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에서도 드러난 정보공개 딜레마
최순실 게이트에서도 드러난 정보공개 딜레마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6.12.13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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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토크] 프라이버시 보호와 사이버 압수수색 양립 가능 방안은 없나

[더피알=문용필 기자]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해 온 검찰이 최근 그 결과를 발표하고 사건을 특검에 인계했다. 이번 발표에서 주목받은 내용 중 하나는 청와대 문건이 어떤 경로를 통해 최순실 씨에게 넘어갔느냐는 점이었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중 한명으로 불리는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은 최 씨와 메일 아이디, 비밀번호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문건을 전송한 뒤 최 씨에게 ‘보냈습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해온 검찰이 청와대 문건 유출 통로가 된 지메일 계정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하지 못했음을 시사했다. 사진은 지난달 23일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특별감찰반에서 검찰이 압수한 물품들. 뉴시스

이런 방식을 포함해 최 씨에게 건너간 문건은 총 180건에 달했다. 최 씨와 정 전 비서관이 공유한 메일계정은 다름 아닌 구글의 지메일이었다.

그런데 검찰은 해당 메일 계정 수사에 한계가 있었음을 토로했다. “압수수색을 시도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미국은 절대 안된다”고 답한 것이다. 만약, 정 전 비서관이나 최 씨가 진술하지 않고 메일 상에만 존재하는 문건이 있을 경우 구글의 협조가 없다면 검찰이 살펴볼 수 없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하지만 차후 검찰이나 특검의 요청이 있더라도 구글 본사측이 해당 메일 계정에 대한 압수수색에 협조할 지는 미지수다. 메일 서버 자체가 국내법이나 수사망이 미치지 못하는 해외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최 씨와 정 전 비서관이 지메일 계정을 이용한 것도 이같은 이유인 것으로 분석된다.

비즈니스적인 측면을 봐도 구글이 무턱대고 메일 서버를 열어주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국적을 막론하고 전 세계 상당수의 네티즌들이 지메일을 선호하는 이유는 특유의 보안성에 있기 때문이다.

만약 구글이 각국 수사기관의 요청에 적극적으로 응한다면 개인정보에 민감한 네티즌들이 지메일을 외면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구글이 지속적으로 지메일의 보안장치를 강화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비단 구글에게만 해당되는 사안은 아니다. 글로벌 IT기업이 사용자 정보 제공 문제를 놓고 수사당국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케이스는 최근 언론지상을 통해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일례로 미 연방수사국(FBI)은 지난해 말 14명을 총기로 살해한 범인의 아이폰 내역을 확인하기 위해 애플 측에 보안장치를 우회할 수 있는 ‘백도어’를 제공해 달라고 했지만 애플은 거절했다. 아이폰 역시 스마트폰 중 강력한 보안체계를 갖고있기로 정평이 나있다.

국내에서도 개인정보 보안에 대한 이슈가 큰 화두로 떠오른 바 있다. 지난 2014년 제기된 카카오톡 검열 의혹이 그것이다. 수많은 국내 네티즌들이 강력한 보안성을 가진 해외 메신저 ‘텔레그램’으로의 망명을 선언할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국민메신저였던 카카오톡의 위상은 한순간에 추락했다.

카카오는 한층 강화된 보안정책을 내놓았고 급기야 당시 이석우 공동대표가 기자회견을 열고 “감청영장에 불응하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올해 초 야당 의원들의 대규모 필리버스터를 촉발시켰던 테러방지법 역시 국가정보원이 개인 통신정보를 들여다보는 것 아니냐는 우려로 인해 반대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관련기사: ‘배수의 진’ 친 다음카카오, 여론 돌릴 수 있을까

수사차원이라고는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메신저 대화나 메일을 국가권력이 들여다본다는 것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소름끼치는 일임에 분명하다. 게다가 개인정보에 기반한 모바일 라이프가 일상화되고 이를 이용한 첨단범죄들이 판을 치는 시대 아닌가. 수많은 이용자들의 개인정보를 손에 쥐고 있는 ICT기업들로서는 이용자들의 우려를 깨끗이 불식시키고 보안강화에 힘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다만, 이번 국정농단 사건처럼 진실을 파헤쳐야 할 이유가 분명한 사안의 경우에는 기업들에게도,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에게도 개인정보 보호문제가 딜레마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보안성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범죄나 편법, 테러에 악용될 소지가 크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5월 테러리스트들이 텔레그램과 지메일을 애용한다는 외신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결국 국가권력에 대한 불신이 계속되는 한 ‘개인정보보호’와 ‘범죄수사’라는 양자 간의 간극을 효과적으로 메우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정보제공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이유다.

물론 개인정보 보호가 우선이고 이번 사건처럼 특수한 경우에 한정된다는 전제가 깔려야 한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ICT 기업들과 수사기관이 지혜를 모아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 내기 바란다. 그리고 여기에는 여론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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