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성공전략 ①] 대중은 논란을 사랑한다
[트럼프 성공전략 ①] 대중은 논란을 사랑한다
  • 임준수 (micropr@gmail.com)
  • 승인 2016.11.11 11: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세기 ‘서커스맨’의 PR전략과 전술, 21세기에 먹혀

도널드 트럼프가 예상을 깨고 미국 45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전세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그의 대선 승리 과정은 정치인뿐만 아니라 PR인들에게도 큰 교훈을 줍니다. 19세기 중반 ‘세기의 서커스맨’ P.T. 바넘의 PR전략과 전술이 21세기 도널드 트럼프로 어떻게 부활했는지 7가지 공통점을 통해 살펴봅니다.

1. 대중은 논란을 사랑하고 논란은 공짜 홍보를 낳는다.
2. 일관된 이미지를 구축하라.
3. 비즈니스는 사기이며 뻔한 거짓말도 계속하면 진짜가 된다.
4. 대중은 속아넘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
5. 대중은 야바위에 몰린다. 순회공연의 힘을 믿어라.
6. 위기에 몰리면 또다른 쇼로 위기를 탈출하라.
7. 대중을 지루하게 만들지 마라.


[더피알=임준수] 11월 8일 도널드 트럼프의 미 대선 승리 소식은 미국은 물론이고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힐러리 클린턴의 승리를 기정사실화하고 보도와 논평을 준비해 온 언론들은 준비해 둔 기사를 모두 날려야 했다.

공화당 내에서도 트럼프가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으로 여겼던 사람들이 많았다. 공화당의 전통적인 기부자들도 트럼프에게 일찌감치 등을 돌렸다. 심지어는 기회주의적 성향이 강한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도 트럼프가 음담패설 파문으로 고전하면서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9일(현지시간) 승리연설을 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려 보이고 있다. ap/뉴시스

선거 11일 전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미 하원에 힐러리 클린턴 이메일 재수사 관련 서신을 보냈을 때 격차가 좁혀졌지만, 여전히 여론조사는 힐러리의 당선 확률을 훨씬 높게 잡았다. 아마 기자들과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평생 도널드 트럼프가 선거 막바지에 했던 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여론조사는 모두 가짜야.”

선거 막판에 트럼프는 여론조사에서 힐러리의 우세가 점쳐지는 미시간, 위스콘신, 펜실베니아에서 유세를 이어갔다. 이미 트럼프 우세가 확실했던 오하이오를 포함한 이른바 ‘러스트 벨트’이다.

공화당 예비선거 동안 트럼프는 흑인 대통령 8년의 세월을 보내며 심리적·경제적 이유로 잔뜩 화나 있는 백인 노동자들의 마음을 꿰뚫고 정치적으로 정제되지 않은 표현을 써가면서 공화당 기존 정치 세력을 모두 제압했다. 이 자체가 일종의 대이변이었다. 2008년과 2012년에 각 주별 대선결과를 완벽에 가깝게 예측했던 네이트 실버마저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 지명을 획득할 확률은 2%라고 확신했다가 명성에 큰 구김을 남겼다.

공화당 예비경선에서 파죽지세로 당내 터줏대감들을 차례로 무너뜨리고 종국엔 누구도 필적할 수 없는 정치적 자산을 쌓아온 힐러리 클린턴을 무너뜨린 도널드 트럼프는 도대체 어떻게 선거를 치렀나? 이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그와 아주 유사한 역사적 인물을 다시 끄집어 내지 않을 수 없다. 바로 19세기 중반 미국 쇼비즈니스와 정치사에서 너무나 유명했던 P.T. 바넘(Phineas Taylor Barnum 1810-1891)이다.

트럼프-바넘, 어떻게 대중을 파고들었나

2016년 미국 정치사에 돌풍을 몰고 온 트럼프 현상을 지켜보는 것은 19세기에 활약했던 ‘세기의 서커스맨’ P.T. 바넘의 PR전략과 전술이 21세기 미디어 환경과 유권자에게도 통하는지 테스트해보는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다. 미국 PR산업의 발달사에서 P.T. 바넘은 초창기 PR모델을 대표하면서 아직도 많은 실무자가 매달리는 홍보(publicity) 지향적인 PR을 대표하는 인물로 예시된다.

트럼프는 2016년 1월 미 NBC의 일요 시사대담 프로그램인 ‘밋 더 프레스(Meet The Press)’에 출연해 자신을 바넘에 비교하는 것을 칭찬으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사실 트럼프-바넘 비교는 최근에 나온 이야기는 아니다. 1986년 <뉴욕타임스>는 바넘 부동산 관련 기사를 쓰면서 ‘한 때 (코네티컷주) 브리지포트의 도널드 트럼프’라는 박물관 큐레이터의 말을 인용했다. 두 사람의 비슷한 점을 일찌감치 간파한 셈이다.

▲ 대선 승리를 거머쥔 도널드 트럼프는 19세기에 활약했던 '세기의 서커스맨' p.t. 바넘(오른쪽 위)의 pr전략과 전술을 떠올리게 한다.

<뉴욕타임스> 부동산 및 세금 문제 전문기자이자 <도널드 트럼프 만들기> 저자인 데이빗 케이 존스톤은 트럼프를 ‘현대판 P.T. 바넘’이라 부르면서, 그가 언론을 가지고 노는 데 선수이며 미 언론들이 모두 그에게 말려들었다고 비판한다.

한국의 언론학자 강준만에 따르면 바넘은 대중이 무엇에 열광하는지 그 핵심을 꿰뚫어 본 흥행의 천재였다. 마찬가지로 70세에 정치판에 뛰어든 트럼프는 공화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분노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정확히 짚고, 그 분노의 원천에 정확히 불을 붙임으로써 아주 짧은 시간에 공화당 대권주자로 등극했다.

바넘도 말년에는 정치에 뛰어들어 고향인 코네티컷주 하원의원을 거쳐 브리지포트의 시장을 지내기도 했다. 노예제 폐지를 주창하는 링컨의 열렬한 지지자였지만, 사업적으론 흑인을 혹독하게 대하고 폄하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바넘과 트럼프는 활동했던 시대와 출신 성분, 성격, 인격 등이 모두 다르다. 하지만 그들의 공통점을 이해하면 공화당 예비경선과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가 보여준 행동과 수법, 그리고 성공이 모두 이해된다.

공통점1 대중은 논란을 사랑하고, 논란은 공짜 홍보를 낳는다

강준만은 <흥행의 천재 바넘>에서 바넘은 대중이 논란을 사랑한다는 것을 일찍부터 간파했다고 기술한다. 주목을 쟁취해야 하는 시대가 열리면서 바넘은 자극적 홍보효과를 체득했다. 트럼프 역시 논란은 공짜 홍보를 낳는다는 점을 활용했다. 군중보다 더 군중을 끌어들이는 것은 없다던 바넘의 신조를 너무나 잘 안 트럼프는 군중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그들이 즐겨 쓰는 방식으로 이야기하며 가는 곳마다 논란을 일으켰다.

PR회사 에델만의 CEO 리처드 에델만은 트럼프의 그런 화법에 감동한 것처럼 보인다. 에델만은 <피알위크(PRWeek)>가 주최한 한 컨퍼런스에서 “그는 일반인들에게 말하는 기술을 마스터했다”며 “(트럼프처럼) 수평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나는 영리하고 당신은 그렇지 않다는 식으로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힐러리 클린턴은 엘리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을 잘하지만, 그런 복잡한 뉘앙스를 가진 문제들에 대해 사람들은 모두 알려고 하지 않는다”고 평했다. 물론 에델만의 이런 평가에서 그가 ‘공중’을 대하는 시각이 어쩌면 P.T. 바넘이나 에드워드 버네이스(<프로파간다>의 저자)에 닿아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 에델만의 리처드 에델만 ceo는 "힐러리는 엘리티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을 잘하지만, 트럼프는 일반인들에게 말하는 기술을 마스터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식 화법에서 중요한 특징은 정제하거나 절제하지 않고 그때그때 입에서 나오는 대로 뱉어낸다는 점이다. 오늘날 미국의 정치인들은 용어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라는 시대적 규범과 각종 이해관계집단 및 압력단체의 눈치를 보느라 상당히 계산적으로 말하고 눈치를 살핀다. 그런데 트럼프는 달랐다. 거리낌 없이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누군가 자신을 공격하면 더 심한 욕과 비난으로 맞받아쳤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면 상대방 부인을 향한 저열한 중상모략도 서슴지 않는다. 예비경선 라이벌인 테드 크루즈의 지지단체 광고에서 트럼프 부인 멜라니의 반라사진을 올리자 연예지 <내셔널 인콰이어>를 통해 크루즈가 5명의 여자와 혼외정사를 했다는 소문을 퍼뜨렸고, 트위터에서는 크루즈 부인 하이디의 비밀을 폭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심지어 테드 크루즈의 아버지가 케네디 대통령 암살범과 연계돼 있다는 말까지 지어냈다. 트럼프는 이렇게 논란이 일어나면 상대후보들에 대한 기사는 실종되고 거의 모든 지면과 방송이 자신의 이야기로 도배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또 다른 대표 사례는 미국 베트남 전쟁 영웅으로 대우받으며 오랜 세월 애리조나주 상원의원을 하다가 2008년 공화당 대선후보로 나섰던 존 매케인 조롱 사건이다. 트럼프는 “매케인은 전쟁 영웅이 아니다. 포로로 잡혔기 때문”이라며 “나는 붙잡히지 않은 사람을 좋아한다”고 빈정댔다.

2015년 8월 공화당 경선 당시엔 자신을 향해 당혹스러운 질문을 던진 여성 앵커 메긴 켈리를 모욕했다. 트럼프는 “그 질문을 할 때 메긴 켈리의 눈에서 피가 나오고 있었다. 당신들도 봤을 것이다. 눈에서 피가 나왔고, 그녀의 (다른) 어느 곳에서도 피가 나오고 있었을 것”이라는 문제적 발언을 했다.

후일 돌아보면 이것 역시 계산된 논란이었던 것 같다. 트럼프는 자신이 싸워야 할 상대가 미 역사상 최초로 여성 대통령에 도전하는 30년 경력의 힐러리이기에 아무리 해도 여성표에서 늘릴 지분이 크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쪽을 포기하는 대신에 러스트 벨트의 강한 백인 남자들을 단결시키는 한편 남자를 가정의 중심에 두는 베이비부머 노년층에게 확실한 믿음을 심어주면 실버층 인구가 많은 플로리다에서도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보통 여론이 끓게 되면 정치인들은 문제를 덮기 위해 적당한 선에서 물러서는데 트럼프는 정반대다. 잘못했다는 사과는커녕 오히려 더 역공을 퍼붓는다. 실제 트럼프는 이후에도 트위터를 통해 집요하게 메긴 켈리를 인신공격하며 자기 자아가 상처받으면 분이 풀릴 때까지 상대를 괴롭히는 ‘싸움닭’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다.

▲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10월 22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버지니아비치에서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 ap/뉴시스

논란의 효과는 실로 엄청났다. 미디어는 온통 그의 입과 트윗만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트럼프의 군중집회가 열릴 때면 CNN은 늘 기자를 대기시켜 그의 입에서 또 어떤 논란의 발언이 나올지 주목했다. 트럼프와 마주한 언론인들은 빈손으로 오는 법이 없었고, 그의 인터뷰는 24시간 뉴스채널과 저녁뉴스, 소셜미디어를 통해 계속해서 중계됐다.

한 예로 민주당 후보자 지명 전당대회 때 파키스탄 이민자 출신의 키즈르 칸(Khizr Khan)이 트럼프를 강하게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무슬림인 그는 버지니아대학교에 다니다가 ROTC 복무를 마친 후 나라에 봉사하기 위해 자원입대한 아들 후마윤 칸 대위가 이라크전에서 숨진 아픔을 겪었다. 미국에서는 참전해 자식을 잃은 가족을 ‘골드스타 패밀리’라고 부르며 존중심을 표한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민주당 전당대회 후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키즈르 칸의 발언이 힐러리 선거캠프에서 써준 게 아니겠냐면서, 남편 옆에 서있던 고(故) 후마윤 칸 대위의 엄마도 욕되게 해 당 안팎에서 거센 비판을 샀다.

누구보다도 언론의 속성을 잘 알고 이용해 오늘의 입지를 구축했기에 트럼프는 언론플레이만 잘하면 조직이나 정치광고는 문제될 게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공화당의 기성 정치인들과 중요한 정치헌금 기부자들을 무시하고 조롱하고 모욕했다. 그런 발언으로 매케인과 그의 친구들을 잃을 수 있을지언정 워싱턴 기득권층에 강한 반감을 가지고 분노한 저학력 백인노동자들에게 트럼프는 아주 솔직한 사람이라는 강한 믿음을 심어주는 데 성공한다.

그가 기성 정치인을 비판할수록 워싱턴 정가에 화난 공화당과 백인 블루칼라 계층은 더 열정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 결과 트럼프는 경선 라이벌과 2008년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미트 롬니를 중심으로 한 ‘네버 트럼프(Never Trump)’ 운동 세력의 십자포화를 이겨내고 대선후보를 넘어 제45대 대통령 자리를 쟁취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