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코앞인데…절박한 농어민들
김영란법 코앞인데…절박한 농어민들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6.08.10 14: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우·화훼 등 피해 불가피, ‘법 개정’ 이외 대책 난항

[더피알=문용필 기자]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의 시행시점이 한 달 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농축수산물을 적용대상에서 제외시키기 위한 농어민들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일정 금액 이상의 선물을 금지한 법 내용상 선물세트로 각광받았던 품목이 큰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다 할 힘이 없는 농어민 단체들은 법 개정 요구 외에 별다른 후속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에 김영란법이 원안 그대로 시행된다면 농어민들의 피해는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적용대상인 공직자와 교직원, 언론인들은 3만원 이상의 식사접대와 5만원 이상의 선물을 받을 수 없게 된다.(관련기사:김영란법 마주한 언론, ‘은근한 비판’ 쏟아내) 부정 청탁과 뇌물을 근절하기 위한 법 취지상 금액상한선이 규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문제는 고가의 농축수산물이다.

▲ 김영란법에 대한 합헌결정이 내려진 지난달 28일 5만원짜리 한우세트 실물을 들어보이고 있는 황태수 한국농축산연합회 사무총장. 뉴시스

그간 명절 등에 선물세트로 대중화된 한우나 인삼, 굴비 등의 가격은 5만원을 훌쩍 넘는 것이 사실. 그만큼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관련 업계 종사자들은 직격탄을 맞을 수 밖에 없다.

실제로 한국농촌경제원이 지난달 발표한 ‘청탁금지법 시행에 따른 농축산물 선물 수요 변화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법 시행 이후 전체 농축산물 선물 횟수가 개인 차원에서는 24.4%, 사회 전체적으로는 28.5%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5만원 이상의 선물에 대해서는 법 시행 이후 1년 내 28.8%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이를 근거로 농촌경제원은 농업 생산액은 8193억원에서 9569억원 가량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아울러 “법 시행에 따른 농업계의 충격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이를 완화할 수 있도록 시행령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농민 단체들은 아예 김영란법 적용품목에서 농수축산물을 제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국 28개 농축산단체들이 모인 한국농축산연합회는 지난달 22일 기자회견을 통해 “고품질 농축수산물 생산에 전념해 온 농어업인들의 직간접적 경제적 피해 초래는 물론, 내수 진작을 통해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겠다는 정부의 정책 기조와도 180도 동떨어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합회는 지난 8일 국회 앞에서도 기자회견을 열어 농축수산물 제외를 호소했다.

아울러 농어민단체들은 법 개정을 위한 전방위적 활동에 나서고 있다.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전국한우협회 관계자는 “현재 지자체나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농축수산물을 제외해 달라는 서명운동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농협 품목별전국협의회는 지난 6월 전국 농민들을 대상으로 같은 내용의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와 관련, 하태승 농축산연합회 집행위원장은 “법의 취지로 보면 우리(농어민들)도 당연히 찬성이다. 그런데 자꾸 (농축수산물을) 끼워 맞추기 식으로 집어넣으니 문제”라며 “뇌물은 (받는 사람의) 재산을 증식하는 것인데 농수축산물은 소비하는 것이지 뇌물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원안 시행 이후 대책 ‘깜깜’

김영란법의 여파는 한우나 인삼같은 일부 품목에만 미치는 것이 아니다. 하 집행위원장은 ‘도미노 현상’을 우려했다. 피해 농가가 다른 작물로 갈아탈 경우 해당 작물의 과잉공급이 이뤄져 가격이 동반하락한다는 것. 그는 “지금까지 적정선에서 (가격이) 유지된 작물에 농민들이 몰리다 보면 그런 일이 생길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화훼농가 역시 비상등이 켜졌다. 경조사비 상한선이 10만원으로 규정돼있기 때문에 화환이나 조화의 경우 한우나 인삼 등의 품목보다 사정이 나아보이지만 이는 축의금‧부의금 가액을 포함한 수치다. 게다가 선물용으로 각광받는 난 화분 가격은 보통 7만원 이상이라는 것이 한국화훼협회 관계자의 설명이다.

정부도 농어민들의 이같은 어려움을 알고 있다.

이에 따라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2일 김영란법 시행령과 관련한 정부입법정책협의회 상정을 요청하면서 농축수산물 선물 가액을 10만원 이상으로 조정하고 한우와 인삼의 겨우 별도 기준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또한 화환과 조화는 경조사비 가액에 합산하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농식품부는 김영란법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태스크포스도 가동한 상태다.

다만, 선물 가액을 높이면서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시선도 있다. 하태승 집행위원장은 “쇠고기의 경우, 수입품으로도 5만원 이하 선물세트를 만들기 어렵지만 가액기준을 10만원으로 높이면 적당한 선물세트를 구성할 수 있다”며 “수입농산물 촉진법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 지난달 22일 김영란법 과잉규제철폐 촉구 기자회견에 나선 한국농축산연합회. 뉴시스.

그러나 김영란법 원안을 고수해야 한다는 여론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농수축산물에만 ‘예외 규정’을 둔다면 다른 품목과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게다가 시행조차 되지 않은 법을 미리부터 고친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별도의 개정 없이 김영란법의 원안 시행 가능성이 높아보이는 이유다.

상황이 이런데도 농어민 단체들은 법 개정에만 올인할 뿐 원안 시행 이후 대책 마련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어디까지나 민간단체인 이들이 적극적인 피해 보전에 나설 수 있는 힘은 없기 때문이다.

하태승 집행위원장은 “김영란법이 원안대로 시행된다면 그 다음 행동은 소속 단체 대표들이 협의해서 결정할 것이다. 어떻게 될지는 예측할 수 없다”며 “지금 (법 개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고 지금 다른 방법은 없다”고 전했다. 이어 “(원안대로 시행되면)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있겠나. 힘의 논리에 의해 밀릴 수 밖에 없다”고 답답해 했다.

이우곤 한국화훼협회 사무총장은 “피해 대책은 결국 정부가 마련해줘야 한다. 농가들이 지금 갑자기 어떤 대책을 수립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사무총장은 “내년도 재배규모를 정하는 것은 나름대로 할 수 있겠지만 (큰 틀에서의) 대책 수립은 정부가 해줘야 한다. 협회의 구체적인 움직임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며 “협회는 정부 차원의 대책이 나오면 이를 협의해서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전국한우협회 관계자 역시 “농축산연합회 등과 계속 협의하면서 차후 진행방향을 모색해 봐야할 것”이라며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