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홍보인, 김영란법 연착륙 중
언론인-홍보인, 김영란법 연착륙 중
  • 박형재 기자 (news34567@the-pr.co.kr)
  • 승인 2016.11.30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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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 석달째 접어들어…최순실 사태로 관심 줄었지만 식사·행사 관행은 크게 변화

[더피알=박형재 기자]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금지법) 시행 2개월이 지났다. 청탁금지 대상에 언론인이 포함되면서 언론·홍보업계가 대책 마련에 분주했으나 큰 혼란 없이 적응하는 모습이다. 대신 ‘최순실 블랙홀’이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면서 다른 고민에 휩싸였다. 심혈을 기울인 홍보마케팅, 연말 기부 행사 등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초대형 이슈로 김영란법에 대한 관심이 크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법 이전에는 없던 그림이 나오고 있다. 기자들이 홍보인에게 먼저 ‘더치페이’를 제안하고 달력을 가득 채웠던 저녁 술자리가 대폭 줄었다. 기자간담회 등 홍보·마케팅 행사를 열 때면 으레 준비하던 식사와 기념품도 사라졌다.

▲ 정부세종청사 구내식당에서 공무원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김영란법 시행 전보다 인원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자료사진) 뉴시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식사문화다. 김영란법이 1인당 3만원 이상의 식사 접대를 금지하면서 음식값 각자 내기가 빠르게 정착됐다. 아직까지 기업 홍보인과 기자가 만나면 대체로 홍보인이 밥값을 내지만, 일부 기자들은 2차를 사거나 회사 방침에 따라 더치페이를 선언하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

홍보와 언론인 사이 저녁 약속은 눈에 띄게 줄었다. 점심은 아무리 비싸도 3만원 안에 해결되지만 저녁은 자리가 길어지면 ‘금액 초과’ 가능성이 크니 자제하는 것이다. 골프약속은 당분간 언감생심이다. 각자 더치페이하면 괜찮으나 만남 자체가 구설에 오를 수 있다.

기자와 홍보인 사이의 면대면 접촉도 예전보다 줄었다. 만남 횟수에 비례해 기자와 홍보인 관계도 다소 소원해지고 있다. 홍보인들은 당장의 업무 차질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앞으로 이런 흐름이 소통 단절로 이어질까 우려하고 있다.

홍보행사는 가급적 하지 않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최순실 사태 때문에 어차피 언론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데다 자칫 잘못하면 구설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행사만 진행하고 법 준수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내놓은 김영란법 매뉴얼을 토대로 자체 법무 검토를 거친 뒤 문제되지 않는 선에서 최소한의 취재 지원만 한다. 기자간담회 등 외부행사는 일단 자제하고 꼭 필요한 경우엔 가급적 점심시간을 피해 진행한다. 밥 대신 다과로 간소화하고 선물은 제공하지 않는 게 최근 흐름이다.

홍보 위축·부서 슬림화 우려

기자와 홍보인의 만남이 줄어들면서 새로운 고민들도 생겨나고 있다. 기자들이 더치페이 하기 시작하면서 ‘그냥 얼굴이나 보자’는 식의 관계유지용 미팅은 상당히 어색해졌다.

예전엔 홍보인이 기자를 불러 식사대접하고 친분 쌓는 게 가능했지만, 요즘은 밥값도 각자 계산하는 판국에 만나서 쓸 데 없는 농담 따먹기나 하면 눈치가 보인다. 기사 소스라도 주든가, 아니면 간단한 선물이라도 준비하지 않으면 찝찝할 때가 많다.

▲ 음식점에서 식사를 마친 이들이 더치페이를 위해 각자 카드와 현금을 계산대 위에 내밀고 있다. 뉴시스

대화시 톤앤매너도 더욱 조심하는 분위기다. 기사 아이템을 제안할 때 청탁하듯 하지 않고 워딩(wording)을 조심스럽게 가져간다. 예전엔 “이 상품 출시했는데 홍보 잘 좀 부탁드려요”라고 했다면 요즘은 “이런 상품이 새롭게 나왔습니다”고만 말하는 식이다.

일각에서는 기자와의 만남 축소가 자칫 홍보의 위상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기자 상대 업무를 중시하는 기업 홍보팀의 경우 오너 등 최고경영자가 홍보비 삭감이나 인력 감축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후문이다. 부처 예산은 곧 부처 파워인데 홍보비가 줄면 사내 입지가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더 나아가 김영란법 때문에 홍보조직이 축소·재편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기자관리가 줄었고 홍보업무 중 김영란법에 걸릴지 말지 애매한 것들이 많으니 이번 기회에 핵심만 남기고 나머지는 외부 에이전시에 맡기자는 움직임이다.

구체적으로 그룹 홍보팀은 오너 위기관리 기능이 있으니 그대로 두고, 기업이미지 및 제품PR 등을 담당하던 계열사 홍보팀의 축소 가능성이 점쳐진다. 대리·사원급 직원이 수행하던 손발 역할을 대행사로 돌리고 전략기획과 의사결정이 가능한 임원급이 남아 컨트롤타워 역할만 수행하는 것이다. 회사 입장에선 김영란법 리스크를 털고 상황에 따라 홍보를 탄력적으로 할 수 있으니 나쁠 게 없다.

외국계 PR업무에 정통한 홍보인 A는 인하우스(기업 홍보팀) 슬림화 가능성에 대해 “홍보 인력이 과도한 일부 기업들은 충분히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예컨대 모니터링 업무에 과장급 5명이 투입되는 등 업무 비효율이 심한 곳들은 정리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외국 기업들은 김영란법 이전부터 내부 인하우스 인력들을 최소화시키는 전략을 사용해왔다”면서 “홍보팀장 1명, 어시스턴트 1명 정도 놓고 나머지 업무들은 대행사에 외주 주는 방식으로 비즈니스에 따라 홍보를 다르게 가져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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