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갑 경고그림, 묘수와 꼼수 사이
담뱃갑 경고그림, 묘수와 꼼수 사이
  • 유현재 (hyunjaeyu@gmail.com)
  • 승인 2017.01.24 1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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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재의 Now 헬스컴] 노출하려는 자 vs 가리려는 자

[더피알=유현재] 지난 12월 23일부로 담뱃갑 경고그림이 그 동안의 유예기간을 뒤로하고 전격 실시됐다. 이 말인즉, 2016년 12월 23일을 기점으로 생산되는 담배에는 반드시 패키지 앞뒷면 30%에 흡연의 폐해를 경고하는 그림이 삽입된다는 의미다. 담배의 생산에서부터 유통까지 한 달 정도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달 안으로 편의점 등 일선 판매처에서 경고그림이 서서히 발견돼 새로운 봄부터는 모든 소비자들이 접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 2016년 12월 23일을 기점으로 생산되는 담배에 부착되는 경고그림들.

세계보건기구(WHO)가 비가격 금연정책으로 대단히 유효하다며 권고를 반복해 온 경고그림이 우리나라 국회에 최초로 제안된 것은 지난 2002년 제16대 국회였다. 최초의 법제화 시도 이후 무려 11차례의 발의가 있었지만 계속 무산돼오다 지난 2015년 9월 담뱃갑 경고그림의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이 이뤄짐으로써 마침내 결실을 맺게 됐다.

하지만 벌써부터 담뱃갑 경고그림의 효과를 감소시키려는, 즉 파장을 최대한 줄이려는 담배업계 및 유통사들의 다양한 꼼수들이 감지되는 중이다. 물론 이같은 반발 전략에 대해 보건복지부 등 당국에서는 개별 저항들을 무력화시키고 경고그림의 효과를 반드시 지켜내려는 대응책들이 속속 준비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먼저, 12월 23일부터는 더 이상 생산할 수 없는 ‘무(無)’경고그림의 담배를 가능한 많이 생산해 최대한 확보해 놓으려는 움직임이 포착되면서 당국은 관련 기업들에 일제히 협조요청을 발송한 바 있다. 담배 생산을 비정상적으로 늘리거나 과도한 주문을 하는 등의 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반드시 협조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해가 바뀌어도 이미 만들어 놓았거나 유통 업체가 보유한 경고그림이 없는 담배들은 여전히 판매될 수 있는 상황을 놓고 벌인 신경전이었다.

물론 경고그림이 없는 담배가 아무리 남아있다고 해도 오는 6월까지만 판매될 수 있으며, 이후에는 반드시 반품해야 하는 규정이 있다. 생산량을 늘리거나 유통점의 비축분을 과도하게 확보하려는 계획은 일정한 시점이 되면 자연스럽게 무의미해지는 단기 전략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이런 꼼수는 담배기업과 유통업계가 얼마나 절박한지, 그리고 보건복지부의 의지가 무엇인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황이 아니었나 싶다.

재놓고 눕혀놓는 눈물겨운 고안

또 한 가지 신경전은 경고그림이 부착된 담배의 진열과 관련된 조건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담뱃갑 경고그림은 담뱃갑의 상단에, 담뱃갑의 전체면적 가운데 30%를 차지하는 정도로 인쇄되어야 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이는 편의점 등 실제 판매처에서 ‘자연스럽게’ 경고그림을 가리고자 하는 작전이 원천적으로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유통업체별로 상단의 경고그림을 어떻게든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눈물겨운 꼼수가 고안되고 있다. 소비자 눈높이에서 담뱃갑의 앞뒷면이 아닌 옆면이 보이도록 눕혀서 진열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이 담배를 구입하기 전까지는 경고그림에 노출되지 않도록 연출하는 효과와 담배를 사지 않는 소비자들에게는 경고그림을 전혀 노출시키지 않는 성과를 노리는 것이다.

▲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한 편의점에서 흡연 폐해 경고그림이 부착된 담배가 진열돼 있다. 뉴시스

복지부는 진열에 대한 이런 식의 다양한 꼼수에 대한 철저한 단속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관련 법안도 촘촘하게 마련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반드시 팔아야만 하는 측에서 온갖 기발한 방법들을 고안해내면 복지부는 특정한 방법을 무색케 만드는 법안이나 규정을 만들어 예고하는 등 신경전과 갈등이 반복되는 셈이다.

다른 꼼수는 경고그림을 완전히 가릴 수 있는, 즉 구매와 함께 담배를 즉시 삽입해서 소비할 것을 종용하는 담뱃갑 케이스다. 실제로 일부 편의점을 비롯한 판매처에서 담배케이스를 팔기 위한 진열대의 주문을 받는 등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이는 구매처에서 판매할 수 있는 아이템이 추가된다는 이점과 함께 소매점 입장에서는 고려할 수밖에 없는 장기적인 작전이 되겠다. 어차피 법으로 결정된 경고그림을 소비자가 아예 경험할 수 없게 만드는 작전에는 한계가 있으니 담배를 구매하자마자 깔끔한 케이스에 쏙 넣어 소비하는 것을 트렌드화시키려는 전략으로 판단된다.

가뜩이나 유행에 민감한 우리나라 소비자들에게 일단 친숙하게 수용될 수 있는 제품을 공급하면, 의외로 경고그림의 효과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대표적 장치가 될 수도 있다는 포석으로 보인다. 이런 분위기는 사실 일선 온라인 쇼핑에서도 상당 부분 감지되고 있다. 너무나 다양한 디자인과 기능의 담배 케이스가 유통 중이다. 해당 상품들이 갑자기 대규모로 판매되고 있는 배경에는 12월 23일의 경고그림 시행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것은 일부 유명 온라인 쇼핑 사이트에 ‘경고그림’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하자마자 담배 케이스가 자동으로 검색되는 기현상이다. 특정 검색어가 일정한 상품에 대한 검색으로 자동 연결되는 시스템이야 업체에서 정하는 사항이지만, 정부가 공식적으로 시행하는 비가격 금연정책의 대표적 수단인 경고그림을 입력하면 정부 정책을 무력화하는 데 일조할 것으로 예상되는 담배케이스가 등장하는 사실은 실로 놀랍다. 이처럼 경고그림의 효과를 막아내려는 시도, 그 시도를 다시 무력화하려는 또 다른 시도들은 당분간 계속해서 반복될 것으로 판단된다.

전쟁은 계속

일반 국민들의 시각에서 보면 약간 재미있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며, 결국에는 씁쓸한 느낌이 든다. 건강에 대단히 명확하게 해로운 제품을 팔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주체들이 존재하고, 어떻게든 대중으로부터 담배를 멀어지게 만들려는 눈물겨운 사투를 펼치는 측도 있는 것이 언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이같은 ‘전쟁’을 헬스커뮤니케이션 연구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결국엔 건강을 지키려는 주체의 승리로 귀결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점쳐본다. 경고그림을 구체화하고 효과의 극대화를 의도하는 노력이나, 온갖 기발하다고 여겨지는 아이디어들을 동원해 막아보려는 행동까지, 궁극적으로는 대중에게 ‘담배는 그토록 나쁜 것이구나’라는 잔상을 남기는 데 일조하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아젠다 세팅(Agenda Setting)이 강력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환경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법은 일단 정해지고 시행은 되는데 누가 봐도 꼼수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는 단기적 저항들이 계속해서 관찰될 경우, 심지어 흡연자들까지도 숱한 꼼수들을 부리는 주체에 대해 환영하기 쉽지 않은 정서가 형성될 것이라 생각한다.

전쟁은 양측이 결코 물러날 수 없는 상황, 양보라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상황에서 비롯되는 극적 갈등의 결과물이다. 상대가 죽거나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가 당하는 상황이 전쟁의 필요조건이다. 작금의 상황을 보면 안타깝게도 전쟁이라는 말이 딱 맞아 보인다. 가치관도, 이상향도, 목적도 모두 다르고 이해관계도 전면적으로 상이해서 전쟁은 어쩔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소한 꼼수는 없었으면 한다.

열 번이 넘는 시도 끝에 참으로 어렵게 통과된 말 그대로 ‘법’이다. 경고그림이라는 법적 장치의 실현을 위해 수천 번의 논의와 연구들, 합의와 토론 등을 거친 사람들이 의견을 모은 성과물이다. 경고그림의 실시가, 실시하지 않는 것보다는 사회적으로 훨씬 다수에게 혜택이 있을 것이라는 근거 아래 결정됐고 믿어야 하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보장된 경고그림의 효과가 조기에 현실화되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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