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는 왜 미운털이 박혔나
여론조사는 왜 미운털이 박혔나
  • 서영길 기자 (newsworth@the-pr.co.kr)
  • 승인 2017.04.05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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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 특수 불구 신뢰도 잦은 의심… ‘떴다방’ 질적 저하 부추겨
‘민심 풍향계’라 불리는 여론조사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급변하는 여론을 짚어내기엔 지나치게 낡았다는 혹평도 나온다. 지난해 4월 치러진 총선의 여론조사 결과는 거의 ‘재앙’ 수준이었고 영국의 브렉시트(EU 탈퇴), 미국 대선까지 엉터리 예측을 내놓으며 전 세계적으로 ‘여론조사 무용론’이 팽배해지고 있다. 5월 조기대선을 앞둔 우리나라도 낡은 풍향계를 고쳐야 할지 새 풍향계를 고안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① 여론조사는 왜 미운털이 박혔나
② 낮은 응답률의 딜레마
③ 가짜뉴스 진원지 될라

[더피알=서영길 기자] 여론조사 전성시대이자 수난시대다. 지난해 총선에서 ‘폭망’했던 기억은 모두 잊은 듯 코앞에 닥친 대선을 맞아 하루가 멀다 하고 여기저기서 각종 조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선거 여론조사를 관리·감독하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이하 여심위)에 최근 3일간(4.2~4) 등록된 조사만 총 12건일 정도로 우후죽순이다. 

특정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 각 당의 유력 대권주자들이 날카로운 신경전을 펼치는 일도 벌어졌다. 내일신문의 의뢰로 한 여론조사 기관이 3일 내놓은 자료가 발단이었다.

해당 자료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그동안 여론조사 부동의 1위를 달리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양자대결에서 7%포인트 차로 앞서고 있다는 내용이다. 

문 후보 측은 크게 반발하며 중앙선관위에 조사방식과 결과에 대해 조사 의뢰를 검토한다고 밝힌 반면, 예상외의 좋은 성적표를 받아 든 안 후보 측은 내심 반기며 연일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다.

기업 마케팅 전략이나 정부 정책 수립의 앞단에서 유용되던 여론조사는 선거철만 되면 특수를 톡톡히 누린다. 최근에는 아예 선거후보의 정치적 영향력을 평가하는 바로미터로 여기는 모양새다. ‘여론조사 결과=후보 지지율’이라는 인식이 정치권이나 언론계는 물론 일반 대중에게도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때 여야 대권주자로 꼽혔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박원순 서울시장도 여론조사 결과에 낙망해 불출마 카드를 꺼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여론조사는 선거에 나서려는 후보에게 출마 이유나 중도 포기의 근거가 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지난 1년 간 국내외에서 벌어진 굵직한 실패(국내 4월 총선, 英브렉시트, 美대선)에도 불구하고, 한 달 남짓 남은 대선에서 정치권이 또 다시 여론조사에 주목하는 이유다. 때문에 이미 여러 기관이 수많은 조사 결과를 쏟아냈으며, 앞으로도 대선 전까지 여론의 이름표를 단 데이터가 홍수를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수치들은 각 후보의 홍보용 혹은 세(勢) 결집용으로 요긴하게 쓰이며 선거 전략을 바꾸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말 그대로 여론조사가 정치판을 좌지우지하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신뢰도와 표본오차를 논하는 여론조사의 신뢰수준은 플러스마이너스 몇 퍼센트일까.

오류난 민심 풍향계

사실 ‘여론조사 믿을 만한가’라든지 ‘빗나간 여론조사’ 같은 말들은 선거가 끝나면 뉴스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1987년 13대 대통령 선거에서 여론조사가 처음 실시된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시도하면서도 끊임없이 의심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해 4월 발표한 자료를 봐도 ‘선거여론조사는 과학적이며 정확하다’는 물음에 ‘아니다’라고 답한 비율이 71%에 이를 정도로 국민의 상당수가 여론조사 신뢰도에 물음표를 달고 있다.
 
이쪽저쪽서 공격의 대상이 되는 여론조사를 보완하기 위해 각계에서도 대책마련에 고심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현행 여론조사만큼 ‘민심 풍향계’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김위근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은 “여론조사가 맹점이나 문제점은 있지만 이를 완전히 대체할 만한 적절한 조사방법은 현재로선 없다고 본다”며 “무용론 등 여론조사에 대한 비판은 선거라는 특수한 이벤트에서 제도적·구조적 문제가 불거지며 부각된다”고 말했다.

실제 여론조사는 선거라는 정치적 빅이벤트에서 그 문제점이 더욱 도드라지는 경향을 보인다. 황성연 닐슨코리아 부장은 “선거 관련 여론조사 문제는 한 곳의 잘못이라기보다 조사기관, 언론보도, 관련제도 등 여러 곳에 걸친 방대한 사안이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숙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우선 여론조사 기관 입장에선 예측결과와 최종결과를 매칭시켜 들여다볼 수 있는 유일한 조사가 선거이니만큼 중요도나 관심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마케팅 등에서 활용되는 대부분의 조사는 그 결과 값을 정량적 수치로 정확히 비교하기가 어렵지만, 선거 여론조사는 사전·사후 데이터를 통해 기존 조사의 한계점이나 새로운 방법론을 개발하는 데 유용하다. 그러다 보니 메이저 조사 기관이나 영세한 기관 모두 선거 관련 여론조사를 앞 다퉈 쏟아내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 있지만 마땅한 대안 없어
 
한 여론조사 기관 A부장은 “일반 여론조사는 오래 디자인하고 표집오차, 비표집오차 등을 줄이기 위한 여러 방법을 사용해 최종 결과물을 내놓지만 선거 때는 다르다”며 “선거 여론조사는 정치이슈에 따라 검증할 시간도 없이 속전속결로 결과를 내놓아야 하니 조사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런 이유로 선거철만 되면 여론조사의 질은 낮아지고 양은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선거 때마다 난립하는 속칭 ‘떴다방’도 여론조사의 질적 저하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A부장은 “어떤 후보가 전문성이 없는 여론조사 기관을 만들어 (본인에게 유리한) 조사를 해 언론사에 던져주고, 보도가 되면 이를 홍보자료로 활용한다는 얘기는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4·13총선을 앞두고 지방의 한 대학교수가 하지도 않은 가짜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이 교수는 조사를 진행하지도 않았으면서 “부산시민 800명에게 전화로 설문한 결과 ‘지역에 가장 필요한 국회의원’이 OOO 후보로 밝혀졌다”며 이를 언론에 배포해 기사화를 유도했다. 선호 정당을 묻는 물음에도 ‘OOO 후보가 속한 당이 67.8%로 가장 높았다’며 없는 사실을 꾸며냈다. 해당 교수는 자신이 대표이사로 있는 연구소 명의로 이같은 허위보고서를 냈다.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지방의 한 대학교수가 하지도 않은 가짜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방송뉴스 화면 캡처

이는 여론조사가 여심위에 등록하기만 하면 누구나 공표·보도를 할 수 있는 구조적 맹점에 기인한다. 자격미달 업체라도 기관을 만들어 조사 후 공표할 수 있고, 여론도 충분히 조작, 왜곡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 다른 조사 기관의 B씨는 “지난 총선 때 한 업체는 ARS를 걸어놓고 기계가 그냥 알아서 조사하도록 내버려 두기도 했고, 사업자등록 주소지에 실제 그 기관이 없던 경우도 허다했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문제가 발생한 뒤에야 심의가 이뤄지는 여심위의 사후약방문식 조치는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결국 제도적 미흡이 선거철 떴다방을 부추겼고, 질 낮은 자료의 남발은 여론조사 시장 전체를 도매금으로 만들었다는 게 일선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국회는 시정을 요하는 업계의 목소리를 받아들여 올해 2월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여심위에 등록을 인가받은 기관만 선거 여론조사를 공표·보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승희 여심위 주무관은 “등록제 도입 배경은 지난해 총선 때 자격을 갖추지 못한 조사 기관의 난립 때문이었다. 이 문제를 최소한으로 걸러내기 위한 제도적 장치”라고 설명했다.

이에 △여론조사 기관에 2년 이상 근무한 1명 이상을 포함한 3명 이상 상근 △여론조사 실시 실적 10회 이상 또는 매출액 5000만원 이상 △조사시스템과 상근 직원을 수용할 수 있는 사무소 등을 충족시켜야 등록이 가능토록 했다. 하지만 등록요건 준비기간을 3개월로 둬 이 개정안은 이번 대선에서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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