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닥터’에게서 스핀닥터 모습을 보다
‘쇼닥터’에게서 스핀닥터 모습을 보다
  • 김동석 (dskim@enzaim.co.kr)
  • 승인 2015.06.22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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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커뮤니케이션닥터] 올바른 정보 < 재미·이슈·이익…건강 위험 노출

[더피알=김동석] 의료계 안팎으로 ‘쇼닥터(show doctor)’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대한의사협회의 정의에 따르면 쇼닥터는 의사 신분으로 방송매체에 출연해 의학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시술을 홍보하거나 건강기능식품 등을 추천하는 등 간접, 과장, 허위 광고를 일삼는 일부 의사를 의미한다. (관련기사: 의사인가? 쇼호스트인가? ‘닥터테이너’의 탄생)

가수 신해철 씨의 죽음을 계기로 시작된 쇼닥터에 대한 비판과 논란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다.(관련기사: “우리도 신해철 씨처럼만 해주세요”) 대한의사협회는 ‘쇼닥터 대응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고, ‘의사 방송 출연 가이드라인’까지 제정하며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하지만 대중의 건강정보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고 있고, 여기에 경쟁적 의료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일부 상업적 의사들의 홍보 수요가 맞아 떨어지면서 의사협회의 대책이 과연 실효를 거둘 수 있을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여전히 TV 홈쇼핑 채널 등에서는 잘 포장된 건강정보들로 무장한 건강제품들이 쇼호스트와 쇼닥터들의 화려한 입담으로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으니 말이다.

의사의 TV출연이나 오락 형태를 차용한 의학프로그램들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어렵고 무거운 주제인 의학정보를 신뢰할 만한 의료진이 출연해 시청자 눈높이에 맞춰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주는 것은 오히려 장려할 부분이다. 국내외 의료 학회에서 국민 건강이라는 대의와 공익적 성격에서 펼치는 질병인식 PR 캠페인은 의사들의 사회적 봉사 성격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화려한 입담에 가려진 위험한 메시지

문제는 상업적 목적을 위해 정보를 ‘왜곡’하는 경우다. 헬스커뮤니케이션에서 의사라는 전문가가 갖는 힘은 대단하다. 의료 지식과 기술은 일반인들이 단기간에 습득하거나 숙련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닌 전문가의 영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올 초 미국에서는 거의 사라졌던 ‘홍역’이 다시 창궐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 주요한 원인 중 하나는 홍역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며 일부 부모들이 자녀들의 예방접종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같은 황당한 사건의 단초는 홍역 예방에 쓰이는 MMR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앤드루 웨이크필드라는 영국 의사의 논문이 1998년 세계적 의학전문지 <란셋(The Lancet)>에 실리면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MMR백신과 자폐증 관련성이 쟁점화되면서 영국에서는 백신접종 반대운동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나중에 이 논문은 엉터리로 밝혀져 논문철회는 물론이고 해당 의사는 의사면허까지 박탈당하는 처지에 놓인다.

연구자의 입장에서 부정적인 결과를 의도적으로 제외했고, 홍역 바이러스를 검사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위험한 검사를 시도했을 뿐만 아니라, 피험자인 아이들의 부모들이 MMR 관련 소송을 준비하고 있을 때 의사가 나중에 소송에 도움을 준 대가로 약 7억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사실 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엉터리 연구결과 하나에 적지 않은 부모들이 홍역백신 접종을 거부하며 어린이를 위험에 노출 시키고 있는 것이다.

헬스케어 PR을 하다 보면 ‘완치’ ‘탁월한’ ‘최초’ ‘유일’ ‘기적적인’ 등 극단적이고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게 굉장히 조심스럽다. 그만큼 헬스케어 보도자료 내용은 일반 생활용품의 메시지보다 현란하지 않고 밋밋한 경우가 많다.

▲ 의료계 안팎에서 쇼닥터 논란이 일면서 대한의사협회는 여러 방면에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사진은 협회에서 제정한 '의사 방송 출연 가이드라인'.

의학이 과학의 한 영역이라고 봤을 때 실험을 통해 나온 효능·효과라고 할지라도 항상 100% 명확하다고 볼 수는 없다. 각종 임상과 허가의 과정을 거쳐 20년 넘게 사용돼 오던 의약품이 몇 건의 반대 연구결과 발표로 시장에서 퇴출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특히 제약사의 의약품과 관련된 보도자료는 심한 경우 3분의 1 이상이 관련 문헌이나 근거자료를 위한 주석을 다는 데 할애되기도 한다. 그만큼 생명과 건강을 다루기 때문에 조심스럽다는 의미다.

이에 비해 소위 부정적 의미의 일부 쇼닥터들이 사용하는 단어선택은 너무도 단정적인 경우가 많다. 올바른 정보보다는 재미나 이슈, 이익을 더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식품은 식품일 뿐이다. 만약 식품이나 건강기능식품이 각종 광고에서 의약품 못지 않게 효능이 있는 것처럼 자신 있게 강조하는 효과가 확실히 있다면, 그 제품은 식품이 아닌 의약품으로 허가를 받았어야 한다.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이라는 말이 있듯, 식품과 건강기능식품이 장기적으로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맞지만 의약품과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PR인의 도덕적 딜레마

연일 쇼닥터에 대한 비난성 기사가 올라오는 가운데, 과연 이것이 쇼닥터만의 문제인가 곱씹게 된다. 비난의 포화를 늦추지 않고 있는 미디어 역시 쇼닥터의 주요한 데뷔무대이자 공급처라는 점에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관련기사: 건강 프로그램이 건강을 해친다?)

정통의학을 부정하는 선정적인 선전어구로 독자몰이를 하며 판매에 열을 올리는 일부 출판사는 어떤가. 유명세를 이용해 제품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상태에서 얼굴값으로 한 번에 수천, 수억씩 제품을 팔아치우는 일부 몰염치한 연예인은 또 어떤가. 제품 판매와 실적이라는 목적에만 충실해 과정을 무시하고 미사어구로 소비자를 현혹하는 일부 교활한 마케터는 어떤가.

PR인도 이에 자유로울 수 없다. PR인은 조직(인하우스) 및 고객(에이전시)의 대변인으로서 조직과 고객의 성공과 생존을 위해 도덕적 딜레마 앞에서 갈등하기 쉽다.

정치권에는 스핀닥터(spin doctor)라는 용어가 있다. 홍보, 기획, 메시지 관리, 아젠다 설정 등의 분야에 탁월한 능력이 있는 PR 전문가를 칭한다. 정치권에선 특정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들의 대변인 구실을 하는 정치홍보 전문가를 의미하지만, 보통은 목적을 위해 진실을 왜곡하는 부정적 이미지로 많이 쓰인다.

헬스케어를 비롯해 어떤 영역의 PR에도 자의든 타의든 이런 스핀닥터가 될 수 있다. PR인은 언제나 ‘을(乙)’에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PR이 ‘세상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이라고 했을 때 PR인들의 힘은 결코 작지 않다. 영향력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언론보다도, 의사보다도 막후에 더 큰 힘을 가진 직업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 힘을 잘못 사용했을 때 생기는 사회적 파장도 클 수밖에 없다.

PR의 힘으로 모래성 같은 유명세를 탔다가 한 순간에 무너지는 사람, 기업, 제품을 흔히 본다. “명예를 쌓는 데는 20년이 걸리지만, 이것을 망가뜨리는 데는 5분이면 충분하다”는 말이 있다.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전문가로서 도덕적 무장, 그리고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혜안을 기르는 일, 그것이 PR인이 존경 받는 전문가로 대접받을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다. 특히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헬스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에게는 더욱 필요한 덕목일 것이다.

김동석

헬스커뮤니케이션 전문회사 엔자임 헬스(Enzaim Health)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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