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FL은 ‘가정폭력 족쇄’를 어떻게 풀 것인가
NFL은 ‘가정폭력 족쇄’를 어떻게 풀 것인가
  • 임준수 (micropr@gmail.com)
  • 승인 2015.10.2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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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준수의 캠페인 디코딩] 공격과 방어...여론 향배 주목

[더피알=임준수] 미국 내셔널풋볼리그(이하 NFL)가 올해 50주년을 맞는다. 통상적으로 로마숫자를 이용해 시즌을 세던 NFL이 이번 시즌에 한해서만 50에 해당하는 로마숫자 ‘L’ 대신 아라비아숫자로 표기한다고 한다.

시즌 개시(#kickoff2015)에 맞춰 <USA투데이>는 올해 NFL 관전 포인트 50개를 소개했는데, 그중 9번째에 랭크된 볼거리가 특이하다. ‘가정 내 폭력 대화(Domestic violence conversation)’이기 때문이다.

프로미식축구 시즌 개막을 앞두고 다소 뜬금없는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는 작년 NFL의 유명 선수 레이 라이스(Ray Rice)와 관련된다. 당시 그는 약혼자를 폭행해 구설에 올랐는데 솜방망이 징계로 여론의 화살을 맞았다.

▲ usa투데이는 올해 관전 포인트로 '가정 내 폭력 대화'를 꼽았다. 시애틀 시호크스의 쿼터백 러셀 윌슨의 경기 모습과 해당 기사. ⓒap/뉴시스

50주년 NFL, ‘폭력 대화’에 주목하다

작년 2월 15일, 볼티모어 레이븐스 팀의 러닝백이었던 레이 라이스는 뉴저지 애틀랜틱시티 소재 한 카지노 호텔 엘리베이터 안에서 약혼녀 자네이 팔머를 폭행한 죄로 붙잡혔다. <볼티모어선> 보도에 따르면 이날 새벽 이들은 엘리베이터에서 말다툼 끝에 서로 상대방을 친 혐의로 경찰에 연행됐고, 라이스만 경미한 가정폭력죄 혐의로 유치장에 갇혔다가 다음날 풀려났다.

하지만 2월 19일 가십 블로그 <TMZ>가 엘리베이터가 멈췄을 때 라이스가 실신한 팔머를 질질 끌고 나가는 동영상을 독점 보도하면서 사람들은 해당 사건이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됐다. 하지만 팔머가 어떻게 의식을 잃었는지를 보여주는 엘리베이터 내 동영상은 그때까지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다.

▲ 선수 폭행 논란에 휩싸이자 nfl측은 페이스북을 통해 구델 커미셔너가 전 구단주에게 보낸 메모를 공개했다.
그 다음은 사람들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볼티모어 레이븐스의 코치와 구단주는 모두 레이 라이스를 좋은 사람이라고 방어하면서 법적 문제가 해결되는 대로 그가 반드시 팀에 복귀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이후 3월 27일 검찰은 그를 가중폭행죄로 기소했지만 레이 라이스와 자네이 팔머는 다음날 결혼식을 올렸고, 레이스는 ‘사전심리 중재 프로그램’에 등록해 약 12개월 동안 감호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중형은 면하게 됐다.

6월 16일 NFL과 레이븐스 구단의 주요 경영진들 앞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자네이 팔머는 폭행은 그 때 딱 한 번뿐이었으며, 그 일로 남편의 선수 생활을 끝내게 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로저 구델 NFL 커미셔너는 7월 24일 라이스에게 2게임 출전 금지라는 경징계를 내리고 사태를 마무리하려 했다.

[*커미셔너는 CEO로, 구델은 2006년부터 NFL의 수장직을 맡고 있다. 인턴에서 출발해 CEO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인 구델의 연간 보수는 가장 최근(2012년) 연봉을 포함해 4400만달러(약 513억원)이다]

하지만 미국 스포츠전문매체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의 NFL 전문 기자 피터 킹은 그의 인기 칼럼 ‘MMQB(먼데이모닝 쿼터백)’에서, 구단의 믿을만한 소식통으로부터 NFL 측이 레이 라이스가 폭행하는 엘리베이터 내 동영상을 봤다고 들었다고 했다. NFL측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NFL측은 8월 28일 페이스북(www.facebook.com/AdamSchefter)을 통해 구델 커미셔너가 전 구단주들에게 보낸 메모를 공개한다. 첫 번째 대응적 PR행위였다. 이 메모에서 구델은 다음과 같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자고 촉구한다.

공중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반응을 통해 NFL이 더 높은 도덕적 기준을 견지해야 한다는 제 믿음이 더 공고해졌습니다. 우리에게 쏟아진 비판의 대부분은 NFL은 리더이기에 사회의 중요한 가치들을 옹호해야 하고, 프로축구계를 넘어서 그 가치들을 우리사회에 던져줄 책무를 가지고 있다는 근본적 인식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우리는 이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공개적으로 듣고, 비판자들과 건설적으로 대화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영역에서 끊임없는 개선을 모색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회를 이용해 우리 일터 내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여성들을 향한 존중의 문화를 진작시킴으로써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우리는 사회가 인정하는 전문가들과 함께 일하면서 공중들에게 NFL이 가정폭력과 성폭행을 근절할 수 있는 정책적 모델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을 줄 것입니다.

향후 우리 NFL 문화의 일부가 될 수 있는 트레이닝, 교육 프로그램, 서비스에 시간과 자원을 투자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우리의 정책을 어기는 사람에게 부과하는 제재를 늘려갈 것입니다.


선수의 폭행 사건이 불러온 ‘#GoodellMustGo’

그런데 이 메모가 나온 지 10여일 뒤인 9월 9일, <TMZ>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보여주는 2차 동영상을 다시 독점 공개했다.

거구 레이 라이스가 자신의 약혼녀를 주먹으로 가격해 실신에 이르는 과정이 여과 없이 나오는데, <TMZ>는 “이게 바로 (겨우) 2게임 출장정지 모습”이라는 캡션을 뽑아 NFL의 솜방망이 징계가 얼마나 말이 안 되는가를 역설적으로 전했다.

▲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던 폭행 논란은 의 2차 동영상을 독점 공개로 다시 들끓게 됐다. 사진: 해당 동영상 화면 캡처
두 번째 비디오로 인한 파장은 일파만파 커졌다. 세간의 관심은 또 한 번 NFL의 핵심관계자들, 특히 구델 커미셔너가 이전에 이 동영상을 봤는가에 모아졌다. 물론 NFL과 구델은 동영상 공개 직후 언론과의 공식 인터뷰를 통해 NFL에서 누구도 해당 영상을 사전에 본 적이 없다며 의혹을 강하게 부정했다.

하지만 다음날인 10일 <AP통신>은 수사팀 내 신원 공개를 꺼리는 정보원의 말을 빌려 그가 이미 4월에 문제의 엘리베이터 동영상을 NFL측에 보냈다고 보도해 다시 구델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이때도 구델은 해당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트위터상에서는 ‘#GoodellMustGo’라는 해시태그가 트렌드 태그되기 시작했고, NFL경기와 스폰서들을 보이콧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9월 14일 여성 권익옹호 단체인 울트라비올렛(UltraViolet)은 NFL경기가 열리는 2개 구장에서 구델의 사퇴를 촉구하는 해시태그(@UltraViolet: #GoodellMustGo)가 적힌 배너를 비행선을 이용해 날렸다.

소셜미디어상에 ‘#GoodellMustGo’ 숫자가 늘어가자 NFL과 구델은 트위터로 대응적 PR 행위를 한다. 트위터롱거(TwitLonger, 트위터 장문 서비스)를 통해 구단주들과 NFL의 스탭들에게 다음과 같은 조직 인사를 단행한다고 밝혔다.

(1) 현 커뮤니티 문제와 자선 부문 부사장이던 애너 아이작슨을 좀 더 포괄적인 사회책임 부사장으로 임명해 가정폭력·성폭력·여성존중에 관한 교육, 트레이닝, 지원 프로그램을 총괄하게 한다.

(2) 가정폭력과 성범죄 근절을 위해 각계에서 일하던 전문가 3명을 고문으로 초빙한다. 이들은 각각 뉴욕 검찰에서 성범죄 담담 검사였던 리사 프리엘, 가정폭력과 성폭력 문제에 관한 비영리 조직 노몰(NO MORE)의 공동 창설자인 제인 랜덜, 그리고 역시 다른 비영리조직인 가정 폭력에 반대하는 전미연합(National Coalition Against Domestic Violence, 이하 NCADV)의 전 상임이사였던 리타 스미스이다.


하지만 이같은 메시지 발표 이틀 뒤, NFL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듯 애리조나 카디널스의 러닝백 조나단 드와이어가 가정폭력 혐의로 도마 위에 올랐다. 성적 접촉을 거부한 일이 발단이 돼 그의 아내 코뼈를 부러뜨린 혐의였는데, 공교롭게도 이때 맞춰 기소된 것이었다.

비난→조롱→퇴진, 출렁이는 여론

이 무렵 소셜미디어상에서는 P&G사의 화장품 브랜드 커버걸(CoverGirl)이 NFL과 파트너십을 맺어 전개한 ‘당신이 좋아하는 팀의 색깔로 게임데이 메이크업을 하세요: Get Your Game Face On’ 캠페인 이미지 하나가 화제를 모았다. 포토샵을 이용해 모델의 한쪽 눈을 매 맞아 멍든 눈으로 절묘하게 바꾼 풍자 이미지였다. 거의 모든 미디어가 이 조롱 이미지를 보도했다.

원래는 좋아하는 구단의 색깔로 얼굴을 메이크업하라는 취지의 캠페인이었는데, 레이븐스의 자주색 컬러를 이용한 메이크업 이미지를 저널리스트 아델 스탄(@addiestan)이 최초 포토샵으로 변조했고 이것이 반향을 일으키면서 다른 소셜미디어 이용자가 좀 더 잘 변조한 작품을 올렸다.

최초 풍자 이미지에는 ‘로저 구델이 사임하기 전까지 NFL의 공식 화장품 스폰서 커버걸을 보이콧하라’는 메시지가 있었다.

▲ 소셜미디어상에서는 커버걸의 캠페인 이미지를 풍자한 메시지가 큰 화제를 모았다. 출처: 트위터

포토샵으로 변조된 커버걸의 NFL 마케팅 캠페인 이미지는 모든 전국 방송의 뉴스가 보도할 정도로 유명해져 NFL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일례로 9월 16일 미 공중파 방송 <NBC뉴스>는 커버걸 풍자 이미지와 함께 소셜미디어상에서 전개되고 있는 커미셔너 구델 사임 촉구 캠페인(#GoodellMustGo)을 톱뉴스로 다뤘다.

이처럼 여성 운동가들이 창의적 아이디어로 소셜미디어상에서 구델 물러가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이를 전국 방송에서 연일 톱으로 보도하게 되자, 구델은 여성단체들을 잘 달래고 설득해야 이 위기를 넘길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물론 언론과 소셜미디어에서 뭇매를 맞고 있을 때에도 구델은 NFL의 32개 구단주들이 자신을 팽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럼에도 이 위기를 넘기 위해서는 일단 가정폭력 문제를 다루는 여성권익단체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앞서 노몰(NO MORE)의 공동 창설와 NCADV의 전임 디렉터를 고문으로 끌어안은 조치로는 충분치 않다고 본 것.

그래서 9월 19일에는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을 위한 전화 상담 및 구조 센터인 ‘전국 가정폭력 핫라인(www.thehotline.org, 이하 핫라인)’과 ‘전국 성폭력 근절을 위한 자원 센터(www.nsvrc.org)’에 대해 5년간 지원을 약속하는 PR행위를 한다.

▲ 코너에 몰린 구델은 ‘전국 가정폭력 핫라인’에 대한 지원책을 발표하며 반전을 꾀했다. 관련 내용을 인터뷰 한 케이티 레이-존스 핫라인 ceo. 출처: usa투데이
요지는 두 센터의 인력을 충분히 늘려 걸려오는 모든 전화와 문자메시지, 채팅에 일대일 상담할 수 있도록 재정 및 인력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또 이를 홍보하기 위해 9월 28일에 텍사스 오스틴에 있는 핫라인 본부를 찾아 3시간을 보내는 미디어 이벤트를 했다.

이미 NFL로부터 500만달러(약 58억원)의 후원을 받은 케이티 레이-존스 핫라인 CEO는 기자들에게 “핫라인의 상담사들로부터 피해자의 이야기를 전해 듣던 구델이 한 대목에서 감정에 복받쳐 눈물을 흘렸다”고 말함으로써 구델이 원하는 보답을 하기도 했다.

구델의 500만달러 베팅, 그 결과는?

구델과 NFL의 전략은 주효했다. 가장 격렬한 비판 세력들을 파트너로 인정하고 그들에 대한 지원을 시작하면서 여성 운동가들의 비판의 목소리는 사그라졌다. 이어 작년 10월 NFL이 뉴욕에서 개최한 구단주회의에서는 누구도 로저 구델의 거취에 대해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이와 관련, <월스트리트저널>은 구델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로 구단주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자리인 NFL 커머셔너의 일을 그만큼 잘 해낼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심지어 그를 ‘구단주들의 아주 충직한 하인’이라고까지 표현했다.

구델은 그를 신임하는 구단주들을 기쁘게 만드는 행보를 계속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에게 찾아온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가시적인 PR 조치를 취했다. 이때부터 사퇴 압력에 전전긍긍하던 구델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 여론이 악화되자 nfl과 구델은 트위터 메시지로 대응적pr을 했다.

그렇다면 구델이 ‘NFL의 사회책임’이라는 명분 아래 여성권익 비영리 조직에 지원한 돈은 어떤 보상(return)을 가져왔을까?

올해 1월 핫라인의 CEO는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NFL의 재정 지원 덕분에 자원봉사자들을 상근 직원으로 전환해 35명의 상담사들을 고용할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또 NFL이 위기를 넘기고 1년을 맞은 올해 9월 8일, <USA투데이>는 스포츠면 1면에서 NFL의 돈이 어떻게 핫라인에 단비를 안겨줬는지 상세히 보도했다.

5년간 핫라인에 지원하기로 약속한 500만달러(약 58억원)는 한해 11조 이상 수입을 벌어들이는 NFL에게는 쌈짓돈 정도에 불과하지만, 핫라인으로서는 조직이 큰 변화를 맞는 전환기적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보도는 이런 결론을 내린다.

로저 구델 커미셔너와 NFL이 과거에 가정폭력과 성폭력 문제에 대해 무관심했다고 누구나 쉽게 비판할 수 있다. [중략] 하지만 이제 그들은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들이 이 문제에 관여하면서 현실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작년 라이스의 폭력 동영상이 방송이 나가고 3주 후, 구델은 핫라인을 방문했고 상담을 보고 들으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 진정성이 이곳 상담사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구델이 사인한 축구공이 핫라인 컨퍼런스룸에 전시돼 있다. 레이-존스 핫라인 CEO는 “자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 자원을 잘 사용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파트너십을 하면 사회에 큰 변화를 만들어 낸다”라고 한다.

구델이 임명한 애나 아이작슨 NFL 사회책임 부사장 역시 “우리는 아주 주목받는 플랫폼을 가지고 있고 이를 통해 가정폭력 같은 문제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줄 수 있다. 또 그 플랫폼과 스포트라이트를 이용해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임준수

시러큐스대 교수

현재 미국 시러큐스(Syracuse) 대학교 S. I. Newhouse School의 PR학과 교수다. PR캠페인과 CSR 커뮤니케이션의 전략과 효과에 관한 연구를 하며, The Arthur Page Center의 2012-2013년 Page Legacy Scholar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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