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보이는 메르스 사태, 언론들에 남겨진 무거운 숙제
끝 보이는 메르스 사태, 언론들에 남겨진 무거운 숙제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5.07.14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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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문제제기에 ‘공포 마케팅’…언론계 고질적 문제 고스란히 드러나

[더피알=문용필 기자] 중동호흡기질환, 즉 ‘메르스 사태’가 점점 마무리 되는 양상이다. 9일째(14일 기준) 추가 확진환자가 나오지 않아 사실상 종식선언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 그러나 이번 사태를 보도한 언론 태도의 문제점은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기레기’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겠다던 세월호 참사 때의 반성은 자취를 감췄다. (관련기사: 세월호 1년, 언론은 얼마나 달라졌나) 국가재난을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는 1년여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부풀리기, 조회수 올리기, 특정 전문가 의존, 논점 흐리기, 유익한 정보제공 미흡 등 국내 언론들의 고질적인 문제점은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도 고스란히 노출됐다.

▲ (자료사진) 정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의 브리핑을 취재하는 취재진들. ⓒ뉴시스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진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정부의 부적절한 초동대처였다. 하지만 언론도 이에 못지않게 무능했다. ‘1번 환자’ 발생시점 까지만 해도 비교적 잠잠했지만 사태가 커지고 나서야 뒤늦게 문제제기에 나섰다.

이경락 공공미디어연구소 박사는 “보건당국 출입기자들이 정부 브리핑의 잘못된 점을 취재하거나 ‘안심해도 된다’는 발표에 대한 문제제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박사는 “초기 제대로 (대응이) 됐는지 계속 감시했다면 환자들이 받은 잘못된 처우나 통제가 안 된 점도 막을 수 있었다고 본다”며 “하지만 언론들은 지금도 자신들이 뭘 잘못했는지에 대한 반성이 별로 없다”고 꼬집었다.

오히려 언론은 사태 초기 메르스의 치사율에 집중하는 듯한 보도행태를 보였다. 해외에서의 치사율이 40%에 달했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이 박사는 “관심을 많이 받아야 하다 보니 언론들이 공포마케팅을 한 것”이라며 “사람들의 클릭을 유도할 수 있는 상업주의가 바탕에 깔려있었다”고 평가했다.

비교적 느슨한 태도를 보이던 언론들은 확진 환자가 하나 둘 늘어나면서 정부를 향해 화살을 돌리기 시작했다. 보건당국의 부실한 대처를 질타하는 기사들이 봇물을 이뤘다. 그러나 감염병 보도에 신중해야 할 언론들의 보도 역시 부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이드라인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보건복지부 출입기자단과 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학회는 지난 2012년 ‘감염병 보도원칙’을 제정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메르스 사태에선 거의 유명무실했다. (관련기사: 메르스 혼란, 언론은 책임 없나)

일례로 감염병 보도원칙은 감염병의 규모나 증상, 결과에 대한 과장된 표현과 증상에 대한 자극적인 수식어의 사용을 자제하도록 하고 있으나, ‘창궐’ ‘패닉’ ‘공포’ 등은 상당수의 언론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표현이었다.

‘감염병 보도원칙’ 있으나마나

“현재 시점까지 사실로 밝혀진 정보를 제공해야 하며 신뢰할 만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도 소용이 없었다. 모 종합병원의 의사인 ‘35번 환자’의 사망설 오보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출처가 불분명한 기사들이 넘실거리다 보니 어제와 오늘이 다른 ‘조변석개’식 보도도 적지 않았다.

특정 전문가에 의존하는 ‘의존형 보도’ 행태도 문젯거리였다. “현재의 불확실한 상황에 대해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는 보도원칙에 어긋나는 대목이었다. 심지어 감염병과는 전혀 상관없는 시사평론가들이 출연해 메르스 사태를 평가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관련기사: 메르스 사태 진단 “번지수가 잘못됐다”)

이와 관련, 이경락 박사는 “메르스 같은 감염병의 경우 보는 시선에 따라 (전문가 의견이) 다 다르다. 아무리 과학적이라고 해도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를 수 있는데 언론들은 자기 입맛에 맞는 이들의 인터뷰를 갖다 썼다”며 “다양한 의견들을 종합하고 반론을 다 포함해서 (보도해야) 했다”고 언급했다.

또한 “특정 감염병과 관련해 누가 실질적인 전문가이고 어떤 연구성과가 있는지에 대해 기자들의 이해가 전혀 없었다”며 “사태가 벌어지기 전 한 번도 찾지 않았던 사람을 갑자기 섭외하고 다른 방송에 안 나온 사람들의 인터뷰를 쓰다 보니 어느 경우에는 비전문가도 나오고 확인되지 않은 보도들도 계속 양산됐다”고 지적했다.

한국언론의 고질적인 병폐인 ‘어뷰징’은 메르스 사태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메르스 관련 키워드나 특정 지역이름과 메르스를 결합한 ‘OO메르스’ 등의 인기검색어가 포털사이트에 뜨면 이를 기사본문에 남발하는 검색어 기사들이 난무했다.

책임전가형 보도도 지적할만한 부분이었다. 감염자를 막지 못한 병원·의료진이나 한국 특유의 병실문화 등이 마치 사태의 주범인양 몰아가는 식의 보도였다.

‘알권리’ 충족 못시킨 언론, 남 탓만

현직 의사인 이현석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 학회장은 “사실 국내 의사들은 메르스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다. 고열 같은 질환은 폐렴이나 감기나 다 똑같아 증상을 구분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환자의 병력을 청취하고 (증상을) 찾아가는 과정인데 이것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의사의 문제인 것처럼 언론이 몰고 가는 부분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 메르스 관련 tv뉴스를 시청하는 시민들. ⓒ뉴시스

아울러 “(메르스와 관련한 정부의) 정보 공유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병원을 몇 개 전전한 사례들이 있는데 이는 의료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환자를 받아들이면 응급실에서 전파됐다고 비난하고 안 받아들여도 비난하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사태 초반에 너무 가혹하게 보도되지 않았나 싶다”고 의견을 전했다. (관련기사: 메르스 초기, ‘심리적 방역’ 실패했다)

그러나 정작 언론들은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본연의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제대로 된 정보전달이 미흡했다는 것이다.

김영욱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언론은 공중보건 기사를 다룰 때 적절한 대처와 관련해서는 심층적인 보도를 안 하려고 하는 것 같다”며 “대안을 제시하고 정부정책이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 하는데 대부분의 기사들을 보면 양비론적인 태도를 취하고 구경꾼의 입장에서 증상만 키워 자극적으로 보도했다”고 비판했다.

최명일 남서울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메르스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질병이다. 공익적인 측면에서 정보를 주고 이를 통해 국민들이 합심할 수 있는 내용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는 것 같다”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가 나갈 방향을 제시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별로 고민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언론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측면도 있다. 아직 완전하게 규명되지 않은데다가 사태 초기 정부가 제공한 정보가 부실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경락 박사는 “그런 반론도 가능하다”면서도 “누가 발표하는 것만 갖다가 하는 식이 저널리즘이라면 누구나 다 기자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 적극적인 감시활동을 하기위해 (언론이) 좀 더 뛰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정부의 발표를 전적으로 신뢰하기 보다는 탐사보도가 나와야 한다”며 “무엇을 숨기고 있지 않는지를 캐내야 한다. 결국은 캐내다 보니 밝혀진 부분들이 많지 않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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