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진정성? 이제 그만 하자
말로만 진정성? 이제 그만 하자
  • 더피알 (max@brandigm.co.kr)
  • 승인 2015.06.08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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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부영의 Unchangeable] 메시지 따로, 실체 따로

[더피알=황부영] 2010년 출간된 마이크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미국에서 10만부 남짓 팔렸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00만부가 훌쩍 넘게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 책에서 샌델은 정의란 이런 것이라고 명쾌한 답을 주진 않았지만 정의가 분배의 문제인 것만큼은 명확히 밝혔다. 정의로운 사회는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올바르게 분배하는 사회라는 얘기였다.

▲ 제일 각광받는 화두는 가장 결핍된 가치다. 우리 사회에서 진정성이란 말이 범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오히려 가짜가 판을 치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에는 조금 뜬금없지만 <미움받을 용기>와 같이 아들러 심리학을 다룬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남을 의식하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으려는 강박을 버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란 내용이다.

아들러는 그의 책에서 세상의 눈으로 자신의 가치나 중요도를 판단하니까 불안감이 생겨난다고 진단한다. 사회가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한 강박 때문에 불안해한다는 것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좀 더 직설적이다. ‘실패한 삶이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만을 만족시키다가 끝나는 삶이다’라고 얘기한다.

이처럼 <정의란 무엇인가>와 <미움받을 용기>가 우리가 전혀 몰랐던 완전히 새로운 얘기를 하는 책은 아니다. 한 사회에서의 베스트셀러는 텍스트(내용)의 문제일 뿐 아니라 더 크게는 컨텍스트(맥락)의 문제다. 베스트셀러는 사회적 맥락, 그 시대의 화두를 일정 정도 반영한 결과물이다.

아버지의 막대한 돈을 물려받을 ‘권리’와 아버지 회사를 바로 경영하는 ‘자격’을 구분하지 않는 뻔뻔함은 꾸준히 반복됐다. 분배의 측면에서 더 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덜 내고 있다는 의심은 커졌다. 그러다 보니 우리에게 가장 모자란 것은 정의라는 생각을 더 많은 사람이 하게 된 것, 이것이 사회적 맥락이다.

나라 경제가 좋았던 시절이 지나고 개인적인 선택에 많은 제한을 받는 보통 사람들이 성공한 사람들의 신화를 보면서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위로 받기 위해 필요한 메시지는 ‘네 맘대로 살라’는 것 아닐까? 이처럼 베스트셀러로 표출되는 사회의 화두는 그 시기 가장 결핍된 가치다. 부족한 가치이기에 더 각광받는 것이다.

걸핏하면 홍보가 문제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최근 꾸준히 언급되는 화두는 무엇이 있을까? 21세기 들어 브랜딩과 마케팅, 기업경영의 진정성은 거역할 수 없는 하나의 화두로 떠올랐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커뮤니케이션 분야는 물론 정치를 비롯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진정성’이란 말이 일상적 용어가 된 듯 하다.

▲ 베스트셀러는 사회적 맥락, 그 시대의 화두를 일정 정도 반영한 결과물이다. 사진: 최근 인기를 모으고 있는 책 <미움받을 용기> 표지.
진정성이란 말은 그리스어 ‘authentikos’에서 유래했다. 이 말 자체가 ‘진짜’라는 뜻이다. 따라서 가짜가 판치는 곳에서 진짜는 ‘원본’이나 ‘독창성’을 뜻하기 마련이다. ‘독창적인 원본’을 만들어 내는 사람(author), 그러한 사람들은 권위를 가지게(authoritative) 마련이었다.

제일 각광받는 화두는 가장 결핍된 가치다. 우리 사회에서 진정성이란 말이 범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오히려 가짜가 판을 치기 때문일 것이다. 내세우는 메시지와는 다른 행보를 보이는 정치인, 실체와 메시지가 서로를 배반하는 기업 이 모두가 가짜인 것이다.

이런 가짜는 권위주의적(authoritarian)일 순 있어도 권위를 갖게(authoritative) 되지는 못 한다. 그렇기에 진정성이 모자란 정치인이나 기업일수록 문제를 ‘소통’에 돌리는 성향이 강하다. 걸핏하면 홍보가 문제라고 하는 공통점도 나타난다. 파인과 길모어 교수는 <Authenticity>에서 “이제 소비자들은 브랜드를 보면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진짜를 가짜보다 더 좋아하는 것은 원래 당연한 것이고 그런 경향성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에도 21세기 들어 진정성이 갑자기 부각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두 가지 현상 때문이다.

21세기 들어 본격화된 현상 중 첫번째는 정보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정보주권의 재편성’이다. 온라인의 급속한 발전으로 오랫동안 정보 수용자에 그쳤던 소비자가 정보의 생산 및 전파의 주체로 격상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는 기업 차원에서 통제됐던 기업에 불리한 정보들이 이제는 숨기기가 어렵게 됐다.

두번째는 ‘인구구성의 재편성’ 현상이다. 인구의 노령화가 본격화됐다는 뜻이다. 인구의 노령화는 40세 이상의 중장년층이 인구구성의 절반을 넘게 차지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제 사람들은 공식적인 경제활동이 끝나고도 오랜 시간을 더 살아야만 된다.

여기에 하나의 집단 무의식이 작용한다. 긴 세월을 더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소비행위에서도 의미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모두가 착해진다는 뜻은 결코 아니지만 되도록 의미 있는 소비를 선호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서킷시티의 실패, 베스트바이의 성공

진정성의 핵심은 데이비드 마이스터의 신뢰방정식, ‘T=(C+R+I)/S’에 잘 나타나있다. 방정식의 약자는 각각 트러스트(Trust), 크레더빌러티(Credibility), 릴라이어빌러티(Reliability), 셀프 인터레스트(Self-interest)를 가리킨다.

트러스트(Trust)나 크레더빌러티(Credibility)나 릴라이어빌러티(Reliability) 모두 ‘신뢰’라고 해석하면 도대체가 무슨 말인지가 헛갈리게 된다. 여기에 진정성의 핵심개념이 숨어 있다.

신뢰방정식에서는 ‘신뢰(Trust) = 전문성이 주는 믿음(Credibility)+약속과 이행이 연결된다는 경험의 반복, 즉 일관성에 의한 확실성(Reliability)+친밀감(Intimacy)÷이기적 성향(Self-interest)’의 결과란 것이다.

진정성의 요체는 바로 이 일관성에 의한 확실성을 뜻하는 릴라이어빌러티(Reliability)이다. 언행일치라는 얘기다. 메시지와 메신저가 서로 배반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성의 출발인 진짜배기의 요건이 된다.

▲ 서킷시티와 베스트바이는 언행이 일치했느냐, 메신저가 메시지를 배반하지 않았는가에 따라 비즈니스의 성패가 갈렸다. 사진: 베스트바이 홈페이지.
‘전자제품을 쉽고 즐겁게 사는 곳(Making it easy for custom­ers to shop, buy and enjoy electronic products)’을 똑같이 약속한 서킷시티그룹(Circuit City Group)과 베스트바이(Best Buy)의 엇갈린 명암에서 우리는 간단하지만 강렬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 둘은 커뮤니케이션에선 차이가 없었다. 메시지로는 항상 ‘전자제품을 쉽고 즐겁게 사는 곳’이라고 얘기했다. 커뮤니케이션도 같고 취급하는 제품도 다르지 않은데 왜 서킷시티는 실패하고 베스트바이는 성공했는가?

언행이 일치했느냐 메신저가 메시지를 배반하지 않았는가가 성패를 갈랐다. 서킷시티는 유통업의 특성상 비용절감에 주목했고 인건비를 절약하기 위해 미숙련 서비스 인력을 활용했다. 숙련도가 떨어지는 직원들의 고객 대응은 항상 조금씩 늦기 마련이었고 결국 ‘전자제품을 쉽고 즐겁게 사는 곳’이 되지 못했다. 메시지와는 상반된 메신저였던 것이다.

베스트바이는 달랐다. 그들은 심지어 긱 스쿼드(Geek Squad)를 만들어 전진 배치했다. 긱(Geek)은 기계에 정통한 괴짜를 뜻하는 속어다. 이들과 얘기하면서 전자제품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해 보자. 말 그대로 ‘쉽고 즐겁게’ 살 수 있게 된다. ‘전자제품을 쉽고 즐겁게 사는 곳’이라는 브랜드 메시지가 실제로 명확히 반영된 것이다.

진짜와 가짜가 구분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진정성’을 인정받고 싶다면 우리가 내세우는 메시지를 우리가 충실히 실체에 반영하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 볼 일이다. 소통이 안 돼서 우리 진심을 몰라주는 것이라고 커뮤니케이션 담당자 들볶지 말고.

 

황부영

브랜다임앤파트너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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