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커뮤니케이션 단상
2015년 커뮤니케이션 단상
  • 황부영 (cowell@dreamwiz.com)
  • 승인 2015.12.14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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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부영의 Unchangeable] 진정 소통이 문제였던가?

[더피알=황부영]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라’, ‘가슴이 뛰는 일을 하라’와 같은 좋은 얘기가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왜일까? 분명 좋은 얘기인데 헛헛한 기분이 드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어느새 일상어가 되어버린 ‘멘토’, 수없이 많은 멘토란 분들은 이런 말을 또 얼마나 자주 하던가? 그런데도 이런 얘기를 들으면 반감이 드는 것은 우리가 삐딱해서 그런 건가?

아니다. 오히려 소심하게 정직해서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분의 우리에겐 ‘밥벌이’를 해결하는 방법이 ‘직장을 갖는 것’외에는 현실적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 2015년 한 해를 강타한 여러 이슈들. ⓒ영상 화면 캡처, 뉴시스

좋아하는 일만을 하면서 또 가슴이 뛰는 일만을 하면서 밥벌이를 하기는 어렵다. 밥벌이에 있어 일은 일일 뿐이다. 잘 하거나 못 하거나 둘 중의 하나이지 ‘옳은 일과 그른 일’로 구분해서 업무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중 거의 없다.
 
PR, 광고 등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고민도 상당부분 이런 현실에서 비롯된다. 애당초 말이 안 되는 제품, 기업 혹은 정책이라도 ‘절을 떠날 수 없는 중’이기에, 업무를 피할 수는 없는 신세이기에 어떻게든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수행해야 된다.

게다가 커뮤니케이션 활동에 대한 반응이 안 좋을 경우 비난은 커뮤니케이터의 몫이 되곤 한다. 제품이나 브랜드, 기업, 정책 등이 안 좋아서 나타나는 부정적 반응이 어찌 커뮤니케이션의 실패, 소통의 문제로 귀결되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많은 경우 문제의 핵심이 소통이라고,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는 것이 문제라고 습관처럼 말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문제들에서 그 핵심은 소통이 아닌 경우가 더 많다’. 카피라이터 이원흥 선생의 통찰력 넘치는 말이다.

기법이 무엇이든 미디어 환경을 어떻게 활용하든 커뮤니케이션의 근본은 바뀌지 않는다. 소통의 탓, 커뮤니케이션의 실패로 인해 부정적인 반응이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욕먹을만한 제품이 욕먹게 되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은 ‘없는 것을 쥐어짜는 것(Squeeze out)’이 아니라 ‘실체가 흘러넘치는 것(Spill over)’이어야만 한다. 따라서 강단 있는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라면, 커뮤니케이션의 소재가 되는 실체(제품, 브랜드, 정책 등)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한다. 왜냐면 우리가 버릇처럼 소통의 문제라고 하는 것의 대부분은 실체에 관련된 문제니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커뮤니케이터는 실체가 아니라 ‘포장’을 하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밥벌이의 고단함’이 묻어나는, ‘소통이 근본 문제가 아님’을 다시 깨닫게 되는 2015년 커뮤니케이션의 몇 장면을 뽑아봤다.

제대로 된 사과

작년 말 발생한 ‘땅콩회항’ 이슈에 이어 올해 역시 공식적인 사과가 필요한 사건이 꽤 있다. 개그맨 장동민의 실언, 삼성병원을 대표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가족 간 내분으로 가십을 양산한 롯데그룹 등…. (관련기사: 롯데 사태로 재조명되는 명성·이슈·위기관리)

▲ 올해도 사과할 이슈들이 많았다. 사진은 지난 9월 2일 메르스 후속대책 발표 기자회견에서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 등 의료진이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미숙한 대응과 불분명한 사과는 도리어 여론을 부정적으로 키우기도 했다. 이전의 사건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걸까? 올해도 사과를 제대로 하는 곳은 별로 없었다.

사과라는 것이 뭐 별건가.  먼저, 사고를 구체적으로 서술해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다음 피해를 입은 직접적인 당사자에게 미안함을 표시하고, 대책으로 어떻게 해주겠다고 말한 뒤 마지막으로 다시는 이러한 사고를 안 치기 위해 앞으로 어떤 것들을 하겠다고 약속하면 되는 거다. 대부분의 잘못된 사과는 아래와 같은 전형성을 띤다.

˅사과문인데 무슨 사고를 친 것인지 짐작이 안 되게 두루뭉술하게 서술한다.
˅잘못은 피해자한테 저질러 놓고도 국민(혹은 팬)에게 미안하다고 한다.
˅많은 사람의 마음이 이미 상했는데 ‘심려를 끼쳤다면’따위의 조건형 사과를 한다.


이 패턴을 벗어나기가 그리도 어려운 것일까. 아마 사과문을 쓰는 분들은 학창시절에 반성문도 써보지 않은 모범생이여서 그런 것 아닐까 싶다. (관련기사: 사과인듯 사과아닌 사과문의 오류)

행보가 소통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매주 월요일 아침 라디오 담화를 했다. 21세기에 라디오 담화라니, 루즈벨트의 노변정담은 이미 80년 전의 일이다. 현직 대통령에게도 ‘불통’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사람이 많다.

우리는 소통을 ‘말’로 하는 커뮤니케이션 행위로 좁게 생각하기 쉽다. 일반인 사이에서야 ‘대화를 나누는 행위’ 자체가 소통이다. 하지만, 고위공직자가 국민과 일일이 소통할 순 없다. 그러다보니 정부는 다수를 향해 말하는 ‘담화문 발표’로 소통한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생긴다.

▲ 박근혜 대통령이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국장에 참석해 조문록을 남기고 있다. 사진: 청와대
높은 사람에게 소통은 대화를 뜻하지 않는다. 가장 강력한 소통은 ‘행보’이다. 대통령의 경우를 보자. 어디를 가고 누구를 만나는지, 즉 어떤 행보를 보이는지가 가장 강력한 메시지 발신이요, 소통이다.

2013년 12월 90여 각국 정상이 참석했던 넬슨 만델라의 장례식에 우리나라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올해 1월 1월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만델라의 장례식에 참가하는 것은 만델라 전 대통령이 상징하는 인권과 화해의 정신에 우리나라도 동감한다는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이다. 사우디 국왕의 장례식에 가는 것은 ‘제2의 중동 붐’을 강조하는 대통령이 실제 중동을 중요시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위다.

‘현직 대통령이 해외 조문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 청와대 커뮤니케이션 담당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올 3월 말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장례식에 대통령이 참석하는 바람에 청와대의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는 머쓱했을 것이다.

심지어 박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을 조문하며 조문록에 글을 남기지도 않았다고 한다. 사적으로야 친할 수 없는 인물이었겠지만 소속 정당의 전임 대통령이지 않은가. 행보야말로 가장 강력한 메시지 발신인 것을.

간직하고 싶은 말

메르스 사태는 많은 교훈을 남겼다.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리더십은 제기된 질문에 응답하는 것이 아닌 선제적으로 아젠다를 던져 기민하게 액션을 취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알게 됐다. (관련기사: 에볼라와 메르스 통해 본 위기 리더십) 우리는 착각하고 있다. 안 좋은 얘기를 전하는 것이 내가 그 사건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일까 두려워한다.

▲ 메르스 사태는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도 많은 교훈을 남겼다. ⓒ뉴시스

아니다. 먼저 말하는 것은 책임감을 가지고 대응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다. 빠르게 투명하게 얘기해야 한다. 액션도 부실하면서 말도 제때 안 하니 욕을 먹었던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후생성이 메르스 사태에 대처하면서 남겼다는 말은 간직하자. ‘알려질 사실을 은폐하지 말라’. 어디 메르스 사태에만 적용되는 표현이랴. (관련기사: 메르스가 남긴 세 가지 키워드, ‘가이드라인·리더십·민간전문가’)

황우석 박사의 과학적 성취에 대해선 알 길이 없다. 그에 대한 믿음을 거두게 된 것은 기자회견에서 했던 그의 말 때문이다. 10년 전 황 박사는 논문조작 의혹에 대해 “돌이킬 수 없는 인위적 실수”가 있었다고 표현했다. 실수는 인위적일 수 없는 것이다.

실수로 컵을 떨어트릴 수 있다. 인위적으로 컵을 떨어트렸다는 것은 일부러 컵을 깼다는 얘기다. 거기에 ‘돌이킬 수 없는’이라니? ‘이제는 어찌 할 수가 없다’, ‘배 째라’는 말이다. 참 교활한 레토릭(Rhetoric)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황 박사의 레토릭에 버금가는 표현이 나왔다. 유명작가의 표절에 대해 ‘의도하지 않은 표절’이라는 방어의 레토릭이다.

문학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라 표현은 세련됐다만, 그러는 거 아니다. 우리는 ‘의도하지 않은 살인’도 살인으로 적용돼 처벌하는 나라에 살고 있다. 표절 또한 의도성의 여부가 아니라 결과로 평가받는 것임을 과연 몰라서 저러한 레토릭을 썼단 말인가?

 

황부영

브랜다임앤파트너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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