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에 가면을 씌우다 ‘블라인드 마케팅’
제품에 가면을 씌우다 ‘블라인드 마케팅’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5.07.13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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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브랜드 각인 효과…지속성은 ‘글쎄’

최근 대한민국 대중문화를 이끄는 트렌드 중 하나가 가면이다. 숨겨진 모습에 일어나는 궁금증과 정체가 밝혀졌을 때 나타나는 짜릿한 반전 쾌감에 대중들이 열광하고 있는 것. 그리고 이같은 가면 코드는 기업들의 마케팅에도 적용돼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단순히 숨긴다’ ‘가린다는 측면을 떠나 대중들이 가면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피알=문용필 기자] 가면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심리적 호기심과 쾌감은 마케팅 영역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관련기사: 감추고 싶어서, 들추고 싶어서) 소비자들에게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약간의 힌트만을 제공하거나 아예 알려주지 않는 ‘블라인드 마케팅’이 대표적이다.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불황과 저성장으로 인해 사람들의 기분이 많이 다운돼 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블라인드 마케팅은 사람들의 재미와 흥미를 유발한다”며 “전반적으로 사회가 우울하고 재미도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심리적 보상을 받기 때문에 최근 들어 블라인드 마케팅이 잘 통하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 쥬얼코리아의 ‘럭키박스’ 매장./사진:쥬얼코리아

블라인드 마케팅의 가장 큰 장점은 단기간에 인지도를 크게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여 교수는 “아무래도 소비자들의 궁금증을 유발하고 이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다보면 기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인지도를 높이는 차원에서 유효한 마케팅으로 많이 쓰였다”고 설명했다.

심리마케팅 전문가인 범상규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도 의견을 같이했다. 범 교수는 “블라인드 마케팅은 짧은 기간에 소비자 머릿속에 브랜드를 각인시킬 수 있어 마케팅 비용을 절감시킬 수 있다”며 “단계적 노출을 통한 시차는 소비자들에게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켜줌으로써 향후 브랜드를 직접 접하거나 완전한 메시지를 받을 때 호감을 높여줄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소비자들은 채워지지 않은 빈 공간에 대해 유사한 정보 등으로 이를 스스로 메우려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관심이 증폭된다”며 “요즘처럼 광고나 홍보에서 노이즈가 심한 경우에는 차별화되면서도 메시지와의 연상작용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각인효과가 강해지고 자연스럽게 높은 친숙도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럭키백, 티저광고…궁금증으로 차별화

최근 블라인드 기법으로 주목받는 마케팅 코드를 꼽자면 ‘럭키백’이 있다. 자사가 판매하는 다양한 제품들을 하나의 가방에 넣어 판매하되 어떻게 상품이 구성돼 있는지 소비자는 모르는 형태다. 제품에 가면을 씌운 셈이다. 무엇을 고르든 기본 구입가격에 상응하는 제품을 살 수 있고, 운이 좋으면 훨씬 고가의 제품이나 희귀한 아이템을 구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의 호응을 불러일으킨다.

스타벅스의 럭키백은 이미 마니아들 사이에선 정평이 나 있다. 충성도가 높은 고객들이 상당수인데다가 한정판이기 때문에 럭키백 판매 소식이 들리면 이를 구입하기 위한 소비자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머그컵, 텀블러, 머들러 등 다양한 제품으로 구성된다.

스타벅스가 럭키백을 판매한 것은 지난 2007년부터다. 올해에는 1만5000세트를 판매했는데 스테인리스 텀블러를 1개 이상 포함시킨 40여개의 다양한 구성으로 소비자들을 맞이했다.

패션쇼핑몰 엔터식스도 올해 화이트데이를 맞아 럭키백을 출시한 바 있다. 왕십리역점 등 5개점에서 4만5000원에 판매된 엔터식스의 럭키백은 상품교환권, 영화예매권, 커피교환권 등이 랜덤으로 구성됐다. 기본세트가 나오더라도 판매가격 대비 최소 2배 이상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 스타벅스가 올 초 출시한 럭키백./사진:스타벅스코리아

소비재만 럭키백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터파크는 지난 2013년 이른바 ‘공연 럭키백’을 선보인 바 있다. 3만원 균일가로 판매된 럭키백에는 최고 100만원 상당의 공연 상품부터 최하 4만원 상품까지 당시 가장 인기 높은 공연으로 상품이 짜였다. 그 결과 오픈 5분만에 1000개의 수량이 모두 완판됐다.

아예 매장전체가 럭키박스만을 판매하는 사례도 있다. 쥬얼코리아가 지난해 11월 론칭한 ‘럭키박스’가 그것이다. 1만원 균일가로 판매되는 쥬얼코리아의 럭키박스에는 최대 5만원까지의 패션쥬얼리가 담겨있다. 예쁜 상자 안에 담겨 있는데다가 비교적 부담 없는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매장 안에 포장 상자들만 가득하다는 점에서 특색 있다.

박정관 쥬얼코리아 이사는 “커플들에게 좀 이슈가 되는 것 같다”며 “포장이 예쁘다보니 여성분들이 선물을 받아도 만족해하는 것 같다. 이벤트 측면에서 보면 가격대비 큰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사실 블라인드 마케팅의 가장 전형적인 형태는 티저(teaser)다.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지극히 단편적인 정보만 제공해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광고다.

이제는 널리 알려져 상품·서비스뿐만 아니라 방송과 음악 등 대중문화에서도 보편화돼있다. ‘신비소녀’ 임은경을 앞세웠던 SK텔레콤의 ‘TTL 광고’나 ‘선영아 사랑해’라는 옥외광고로 주목받았던 인터넷 사이트 마이클럽은 티저마케팅의 성공적인 사례로 지금까지 회자된다.

요즘 눈에 띄는 티저마케팅은 모바일 기기 분야에서 나타난다. 신제품 출시 전 해당 제품의 아이덴티티를 상징하는 티저이미지를 공개하면서도 기능과 사양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는 방식으로 언론과 소비자들의 관심을 끈다.

삼성전자가 올 3월 ‘갤럭시S6’와 ‘갤럭시S6엣지’ 공개에 앞서 발표한 언팩행사 티저이미지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관련기사: 삼성전자가 말하는 ‘NEXT’는 무엇?)

검정색 배경을 바탕으로 ‘WHAT’S NEXT(다음은 무엇인가)’라는 문구가 쓰여 있는 이미지에는 언팩행사 장소, 일시 외에는 ‘금속’을 연상시키는 곡선 실루엣만 담았었다. 이를 두고 언론과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왔고, 결국 ‘메탈프레임’이 적용된 제품이 공개되고 나서야 그 의미가 명확해졌다.

LG전자의 최신작 ‘G4’의 티저이미지는 갤럭시S6보다 좀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한 바 있다. 가죽재질의 후면 커버와 함께 카메라 위에는 조리개값을 암시하는 ‘F1.8’이라는 문구를 새겨 넣었다. 소비자들은 G4의 대략적인 윤곽을 유추할 수 있었다.

이와 관련, 여준상 교수는 “스마트폰 경우에는 언제 공개를 할 것이라고 궁금증을 유발하는 사전예고 마케팅을 많이 하고 있다”며 “소비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이를 찾아보다 보면 실시간 검색률이 올라가고 이를 통해 온라인 바이럴이 발생한다는 측면에서 이같은 마케팅 전략을 펼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휘발성 강해 장기효과 기대 어려워

문제는 블라인드 마케팅에 ‘지속성’이 없다는 점이다. 휘발성이 강한 만큼 장기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가져가기는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 삼성전자가 ‘갤럭시s6’ 출시 전 공개한 티저이미지./사진:삼성전자

TV 프로그램이라면 출연자를 바꿔가면서 계속 유지될 수 있지만, 제품은 한번 노출되면 그것으로 ‘상황종료’다. 여준상 교수는 “잠시 브랜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 단기적인 효과가 아닌가 싶다”며 “이슈화를 한 후 인지도를 확보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럭키박스도 정식매장 이라기보다는 팝업스토어에 가깝다. 박정관 이사는 “(럭키박스 매장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일반 매장으로 전환된다. 단계별로 보여주면서 판매하는 것”이라며 “처음에 브랜드를 홍보한 후 이슈화를 시키고 점점 패션쥬얼리 매장으로 코드를 잡아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아직 일부 매장의 경우 럭키박스만 판매하고 있지만 이미 일반 매장으로 전환된 점포도 있다는 것이 박 이사의 설명이다.

범상규 교수는 “메시지 차원에서 너무 신비주의적인 접근일 경우 다음에 이어질 본 메시지와의 연계감이 떨어져 메시지 전달이 약해질 수 있다”며 “블라인드 마케팅은 단계적 접근을 시도하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 면에서 상대적으로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마케팅 여력이 충분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범 교수는 “요즘처럼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정보를 취합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신비주의가 사라져 블라인드 효과가 사라질 가능성도 농후하고, 아예 처음부터 애매한 정보로 취급받아 관심을 갖지 않고 지나칠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기대치에 못 미칠 경우에는 브랜드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여 교수는 “블라인드 마케팅은 사람들의 기대를 확 높이게 되는데 이는 잘못됐을 경우 역풍이 크다는 이야기도 된다”며 “사전에 통할 것인지 면밀하게 테스트 해보고 마케팅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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