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문이 불여일체험’…확산되는 체험저널리즘
‘백문이 불여일체험’…확산되는 체험저널리즘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5.04.02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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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인에서부터 보육교사까지, 신선한 콘텐츠로 차별화 시도

[더피알=문용필 기자]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다. 백 번 듣는 것 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는 의미다.

그런데 최근 언론기사들을 살펴보면 ‘백문이 불여일체험’이라는 새로운 말이 나올 만하다. 취재현장을 찾아가 직접 보고 듣는 차원을 넘어 몸소 체험하고 생생한 느낌을 전하는 이른바 ‘체험형 저널리즘’이 트렌드처럼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 일선 기자들의 체험을 통해 부자와 가난한 이들의 생활을 극명하게 대조한 <서울신문>의 '2015 대한민국 빈부리포트' 기사/사진: <서울신문> pdf판.

체험 기사의 형태가 전에 없던, 완전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과거와는 다른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예전엔 주로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해보고 장·단점을 소비자들에게 전달해주는 형태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취재원의 입장이 돼서 특정 직업이나 현재 진행중인 사회적 이슈와 맞물린 상황을 체험하고 이를 르포 형식의 기사로 전달하는 추세가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신문>이 올해 1월부터 약 한달간 선보인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다.

교육, 육아, 주거, 재산관리, 의복, 음식, 건강관리, 여가생활, 결혼 등의 소주제로 나눠 상위 1%의 부유층과 하위 9.1%의 절대빈곤층의 라이프스타일을 극명하게 비교한 이 기획은 특별기획팀에 속한 남녀 기자가 직접 걸인 활과 최고급 호텔스위트룸 생활을 각각 체험한 후 기사로 옮겼다.

이어 <서울신문> 특별기획팀은 지난 1일부터 ‘아날로그&디지털 리포트’라는 새로운 기획기사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3명의 기자가 각각 스마트폰과 PC모두를 사용하지 않거나, 스마트폰과 SNS를 끊고 PC만 사용하거나, 혹은 SNS만 사용하지 않는 등 3가지 유형으로 약 한달간 디지털 금단증상을 체험하는 포맷이다.

“판에 박힌 기획과 매너리즘 벗어나고 싶었다”

이에 대해 김상연 특별기획팀장은 “판에 박힌 기획과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새로운 유형의 기사를 만들고 싶었다”며 “사실을 캐내고 취재해서 보도하는 것도 기자의 의무지만, 일반독자들이 평소에 할 수 없는 것을 대신 체험해서 전달해주는 것도 기사라고 생각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또한 “책상에만 앉아서 자료를 보고 전화를 몇 번 돌리는 식의 그런 기사가 아니고 저널리스트가 직접 (체험해서) 취재한 것을 알려주면 독자들도 생생하게 감동받고 느낌도 더 올 것 같다는 취지에서 (기획) 하게됐다”고 덧붙였다.

반응은 좋은 편이다. 김 팀장은 “기사 댓글 같은 것을 보면 냉소적인 분들도 있지만 ‘고생했다’ ‘기대가 많이 된다’ 등 많이 격려해 주신다”며 “‘빈부리포트’의 경우 비교체험 기사가 나가니 동료기자들로부터 ‘쇼킹하다’ ‘이렇게 할 수도 있겠구나’ ‘참신하고 좋았다’ 등 굉장히 많은 반응이 있었다”고 전했다.

실제 이같은 체험형 저널리즘은 최근 들어 여러 매체에서 활발하게 시도되고 있다. <머니위크>는 2단계 구간이 개통된 서울지하철 9호선에 기자가 탑승해 ‘지옥철’을 체험한 기사를 선보였고, 대전·충청지역 일간지 <금강일보>는 기자가 직접 ‘폐지줍기’를 하기도 했다.

최근 어린이집에서의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라 발생한 이후 <KBS>와 <JTBC>는 기자가 일일 보육교사로 나선 체험 리포트를 같은날(3월 23일) 방송해 눈길을 끌었다.

<KBS>는 남성 기자가, <JTBC>는 여성 기자가 어린이집 아이들과 하루를 보냈다. 이와 관련, KBS 기자는 “아이들 모두가 행복한 보육현장을 만들려면 교사가 존중받는 여건부터 만들어 나가야한다”고 보도했다.

▲ 보육교사 체험에 나선 kbs 기자./사진:kbs 뉴스화면 캡쳐

<동아일보> 이철호 기자는 ‘서울 데이트할까요’라는 제목의 시리즈를 선보였다. 서울 시내 데이트 명소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기자는 자신의 여자친구와 함께 실제 데이트를 즐기면서 해당 장소에 대한 생생한 후기를 담아냈다. 커플 평점까지 등장하는 재미있는 기사다.

담뱃값 인상으로 인해 ‘금연열풍’이 분 이후 <뉴시스>와 <동아일보>, <더팩트> 등에선 기자가 직접 금연을 실천하거나 금연클리닉을 체험한 기사를 선보였다. 또 <뉴스1>, <머니투데이>의 기자는 직접 택배작업 체험에 나서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베껴쓰기’ 불가 효과…추수주의’는 경계해야

이같은 체험저널리즘이 확산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차별화인 것으로 분석된다.

김위근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원은 “(다른 매체와) 차별화된 기사를 쓰기 위한 방법일 것”이라고 보며 “일단 재미가 있고 독자들로 하여금 간접체험하게 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최근 언론 기사들이 스토리텔링에 노력을 많이 기울이는데 그런 점도 있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이는 현재 한국 언론들이 처한 현실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언론시장이 공급과잉에 이를 정도로 매체들이 우후죽순격으로 늘어나고 포털사이트가 뉴스 유통의 주요한 채널로 자리잡으면서 최근에는 특종이나 단독보도를 터뜨리더라도 다른 매체들의 ‘베껴쓰기’ 때문에 금방 묻히기 일쑤다. 그러나 이같은 체험형 기사는 베껴쓰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김성해 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체험형 기사는 다른 사람이 (베껴서)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차별화 전략 속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이는데 그것이 저널리즘의 올바른 방향”이라며 “앞으로 뉴스를 유료화를 하는 데 있어서 (기자) 자신이 발로 뛰고 체험해 기사로 만들고, 그것을 유료화 하겠다는 것은 건전한 접근이고 바람직한 방향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체험형 기사는 통신기술의 발달로 이메일로 전달된 보도자료나 전화 몇 통이면 취재가 가능해진 언론환경에서 정형화된 기사 스타일을 벗어나 독자에게 재미와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해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특히 디지털 시대를 맞아 점점 더 발로 뛰는 저널리즘에 대한 목마름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시도들은 매체와 기자 개개인의 역량과 콘텐츠의 퀄리티를 강화시켜줄 수 있는 요소도 될 수 있다. 언론에 대한 대중들의 신뢰를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나타난다.

김성해 교수는 “보도자료에 문장만 바꿔서 기사를 쓰는 것은 너무 쉽게 캐치된다. 자신의 저작권을 주장할만한 부가가치가 들어있지 않은데 새로운 것을 담아내지 못한다면 독자나 (언론) 소비자들에게 읽힐 수 있겠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이 나온다”며 “(체험형 저널리즘은) 상당히 참신한 시도”라는 견해를 나타냈다.

다만 “추수주의라는 말이 있듯, 충분한 경험이 없거나 사회적인 맥락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종합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단순히 현장만 경험한다면 이 경험에 매몰될 가능성이 높다”며 “그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기자는 기본적으로 전제되는 공정한 중재자의 역할을 포기하게 될 수 있다. 기자는 분명히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지만 투쟁하는 활동가는 아니다. 그 부분을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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