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대선 현실화, ‘가짜뉴스’ 경계령 고조
조기 대선 현실화, ‘가짜뉴스’ 경계령 고조
  • 서영길 기자 (newsworth@the-pr.co.kr)
  • 승인 2017.03.1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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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서 폭발적 영향력 입증… “언론에 매개된 가짜뉴스 더 큰 문제”

[더피알=서영길 기자] 새롭다기보다 익숙치 않은 이 개념이 지난해부터 우리 사회의 중요 화두로 떠올랐다. 언론계, 학계를 불문하고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가’ ‘누가 진짜와 가짜를 구분 할 것인가’를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흔히 ‘가짜뉴스’라고 부르는 페이크뉴스(fake news) 얘기다.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을 앞두고 가짜뉴스는 우리 사회 깊숙한 곳까지 침투하며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조기 대선을 앞두고 가짜뉴스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전 세계가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가짜뉴스의 폐해를 목도하며 심각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올해 4월과 9월 각각 대통령과 연방의회 선거를 앞둔 프랑스, 독일 또한 가짜뉴스의 유통과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비상이 걸린 상태다.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조기 대선이 확정된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 각 당의 대권주자들을 흠집 내려는 가짜뉴스가 점점 조직화·정교화 되고 있는 분위기다. 여기에 경제·사회 분야에서도 더 교묘하게 만들어진 가짜뉴스가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사회적 문제로 비화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지금의 가짜뉴스 현상을 진단하는 사회적 논의도 활발하다. 우선 가짜뉴스 범주에 대한 문제다. 언론사의 오보나 단순 실수 또는 소셜미디어를 통한 개인의 유언비어(찌라시), 패러디 뿐 아니라 악의적 편집이 가미된 허위사실까지 어디까지를 가짜뉴스로 보느냐는 것이다. 실제 가짜뉴스라는 용어가 남발되면서 갈등과 혼란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자기 생각과 부합하지 않는 주장에 대해 가짜뉴스라고 치부해 버리거나, 정치권을 중심으론 자기에게 불리한 뉴스를 전하는 곳은 가짜언론으로 낙인찍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사례지만 지난 대선 기간 중 트럼프 후보는 CNN의 보도가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CNN을 가짜뉴스 진원지로 매도하기도 했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가짜뉴스다’라고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구글 스콜라나 학술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하면 기존에는 코미디 형식을 띤 풍자뉴스, 패러디 등을 통상적으로 가짜뉴스라고 지칭했다.

▲ 가짜뉴스는 주로 sns나 모바일 메신저에서 유통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 미국 대선을 기점으로 가짜뉴스가 전혀 새로운 개념과 대중화된 용어로 광범위하게 쓰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몇몇 게시물에 한정됐던 ‘가짜뉴스 프레임’이 거대 정치 이슈와 맞물려 특정 목적을 가진 뉴스 형태로 나타나며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모호해졌다는 뜻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가짜뉴스 범주를 좀 더 협의 개념으로 모으자는 데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요컨대 뉴스 플랫폼을 모방해 공신력을 얻고 이를 토대로 자신들이 원하는 이득을 취하려 만든 뉴스가 가짜뉴스라는 것이다.

황용석 교수는 가짜뉴스에 대해 “실제 뉴스서비스 형식, 즉 저널리즘 양식을 빌려와 상업적, 정치적 이득을 취하는 사기물”로 정의하며 탄핵 찬·반 집회에 신문을 가장한 여러 선전물이 전형적인 가짜뉴스라고 강조했다. 황 교수는 “이 신문들은 허위정보로 수용자들이 현실을 오인하게 해 정치적 또는 상업적 이득을 얻는다”라고 말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도 비슷한 의견을 보였다. 최 교수는 한 방송에 출연해 가짜뉴스 세 가지 요건을 조작성, 의도성, 뉴스형식성으로 밝힌 바 있다.

박아란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은 “가짜뉴스 범주를 좁혀놔야 규제나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다”고 전제하며 좀 더 구체적인 안을 내놓았다. 박 연구위원에 따르면 작성주체·내용·목적·형식 등 네 부분으로 구분해 가짜뉴스를 정의할 수 있다. 작성의 주체는 1인 미디어, 전통 언론사, 온라인이용자 모두 포함되며, 허위의 내용을 적시해야 하고 그 사실에 고의적·의도적 유포 목적이 있어야 한다. 또 기사 형식과 언론사 제호, 기자 바이라인 등을 모두 갖추고 있으면 가짜뉴스로 분류하는 데 문제가 없다.

가짜에 날개 달아준 언론

이처럼 가짜뉴스가 누군가의 특정한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주목해 보면, 결국 선거라는 ‘정치적 빅 이벤트’를 중심으로 폭발적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짧은 기간 동안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지만 검증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는 선거의 특성상, 가짜뉴스만큼 여론 흐름을 바꿀 좋은 수단도 없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미국 대선에서 이같은 사실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미국 인터넷 뉴스매체 버즈피드 조사에 의하면, 미 대선 기간 동안 페이스북에서 흥행한 가짜뉴스 20개 중 약 17개가 트럼프에게 유리한 내용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교황이 트럼프를 지지했다’라든지 ‘클린턴이 테러단체에 무기를 판매했다’와 같은 가짜뉴스들이 언론보도보다 더 많은 조회수와 공유건수를 기록하며,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에 일조했다는 분석이다. 웹사이트 순위 집계 사이트인 알렉사(Alexa) 조사에 따르면, 이 기간 중 가짜뉴스를 발행했던 사이트들은 대부분 대선을 1~3달 앞둔 시점에서 만들어졌다. 가짜뉴스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한 전형적인 사례다.

▲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가짜뉴스를 확산시켰던 월드폴리티커스닷컴 최근 홈페이지 캡처.

미국 대선 기간 동안 가짜뉴스를 이용해 경제적 이득을 취한 경우도 있다. 유럽 마케도니아의 벨레스란 도시에서 한 청년은 구글 게시물의 조회수가 올라가는 만큼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월드폴리티커스닷컴(WorldPoliticus.com)이라는 유사 언론 사이트를 만들어 대부분 트럼프 옹호 글이나 클린턴에 대한 악의적 가짜뉴스로 채웠다. 자극적인 내용으로 인해 해당 사이트의 콘텐츠는 SNS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 청년은 트럼프 열풍과 가짜뉴스를 적절히 사용해 6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처럼 미 대선을 거치며 가짜뉴스가 실질적으로 유권자의 행동과 태도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경험적 증거가 나타나며, 조기 대선을 앞둔 우리나라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짜뉴스 움직임은 이미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나타난 적이 있다. 이전처럼 찌라시, 루머 같이 출처가 불분명한 게시글 차원이 아닌 뉴스의 요건을 갖추고 진짜인 양 전파되고 있기에 문제가 심각하다.

하지만 가짜뉴스 문제의 책임을 생산자에게만 묻기는 다소 무리가 있다. 대부분의 가짜뉴스가 제도권 언론 바깥에서 일어나지만 그 확산과 증폭은 기성언론이 맡아왔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내용을 담은 가짜뉴스들이 SNS를 통해 급속히 퍼지고, 그럴싸한 내용에 속은 몇몇 언론들이 이를 보도하며 파급력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는 양상을 보여왔다.

▲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월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성언론들을 모두 가짜뉴스라고 비난한 바 있다.

가짜뉴스 확산의 진원지가 언론이 되는 아이러니는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름이다. 현재 국내 언론사로 등록된 매체수만 총 6000개가 넘는다. 이들은 신문법에 적용받아 모든 언론 활동이 법으로 보장된다. 국내 뉴스가 대부분 포털을 통해 유통된다는 사실을 감안해 범위를 좁히더라도 뉴스제휴계약 언론사만 약 100개에, 검색제휴계약 언론사가 600개가 넘는다. 광고시장의 한정된 파이에서 언론사가 살아남으려면 ‘클릭수 전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양산형 기사를 쓰다 보니 자연스레 콘텐츠 질적 저하로 이어지고, 언론사 자체의 게이트키핑 시스템이 무너지며 검증 안 된 정보가 기사화가 된다. 바로 이 부분이 가장 큰 문제다. 가짜뉴스가 언론사의 타이틀을 달고 진짜뉴스로 둔갑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출처 불분명의 가짜뉴스와 언론사의 진짜뉴스 간격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점은 국내 언론계가 풀어야 할 숙제다.

이런 측면에서 ‘매개된 가짜뉴스’도 가짜뉴스 범주에 넣어야 한다는 의견에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협의의 가짜뉴스 범주에서 조금 더 확장시키자는 것이다. 김익현 지디넷 미디어연구소 소장은 “언론을 통해 매개된 가짜뉴스가 그 영향력이나 파급력 면에서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언론매체들이 잘못된 정보나 확인되지 않은 뉴스를 게이트키핑 과정 없이 무분별하게 옮겨 적는 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선거 정국 때 나타나는 정치인들의 발언을 그대로 보도하는 언론행태에도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김 소장은 “정치인들의 일방적 주장을 언론이 그대로 옮기는 게 공인의 발언이기 때문에 기사 요건상 문제는 없다. 하지만 그 주장 내용에 대해 언론들이 사실 여부를 한 번 쯤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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