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초기, ‘심리적 방역’ 실패했다
메르스 초기, ‘심리적 방역’ 실패했다
  • 김동석 (dskim@enzaim.co.kr)
  • 승인 2015.07.06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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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커뮤니케이션닥터] 신종 감염병 극복엔 국민 모두가 방역 책임자

[더피알=김동석] 메르스(MERS-CoV, 중동호흡기질환)로 온 나라가 홍역을 치르고 있다. ‘신종’ 감염병이라는 어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에볼라(Ebola), 신종플루(H1N1)처럼 새로운 감염병이 주는 불확실성은 필연적으로 ‘공포’를 수반한다. (관련기사: 에볼라보다 더 무서운 ‘피어볼라(Fearbola)’)

그 공포는 쉽게 과장돼 실제보다 더 큰 사회적 손실을 초래하곤 한다. 사태가 진정되고 모두 일상으로 돌아와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힌 후에 이 혼란이 과연 정상적인 것이었는지 반성하고 성찰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2009년 신종플루 사태가 그랬듯이 말이다.

▲ 정부는 메르스 발생 초기에 국민의 감정을 기반으로 한 ‘심리적 방역’에 대한 노력은 부족했다. 사진: 마스크를 쓴 시민이 6월 10일 당시 국무총리직을 대행하던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메르스 관련 대국민 담화문 뉴스를 시청하는 모습. ⓒ뉴시스

필자는 공중보건위기대응사업단(단장 최보율 교수, 한양대의대 예방의학과)의 일원으로 의료진, 역학자, 방역당국자들과 치열한 현장을 함께 하며 메르스 사태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정부와 방역 책임자들을 향한 무차별적 공격이 난무하고 있는 동안 현실적으로 현장에서는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반면 언론, 전문가, 정치인, 유명인은 물론이고 최대의 피해자인 우리 국민들 역시 이번 메르스 사태의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위기관리의 기본 원칙을 들이대며 비판하고 몇 마디 거드는 일은 어떤 사태에 책임질 필요도 없으면서 바른 소리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부담 없고 쉬운 일이다.

목숨을 걸고 방역 현장을 지킨 의료진도, 개인사를 모두 버리고 상황실을 지키며 수없이 밤을 새운 방역 책임자도, 자가격리의 답답함을 인내하며 협조한 국민도 아니었기에 다른 어느 사태보다도 이번 일에 섣불리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는 것이 꺼려진다. 하지만 유사한 사태로 국민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몇 자 적는다.

과학적 근거 중심, 사과와 위로 결여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방역 활동은 철저히 과학(기술)의 영역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공중보건 위기가 발생하면 기술적 방역과 함께 국민의 눈높이에서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협조를 요청하는 ‘심리적 방역’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커뮤니케이션의 영역이다.

기술적 방역에 실패하면 어떤 커뮤니케이션 전략도 힘을 받기 힘든 것처럼, 반대로 커뮤니케이션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기술적 방역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국민들의 불신과 그에 따른 공포는 커질 수밖에 없다. (관련기사: ‘메르스 공포’, 땜질식 커뮤니케이션이 원인) 즉 기술적 방역과 심리적 방역은 공중보건위기대응에서 팀을 이뤄 함께 가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메르스 발생 초기에 정작 국민의 감정을 기반으로 한 ‘심리적 방역’에 대한 노력은 부족했다. 초기 메르스 대책반에는 의사를 비롯한 기술적 전문가들은 차고 넘쳤지만,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기술을 해석하고 전달할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는 부족했다.

기업의 위기관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광범위한 관계공중과 채널을 운영해야 하고, 복잡한 상황 판단 및 보고 체계에 개입해야 하는 상황에서 터무니없이 적은 내부 인력으로 이를 감당하려고 했던 것 자체가 무리였다. (관련기사: 메르스 사태 진단 “번지수가 잘못됐다”)

매일매일 진행된 브리핑에서도 느꼈듯이 방역 당국은 과학적(의학적) 근거에 따라 철저히 대응하고 있는 모습과 정보를 국민과 공유하려 노력했다. 거기에는 일선에서 고생하는 의료진들과 격리의 불편을 온전히 감당해온 국민들에 대한 사과와 위로의 메시지가 부족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기술적 메시지와는 별개로 감성적 메시지가 어떤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지는 이후 증명된다.

▲ 메르스 퇴치를 위해 노력하는 의료병원 관계자와 정부 방역담당자들의 한 달 모습과 삼성서울병원에 쓰인 의료진들의 다짐 문구(위). ⓒ뉴시스

초기의 경직된 대국민 소통과는 달리, 6월 중순에 가까워오면서 사투를 벌이는 일선 의료진과 보건당사자들에 대한 희생과 노력을 ‘메르스 전사’로 부각시키고 (관련기사: 메르스 최전방에서 헌신한 대가가 낙인이라니) 메르스는 결국 국민 모두가 함께 이겨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노출 시키려한 노력은 국민들이나 언론이 사태를 차분하게 돌아보게 하는 데 분명 큰 역할을 했다.

초기 방역이 엉터리였다는 비난들이 많았지만, 사실 보건당국의 방역은 과학적 근거에 의해 매뉴얼대로 진행됐다고 할 수 있다.

감염병의 위기대응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야 한다. WHO(세계보건기구)에서 축적한 사례와 연구를 통해 봤을 때 메르스는 치사율은 높지만, 감염률은 낮은 감염병이다. 사스나 신종플루처럼 공기감염이 아니기 때문에 첫 번째 환자의 동선만 적절히 파악해서 노출된 사람들을 조기에 철저히 통제한다면 해결될 수 있다는 기술적 확신에 따라 방역이 이뤄졌을 것이다.

여기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위기관리의 핵심 지침 중 하나인 ‘최악의 경우까지 상정해 대비∙대응하라’는 지침을 간과한 점이다. 메르스와 같이 관련 경험과 정보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신종 감염병의 경우 이런 원칙은 더 중요하다.

방역 당국이 모든 돌발변수를 통제할 수는 없다. 방역이 아무리 잘 된다고 하더라도 불가항력적인 사건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그런 점에도 기술적 방역뿐만 아니라, 심리적 방역 역시 좀더 보수적으로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서 커뮤니케이션했어야 했다.

번번이 빗나간 예측과 약속들은 대부분 과학적 사실에 기반했다. 그만큼 정부의 발표는 매 시기마다 확신에 차 있었고 단정적이었고 단호하기까지 했다.

모든 단정적 약속은 대부분 빗나갔다. 정부의 신뢰는 떨어졌고 불신과 혼란 속에서 진행되는 방역은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시행착오 역시 최악의 상황을 고려한 심리적 방역을 적극적으로 감안했다기 보다는 기술적(과학적) 방역에 너무 많이 치중한 과오가 아닐까 싶다.

▲ 메르스 관련 정부의 예측과 약속들은 대부분 과학적 사실에 기반했지만, ‘최악의 경우까지 상정해 대비하라’는 위기관리 핵심 지침을 간과했다. 사진: 6월 5일 문형표 보건복지부 방관이 메르스 관련 조치 계획을 발표한 모습. ⓒ뉴시스

공중보건위기대응의 가장 기본적인 소통법은 “국민에게 감염병의 위험을 과장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안심시키지도 말라”는 것이다. (관련기사: 정부가 봤어야 할 미국 CDC 위기관리 인사이트)

물론 보건당국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메르스 바이러스의 실체에 비해 국민들은 너무 지나치게 과장된 공포감에 휩싸여 있었다. 국민의 불안감을 정상 수준으로 끌어내려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과도한 공포가 가져다 줄 사회, 경제적 피해와 고통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을 안심 시키려는 급한 마음은 단호한 약속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정부가 잘한 점은 없나

보건당국의 초기 대응 실패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정부나 방역당국의 모든 노력을 도매급으로 취급해서도 안 된다. 빗발치는 비난에 가려 언급조차 되기 힘들었던 보건당국의 보이지 않는 노력과 성과를 나름대로 정리해 봤다.

무엇보다 먼저 이전의 감염병 위기 때와는 달리 이번 메르스 때 의료단체 및 의료기관 등 전문가의 지원과 참여가 매우 활발했다. 보건당국과 대치하기 보다는 함께 공조하려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

메르스와 같이 정보의 접근성과 주도권을 특정 전문가에게 의지해야 하는 보건 위기 상황에서 의사와 같은 전문가 집단의 지원과 참여는 사태를 진정시키거나 신뢰를 이끌어내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런 면에서 의료 전문가 집단과 공조하려는 보건당국의 노력과 전략은 주효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은 ‘여론’과 ‘원칙’에 대한 부분이다.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신종 감염병의 최고 전문가 집단은 질병관리본부와 보건복지부, 그리고 방역당국을 자문해 온 의료전문가들이다. 방역에 실패했다고 이런 진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방역은 국민 여론, 언론과 정치인들의 요구에 의해 결정할 수 있는 그런 사안이 아니다. 당장은 비난을 감수하고라도 명확한 원칙과 기준을 갖고 판단해야 한다.

메르스가 확산 기미를 보이자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위기 단계를 ‘주위’에서 ‘경계’, 심지어는 ‘심각’ 단계로 격상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위기 단계의 격상을 주저하는 것을 안일한 대응으로 치부하며 비난했다.

위기 단계는 여론에 의해 좌지우지돼서도 안 되고 될 수도 없는 부분이다. 공중보건 위기는 관심-주의-경계-심각의 4단계로 나뉜다. 주의는 국내에 환자가 발생했을 때 선포하게 되며, 경계는 지역사회 감염이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계의 격상은 단순히 단어 자체의 의미를 넘어 해당 단계가 주는 심리적 공포감을 수반한다. 이로 인해 국내외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미칠 부정적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이후 비슷한 상황이 생겼을 때 기준 없이 여론으로 단계를 결정을 하게 된다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쏟아지는 비난과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대응 단계를 높이는 대신, 대비 대응을 ‘심각’에 준해서 진행한 것은 적절한 조치였다.

▲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질병예방센터장이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브리핑룸에서 메르스 현황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공기감염’과 ‘바이러스 변이’에 대한 언론의 끈질긴 이슈 제기에 대해 근거에 기반한 지속적 커뮤니케이션으로 방어해 냈다는 것은 사태를 더 악화시키지 않은 데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언론은 공기감염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뉴스를 쏟아냈다. 감염병의 기초만 알고 있더라도 메르스가 공기로 전파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다. 만약 메르스가 공기감염으로 전파됐다면 환자 발생과 확산추이가 이 정도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메르스 바이러스의 변이 가능성에 대한 도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보건연구원이 사우디아라비아의 메르스 바이러스와 국내 바이러스가 99.8% 일치한다는 발표를 했음에도 언론은 예상을 빗나가는 빠른 확산성 등을 근거로 돌연변이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공포감을 키웠다. (관련기사: 메르스 혼란, 언론은 책임 없나)

결국 한국의 독특한 보건의료 시스템, 병실 설계의 구조적 문제, 병문안 문화 등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는 결론이 일반화될 때까지 비난을 감수하며 기준을 잡고 지속적으로 바른 정보를 제공하려 노력한 것은 공포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데 기여했을 것이다.

학교 휴업에 대한 정부부처 간의 갈등이 있었다. 교육부 입장과는 달리 보건당국은 끝까지 학교 휴업이 불필요하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 부분은 WHO, 외신, 보건전문가들로부터 지속적으로 과잉대응이라는 지적이 있었던 사안이기도 하다. 당장은 인기를 얻을 수 있고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면죄부를 받을 수 있겠지만, 이런 과잉대응 하나하나가 모여 불필요한 공포가 만연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원칙을 지켜야 할 때가 있다. 보건당국의 이런 노력은 초기 실패에 대한 비난과는 별개로 평가할 만한 사안이자 이후 감염병 위기 대응 시 참고할 만한 교훈이라 생각한다.

국민 모두가 방역 책임자 돼야

▲ 메르스 여파로 관광객이 크게 줄어든 가운데 눈에 띄게 한산해진 명동 거리. ⓒ뉴시스
메르스 바이러스로 인한 국가적 혼란의 가장 큰 책임은 정부와 방역 책임자에게 있다. 하지만 방역은 방역 책임자들만의 노력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국민과 사회 구성원 전체의 적극적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

격리를 무시하는 일부 국민, 루머와 유언비어를 만들어 내는 무리, 혼란을 이용해 대박을 노리는 기업의 얄팍한 상술,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을 응원하기는커녕 그 자녀들에게까지 상처를 주는 지역사회, 병원의 이득을 위해 환자 진료를 거부하는 의사, 자신의 유명세와 영향력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예방법을 알리는 데 쓰기보다는 상대방을 비난하고 비꼬는 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유명 논객들, 이런 문화에서는 어떤 철저한 방역 시스템도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밖에 없다.

신종 감염병 위기는 우리 국민 모두가 방역담당자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국가 간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이제 세계 구석구석 숨어있던 국소적인 감염병이 세계로 퍼지는 일들이 수없이 많을 것이다.

이를 철저히 대비하기 위해서는 질병관리본부의 기능과 권한을 강화하고, 공공병원 확충 등 사회적 시스템을 정부에 요구하고 이를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 지 감시하고 지원하는 것, 그것이 메르스가 우리 국민에게 남긴 책무이자 교훈이 아닐까.

이번 메르스 사태가 다른 여느 국가 위기 때 항상 그랬던 것처럼 냄비처럼 들끓다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사그라지고 잊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만약 또 그렇게 된다면 국민 건강을 외치며 호들갑을 떨던 관련자들 모두 인기에 영합해 메르스를 이용했다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김동석

헬스커뮤니케이션 전문회사 엔자임 헬스(Enzaim Health)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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