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 뜨거운 언론보도, 어디까지 참아야 하나
낯 뜨거운 언론보도, 어디까지 참아야 하나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6.08.03 1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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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저널리즘 실태보고]신문들 지면-온라인 ‘투트랙’ 행보…종편방송 선정성 ‘심각’

한국 언론계가 옐로저널리즘 행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신문산업의 가파른 하향세 속에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해석이 나오지만 ‘정론 몰락’은 언론시장의 사양화를 부채질하는 달콤한 독(毒)일 뿐이다. 이에 <더피알>은 지난 1년간 국내 언론계에 만연한 ‘나쁜 뉴스’ 유형을 살펴봤다.

자문 김성해 대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현황 - 낯 뜨거운 언론보도 어디까지 참아야 하나
유형① 자극적 헤드라인 - 기사인지 야설인지
유형② 인격권 훼손 - 자막으로 조롱, 드립으로 희화화
유형③ 인간성 훼손 - 여과 없는 폭력장면, 호전성 조장
유형④ 외설적 콘텐츠 - 말초적 본능 자극하는 낚시뉴스
유형⑤ 보편적 가치 훼손 - 자살보도에 삽입된 올가미
유형⑥ 신뢰성 훼손 - 이념싸움 부추기는 의도적 왜곡
전문가 제언 - 옐로저널리즘 행태 개선 방안은?

[더피알=문용필 기자] 1880년대 미국 뉴욕에서는 월드라는 신문이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발행인은 ‘신문은 도덕교사’라는 신념의 소유자였지만 한편으로는 ‘재미없는 신문은 죄악’이라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

그의 소신은 지면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화려한 색채의 만평과 사진은 물론, 스포츠 면을 만들어 독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흥미를 유발할만한 내용과 오락성이 가득한 일요판도 신설했다. 노란 옷을 입은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만화 ‘옐로키드(yellow kid)’는 월드의 대표 콘텐츠였다.

그런데 저널이라는 매체가 등장하면서 월드의 앞길에 제동이 걸린다. 저널은 옐로키드의 작가와 편집자 등 월드 측 인사들을 스카웃하는 한편, 신문 한부의 가격을 절반으로 책정했다. 양사의 신경전은 가히 ‘전쟁’을 방불케 했다. 자극적이고 팩트조차 확인이 안 된 기사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의 선정성 경쟁은 ‘옐로저널리즘(Yellow Journalism, 황색언론)’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된다.

이들 매체의 발행인은 ‘퓰리처상의 아버지’인 조셉 퓰리처와 거대 미디어제국 ‘허스트 코퍼레이션’을 건설한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였다. 훗날 전 세계 언론사에 거대 족적을 남긴 두 거인이 옐로저널리즘의 선구자가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셈이다.

퓰리처와 허스트의 전쟁은 끝났지만 그로부터 120여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 언론계는 옐로저널리즘 홍수 속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누가 봐도 ‘낚시질’이나 다름없는 자극적인 헤드라인, 성적 색채가 짙은 사진과 글로 뒤덮인 기사들이 난무하고 있다. 팩트를 왜곡한 기사는 물론, 명예훼손과 사생활 털기에 가까운 보도도 비일비재하다. 이른바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매체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경쟁구도가 첨예해진 탓이다.

▲ 헤럴드경제는 '흑산도 성폭행 사건'을 기사화하면서 자극적인 제목을 썼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출처: 강남역 10번출구 페이스북

게다가 종이신문의 지면이 주 플랫폼이었던 과거의 미디어 환경과는 달리 포털사이트가 뉴스 유통의 거대 채널로 자리잡고 수많은 매체의 기사가 쏟아지면서 보다 자극적이지 않으면 눈길을 끌기 어려운 시대가 돼버렸다.

트래픽을 올리지 못하면 광고수익에도 악영향을 미치기에 윤리를 따지기 이전에 생존을 택했다. 여기에 스마트폰과 SNS 등 시시각각 정보를 빠르게 소비하는 수단이 생겨난 것도 옐로저널리즘적 행태를 부추기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

파괴적 저널리즘…언론으로 부르기도 힘들다

그러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라는 점을 십분 이해한다고 해도 한국 언론계를 덮고 있는 ‘노란색’은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눈에 띈다. 언론계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그 유해성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김성해 대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언론은 사회에서 물과 공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오염된 물과 공기를 마시게 되면 장기적으로 큰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옐로저널리즘은 파괴적 저널리즘에 다름 아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아울러 “(매체 환경이 다변화된 현실에서) 양질의 정보를 습득하는 데는 시간적·물리적 한계가 있는데 옐로저널리즘이 대부분이라면 어떻게 양질의 뉴스를 얻을 수 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은 보도가치를 정확히 평가해서 공공이익이 되는 사안을 보도하는 것”이라며 “선정적인 주제로 독자의 시선을 끌게 되면 정작 관심을 가져야 할 공적 사안에 대해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차원에서 옐로저널리즘은 심각하다”고 언급했다.

김위근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은 “저널리즘은 사회적 의제를 추구해야 하지만 옐로 저널리즘은 개별 언론의 사익에 충실한 모델”이라며 “물론 언론사 운영을 위해서는 사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지만 공익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 한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옐로저널리즘을 추구하는 미디어는 언론사로 부르기도 힘들다”고 일갈했다.

▲ (자료사진) 최근 발생한 해운대 교통사고 장면을 방송한 채널a 뉴스. 해당 영상 캡처

김장열 미 콜로라도 주립대 교수는 “미국이나 유럽에도 물론 옐로저널리즘이 있다. 그러나 영국의 선(Sun)지처럼 그런 것을 주로 다루는 매체가 있는 반면, 정통미디어에서는 그런 행태를 찾아보기 어렵다. (가십지와 정론지가) 확실하게 구분돼있다”고 차이를 설명했다.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심각하게 진단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비춰 <더피알>은 옐로저널리즘 실태가 어느 정도인지 살펴보기로 했다. 2015년 5월부터 2016년 5월까지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이하 신문윤리위)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의위)의 심의결과를 전수 조사한 것.

이를 통해 1년간 신문과 방송을 통해 드러난 옐로저널리즘 행태를 수치화했다. 신문의 경우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구분했다. 각 심의기관별 기준이 따로 있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보도 성격에 따라 ▲자극적 헤드라인 ▲인격권 훼손 ▲인간성 훼손 ▲외설적 콘텐츠 ▲보편적 가치 훼손 ▲신뢰성 훼손 등 6개 기준을 설정, 옐로저널리즘 행태를 분류했다.

심의기관에서 지적받지 않은 사안일지라도 위 기준에 부합할 경우 각 항목에 포함시켰고, 반대로 심의기관에서 지적받은 건이라고 해도 <더피알>이 설정한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제외했다.

언론사는 그 성격에 따라 신문은 △종합일간지 △경제지 △지방지 △스포츠지 △영자지 △뉴스통신사 △닷컴 등 총 7개로 분류했고 방송은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 △지역방송(PP)등으로 세분화했다.

또한 일반적인 뉴스가 아닐지라도 시사대담 및 탐사보도 프로그램의 경우, 언론의 성격을 충분히 띠고 있다고 판단해 조사대상에 포함시켰다. 다만, 라디오에선 별다른 옐로저널리즘 행태가 발견되지 않았다.

애초에는 독립 인터넷매체들이 소속된 인터넷신문위원회의 심의결과도 포함시킬 예정이었지만, 지난해 11월 이전 자료는 제공할 수 없다는 위원회 측의 답변에 따라 이번 조사에서 제외했다.

점잖던 종이신문, 온라인에선 확 변신

조사 결과, 총 84개 매체(종이신문 37개, 신문사 온라인판36개, 방송 11개)의 478개 기사 및 프로그램에서 574건의 옐로저널리즘 행태가 발견됐다. 이 가운데 온라인판이 398건으로 80% 이상을 차지했다. 종이신문은 113건, 방송은 63건으로 집계됐다. 온라인상에서 트래픽 유치를 위한 언론들의 지나친 경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문제가 발견된 신문사 수를 유형별로 분류하니 중앙일간지 13개, 경제지 8개, 지방지 20개, 스포츠지 7개로 집계됐다. 닷컴사는 8개, 통신사는 3개, 영자지는 2개였다.

닷컴의 경우 모체가 되는 신문사가 모두 오프라인 지면을 발행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문윤리위의 심의대상이 되는 102개 언론사(신문협회 회원 47개사, 비회원사 55개) 중 절반가량이 해당된다는 이야기다.

방송은 지상파 3사와 종편 4사, 보도전문채널 2개사가 모두 포함됐다. 한겨레와 JTBC의 경우에는 각 1건만의 문제점이 발견돼 조사대상 언론사 중 가장 건강한 보도행태를 보이고 있었다.

매체유형별로 살펴보면 신문의 경우, 스포츠지(104개 기사/141건)와 경제지(96개 기사/116건)에서 가장 많은 문제점이 나타났는데 대부분 온라인판에 몰려있었다. 특히, 자극적인 헤드라인이나 외설적 콘텐츠가 담긴 기사들이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와 관련, 김위근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은 “각 매체별로 다루는 뉴스의 특징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스포츠지는 주로 엔터테인먼트콘텐츠를 다루고 경제지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소개가 상대적으로 많다보니 선정적 내용이 들어갈 여지가 크다”며 “상대적으로 온라인에서 (옐로저널리즘 행태가) 심하다는 것은 경제지와 스포츠지의 오프라인 기반이 약하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분석했다.

▲ 다소 선정적인 사진이 담긴 모 언론사의 네이버 뉴스캐스트 페이지. 해당 페이지 캡처

이에 비해 온라인으로만 운영되는 뉴스통신사의 경우 8건(6개 기사)에 그쳐 비교적 경미한 수준이었다. 가십보다는 팩트와 속보가 중심이 되는 매체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중앙일간지에서는 총 101건(87개 기사))이 발견됐는데 온·오프라인에 편중되지 않는 모습을 나타냈다.

영자지의 국문기사 일탈 심각

지방지는 30건(28개 기사)의 문제점이 발견돼 매체수 당 문제점 비율이 가장 낮았다. 반면 2개 매체에 불과한 영자지는 총 49건이 발견돼 신문과 방송을 막론하고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특히 온라인상에서 자극적인 제목이 많았다. 게다가 지적된 내용은 모두 영문이 아닌 국문기사들이었다.

이에 대해 김성해 대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영자지가 스포츠지와 동일한 메커니즘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며 “과거 영어공부를 하는 사람이 주로 영자지를 봤지만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영문으로된 신문이나 방송을 쉽게 볼 수 있다. 때문에 주 독자층을 잃었고 차별화된 콘텐츠도 없어졌다. 그렇다고 광고 메리트가 있는 것도 아니다”고 원인을 분석했다.

김위근 연구위원은 “영문으로 작성된 뉴스콘텐츠는 한글에 비해 국내에서의 확산성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이는 오프라인 광고 비즈니스에서 큰 약점으로 작용한다”며 “이에 온라인 비즈니스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방송의 경우에는 종편(45건)이 가장 심각한 옐로저널리즘 행태를 보였다. 반면 지상파 3사와 보도전문채널은 각각 9건, 8건의 문제만 발견됐을 뿐이다.

옐로저널리즘의 행태별 기준으로 보면 온라인에서는 자극적 헤드라인(167건)과 외설적 콘텐츠(88건)가 두드러졌다. 온라인판에서 선정성 문제가 심각하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문제점이 여기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았을 뿐 신뢰성 훼손을 제외한 모든 항목에서 종이신문과 방송보다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반면, 종이신문에서는 외설적 콘텐츠 관련 사례가 단 한건도 발견되지 않았다. 온라인상에서 지적받은 언론사들이 대부분 종이신문을 발간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문사들의 온·오프라인 편집 전략에 차이가 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대신 종이신문은 신뢰성 훼손(70건)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특정 사안을 왜곡할 소지가 있는 보도들이 많았다는 의미다.

방송은 인격권 훼손(35건)이 상대적으로 많았는데, 보호받아야할 특정인의 사생활이나 신분을 지나치게 노출한 케이스였다. 종편의 경우 시사대담 프로그램에서 특정 개인이나 조직을 지나치게 공격해 명예를 훼손시킨 사례들도 심심찮게 발견됐다.

2개 이상의 문제점이 함께 지적된 기사, 프로그램은 총 92건이었다. 이중 자극적 헤드라인과 외설적 콘텐츠가 동시 지적된 케이스가 54건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는데 모두 온라인 판에서 나온 결과였다. ‘인격권 훼손-신뢰성 훼손’‘인간성 훼손-보편적 가치훼손’ 행태가 함께 나타난 경우는 각 4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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