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브랜드의 잔상(殘像)
서울 브랜드의 잔상(殘像)
  • 신현일 (jun0689@naver.com)
  • 승인 2015.12.17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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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일의 컨버전스토리] ‘아이서울유’ 정체성은 무엇?

[더피알=신현일] 써야 할까 말까 꽤 긴 시간을 고민했다. 이미 여러 매체나 기고문을 통해 대부분 비판의 목소리와 몇몇 옹호의 목소리로 시끄러웠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전문가들이 본 논란의 ‘I.Seoul.U’) 그러나 맞고 틀리고의 관점을 잠시 떠나, 이번 ‘서울시 브랜드 사태(?)’를 빗대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본질은 어떤 것에 대한 가장 원천적이면서 근본이 되는 ‘존재의 이유’이다. 흔히 대화 중에 ‘본질에서 벗어난~’이란 말을 쓰는데 아마도 이번 서울시 브랜드의 비판과 옹호의 메시지들도 본질에서 벗어난 이야기의 난립(亂立)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상황이든 창작물을 비판하는 건 관련 업계 사람으로서 참 힘든 일이다. 비판할 생각도 없다. 제대로 ‘날’을 세워 보자는 것이다.


본질의 본질, 정체성 찾기

서울시 브랜드 공표가 된 다음날 아침, 한 종편채널에선 패널들의 신랄한 비판과 함께 언어학박사가 문법적‧의미적으로도 수준이 낮다는 평을 내렸다. 충분히 언급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비슷한 이야기가 열흘간 여러 매체에서 흘러 나왔다. 선정 과정은 둘째 치고 서울시의 ‘정체성’에 대해서 논하는 곳은 어느 한군데도 없었다.

도시브랜드를 구성하는 요소에 대한 저명한 학자나 현업의 대가들이 내놓는 몇 가지 요소들이 있다. 핵심은 도시의 ‘정체성’이다. 도시브랜딩은 이 정체성을 찾아 해당 도시에 살고 있는 시민, 찾아올 관광객들에게 가슴 뛰는 그 무언가를 ‘언어적·비주얼적’으로 표현하는 과정이다.

▲ 서울시에서 제시한 다양한 변형 로고.

세계 대다수 나라들의 수도는 그 나라의 역사와 건축물, 민족성이 대표적으로 남아 있다. 정체성은 앞서 이야기한 이런 1차적 사실 외에도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도시의 원동력과 나아가 미래에 보여줄 수 있는 도시의 잠재력을 고려해야 한다. 모든 것을 다 담을 수는 없지만 ‘그 도시만의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근간으로 정체성을 정의해야 한다.

1970년 오일쇼크 여파로 경기가 침체되고 어수선한 분위기에 빠져 있던 뉴욕시는 시민들의 자부심과 도시에 대한 애정을 살리고, 나아가 관광산업에 도움이 되는 도시마케팅을 뉴욕주 자체로 기획하게 된다.

이러한 목표 아래 뉴욕은 ‘세계 제1의 도시, 세계의 수도’라는 도시를 정체성으로 삼고, 이를 더욱더 매력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아이러브뉴욕(I LOVE NEWYORK)’ 캠페인을 시작한다. 1976년 뉴욕 출신 유명디자이너 밀턴 그레이저가 제작한 ‘I♥NY’은 공전의 히트를 치며 전세계인이 뉴욕을 사랑하게 되는 원동력이 됐다.

이후 음악가인 스티브 칼만이 작곡한 홍보송 아이러브뉴욕은 향후 뉴욕의 공식주가로 승인되고, I♥NY은 슬로건 기능은 물론 각종 홍보물과 상품에 적용돼 가장 성공한 도시캠페인으로 아직도 진행 중이다. 70년에 뉴욕은 ‘세계 1위, 세계의 수도’를 논의하기에 시기상조일수도 있었지만 도시가 가진 잠재력과 함께 시민의 염원까지 담아 이를 언어화했다. 

▲ 주차장 벽에 그려진 변형된 '아이러브뉴욕(i love newyork)' 슬로건.

서울시는 정체성 정의를 비롯해 언어화, 디자인화 등 일련의 브랜드 작업을 시민과 전문가, 외국인과 함께 했다. 이 참여 형태에는 점수를 줄 수 있다. 그러나 서울만의 색깔과 잠재력을 얼마나 내재하고 있는지는 다시 한 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기능적 본질, 사용성 찾기

이번 서울시 브랜드에서 또 하나의 핵심주제는 ‘3세대형 브랜드’였다. 문장형으로 제작된 ‘하이서울(Hi, Seoul)’은 2세대형 브랜드로 제작자의 의도 외에 해석할 여지가 없다는 주장이 나왔다.

3세대형은 ‘그릇’의 형태로 사용자가 의미를 새로 만들 수도 있고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준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3세대형 브랜드로 독일 베를린의 도시 브랜드인 ‘비베를린(Be Berlin)’과 네덜란드 ‘아이암스테르담(I Amsterdam)’을 예로 들었다.

서울시가 이야기하는 3세대형의 속성은 ‘사용성’이다. 그런데 비베를린과 아이암스테르담이 그 예로 적절한지는 좀 의문이다. 베를린과 암스테르담은 언어적 속성이 1인칭 관점으로 도시를 바라보는 것에 그 핵심이 있다. 시민들이나 기업들이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사용성과는 거리가 있다.

▲ 초기 서울시가 제안한 아이서울유(i.seoul.u) 활용 예.

서울시 브랜드를 사업화하는 서울산업진흥원은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하이서울 브랜드를 정해진 기한 없이 유지하겠다고 표명했다. 서울시 브랜드는 모범음식점, 중소기업 우수제품인증, 각종 축제와 페스티벌과 공공서비스에 사용되고 있는데, 이를 하이서울로 계속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대대적인 브랜드 론칭 행사와 대국민 참여를 통해 탄생한 새로운 브랜드에 대한 예우치고는 안타까운 결정이다.

신규 서울시 브랜드의 교체 이유에 대해 시의 해당 담당자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하이서울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다가 2006년 오세훈 시장이 ‘소울 오브 아시아(Soul of Asia)’를 만들어 함께 사용했는데, 중국에서 ‘아시아의 중심은 중국’이라며 방송불가 판정을 내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인피니틀리 유어스 서울(Infinitely yours, Seoul)’을 만들었다는 것.

그러나 이 또한 제대로 홍보가 되지 않아 전체적으로 서울시 브랜드에 대한 재정리가 필요해 내부에 제안했고 박원순 시장이 이를 받아들여 교체가 됐다는 것이다.

결국 하이서울과 여타 개발됐던 서울시 브랜드의 잔상을 새롭게 만들어 줄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다. 그런데 하이서울을 유지해야 된다니?! 브랜드 개발 초기에 이런 사용성에 대한 부분을 염두에 두었을 텐데 아쉬운 대목이다.

참여의 본질, 진정성 찾기

이번 서울시 브랜드는 1년여에 걸쳐 개발됐고 시민공모와 외국인 및 전문가 자문단 그리고 현장투표 등 다각적 참여형 개발프로세스를 거쳤다. 매체에서 공격하는 주요 포인트도 여기에 있다. 그런 여러 과정을 거쳤는데 결과물이 이것밖에 되지 않느냐이다. 그러나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참여의 스펙트럼과 기간이 아니라 얼마나 심도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최종 결정 된 ‘아이서울유(I.Seoul.U)’는 13만여명이 참여한 온라인 투표와 전문가 투표에선 1등이 아니었다. ‘서울메이트(SEOULMATE)’가 1등이었다.

그러나 현장투표에서 설득력 있는 제안자의 설명과 질의응답을 거쳐 결과가 뒤집혔다. 이유를 떠나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시 브랜드는 오디션 같은 과정이 아닌 국가의 중요한 자산을 결정하는 과정으로 ‘참여형’이 되었으면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도시브랜딩은 그 어떤 브랜딩 작업보다 어렵다. 지켜보는 사람도 많고 결과물에 대한 책임도 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도시브랜딩의 본질을 프로젝트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지켜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번 서울시 브랜드의 평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서울시의 대응과 참여자들의 인터뷰는 지켜보는 서울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업계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잔상(殘像)은 ‘지워지지 아니하는 지난날의 모습’을 의미한다. 하이서울(Hi, Seoul)의 잔상을 지우고 아시아의 미래이며 세계의 중심이 될 서울의 ‘새로운 비전’을 바라는 서울시민과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 다시 한 번 권토중래(捲土重來)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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