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의 지평 넓히는 ‘페이크슈머’
소비의 지평 넓히는 ‘페이크슈머’
  • 이윤주 기자 (skyavenue@the-pr.co.kr)
  • 승인 2016.02.25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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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라도 괜찮아”…독특한 방식으로 즐기는 소비의 맛

[더피알=이윤주 기자] 누군가는 지지리 궁상이라고 바라볼 수도 있다. 돈 뿐만 아니라 여유도 챙기며 살기 힘든 시대. 팍팍한 일상 속에서 ‘가치 있는 가짜’를 소비하는 젊은 층이 늘고 있다. 꿩 대신 닭으로 가짜를 통해 최대 만족을 이끌어내는 그들은 ‘페이크슈머’다.

페이크슈머(fakesumer)는 가짜를 의미하는 페이크(fake)와 소비자를 뜻하는 컨슈머(consumer)를 결합한 신조어다. 얇은 지갑에 좌절하기보다 독특한 방식으로 소비의 ‘맛’을 즐기는 이들이 많아지며 새로운 소비문화 트렌드로 부상했다.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는 웨딩카페에서 저렴하게 셀프 웨딩사진을 찍고, 정원을 가지지 못한 이들은 실내가드닝을 통해 집 안 작은 상자 속에서 흙을 만진다. 다른 브랜드 로고를 패러디해 짝퉁을 연상케 하는 브랜드 베리레어는 이미테이션이 아닌 개성의 또다른 이름으로 여겨진다.

방구석 캠핑

텐트를 구매하고 장소를 물색한다. 캠핑의 피날레인 바비큐파티를 위한 고기, 숯, 조리도구를 구입하고 침낭과 매트리스, 램프까지 살피다보면 내가 캠핑을 가겠다는 건지, 살림을 새로 차리겠다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 방에서 캠핑기분을 내며 마시멜로를 구워먹고 있다. 출처=찌뉴

‘찌뉴’라는 익명을 쓰는 27세 청년은 아웃도어캠핑 대신 방구석캠핑을 택했다. “남자친구와 캠핑을 가려 했지만 바쁜 일정 때문에 시간을 낼 수 없었어요. ‘하루는 마시멜로나 같이 구워먹을까?’하며 집으로 사왔더라고요.” 방안에서 분위기나 내보자는 생각에 집에 있는 재료들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즉석에서 간단한 캠핑 간식 스모어가 만들어졌다.

“아무래도 탁 트인 자연에서 즐기는 캠핑과 방구석을 비교한다는 건 무리죠. 숯불에 구워내는 고기, 소시지, 등갈비 등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생각이 든다면 또 다른 방법이 있다. 캠핑을 콘셉트로 고기를 구워먹는 식당을 찾아가는 것.

서울 구로에 위치한 ‘인디안숲캠핑’은 진짜 숲속으로 캠핑을 온 느낌을 준다. 인조잔디와 주전자, 컵, 수저주머니까지 캠핑에 필요한 모든 도구들이 준비돼 있다. 바비큐를 즐긴 후 직접 라면도 끓여먹는 마무리까지. 약간 불편한 캠핑의자에 앉아서 먹어도 행복한 웃음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눈으로 떠나는 여행

청담동에 위치한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 발을 들여놓자마자 보이는 비행기 시간표가 촤라락 바뀌는 소리는 마치 진짜 공항에 온 듯 착각을 주며 가상여행의 시작을 알린다. 나라별 도시지도에 푹 빠져 있다가 천장을 올려다보면 수십 개의 비행기 모형이 하늘에 떠 있다.

▲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의 내부 모습. 현대카드 제공

좀 더 직접적인 느낌을 원한다면 큰 스크린 앞으로 걸음을 옮겨보자. 구글 어스가 눈앞에 펼쳐지면 조종 버튼을 이용해 원하는 나라의 지역 골목까지 찾아 들어가며 가상여행의 절정을 맛볼 수 있다. 도서관을 나오며 맡겨둔 물품을 찾을 즈음에는 가상이 아닌 진짜 여행을 가고 싶다는 욕구가 분출하는 것은 함정.

여행이야기를 들려주는 연극도 하나의 간접 여행 방법이다.

<인디아 블로그>는 인도에서 겪은 에피소드를 담았다. 입구에서 나눠주는 짜이(Chai)를 들고 들어가면 인도의 화려한 모습을 재연한 무대가 펼쳐진다. 인도의 모습을 영상으로 띄우는가하면 사막의 밤하늘을 조명으로 표현한다. 100분간 수다스럽게 내뱉는 이야기와 음악을 듣고 나오면 여행을 했다는 두근거림이 있다. 이 연극의 다른 이름은 ‘퇴사조장극’이라고.

나만의 레스토랑

최근 먹방이나 셰프 출연 요리 프로그램이 늘어나면서 TV나 유튜브를 보면서 홈쿡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실제 비싼 레스토랑이나 음식점에 갈 돈이 없어도 셰프가 되는 길은 열려 있다.

30살 김씨는 집에서 맥주를 즐겨 마신다. 안주는 당연 셀프. 그는 “편의점 재료를 이용해서 안주 만드는 영상을 보고 따라 해본다”며 “보통 바깥에서 사먹는 안주가 기본 1만원부터 시작한다면 홈쿡은 그보다 훨씬 값싸고 5분 내로 언제든 해먹을 수 있다”고 말한다. 자주 해 먹는 안주는 ‘트리플 치즈 오감자’. 오감자라는 과자에 슬라이드, 스트링, 피자치즈를 올리고 1분간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끝이다.

이런 혼맥커(혼자 맥주 마시는 사람)들을 겨냥해 삿포로에서는 고퀄리티 편의점 레시피를 포스팅하며 트렌드에 발맞추기도 했다. 적은 비용으로 만드는 불닭리조또부터 꼬꼬만두, 아포카토까지 개인의 입맛 따라 변형도 가능하다. 여기에 초와 예쁜 접시, 그리고 음악까지 곁들인다면 더할 나위 없는 나만의 레스토랑이 된다.

연애,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야! 밥 먹었어? 나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속이 아파. 밥 같이 먹자.” 이 때 다가오는 다른 남자. “어쩌지 나랑 먼저 선약이 있는데…”

어쩌다보니 삼각관계의 주인공이 됐다. 그들은 꽃다발을 선물하며 고백하기도 하고, 같이 여행도 떠날 수 있는 ‘내 손안의 남자친구’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모바일로만 만날 수 있는 가상의 남자친구 얘기다.

여성의 로망을 자극하는 이 스토리는 연애에 소비되는 감정, 경제적 비용 등을 꺼려해 진짜 연애를 못하는 젊은 층을 공략한 3분 내외의 스낵컬처 콘텐츠다. 소감 말하기도 부끄럽다며 익명을 요한 20대 중반의 여성은 “영상을 보는 순간 처음엔 오글거리고 헛웃음이 났다.

그런데 이상하게 훈남(훈훈하게 생긴 남성)이 말을 걸고 눈 맞추고 웃어주니 나도 모르게 흐뭇하게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며 “넋 놓고 다음 영상을 계속 보다가 진짜 남자친구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의 줄임말 ‘미연시’도 가상연애의 한 방법이다. 현실에서 하지 못하는 연애를 가상의 인물과 대화하며 데이트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대리만족과 즐거움을 얻는 ‘자각몽’을 꿈꾸는 이들의 연애방식이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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