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대책, ‘소통법’부터 배워야
메르스 대책, ‘소통법’부터 배워야
  • 유현재 (hyunjaeyu@gmail.com)
  • 승인 2015.07.01 1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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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재의 Now 헬스컴] 커뮤니케이션 목표공중 몰이해가 ‘메르스 공포’ 키워

[더피알=유현재] 눈을 의심했고 귀를 의심했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질환)라는, 얼마 전까지는 제대로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감염병이 본격적인 공포로 우리 생활 깊숙이 치고 들어올 때쯤이었다.

우리나라로 유입되는 일체의 질병을 차단하고 어떻게든 국민을 보호하고 지켜낼 책임이 있는 보건복지부에서 제공한 메르스 관련 ‘홍보물’에는 다음과 같은 정보가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낙타와의 밀접한 접촉을 피하세요” “멸균되지 않은 낙타유 또는 익히지 않은 낙타고기 섭취를 피하세요”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예상대로 해당 홍보물은 게시된 지 삽시간 만에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낙타 관련 메시지를 접한 국민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엄청나게 부정적으로 말이다.

▲ 메르스 사태 초기 ‘낙타와의 접촉을 피하라’는 보건복지부 홍보물은 현실과 괴리된 메시지로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온라인을 중심으로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여러 패러디물을 낳는 결과를 초래했다.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및 트위터 화면 캡처.

필자를 포함한 대다수 우리나라 사람들은 낙타라는 단어를 직접 사용할 일이 많지 않고, 낙타라는 동물의 실물은 엄마아빠 손에 이끌려 동물원에 갔을 때 한두 번 마주했을 뿐이다. 이런 현실에서 복지부가 제공한 홍보물은 허탈함을 넘어 분노까지 일으키게 하는 원인이 되기에 충분했다. (관련기사: ‘메르스 공포’, 땜질식 커뮤니케이션이 원인)

논란이 커지자 원래는 중동 지역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안내하는 특수한 홍보물이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WHO에서 제공한 홍보물의 내용을 직역하다보니 벌어진 상황이라는 해명이 들리긴 했지만, 이미 ‘메르스 패닉’에 빠지기 시작한 국민들은 정부의 너무나 미숙한 소통법에 적지 않은 실망을 느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필자는 이같은 소동이 벌어진 다음 복지부 등 국가기관 내에 헬스커뮤니케이션, 즉 건강 관련 지식을 국민에게 소통하는 책임을 가진 컨트롤타워 내지는 단일부서가 없는 것은 아닐까하는 걱정이 생겼다.

그리고 이내 찾아든 더욱 큰 걱정은 만약 대국민 헬스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단일 부서가 있고, 실제로 상시적 기구로서 활동하는 그룹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낙타 커뮤니케이션’과 같은 해프닝이 발생된 것이라면 구조적으로 심각한 문제임에 틀림없다는 점이었다.

원칙의 무시·무지가 빚은 ‘낙타 커뮤니케이션’

주지의 사실이지만 헬스커뮤니케이션을 포함한 소위 전략적 커뮤니케이션(Strategic Communication)의 기본 원칙 가운데 ‘1번’은 커뮤니케이션, 즉 소통을 진행하는 데 있어 특정한 소통물을 전달받는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 지를 예측하고 판단하는 일이다.

내가 전달하고 싶은 콘텐츠의 내용을 결정하는 작업(What To Say)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인 성공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필요한 또 하나의 조건은 바로 ‘상대의 반응’을 예상하며 콘텐츠를 다듬는(How To Say) 작업이라는 말이다.

소통에 있어 상대가 어떤 태도를 보일지 예상하고 그에 맞게 대처하는 사항보다 중요한 원칙은 단언컨대 없다. 낙타 사건은 바로 이같은 원칙의 무시와 무지가 만들어낸 비극적 해프닝이었다.

헬스커뮤니케이션의 소통 상대는 ‘타깃’으로 불릴 수도 있고, ‘목표 공중’이라는 명칭으로도 사용된다. 상황에 따라 ‘정보 소비자’라는 말도 유사한 뜻을 갖는다. 건강 관련 정보를 전달하는 특정 헬스커뮤니케이션이 실행된 다음, 메시지와 비주얼 등 소통의 요소들이 전달되는 일차적 혹은 이차적 상대가 바로 그들이다.

▲ 메르스 사태와 관련, 정부의 비밀주의와 불투명성이 초기대응 미비의 주요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이다. (자료사진) 지난달 7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메르스 대책발표를 하는 모습. ⓒ뉴시스
이번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관련 기관의 소통 담당자들은 소중한 헬스커뮤니케이션의 대상인 우리들을 진심으로 이해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관련기사: 메르스 사태 진단 “번지수가 잘못됐다”)

메르스 확산 초기 정부는 이미 확진된 환자나 의심환자들이 머물거나 경유한 병원 이름을 공개하는 것은 더욱 막대한 국민 혼란을 부추길 가능성이 있어서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일반 국민들은 모든 상황이 무서운 나머지 SNS 등 각자의 미디어 정보원을 동원해 병원명 등 더욱 상세한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자구적 노력을 취했다. 말 그대로 ‘무서워서’ 가만히 기다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당국은 여타 유행성 감염병의 치사율과 메르스의 그것을 직접 비교하며 국민들을 안심시키려 했지만, 상대적으로 낮은 치사율과는 상관없이 실제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만으로 국민들은 두려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결과론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좀 더 일찍 병원명이 전면적으로 공개되고, 당국이 더욱 공격적으로 대응했다면 그와 같은 혼란한 상황을 맞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존재한다. WHO 등 국제적인 역학 전문가들도 병원명 미공개 등 정부의 비밀주의와 불투명성을 초기대응 미비의 주요한 원인으로 지적했기 때문이다.

병원명이 공개되지 않았던 그 시기에, 어쩌면 메르스 확산에 제동을 걸 수 있던 바로 그 골든타임에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가던 병원에 방문하기도 했고, 일부는 해당 병원이 메르스와 관련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채 감염되기도 했던 것이다.

의료기관 사이에 병원명을 전달하는 긴밀한 공조체제를 마련, 대중적 공개를 하지 않아도 무방한 상황을 유지시키겠다고 했지만 정작 병원 사이에서도 정확한 협조는 미비했다는 증언들이 속속 나왔다.

병원명 공개와 관련해 메르스 사태에서 당국이 선택한 정보의 차단 결정은 다시 한 번 목표 공중, 즉 국민들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부족한지 여실히 보여주는 리트머스가 되지 않았나 싶다.

2015년 한국인들은 세계 최고의 스마트폰 보유 국가에 살며, 세상의 수많은 정보를 자유자재로 발굴하고 공유하고 평가하는 스마트한 정보 소비자들이다. 세계에서도 유래가 없을 만큼 정보에 대한 이해도, 즉 리터러시(literacy) 수준이 높으며 특정한 정보를 빠르게 찾아내고 가공하고 서로 나누는 등의 물리적 소통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같은 인프라를 소유한 국민들이 과연 자신과 가족들의 건강과 안위가 시시각각으로 급박해지는 상황에서, 장관이 병원 이름을 공개하는 순간을 마냥 기다릴 줄 알았다면 정말 크나큰 오산이었다.

정부의 비밀주의로 ‘골든타임’ 놓쳐

개인적인 견해지만 정부는 아주 빠른 시간 내에 어차피 모든 정보가 공개될 것이라는 현실을 상정한 상태에서 메르스 작전을 구사해야 했다고 믿는다. 실제 장관이 공개하지 않겠다던 병원명은 불과 며칠 후 모두 공개됐으며, 삼성서울병원을 비롯한 여러 병원의 출입을 통해 환자들은 끝없이 발생했다.

기저질환이 심각하지 않다고 판단되던 환자들이 사망한 사례도 이미 나타났고, 2차와 3차를 넘어 4차 감염의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소식까지 들려왔다. WHO 파견 전문가들을 비롯한 국내 연구자 및 실무자들 사이에선 현실적으로 메르스가 7월에 종식돼도 대성공이라는 말이 나왔다. 또한 격리자가 무려 1만명이 넘는 상황에서 완벽한 방역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회의론까지 고개를 들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는 운명공동체이다. 반드시 모두 함께 살아남아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함께 살아나가야만 한다는 뜻이다. 여야도 없고 너와 나도 없다. 말 그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를 챙기며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관련기사: 메르스 위기, ‘M·E·R·S’로 극복하자)

정부는 늦었지만 투명한 소통과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및 컨트롤타워의 단일화 등을 약속하고 발 빠르게 실행하고 있다. 정부의 소통에 큰 아쉬움은 있었지만, 필자를 포함한 국민들도 메르스 퇴치라는 대원칙과 공통의 바람을 위해 적극 공조해야 할 시기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그 어떤 소수의 이익보다 일반 국민들의 입장에서 더욱 이해하고 헤아리는, 그래서 국민들의 공감과 공조를 자연스레 이끌어낼 수 있는 전혀 미숙하지 않은 정부의 커뮤니케이션을 기대한다. 물론 지금 이 시간 너무나 간절한 바람은 가장 빠른 시일 내에 메르스가 없어지는 것이다.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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