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비 나르던 로봇 이제는 글 쓴다
중장비 나르던 로봇 이제는 글 쓴다
  • 안선혜 기자 (anneq@the-pr.co.kr)
  • 승인 2015.06.29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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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저널리즘 대두…야구 기사, 팩트 전달력 기자 못지않아

첨단 자동화기기의 발달로 블루칼라(육체노동자)들의 고용 상실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이후 이제는 화이트칼라 영역에까지 로봇이 침투해 들어왔다.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뚝딱 속보를 생산해내는 능력 앞에 인간은 마냥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걸까?

KIA는 28일 열린 홈경기에서 두산을 2:1, 1점차로 간신히 꺾으며 안방에서 승리했다. KIA는 스틴슨을 선발로 등판시켰고 두산은 장원준이 나섰다. 팽팽했던 승부는 8회말 3아웃에 타석에 들어선 최용규에 의해 갈렸다. 최용규는 두산 장원준을 상대로 적시타를 터뜨리며 홈으로 주자를 불러들였다. 최용규가 만든 1점은 그대로 결승점이 되었다. KIA는 두산의 9회초 마지막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내며 28일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 (2015.06.28.)

[더피알=안선혜 기자] 지난 28일에 있었던 KIA와 두산의 프로야구 경기 기사다. 일반적인 야구기사와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이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이준환 교수팀이 개발한 ‘프로야구 뉴스로봇’이 쓴 것이다.

로봇하면 흔히 생각하는 움직이는 기계가 현장을 취재해 기사를 작성하는 건 아니고,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오로지 알고리즘을 통해 기사를 생성한다.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가 기사를 쓰는 것이다.

국내 ‘프로야구 뉴스로봇’의 경우 아직 상용화 단계는 아니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로봇이 작성한 기사들을 자사 매체에 싣는 미디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AP통신>은 지난해 6월부터 오토메이티드 인사이트(AI)와 제휴를 맺고 속보와 기업 실적 뉴스 보도에 자동화 기술을 적용했다.

<AP>는 현재 AI의 ‘워드스미스’ 플랫폼을 통해 분기당 3000건(월 1000건)의 기사를 알고리즘으로 생산하고 있다. 올해에는 적용 범위를 보다 넓혀 스포츠 기사로까지 확장할 것이란 계획이다.

<LA타임즈>는 퀘이크봇(Quakebot)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지진 관련 정보를 자동으로 수집하고 정리·확인·요약해서 기사를 내보낸다. 지진 발생 직후 미 지질조사국(USGS)이 사실을 알리면, 진앙지와 진도 등 주요 정보를 바탕으로 기사를 자동으로 작성해 송고하는 시스템이다. 일반인이 지진 발생 소식을 전달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불과 몇 분 이내다.

<LA타임즈>는 지진보도뿐 아니라 경찰로부터 전달된 범죄자 체포 소식 등도 기사봇으로 처리한다. 그밖에 <로이터>, <포브스>와 같은 곳에서도 로봇 저널리즘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지난 2013년 11월부터 종이신문을 알고리즘으로 생산하고 있다. 뉴스사이트에서 길이가 긴 기사를 댓글, 소셜 공유 등의 기준에 따라 선별한 후 이를 자동 편집해 24쪽의 타블로이드 판형으로 인쇄한다. 로봇이 기사 작성을 넘어서 편집자 역할까지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로봇 저널리즘이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로, 굉장히 급격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로봇 저널리즘의 문을 연 내러티브 사이언스와 같은 회사는 향후 5년 내에 퓰리처상을 타는 것이 목표라고까지 밝혔다.

스타트업 내러티브 사이언스는 미국 노스웨스턴대 지능정보랩의 학술 프로젝트 ‘스태츠몽키(StatsMonkey)’를 통해 이름을 알리면서 로봇 저널리즘이 세간의 주목을 받게 하는 데 일조했다.

국내에서도 정교한 수준은 아니지만, 알고리즘을 통해 작성된 기사를 발행하는 곳이 있다. <테크홀릭>이란 IT전문 매체로, 매주 토요일마다 테크봇을 활용해 그 주 인기였던 기사들을 자동으로 추려서 PDF로 발행하고 홈페이지에도 해당 기사를 올린다.

기사 작성뿐 아니라 이를 게시하고 PDF로 전환하는 모든 과정을 테크봇이 처리한다. 인기 기사 선정은 월~금요일까지 5일 동안 <테크홀릭>이 게재한 기사 중 조회수 70%, 소셜미디어 반응도 30%를 반영해 7개를 선택한다.

초당 9.5개, 월 1000건 기사

이석원 테크홀릭 편집장은 “매체 특성 상 기술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직접 실행도 해보자는 취지에서 지난해 7월 개발팀장이 개발했다”며 “아직 우리 기술은 인기 기사를 선정하고, 해당 기사에서 일부를 발췌해 반영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준환 서울대 교수팀이 개발 중인 ‘프로야구 뉴스로봇’도 계속해서 알고리즘 정교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페이스북을 통해 로봇이 쓴 기사를 발행하는 이유도 사람들의 피드백을 좀 더 수월하게 받기 위함이다.

▲ 이준환 서울대 교수팀이 만든 프로야구 뉴스로봇 페이스북 페이지 및 송고된 기사.

가령 한 네티즌의 경우 지난 5월 19일 한화와 SK의 경기를 기록한 기사를 보고 “실책이 한화의 패배 분위기를 굳혀 팀이 자멸한 것도 반영할 수 있을까요?”라고 건의하기도. 이와 관련 이 교수 측은 “제일 까다로운 부분이긴 하지만, 데이터를 해석하는 방법을 다각화하면 가능할 것 같다”며 “꼭 반영해 보겠다”고 답변을 달았다.

현재 뉴스로봇이 기사를 생산하는 시간은 1초도 안 걸린다. 처리해야 할 데이터양에 따라 조금 늘어날 수는 있지만 굉장히 빠른 속도다. 경기가 끝남과 동시에 바로 기사 송고가 가능한 수준이다.

물론 로봇이 생산한 기사를 반복적으로 보다보면 패턴이 읽히기는 하지만, 단일 기사만 떼어 놓으면 이게 사람이 쓴 것인지 로봇이 쓴 것인지 쉽게 구분이 안 간다. ‘홈팬들을 열광시켰다’라든지 ‘팽팽했던 승부는 극적으로 갈렸다’ 등의 표현이 사람 기자가 쓴 듯 자연스럽다.

다만, 한 30대 야구팬은 뉴스로봇의 기사를 본 후 “가능성은 있을 듯하다”면서도 “지금은 문자 메시지로 받아볼 1보 수준의 기사로 느껴진다. 진짜 야구팬들이 보기에는 아직 미흡하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로봇 기사로 경기 스코어와 선발투수, 키플레이어, 패인 등은 간단히 알 수 있지만, 야구팬들이 원하는 건 숨은 공헌자라든지 타율·방어율 외에 합산돼 나오는 새로운 데이터를 반영해 여러 분석을 곁들인 기사라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우리 연구가 실제 사람에게 서비스할 정도가 되려면 한 6개월 정도는 더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좀 더 기사다운 형식을 확보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고 밝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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