자쓰레기)로 전락한 대한민국 언론의 현주소를 진단하는 전문가 좌담을 열었다. 전문가들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한국 언론의 고질병,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질타하며 지속적인 자기반성과 변화노력으로 언론 본연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관련기사: “대한민국 언론계, ‘선도 언론’이 사라졌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지금, 언론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세월호 참사의 뼈아픈 기억이 변화를 부채질했을까? 당시 좌담에 참석했던 전문가들에게 세월호 참사 6개월 후 대한민국 언론의 현주소를 다시 한 번 물었다. 우장균 YTN 해직기자는 개인사정으로 인해 인터뷰에 응하지 못했음을 밝혀둔다.

▲ (왼쪽부터)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배정근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추창근 전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 사진은 지난 5월 좌담 당시 촬영한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로 촉발된 기레기 자성의 시간이 6개월 지났습니다. 그동안 대한민국 언론은 얼마만큼 달라졌다고 평가하십니까.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이하 김 교수)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KBS 사장이 바뀌긴 했지만 보수정권의 방송언론 장악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조대현 체제의 KBS도 중간간부 이상은 이명박 정부 이후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사람이 바뀌지 않는 이상 결코 달라질 수가 없습니다.

MBC 역시 내부에서 고통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근래엔 교양제작국마저 폐지했습니다. 교양국은 시사보도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곳이죠. 몇 년 전 MBC가 시사프로그램의 제작 소관을 편성제작본부 산하 시사제작국으로 변경해 시사프로그램을 약화시키더니, 이제는 교양국마저 없앤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흔히 주류라고 하는 언론들의 변화가 이뤄질 수 없고 오히려 더 악화된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이하 김 사무처장)  더 나빠졌습니다. 기레기 반성 당시엔 세월호 참사가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최소한의 반성모드란 게 있지 않았습니까? 언론계 내부에서도 자성의 움직임이 있었고요. 지금처럼 대놓고 세월호 유가족들을 비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 이슈가 (세월호) 특별법 정국으로 넘어가면서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왜곡보도가 계속됐습니다. 심지어 MBC는 특별법 관련 보도는 거의 하지 않으면서 특별법 때문에 싸우는 유가족들 모습을 부각시켰고요

언론의 왜곡보도가 세월호 참사 발생 당시보다 더 심해졌습니다. 비록 초창기 전원구조 오보가 있었고 이후 선정보도도 뒤따랐지만, 적어도 있을 수 없는 참사가 일어난 데 대한 반성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예 무감각해졌어요. 세월호 참사에 대한 피로감을 강조하면서 그만 덮고 가자는 식의 보도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기레기에서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고 봅니다.

▲ 지난 4월 한국기자협회 주최로 ‘세월호 참사 보도 문제점과 재난보도 준칙제정 방안 토론회’가 열린 가운데 참석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이후 5개 언론단체는 지난 9월 ‘재난보도준칙’ 공동 준칙을 발표했다. ⓒ뉴시스

배정근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이하 배 교수)  세월호 사건이 언론계 전반에 전에 없던 각성의 기회가 됐고, 그러한 자성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성이 실질적인 취재보도 관행의 변화로 실천되고 있는지는 말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치열한 취재경쟁, 독자의 관심을 끄는 선정보도와 같은 언론의 구조적 환경이 크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자성의 움직임이 언론단체를 중심으로 이뤄질 뿐, 언론사 내부적으로 별다른 실천적 모습이 없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다만, 안전문제에 대한 기자들의 인식은 과거에 비해 많이 높아진 듯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추창근 전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이하 추 실장)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반성하는 척하면서 전혀 변화가 없었다고 할까요. 수 십 년간 쌓여온 언론계의 구조적 문제가 쉽게 변할 리 있겠습니까. 물론 언론계도 원칙은 있죠. 독자들이 관심을 갖는 뉴스 콘텐츠를 제공하겠다고 하는. 하지만 이 원칙이 언론의 선정주의와 만나면서 독자 관심을 끈다는 미명 하에 ‘관음증’으로 변질됐습니다.

지금 언론계는 뉴스보도에서 갖가지 문제를 안고 있어요. 신문지면과 방송시간의 제약을 들어 ‘거두절미’(去頭截尾·부차적인 설명을 빼고 사실의 요점만 말함)하고, 기자의 주관을 넣어 ‘견강부회’(牽强附會·근거가 없고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끌어대어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맞춤)하며, 기사거리도 안 되는 것에 대한 ‘침소봉대’(針小棒大·작은 것을 크게 부풀려서 말함)를 일삼고, 문제제기만 있고 대안은 없는 ‘용두사미’(龍頭蛇尾·처음은 좋으나 끝이 좋지 않음), 프레임에 맞춘 ‘사실왜곡’, 사안의 컨텍스트(전후맥락)는 안 보고, 텍스트(사실자체)만 보는 ‘불문곡직’(不問曲直·사리의 옳고 그름을 따져 묻지 않음) 등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세월호가 우리나라 시스템 문제의 결정판이듯, 세월호 참사에서 불거진 언론문제도 그간 내재해왔던 구조적 문제가 표출된 것이라 생각한다. 속보지향, 관변의존 보도행태가 그렇다. 또한 중요현장에 경험 없는 기자들을 보내는 관행도 문제다.” _ 배 교수 5월 좌담 中

언론계의 구조적 관행이 조금은 개선되었다고 보십니까.

배 교수  재난보도에서는 언론계 차원에서 새로운 재난보도 취재준칙 제정과 같은 의미 있는 조치가 있었기에 앞으로 조금씩 달라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관변자료에 의존하는 위험성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다만 중요 사건 취재를 경험 없는 초년병 기자들이 맡는 언론계 관행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국민들이 언론문제를 ‘내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희망이 보인다. 시민들이 언론에 대해 잘 알고, 개선시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을 때 결국 언론도 바뀔 수 있다고 본다.” _ 김 사무처장 5월 좌담 中

언론문제에 대한 국민 공감대가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김 사무처장 안타깝지만 (보수)언론이 이겼다고 봅니다. 언론의 잘못된 프레임잡기, 가령 세월호 유가족을 두고 ‘시체장사’ 한다는 식의 극단적인 표현들이 먹혀들었습니다. 유가족들이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혜를 바라고 유세한다는 언론보도에 국민들이 마치 세뇌가 돼버린 것 같습니다.

지금은 세월호 앞에 국론이 분열됐습니다. 유가족 입장을 지지하고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과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어요. 이 모든 것들을 사실상 언론이 부추겼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피로감’이라는 말도 세월호 참사 자체에 의해서라기보다, 언론이 피곤하도록 계속 (사회적) 분열을 조장했기 때문에 국민들이 지쳐버린 측면이 있습니다. 올해로 민언련 30주년을 맞았지만 언론문제 해결은 아직도 갈 길이 먼듯합니다. 
 

“어느 언론사에나 정확한 보도, 공정한 보도, 취재원 보호, 개인 사생활 존중, 취재원으로부터 금품이나 특권을 제공받지 않는다 등의 금과옥조가 다 있다. 기자로서 이 윤리강령을 지키는 것이 제대로 된 언론으로 향하는 첫걸음이다.” _ 추 실장 5월 좌담 中

언론이 제대로 된 첫걸음을 뗐다고 생각하시나요.

추 실장  첫걸음은커녕 매체문화가 혼탁의 극치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나치게 혼탁하면 자정기능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선 자정(自淨)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언론, 특히 도무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는 인터넷언론을 중심으로 점점 더 자극적·선정적 기사를 앞세워 그걸 무기로 광고를 끌어오기에 급급합니다. 언론으로서의 균형감각, 중립자세를 견지하며 차분히 담론하는 문화가 상실됐어요.

이렇게 된 데에는 언론 탓도 크지만 양질의 뉴스 콘텐츠를 차분히 기다려주지 않는 독자의 조급함도 크게 한몫했습니다. 말초적인 것에 지나치게 관심을 두는 독자의 관음증 앞에 언론도 공적기능을 포기한 채 끌려가고, 지금은 관음증을 언론이 주도하는 모양새입니다. 변질된 언론문화 속에서 누구도 벗어날 마음도, 자신도, 능력도 없는 듯해 안타깝습니다. 
 

“사회의 기준점을 제시하는 ‘선도 언론’이 사라졌다. 언론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안매체라고 불리는 작은 매체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뉴스타파의 등장은 꽤 의미가 있다. 세월호 사태에서 JTBC 뉴스가 보여준 보도행위도 지상파 등을 견제하는 역할이었다.” _ 김 교수 5월 좌담 中

선도언론 등장의 가능성, 지금은 어느 정도로 보십니까.

김 교수  두 가지를 얘기하겠습니다. 우선 뉴스타파와 JTBC뉴스는 (선도 언론으로서)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문제는 그 역할에 대해 일반대중이 ‘그렇구나’ 하고 인지하는 정도지, 그들 매체의 뉴스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소비해야겠다는 행동으로까지 연결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사회적 효과가 아직은 작습니다. 두 번째로 JTBC의 경우 현재로선 잘 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려하고 있어요. 손석희의 방송은 걱정하지 않지만 JTBC 자체는 우려감을 갖고 있습니다.

공통적으로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기레기 반성 이후에도 언론이 변화하지 않았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점 하나. 6개월 전 대한민국 언론의 변화, 저널리즘의 회복을 주장하던 기자 개개인의 목소리는 다 어디로 간 것일까요.

김 교수  기본적으로 기자는 진실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생기면 뚫고 나가 이겨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 언론을 원론적으론 비판하고 싶습니다만, 비판하기가 어려운 묘한 지점이 있습니다.

(언론사) 중간간부들은 기자의 취재내용에 대해 ‘(기사가) 돼, 안 돼’라고 하기보다 아주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가령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와라’ 식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기자들은 약해지는 측면이 있어요. 명예훼손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죠.

언론의 비판적 감시가 가능하려면 국가기관이나 공직자 보도에서 명예훼손 처벌을 해선 안 됩니다. 언론보도로 인한 명예훼손의 위법성 조각사유는 공익에 관해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경우, 또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입니다. 만약 100% 진실한 보도만 처벌되지 않는다고 하면 어떤 기자가 기사를 쓸 수 있겠어요?

이 관점에서 기자들도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보고 보도를 해왔는데 중간간부가 ‘100% 사실이야?’ ‘확실한 증거 있어?’ 하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어지는 거죠. (기자가)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고 해서 항시 저항하기는 참 어려운 조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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