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왜 ‘퓨전요리’에 손을 대나
언론은 왜 ‘퓨전요리’에 손을 대나
  • 박형재 기자 (news34567@the-pr.co.kr)
  • 승인 2015.05.26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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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독자 입맛’…새로 차린 밥상 얼마나 먹힐까

[더피알=박형재 기자] 최근 들어 각 언론들 사이에서는 ‘카드뉴스’ ‘웹툰뉴스’ 같이 기존의 기사형식을 파괴한 참신한 포맷의 뉴스들이 속속 선보여지고 있다. (관련기사: 까다로운 입맛 잡는 언론의 新메뉴, ‘형식 파괴 늬우스’)


그렇다면 왜 형식파괴일까? 사실 언론들이 새 메뉴를 개발하고 익숙하지 않은 퓨전요리를 시도하는 이유는 손님들의 입맛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보급과 함께 뉴스를 실시간으로 접하게 되면서 변화는 언론의 생존 문제가 됐다. 예컨대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처음 보도된 날 하루에만 포털사이트에 관련 뉴스가 수백건 올라왔고, 다음날 조간신문들은 일제히 머릿기사로 전했지만 이미 대부분 독자들은 해당 내용을 아는 상태였다.

언론의 위상이 흔들리는 것도 “이대로는 안된다”는 위기감을 불러왔다. 이미 2013년부터 신문기사를 읽는 경로로 모바일 기기가 1위로 올라섰다. 신문기사를 신문으로 읽는 경우는 노트북이나 PC에 이어 3위였다.

인터넷에서 전통 언론의 브랜드 파워도 먹히지 않고 있다. 인터넷뉴스 이용자의 71.5%가 포털사이트 메인 페이지를 클릭해 기사를 읽은 반면, 처음부터 언론사 홈페이지를 찾아간 경우는 7.4%뿐이다. 특히 포털을 통해 뉴스를 읽은 사람 중 3분의 2는 기사를 쓴 언론사가 어디인지 알지 못했다.

▲ 연합뉴스의 ‘스마트폰 없이 살아보기’/사진: 연합뉴스 기사 캡쳐.
설상가상으로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2014년 언론연감에 따르면 기자직 종사자는 2만7398명으로 전년대비 7.2% 증가했다.

독자들의 성향이 바뀐 점도 변화에 불을 지폈다. 지금 20대 독자들은 처음부터 인터넷과 디지털을 모두 경험한 세대다. 이들은 직관적, 비주얼적, 멀티미디어적, 엔터테인먼트적 콘텐츠 경험에 익숙하다. 기존 구독자와 전혀 다른 세대를 공략하려면 새 전략을 짤 수밖에 없다.

플랫폼과 이용자가 급변한 상황에서 언론사들은 새로운 독자를 찾아 ‘새로운 평판’을 구축할 필요성이 생겨났다. 예컨대 손님 다 떠나는데 ‘50년 전통의 명가’라며 음식 하나만 고집하다가는 쪽박차기 좋은 환경이 된 셈이다. 살아남으려면 손님이 먹기 편하게 요리하고, 간편한 핑거푸드도 만들 줄 알아야 한다.

최진순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한국경제 기자)는 “모바일(작은 화면), 소셜 플랫폼 등으로 정보를 소비·노출하는 공간이 바뀌고, 인터넷을 처음부터 사용한 세대가 신문 등 콘텐츠 이용의 주축이 되면서 이용자 전략을 다시 짤 필요성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입은 ‘디지털 퍼스트’, 발은 ‘페이지 퍼스트’

사실 언론사들의 형식파괴 바람은 새로운 게 아니다. 예전부터 언론들은 늘 파격을 꿈꿨다. 조선일보 만물상, 동아일보 횡설수설, 중앙일보 분수대, 세계일보 설왕설래 등은 칼럼 형식을 취했지만 소재와 형태의 제약 없이 자유로운 발언으로 주목받아왔다.

문화일보에 연재됐던 소설 ‘강안남자’는 다소 외설적인 내용으로 입길에 올랐지만, 그것 때문에 신문 사보는 사람도 꽤 많았다. 바둑, 골프 등 스포츠 지면도 시대에 따라 지면에 배정되거나 빠졌다. 독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과 혁신은 늘 있어왔다는 얘기다.

YTN ‘돌발영상’은 형식파괴 뉴스의 원조 격인 방송이다. 2003년 방송되지 못한 뉴스 부적합 장면들을 모아 1분30초짜리 꼭지로 처음 시작된 돌발영상은 시청자들의 호응 속에 3분짜리 정식 꼭지로 자리 잡았다. 실세 정치인부터 대통령까지 풍자 대상에는 성역이 없었고, 촬영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돼 팩트 보도라는 저널리즘의 기본을 지켰다.

조간신문의 주요 기사를 일목요연하게 훑어주는 ‘아침신문 솎아보기’(미디어오늘)나 직장인들의 애환과 애피소드를 그린 ‘김과장&이대리’(한국경제), 인터넷에서 이슈가 되는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설명한 ‘친절한 쿡기자’(국민일보),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전달하는 ‘취재파일’(SBS) 등은 꾸준히 사랑받는 시리즈물로 자리매김한 사례다.

김위근 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은 “흔히 뉴스 포맷은 정형화된 것으로 생각하는데 예전부터 독자를 사로잡기 위한 실험들은 계속돼왔다. 최근 디지털 환경의 일상화로 변화의 진폭이 커 보이지만 차별적 뉴스를 만들기 위한 과정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언론 형식파괴의 원조 격인 ‘ytn 돌발영상’/사진: ytn 영상 캡쳐
언론은 그동안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 플랫폼과 모바일 등 멀티미디어적 변화에 소극적으로 대응해왔다. ‘설마 종이신문이, 지상파가 없어지겠어’라며 현실에 안주했다. 그 결과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최근 몇 년 새 새 플랫폼이 시장에 확고히 자리 잡으면서 거센 영향력의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언론들은 부랴부랴 새 플랫폼에 적응하기 위한 도전을 시작했다. 뉴스의 이해를 돕는 카드뉴스와 다양한 시각 요소에 깊이를 더한 인터랙티브 콘텐츠, 뉴스의 이면을 분석하는 콘텐츠들이 독자의 호평을 이끌어낸 것은 좋은 신호다. 그러나 위기의 장벽은 높고, 변화를 요구하는 칼바람은 매섭다. 여전히 많은 언론들이 입으론 ‘디지털 퍼스트’를 말하지만 발은 ‘페이지 퍼스트’에 묶여 있다.

이재훈 한겨레 디지털콘텐츠팀 기자는 “좋은 기사를 쓰면 사람들이 와서 보는 시대는 끝났다. 각각의 플랫폼에 맞춤형 콘텐츠를 마련해 독자와 적극 소통해야 한다. 기자들도 개인이 브랜드라는 생각으로 달라져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신문을 생산하는 기업이 아니라 맞춤형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진순 교수는 “언론들이 디지털 콘텐츠를 내놓고 있지만 아직까진 큐레이션 수준에 그치고 있다. 새 콘텐츠를 만드는 목적을 분명히 하고 구체적인 플랜을 짤 필요가 있다. 일방적 정보 제공에서 양방향으로, 참여저널리즘에서 협력저널리즘(뉴스펀딩)으로 변화하는 흐름을 인식하고 브랜드 로열티를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무엇보다 이용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같이 만들어 나간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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