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 죽음을 ‘비키니’로 기록한 언론들
여배우 죽음을 ‘비키니’로 기록한 언론들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5.12.16 15: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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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토크] ‘묻지마 어뷰징’ 최소한의 도의도 상식도 실종

[더피알=문용필 기자] 스물 셋. 꽃다운 나이다. 무슨 연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는 모르지만 아까운 목숨이다. 최근 세상을 떠난 배우 강두리 이야기다.

고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생전 그는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는 ‘스타배우’는 아니었다. 출연작도 얼마없는 신인급 여배우였다. 당연히 대중의 관심을 받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랬던 그가 세상을 떠나자 돌연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섰다. 강두리라는 이름이 포털사이트 인기 검색어 순위에 오르내리자 수많은 언론이 기사화하기 시작했다.

▲ 얼마전 세상을 떠난 배우 故 강두리./사진출처: 강두리 트위터.

하지만 그의 죽음을 제대로 취재해 보도한 매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른바 ‘검색어 어뷰징(반복전송)’의 대상이 돼버렸다.

네티즌 반응을 엮고 생전 출연작은 무엇이었는지 전하는 기사들이 경쟁적으로 쏟아졌다. 좀 심하게 이야기하면 무명 여배우의 안타까운 죽음이 언론사의 트래픽 유발을 위한 이야깃거리로 전락한 셈이다.

중소언론사들의 열악한 현실을 감안해 어느 정도는 눈 감고 지나칠 수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의 상식과 윤리도 실종됐다. 몇몇 언론사의 경우 그녀가 생전 빨간 비키니를 입고 찍은 사진까지 기사화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도대체 강두리의 ‘빨간 비키니’ 사진이 그녀의 죽음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많은 어뷰징 기사가 그렇듯 내용은 별 게 없다. 그저 그녀가 생전 트위터에 올린 사진과 글을 ‘복붙’해서 짧게 작성됐다. 뉴스 소비자들의 말초적인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한 기사에 다름아니다.

모 언론사의 기사 제목은 어이없음을 넘어 분노를 느끼게까지 한다. ‘강두리, 생전 꽃다운 비키니 셀카, “기술이 좋은가봐”’.

도 넘는 행태를 보인 해당 언론사들에 대해 맹비난이 쏟아졌다. 한 네티즌은 이렇게 꼬집었다. “기자님은 자기 여동생이 자살했다해도 이런 비키니 뉴스 낼건가요.” 많은 이들이 공감할 의견이다. 비판여론이 일자 일부 언론사는 슬그머니 기사를 내렸다.

▲ 강두리의 생전 비키니 사진을 보도한 기사제목들./사진: 네이버 뉴스 캡처.

문제는 이같은 ‘무리수 기사’들이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여성 연예인이 검색어 순위에 오를 경우, 과거 화보나 SNS에 게재된 사진들을 올려 이를 기사화하는 케이스를 너무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해당 연예인에게 좋은일이 있든 나쁜일이 있든 어뷰징을 일삼는 언론사들에게 이는 관심대상이 아닌 듯 하다. 마치 던져진 먹잇감을 보고 무차별적으로 달려드는 하이에나들 같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최소한의 도의라는 것이 존재한다. 언론사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자극적인 어뷰징 기사로 단기간 트래픽을 올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자사의 브랜드를 깎아먹는 ‘독’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이의 과거를 자극적으로 묘사한다면 해당 언론사를 곱게 볼 독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는 언론계 전체의 발전을 무시한 ‘자사 이기주의’의 극치라고 밖에 평가할 수 없다. 현재 언론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는 높지 않다. ‘기레기’라는 표현은 언론인을 조롱하는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자리잡았다. ‘묻지마 어뷰징’이 지속적으로 나타난다면 그나마 남아있는 언론계 전반의 자존심은 머지않아 바닥을 치게 될 것이다.

안그래도 어디가서 기자라고 말하기 창피한 시대다. 늘 좋은 기사를 쓸 순 없겠지만 최소한의 상식과 도리는 지켜야 하지 않나. 같은 업의 종사자로서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담아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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