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TV토론, ‘장학퀴즈’ 식으로는 답 없다
대선 TV토론, ‘장학퀴즈’ 식으로는 답 없다
  • 김준범 (balm88@naver.com)
  • 승인 2017.03.30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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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정책검증 힘든 단선적 포맷…미국 방식 도입 필요

각 정당들이 5월 9일 19대 대선일을 앞두고 당내 경선을 위한 TV토론에 분주한 모습이다. 정당에 따라서는 공중파와 종합편성채널(종편) 등에서 이미 몇 차례나 TV토론을 벌인 곳도 있다. 가장 늦게 모습을 드러낸 자유한국당이 26일 처음으로 KBS-TV에서 경선토론회를 가졌다.

대통령 선거에서 TV토론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후보 검증이다. 토론을 통해 주요 국정현안에 대한 인식과 해결방안, 역사의식, 지도자로서의 소통능력, 더 나아가 인간적인 이해 등을 알아보는 것이다. 토론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후보가 타인과의 소통에 대해 어떤 인식과 경험, 능력 등을 갖고 있는지를 검증해 보는 일이다.

지난 22일 sbs에서 열린 국민의당 대선 경선후보자 토론회. 뉴시스

우리나라 대선 TV토론에서 대표적인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후보들의 발언시간이 절대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후보 수가 3~5명으로 많다보니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므로 미국처럼 깊이 있는 정책과 자질검증은 할 수 없게 된다.

이번 정당별 TV토론에서 바른정당이 “그나마 긴장감 있고 심도 있는 TV토론”을 했다고 평가받은 것도 바로 후보자가 단 두 명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정된 시간에 많은 후보를 상대로 토론을 진행하면 깊이 있는 토론은 고사하고 ‘누가누가 잘 하나’ 같은 장학퀴즈 형태가 될 수밖에 없는 점은 맹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TV토론의 모델국은 역시 미국이다. 미국은 전통적인 양당제 국가로 선거에서 두 후보가 TV 앞에서 주요 국정 이슈를 놓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다. 그 장면을 유권자들은 흥미롭게 관찰한다. 선거 기간 중에 어떤 상품(후보)을 구매할지 꼼꼼하게 비교하며 따져보게 된다.

한국과 미국의 TV토론 방식을 비교해 보면 ▲후보 수가 많고 적은 차이 ▲후보들의 좌석배치 ▲질의-응답 형식 ▲사회자의 역할 등에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후보들의 좌석배치를 보자. 한국의 경우 후보들은 카메라 쪽을 향해 좌우 한 줄로 앉아 진행자의 질문에 대답한다.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후보들을 구분하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지만 토론의 긴장감은 떨어진다.

30일 sbs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자 경선토론회’(위)와 지난해 미국 대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의 3차 tv토론 모습. 뉴시스

미국은 공화-민주 두 후보가 서로 45도 각도로 바라봐 긴장감이 조성된 상태에서 1, 3차 토론은 선 채로 묻고 답하는 스탠딩(Standing), 2차 토론은 청중과 직접 소통하는 타운 홀 미팅(Town Hall Meeting)을 번갈아 한다. 우리나라 방식이 단선적이라면 미국식은 입체적이고 긴장감이 있는 토론방식이다.

둘째, 질의·응답하는 형식(Format)을 보면 한국은 1분~1분30초씩 답변-반론-재반론 순으로 진행하다 보니 후보가 자신의 정견이나 공약을 밝히기에도 부족하다. 이에 비해 미국에서는 1,3차 토론은 15분 가운데 2분씩 발언한 뒤 후보간 자유토론을 함으로써 정견과 공약 등을 발표하는 데 시간이 넉넉하다. 2차 토론에서는 부동층 유권자들의 질문을 받아 2분간 각자 답변하고 토론해 심도 있고 호소력 있는 설명을 할 수 있다.

셋째, 사회자의 역할도 다른데 한국의 경우 타이머(Timer), 즉 ‘정해진 시간을 넘길 때 알려주는 사람’이라는 역할개념 때문에 집중토론의 본질에서 벗어날 때가 많은 것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한편 미국은 ‘중재자’(Arbitrater) 역할이 더욱 강하다. 후보끼리 웬만한 상호 비방을 하더라도 사회자는 개입하지 않는다. 주제에서 벗어날 때만 지적을 한 다음 다시 질문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우리나라 현행 대선후보 TV토론은 ▲공영TV 토론과 ▲민영TV 토론이 있다. 공영TV 토론은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최하는 것인데, 5명 이상의 국회의원을 가진 정당 후보자라면 모두 토론에 초청하도록 법에 명시돼 있다. 공영TV 토론은 현재 KBS를 비롯한 지상파 3개 방송(MBC·SBS)만 주최하고 있다.

대선 한 달 전부터 선거일 하루 전까지 총 3회 초청 토론을 실시한다. 생중계 토론시간이 최장 120분 이내로 제한돼 있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후보가 많으면 각 후보의 정책과 자질을 꼼꼼히 비교하기 어려워 유권자의 알 권리가 그만큼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민영TV 토론은 우선 형식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끝장토론이나 양자토론도 가능하다. 공영TV 토론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후보들이 반드시 참석해야 할 의무가 없다는 점이 약점이다. 민영TV 토론은 대선 1년 전부터 대선 한 달 전까지 신문·방송·통신 사업자의 후보초청 토론회로 초청후보 제한도 없다. 따라서 공영TV 토론과 민영TV 토론의 장·단점을 살리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형식이 자유로운 민영TV 토론에 후보들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는 것이다. 실례로 공영TV 토론의 경우 선거법을 고쳐 ▲양자토론을 도입하고 ▲시간제한을 풀며 ▲토론 횟수를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 또 공영TV 토론을 종합편성채널에도 확대해 끝장토론이나 타운홀 미팅 같은 다양한 형식파괴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최은수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장은 “후보간 열띤 정책토론이 가능하도록 시간총량제를 적용한 자유토론 방식이나 주도권 토론방식의 도입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매일경제 2017. 2.23)

18대 대선 때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와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선 후보,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tv토론회에 나선 모습. 뉴시스

이 같은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행 TV토론 방식이 안고 있는 한계점의 하나는 방송사마다 똑같은 이슈와 주제를 반복함으로써 시청자들을 식상하게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토론 횟수는 물론 다루고자 하는 주제나 이슈도 한꺼번에 다 하지 말고 방송사별로 나누어 토론하는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럴 경우 오늘 A방송에서는 다른 주제 말고 외교·안보·통일만 토론주제로 삼고, B방송사에서는 경제·복지·실업 문제만 다룬다는 식이다. 그러면 유권자들은 정해진 시간에 한정된 주제만을 다룸으로써 후보자들을 좀 더 꼼꼼하게 살피고 검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민의당 김관영(군산시) 의원이 발의(2.23)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꼭 필요하고 시의적절한 법안으로 평가되고 있다. 개정안의 핵심은 대선 후보들의 TV토론 횟수를 기존의 3회에서 5회로 늘리자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5개 정당의 후보 5명이 나와 토론을 딱 세 차례만 한다면 후보자별 정견과 공약을 비교, 검증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토론 횟수는 물론 토론시간도 더 늘려줘야 한다.

또 방송사마다 모든 주제를 모두 다루겠다는 과욕을 부리지 말고 주요 이슈를 영역별로 나눠 진행하자는 데 합의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분야별로 교통정리가 된 상태에서 후보토론이 이뤄지면 유권자들은 보다 심층적인 후보검증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법안이 코앞에 다가 온 19대 대선기간에 적용될 수 있을지는 매우 회의적이다.

김준범

(주)대한공론 상임 고문
전 국방부 국방홍보원 원장
전 중앙일보 정치부 부장대우

*이 글은 논객닷컴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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