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가 매번 사람 잡았다
‘설마’가 매번 사람 잡았다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5.10.05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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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위기관리의 현실적 조언 上] “잘 하려 말고 기본만 하세요”

[더피알=문용필 기자]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정부와 기업들은 연이어 대형 악재들에 직면했다. 언론과 여론이 쏘아대는 비난의 화살을 막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만신창이가 되면서 뒤늦게나마 ‘위기관리’를 위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위기는 알면서 당하는 경우가 많다. 위기관리를 어떻게 하는가보다 위기관리가 어째서 안 되는가를 짚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다. 전문가들의 쓴소리를 경청해야 할 때다.

▲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정부와 기업들은 연이어 대형 악재들에 직면했다. 위기만 있고 관리는 없는 현실이 문제를 더욱 키우고 있다./관련 이미지: 뉴시스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땅콩회항 사건, 롯데 경영권 분쟁…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이 일련의 사건들이 가진 공통점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시각이 있겠지만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 상징적인 장면이라는 데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수십년간 쌓은 공든 탑이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똑똑히 지켜봤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는 ‘재난이 닥쳐도 정부를 믿기 어렵다’는 국민적 불신을 초래했고, ‘땅콩회항’ 사건은 재벌의 갑질 이미지를 대한항공에 씌웠다. 롯데의 경영권 분쟁은 ‘일본기업’ 논란이라는 부담감을 그룹 전체에 안겼다.

최근 들어 관(官)과 기업을 막론하고 위기관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일례로 정부는 메르스 사태 이후 국가방역체계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전담부서 신설안을 포함시켰다. ‘만시지탄’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정부가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관련기사: 정부의 메르스 후속 대책, “역량 없다면 외부서 끌어와야”

주요 언론을 비롯한 민간영역에서도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부쩍 주목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은 자사의 디지털신문인 <한경+>를 통해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히스토리’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최근 10년간 기업의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100대 사례를 업종별·유형별로 분석, 정리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아예 국내외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를 초빙해 대규모 포럼을 개최했다. 이 밖에도 관련 포럼 및 세미나가 곳곳에서 진행되는 모습이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이 하나의 사회적 의제로 대두되고 있는 셈이다.

위기만 있고 관리는 없어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점차 확대되고 있지만 문제는 제대로 정착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기업이든 정부든 크고 작은 홍보조직을 갖추고 있지만 정작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을 전담하는 부서를 찾기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는 상당수 기업이나 정부조직이 위기상황에 제대로 대비하지 않고, 유사시 커뮤니케이션 체계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는 “가장 큰 문제는 위기 시 (조직이) 커뮤니케이션에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대변인이나 홍보담당자들은 무슨 소리냐고 할 테지만 이들에게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조직 자체가 내·외부 커뮤니케이션을 체계적으로 지원해주지 못한다. 그럴 의지도, 관심도 적다”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대형 위기 시 매번 나타나는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의 이상증상들을 보면 대변인이나 홍보담당자 혼자서 잘못하거나 실수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며 “일선이나 관련 부서로부터 정확한 정보가 올라오지 않기 때문에 엇나가는 거다. 내부적으로 정확성과 적시성, 전략성에 대한 개념이나 관심이 아직도 폭넓게 공유되지 못하고 있기에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고 말했다.

이같은 잘못된 인식은 결국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전문성을 약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연결된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해외 사례를 보면 선진기업은 커뮤니케이션 관련 팀의 위기관리 역량을 높이고자 엄청나게 투자하고 전문가들도 많이 양성하지만, 우리나라 대기업이나 정부기관들은 그런 부분이 거의 없다”며 “결국 홍보부서는 부정적인 기사가 나가지 못하도록 막는 데에만 익숙해져 있다”고 비판했다.

▷관련기사: 글로벌 기업들의 커뮤니케이션, 어떻게 바뀌고 있나

또한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 PR, 홍보전문가들을 봐도 위기관리를 연구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며 “미국에 ‘PR리뷰’라는 논문집이 있는데 여기 실린 논문의 반 이상이 위기관리와 관련된 것이다. 트렌드를 따라가는 학술지인데 현재 기업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PR분야가 바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 스마트폰과 sns의 발달로 위기상황이 닥쳤을 때 무턱대고 덮으려는 태도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 사진은 ‘돌고래호 사건’과 관련, 제주해경의 브리핑을 촬영하는 유가족. ⓒ뉴시스

‘설마 위기가 닥치겠느냐’는 안이한 태도와 ‘닥치면 그때 생각하지’라는 한국적인 ‘땜질식’ 사고방식이 만연한 것도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메르스 사태는 이같은 안이함이 걷잡을 수 없는 위기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줬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이는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을 대하는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모습이다. 

▷관련기사: ‘메르스 공포’, 땜질식 커뮤니케이션이 원인

백진숙 에이엠피알 수석 컨설턴트는 “(이같은 문제점은) 갈등해결 구조에 대한 한국의 가치관에서 오는 것으로 보인다. 서양은 끝장을 보지만 우리는 공존하는 방법을 찾는 구조”라며 “갈등이 표출되면 증폭되기 때문에 재빨리 해결하려고 하고 근본적인 해결책보다는 미봉책을 사용해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려고 한다”고 기저에 깔린 심리적 요인을 짚었다. ‘시간이 약’이라는 사고방식이 강하다는 것이다.

최진봉 교수도 비슷한 견해를 나타냈다. 최 교수는 “명확하게 잘못된 부분이 있음에도 이를 감추고 덮으려고 하면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는데 여전히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시간’에 의지하는 태도는 지금 시대의 흐름과는 전혀 동떨어진 것이다. 이제 스마트폰과 SNS 속에서 전 국민은 정보 소비자이자 공유자, 생산자로 동시에 활약한다. 감추고 덮는다고 해서 소리 소문 없이 문제가 해결되는 시대는 지났다. 재빠른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위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수 있다.

최 교수는 “정보제공자가 언론에 국한됐을 때에는 언론사만 적당히 관리하면 (부정적) 메시지를 일정 부분 조정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지금 같은 SNS 시대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그 예로 최 교수는 “땅콩회항 사건도 현장의 일반 승객이 보낸 SNS 메시지가 파장을 일으켜 큰 문제로 퍼진 것 아닌가”라고 언급했다.

이같은 맥락에서 보면 위기 가능성이 노출된 이슈에 대해 선제적인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 나선 유한킴벌리의 사례는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정용민 대표의 저서 <1%>에 따르면 유한킴벌리는 위기요소 진단을 통해 물티슈 제품에 표기된 구체적 성분들을 소비자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 글리세린 등 화학성분 이름 자체가 소비자 사이에서 부정적으로 인식된다는 위기요소를 사전에 파악했다.

또 아기 물티슈 포장 뒷면에 제품의 주요 성분에 대한 사용사례와 기능 등 추가 설명을 기입했다. 정확한 정보를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시켜 부정확한 내용이나 루머를 수정하고 자사 공장 내 아기물티슈 생산 공정 전체를 소비자에 공개했다. 아기물티슈에 사용되는 원료가 법적 요건에 부합하더라도 자사가 자발적으로 정한 안전성 우려 물질로 지정되면 사용을 제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와 관련, 정용민 대표는 “많은 기업은 문제나 논란이 될 이슈를 사전에 발견해도 쉬쉬한다”며 “유한킴벌리가 보여준 약속, 그 이행에 대한 선제적 의지와 공개적 자신감 표현은 논란에 대응하는 기본 철학과 자세 측면에서 꼭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적 위기관리의 현실적 조언 下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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