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자, 나쁜 기자, 이상한 기자
좋은 기자, 나쁜 기자, 이상한 기자
  • 박형재 기자 (news34567@the-pr.co.kr)
  • 승인 2016.03.30 14: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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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인들이 보는 요즘 기자들 上] 팩트 기반·열린 자세 아쉬워…‘은혜 갚은 까치’로 돌아오기도

기자와 홍보인. 실과 바늘 같은 존재다. 순망치한, 고장난명처럼 서로 없으면 아쉽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따로국밥이 됐다. 물과 기름처럼 쉽게 섞이지 못한다. 언론의 광고·협찬 요구가 더 심해지고, 기업의 예산은 줄면서 관계의 틈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과연 그것뿐일까. 홍보인 10명의 허심탄회한 속마음을 듣고 인터뷰 형식으로 꾸며봤다.

<上> 좋은 기자, 나쁜 기자, 이상한 기자
<下> 기자들에게 이것만은 바란다

※ 취재원 보호를 위해 영문 이니셜 A~J씨로 익명 처리함을 밝혀둡니다.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아시죠? 이를 차용해 홍보인들이 생각하는 기자들을 유형별로 정리해보려 합니다. 우선 좋은 기자와 나쁜 기자를 나누는 기준은 뭘까요.

A씨  기자들마다 스타일이 달라요. 취재할 때 열린 자세로 기업에 접근하는 기자가 있는가하면, 나름의 시각을 정해놓는 경우가 있죠. 전자는 취재 중 확인된 사실이 기업에 유리하든 불리하든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데 기업 입장에선 좋은 기자에요. 잘못된 걸 지적해주면 기업은 아프지만 배울 게 있어요. 반면 무조건 부정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는 기자는 불편하죠. 편견을 갖고 있으면 객관적인 사실을 말해도 핑계로만 받아들이고 우리가 거짓말하는 것처럼 생각해서 참 난감해요.

B씨  공감합니다. 훌륭한 기자는 정확한 팩트를 갖고 조목조목 기사를 쓰는 기자, 반대로 나쁜 기자는 팩트 없이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기자에요. 기업 입장에서 기분 나쁜 요소만 모아서 이른바 ‘조지는 기사’를 쓰는 거죠. 또 공부 안하는 기자도 나쁜 기자라고 생각해요. 출입처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취재원에게 들은 소스만으로 기사를 쓰면 왜곡될 가능성이 많죠.

C씨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기자는 기사화 여부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분이에요. 이걸 기사화할 수 있다, 없다 명확히 해주면 저도 업무를 진행하며 다음 스텝을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반대로 계속 자료 확인 안 해주고, 연락 준다면서 차일피일 시간만 보내는 분은 답답하죠. 기사가 안 되면 다른 기획을 하든지, 다른 매체로 전달해야 하는데 여러 번 재촉하는 것도 민망하고, 무작정 기다리는 것도 자료의 가치가 점점 떨어져 속상합니다.

홍보라는 업의 특성상 다양한 매체의 수많은 기자들과 만나는데요. “이런 상황은 정말 불편했다”는 경험담이 있다면 들려주시죠.

D씨  OO일보와 스폰서십으로 기사가 나갈 상황이 있었어요. 그 안에 사례를 맞춰야 하니까 자료를 달라는데, 마치 채권추심하듯 하는 거예요. 시간 촉박하게 자료 요청해놓고 빨리 달라고 재촉하고, 자료가 늦어지면 죽일 놈 살릴 놈 하거나, 홍보팀이 이것도 처리 못하냐고 무능하다는 식으로 매도할 경우 맘 상하죠. 
광고주 아니면 관심 없는 기자도 별로에요. 자기 매체에 광고 집행하는 기업 기사는 잘 써주면서 광고 안하는 기업은 거들떠도 안보는… 비즈니스 관계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면서도 기자가 광고에만 집중하는 것 같아 씁쓸해요.

A씨  회사가 오너 이슈로 시끄러운 때가 있었어요. O기자가 연락 와서 이것저것 물어 보길래, ‘회사 영업비밀인데 왜 그러냐, 정식으로 취재 요청하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알려주겠다’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다음날 자회사를 통해 비자금을 해먹었다는 기사가 났어요. 기자를 찾아갔죠. ‘왜 취재도 안하고 쓰느냐’ 따졌더니 나한테 확인했대요. 그렇게 답변한 적 없다고 해명하고 관련 자료 다 뽑아서 팩트 아닌 거 확인시켜줬는데도 기사를 안 내리는거야. 결국 언론중재위원회와 재판까지 한 끝에 이겼어요. 근데 신문사 홈페이지에 ‘몇 월 몇 일 기사는 잘못됐습니다’ 한 달 게재한 게 전부에요. 당시 사람들은 잘못된 기사 때문에 우리 회사에서 비자금 만든 걸로 기억하는데 이기고도 진 싸움이죠.

E씨  대부분 홍보팀이 경험하는 최악은 이거에요. 최근 기업 관련 이슈에다 옛날일 다 끄집어내서 엮는 기사. 다 아는 사실을 특정한 목적에 의해 엮어 쓰면 안 좋죠. 난처한 기사를 쓴 다음에 뭔가 요구하는… 또 확인되지 않은 일들, 단편적인 팩트만 갖고 기사화하는 분들도 대응하기 힘들고요. 기자가 기사를 쓰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어떨 때는 흥미 위주로 그냥 써버리는 경우도 있어요. 특히 회사에 안 좋은 일 있을 때 그런 기사가 많이 나오죠. 갑자기 옛날 생각나네요.

H씨  기자가 홍보팀 말을 안 믿는 경우도 있어요. 취재원의 소스를 더 우선시하고 “나는 이렇게 들었다”면서 그냥 쓰는 거죠. 나중에 알고 보니 제휴사 관계자가 본인 희망사항을 얘기한 거예요. 우리랑 합의된 게 아니라 “이렇게 되면 좋겠다”는 정도. 아직 계약도 안됐는데 기사 나오면 양쪽 다 난감하죠. 실무 차원에서만 오간 얘긴데 기사화되면 판이 깨질 수도 있어요.

기자를 상대하며 겪은 기억에 남거나 황당한 경험도 많을 것 같아요.

D씨  하루는 종편방송을 보는데 홍보업계에서 잘 땡기기(?)로 소문난 기자가 패널로 나왔어요. 백화점에서 물건 값 깎는 법, 제품 싸게 사는 방법 말해주는데 황당하더라고요. ‘슈퍼땡김이’가 권위 있는 기자, 정의의 사도처럼 포장돼 방송에 나오니까 정말 어이가 없었어요. 두고두고 회자되는 유명한 일화도 있어요. 모 신문사 기자가 결혼할 때 되니까 갑자기 자동차에서 식품으로 출입처를 바꾼 거야. 청첩장을 쭉 뿌리더라고. 근데 결혼하고 나서 곧바로 자동차업계로 고 백(go back)했어요. 식품에서 한몫 챙기고 다시 옛 출입처로 간 거지.

J씨  모 마이너매체 기자는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주구장창 ‘까는 기사’만 써요. 기업 홍보인이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SNS에서 나름 영향력자인거야. 그 사람이 자기 기사를 쓰는 족족 SNS에 올리고, 그걸 퍼가는 사람이 많으니까 언론사 영향력과 상관없이 업체에서 관리 대상에 포함시킬 수밖에 없었어요. 바야흐로 SNS와 결합한 신종 기자, 신인류의 탄생인 거죠. 
모 일간지 유통담당 기자는 물건 땡기기로 명성이 자자한데, 홍보인들 사이에선 그 집에 가면 ‘슈퍼마켓’이 차려졌을 거란 말까지 나돌았어요. 다들 아시는 분일 텐데, 요즘은 그 기자가 주춤한 반면 자매지 기자가 더 기승을 부린다네요. 자기 것도 땡기고, 윗분들 것도 쭉쭉 땡기는데, 그야말로 청출어람이라서 ‘본지 기자에게 비법 전수받았냐’는 말이 나온대요.

A씨  땡기는 거 하니 생각났는데 평소 물건을 하도 잘 땡겨 밉상으로 찍힌 기자가 출입처를 바꾼 뒤 ‘은혜 갚은 까치’로 변신한 경우도 있어요. 그 기자가 출입처를 바꿨는데, 어느 날 전화가 온 거야. ‘다음 주 등산 갈 계획’이라고 말했더니 ‘그래? 등산화 필요하지 않아? 하나 줄게’ 이러는 거예요. 신발사이즈 물어보기에 얼결에 말했는데 진짜로 등산화가 배달됐어요. 새로 바뀐 출입처에서 땡겨다 줬더라고요. 그렇게 땡겨가더니 또 그런 식으로 갚은 거죠. 내심 황당하면서도 고맙고, 이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E씨  막무가내로 술 사달라거나 룸살롱 가자는 기자들도 대략 난감입니다. 하루는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있는 상태였는데, 양해를 구했음에도 끝까지 2차 가자고 해서 데려갈 수밖에 없었어요. 홍보인도 감정이 있는 사람인데 인간적으로 대해주지 않으면 많이 힘들어요.

F씨  최근 홍보인들 사이에 회자되는 OO매체가 있는데, 식사 약속을 요청하면서 유명 스시집이나 호텔 식당 등 최고급만 고집해요. 그리고 미팅을 주선한 부장급이 국장과 평기자를 모두 대동하고 나오는 거죠. 점심 미팅 나섰다가 60~70만원짜리 계산서를 받고 뒤로 나자빠진 홍보인이 한둘이 아닙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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