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의 ‘정치적 CSR’은 왜 실패했나
스타벅스의 ‘정치적 CSR’은 왜 실패했나
  • 임준수 (micropr@gmail.com)
  • 승인 2015.05.15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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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준수의 캠페인 디코딩] ‘레이스 투게더’ 함의와 한계

[더피알=임준수] 스타벅스가 지난 3월 중순 미국 내 주요 일간지에 ‘레이스 투게더(Race Together)’라는 슬로건을 내건 캠페인을 시작했다.

<뉴욕타임스> 광고에서는 검정 바탕에 ‘함께 극복할까요?(Shall we overcome?)’라는 문구를 가운데 넣고, 우측 하단에 캠페인 슬로건인 레이스 투게더 두 단어만 적었다. <USA투데이>에는 바리스타가 고객의 별도 주문사항을 체크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 스타벅스 고유의 친숙한 종이컵을 응용해 재치 있는 광고를 냈다.

▲ 스타벅스가 뉴욕타임스(왼쪽)와 usa투데이에 각각 집행한 레이스 투게더(race together) 캠페인 광고.


하지만 이러한 광고 메시지보다 더 화제가 된 것은 레이스 투게더 캠페인의 행동적 차원의 전술이었다. 하워드 슐츠 회장은 스타벅스 매장에서 고객들이 커피를 주문할 때 바리스타들이 종이컵에 레이스 투게더를 써넣어 주거나, 스티커를 붙여주도록 독려했고 바리스타들은 이를 따랐다.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캠페인이 전개되는 동안 주요 언론과 소셜미디어상에서는 주로 부정적인 의견들이 올라왔다. <이코노미스트>는 스타벅스 일선 매장 직원의 40%가 소수인종인데 반해, 19명의 회사중역에서 백인이 아닌 사람은 3명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다른 매체에선 길게 줄지어 선 고객들을 대하기도 벅찬 바리스타들에게 부담을 주는 결정이라고 꼬집었다.

소셜미디어상에서는 비판을 넘어 레이스 투게더를 조롱하는 놀이판이 벌어진 느낌이었다. 어떤 이는 ‘내가 원하는 것은 라떼컵에 내 이름이 똑바로 적혀있는 것이지, 내가 주문하지 않은 정치적 메시지가 아니다’며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Race Together’, 모험과 냉소

논란이 증폭되자 스타벅스는 커피컵에 레이스 투게더를 적는 캠페인을 지속할 수 없었다. 중단을 발표하면서 스타벅스 PR팀이 고려한 점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굴복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을 피하고 매장 직원들의 사기 저하를 막는 것이었다.

회사가 택한 전술(tactic)은 하워드 슐츠 회장이 쓴 공개서한(open letter)이었다. 일선 매장 직원들에게 보내는 슐츠 회장의 공개서한은 ‘친애하는 파트너님들(Dear Partners)’로 시작한다. 핵심 메시지를 들여다보자.

이번 레이스 투게더 발의에 여러분들이 용기 있고 열정적으로 지원해주신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작년 12월 시애틀에서 가진 우리 회사의 공개포럼으로 거슬러 올라가, 우리의 목표는 스타벅스 가족 간에 먼저 대화와 공감, 그리고 온정의 마음을 독려한 후 회사의 규모를 이용해 이를 더 많은 미국인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중략)
레이스 투게더 발의에 세간의 비판이 있었고 이 캠페인을 전개하는 것이 우리 누구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전폭적인 호응을 기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확인시켜드리고 싶습니다. 레이스 투게더의 심장에는 언제나 인류애가 있습니다. 아메리칸 드림은 선택된 사람만이 아닌, 우리나라 어떤 사람이라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캠페인을 전개하는 것은 이 문제에 관한 솔직한 대화가 가장 중요한 것임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들에 대해 영향을 주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데 있어서 언제나 목표를 높이 세울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공개서한이 소비자가 아닌 매장 직원들을 대상으로 쓰였다는 점이다.

20세기 초 19년간 AT&T의 부회장을 지내며 기업PR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서 W. 페이지(Arthur W. Page)가 역설한 ‘페이지 원칙 (Page Principle)’에선 “회사의 진짜 캐릭터는 조직의 구성원들에 의해 표현된다는 것을 인식해라”고 조언한다. 이 원칙은 “좋은 의견이건 나쁜 의견이건 한 회사에 대한 가장 강한 의견은 직원들의 말과 행동에 의해 형성된다. 결과적으로 현역에 있건 은퇴했건 모든 직원들은 PR에 관여하고 있다”고 부연한다.

▲ 레이스 투게더 캠페인이 여론의 뭇매를 맞자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 회장(사진)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공개서한을 통해 커뮤니케이션하는 전략을 취했다. ⓒap/뉴시스

슐츠 회장이 일반 소비자나 주주가 아닌 회사의 직원들에게 먼저 감사를 표하고 저간의 사정에 대한 이해를 구하며 비전을 다시 제시한 것에서 이 캠페인에 임하는 그의 진정성과 직원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이 공개서한을 내보낸 후 하워드 슐츠 회장은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레이스투게더 캠페인은 마케팅이나 PR 행위가 아니다”고 말했다. 혹자는 그가 정치적 야심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보내기도 했지만, 슐츠 회장은 이미 자신은 정치에 나서는 데 조금의 관심도 없다고 여러 차례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지난 2월 <타임>지 커버스토리로 나간 특별 인터뷰에서 슐츠 회장은 작년 미주리주 퍼거슨시에서 백인경찰의 과잉진압으로 흑인청년이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을 언급했다.

그는 해당 사건 이후 퍼거슨 시에서 격렬한 시위가 일어나고 뉴욕, 시카고, LA 등 주요 대도시로 저항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레이스 투게더 캠페인을 개시하기 전 이미 반대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는 듯한 뉘앙스의 발언을 덧붙였다.

“사람들은 우리가 이 문제를 건드려선 안 된다고 말합니다. 논란이 일어날 수 있고, 주주들을 화나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하지만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인종문제에 대해 대화가 무시되는 것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건드리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나마저 이를 무시하고 그저 매상 올리는 일에만 몰두한다면 나도 문제의 일부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 모인 겁니다. 이젠 이야기합시다.”

CEO 행동주의 vs 진화하는 CSR

듀크대 푸쿠아 비즈니스 스쿨의 애런 채터지(Aaron Chatterji) 교수와 하버드 비지니스 스쿨의 마이클 토펠(Michael Toffel) 교수는 이번 ‘레이스 투게더’ 캠페인을 ‘CEO 행동주의(CEO Activism)’로 정의한다.

이들은 하워드 슐츠 회장의 CEO 행동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큰 그림을 놓치고 있다며, 그들이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슐츠 회장의 노력은 칭찬받을 일이라고 한다. 다른 기업들처럼 로비를 통해서가 아닌, 비교적 열린 그리고 투명한 방식으로 정치적 문제를 제기하고 그 과정에서 이윤창출을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방식이 기업인들이 슈퍼팩(Super PACs, 후보자에 대한 직접적 금전 지원이 아니라면 특정 정치인이나 법안에 지지 혹은 반대 운동을 하는데 있어 무제한적 기금 모금이 가능한 슈퍼 정치행동위원회)이나 동종협회, 혹은 정치적 색채가 강한 싱크탱크에 수백만 달러를 몰래 유입시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구태적인 로비에 대한 저항운동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일면 타당한 문제제기다. 하지만 레이스 투게더 발의(initiative)를 단지 하워드 슐츠 회장 개인의 행동주의로 국한시키는 것은 조직을 간과하고 너무 개인에게만 초점을 맞춘 시각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이 캠페인은 개인의 행동주의가 아니라, 조직적 차원의 사회적 책임(CSR)으로 봐야 한다. 실제 회사는 오픈 포럼 등을 통해 일선 매장 직원들의 의견을 경청했고, 이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스타벅스의 레이스 투게더 발의는 진화하는 CSR 정신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불어넣고 있다. 바로 기업의 정치적 행위로서의 CSR이다. 최근 이런 ‘정치적 CSR’에 대한 연구가 늘어나고 있다.

코펜하겐 비즈니스 스쿨의 몰싱(Morsing) 교수 등은 <비즈니스 윤리 저널(Journal of Business Ethics)> 최신호에 발표한 논문에서 기업이 인권이나 지구온난화 같은 사회적 혹은 환경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조직적 차원에서 회사가 정치적 영역으로 개입하는 것을 ‘정치적 CSR’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90년대 경영학계에서 유행했던 이슈관리(issues management)나 사회적 대응(social responsiveness)으로써의 CSR과 대비되며, 이런 정치적 CSR을 통해 조직은 다른 기업과 차별되는 조직의 정체성과 이미지 확립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 기업의 정치적 행위로서의 csr이 주목받고 있다. 구글의 경우 소치 올림픽 당시 무지개 두들(doodle, 기념일에 선보이는 특별 로고)로 러시아의 반동성애법에 대한 반대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소치 올림픽 당시 구글은 무지개 두들(Doodle, 기념일에 선보이는 특별 로고)로 러시아의 반동성애법에 대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구글은 그 전에도 반동성애 법률이 존재하는 싱가포르나 폴란드와 같은 나라에서 ‘사랑을 합법화해주세요(Legalize Love)’ 캠페인(http://cnnmon.ie/1EenKrb)을 벌인 적 있다. 동성애자의 일할 권리 보호라는 사회적 이슈를 끊임없이 제기함으로써 구글은 채용과 승진에서 차별하지 않는 회사라는 조직적 정체성과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었다고 본다.

<전략이 지배한다(Strategy Rules)>의 공저자들은 <타임>지에 기고한 ‘스타벅스의 레이스 투게더 발의는 훌륭하다’는 글에서 “위대한 전략가들은 자신들의 회사가 미래의 어느 시점에 어디에 있어야 할 지를 결정하기 위해 앞날을 헤아려 본 후 회사가 그 목표점에 도달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를 이성적으로 돌아다본다. 하워드 슐츠는 지금 미국이 인종 문제로 양분돼 있음을 이해한 바탕에서 모든 사람이 편안하게 모일 수 있는 중립지대로서의 스타벅스의 미래를 꿈꾸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열린 대화’의 중요성 간과

이처럼 스타벅스의 레이스 투게더 캠페인은 여러 측면에서 긍정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하지만 몇 가지 한계도 분명 존재한다. (*아래 영상은 레이스 투게더 캠페인 중단 소식을 비중 있게 전한 뉴스리포팅)

우선 매장의 기본 영업활동을 이용해 캠페인을 한 것은 큰 실수였다. 컵에 레이스 투게더를 적어 넣도록 바리스타들을 독려하기보다는 매장에 브로슈어 같은 것을 비치하거나, 매장 게시판에 지지하는 소비자들이 자기 생각을 올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줬더라면 더 긍정적인 평가를 얻어냈을 것이다.

캠페인을 전개하기에 앞서 일선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했다고는 하지만 집행 과정에서는 다분히 상명하달식 방법을 쓴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인종적 정의를 추구하는 전국적 비영리단체인 레이스 포워드(Race Forward)의 사무총장인 린쿠 센(Rinku Sen)은 “직원들을 참여시키는 데 있어 스타벅스의 노력을 높게 산다. (하지만) 집행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는데 있어서 뭔가 중요한 게 빠졌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캠페인 전개의 목적을 공유하는데 있어서는 직원들을 잘 참여시켰지만, 레이스 투게더(와 관련된) 대화를 바리스타들이 의미 있게 이끌어 갈 수 있도록 교육시키는 고려는 거의 하지 않은 것 같다”라는 의견을 냈다.

또한 캠페인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스타벅스는 회사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려고만 했지, 이 문제에 동조하고 큰 힘을 보태줄 수 있는 전문가들이나 여론선도층을 찾고 이들을 동참시키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소셜미디어 분석을 통해 이 문제에 동참할 수 있는 이른바 영향력자들(influencers)을 발굴하고 이들을 통해 캠페인 대화 확산을 유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캠페인 초기 코리 두브로와(Corey duBrowa)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부사장이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지운 것은 PR의 총책임자로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될 과오였다. 계정을 없애기 전 그는 이 캠페인에 대해 비판적인 질문을 제기한 트위터 사용자들을 차단(block)함으로써, ‘함께 대화하자고 해놓고서는 대화를 시도하니 블록해버린다’는 비판의 빌미를 제공했다.

마지막으로 이 사례를 통해 캠페인에 대한 평가는 순전히 양적으로만 매길 수 없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가령, 캠페인의 목표가 단지 레이스 투게더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소셜미디어상에서 더 많은 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었다면 스타벅스의 목표의 200% 초과달성한 셈이다. 상당수 사람들이 캠페인에 대해 들어봤고, 소셜미디어상에서도 캠페인 해시태그(#RaceTogether)가 며칠 간 계속 트렌딩 키워드가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뉴욕타임스> 기자가 맨해튼의 스타벅스 매장에서 레이스 투게더 스티커가 붙여진 종이컵을 받아든 한 소비자에게 그 의미를 물었을 때 “바리스타가 그냥 붙여주고 이게 뭔지는 설명해 주지 않더군요. 전 그저 광고인 줄 알았어요”라고 답변이 돌아온 대목에서 이번 캠페인의 한계가 무엇이었는지 단적으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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