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 합법화의 필요충분조건
로비 합법화의 필요충분조건
  • 더피알 (thepr@the-pr.co.kr)
  • 승인 2017.04.20 16: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용민의 Crisis Talk] ‘고비용 비효율’의 대관 구조, 미국 사례를 보자

[더피알=정용민] 최근 개봉한 영화 ‘미스 슬로운(Miss Sloane)’은 미국 워싱턴DC의 로비업계가 주 배경이다. 워싱턴 정책 입안자 사이에서 명성과 함께 악명까지 높은 승률 100%의 로비스트 ‘슬로운’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자신의 업종을 ‘퍼블릭 어페어스 앤드 커뮤니케이션(Public Affairs and Communication)’이라 칭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로비(lobby)’라 알려져 있는 일을 한다.

미국 로비업계 이야기를 그린 영화 '미스 슬로운'의 한 장면.

대형 로비 에이전시 소속이었던 슬로운은 어느 날 ‘총기 규제 법안’을 무력화 해주길 원하는 클라이언트에 반기를 든다. 결국 자신이 다니던 회사를 등지고 작은 규모의 부티크 로비 에이전시로 자리를 옮겨 친정과 로비 전쟁터에서 대적한다는 줄거리다.

한국적인 상황에서는 이해가 잘 안 되는 배경일 수도 있다. 우리 기억을 더듬어 보자. 90년대 초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PR에이전시’라는 이름을 아는 경영자들은 극소수였다. ‘기업 홍보실’이란 명칭은 들어봤어도 ‘PR에이전시’ 또는 ‘홍보대행사’라는 말은 처음 듣는다는 분들을 2000년 초에도 만나 본적 있다. 얼마 전까지도 일부 경영자들은 “기업 내 홍보실이 있는데, 왜 외부 대행사를 쓰나요?” 같은 질문을 종종 했었다.

로비 자체에 대한 인식도 그렇다. 로비를 전담하는 에이전시가 있다는 사실도 우리에게는 아직 낯설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 미국에서 중앙과 지역정부의 정책입안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합법적 로비가 가능하게 된 것은 1876년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미 하원의 결의로 로비스트들에게 등록을 의무화하면서 본격적으로 로비 업(業)이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캐나다는 1989년 그리고 유럽연합(EU)은 그보다 더 늦은 1996년 로비스트들을 법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장치들을 마련했다.

필요가 시장을 만들어

물론 미국의 경우 이미 1800년대 초부터도 정책입안자들이 로비스트들의 영향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부터 상당 기간 로비업계는 전통적인 양대 축으로 유지된다. 정책입안자그룹 (Policy Makers)과 특수이해관계자그룹(Special Interests)이 그것이다. 정책입안자그룹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중앙 및 지방 정치인들, 그들의 보좌관, 의회 및 정부부처 공무원들을 의미한다.

우리의 일반적 생각보다 로비의 실제 대상은 훨씬 넓다. 반대편인 특수이해관계자그룹은 업종/업계를 대표하는 협회, 각종 조합들, 기업들, 비영리단체, 다른 내외국 정부기관들, 개인들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나 다양성이 더 크다. 따라서 초기 로비는 대부분이 특수이해관계그룹에서 일하는 직원들에 의해 이뤄졌다. 이들을 ‘인하우스 로비스트’라고 부른다. 현재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운용하고 있는 대관(對官)부서에서 정부관계를 진행하는 형태와 유사하다.

미국에선 정책입안과 대관업무 등에 있어 pr회사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사진은 에델만이 홈페이지에서 소개하고 있는 퍼블릭어페어즈 업무.

이렇게 전통적으로 양대 축이 중심이 돼 진행하는 로비업무에는 몇 가지 문제나 어려움이 있었다. 일단 양축의 상호간 호의를 형성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로 ‘돈’이 오갔다. 이를 매개로 정책적 정보들이 비싸게 공유됐다. 그럼에도 정책입안자와 특수이해관계자 간에는 서로가 서로를 제대로 찾아내 정책 개발 업무를 하려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었다.

예를 들어 아동보육 정책에 대한 혁신적 법안을 만들고 싶은 의원들과 보좌관들이 있다고 해보자. 이들이 검증된 전문가들과 준비된 법안 관련 정보들을 입수하기 위해서는 장시간을 허비하며 수많은 특수이해관계자들을 만나야 하는 수고가 필수적이었다. 고비용 비효율적인 시장 구조였다.

그러나 2005년 전후 미국에서 로비 에이전시들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환경이 바뀌게 된다. 기존 정책입안자그룹과 특수이해관계자그룹 사이에 로비 에이전시들이 들어가 확고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하버드대 윤리센터(Center for Ethics)의 2015년 조사에 의하면, 2005년까지만 해도 미국 전체 로비 시장에서 업무 점유율은 특수이해관계자그룹의 ‘인하우스 로비스트(한국의 대관부서 개념)’가 55%, 그 외 ‘고용된 총잡이(hired guns)’로 불리는 ‘로비 에이전시’가 45%를 점유했다. 

그 비율이 2006년 각각 43%와 57%로 역전되면서 로비 에이전시들의 업무가 인하우스 인력들의 업무보다 대폭 늘어났다. 이듬해인 2007년에는 로비 에이전시의 업무 비율이 약 65%에 이르렀다. 그와 동시에 로비에 사용하는 총 예산 비율을 따져 봐도 2007년 기준 로비 에이전시들이 약 20억달러(한화 2조3000억원)를 점유했고, 인하우스가 그 절반 정도에 머물렀다.

큰 흐름으로 보면 로비 에이전시를 고용했을 때 전통 양대 축 구조의 고비용 저효율 문제를 일정 부분 해결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기업들이 하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정부 차원에서 실시하는 로비스트들에 대한 강한 감시와 규제도 시장 변화에 한 몫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美 로비 업계, 3대 축으로 재편

최근 미국 로비업계는 예전 양대 축 사이에 로비 에이전시가 더 들어간 3대 축의 구조를 가지게 됐다. 이전과 같은 정책입안자들은 로비 에이전시들에 대한 상시적 접근과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졌다. 상호간 정보교류와 준비된 정책자료 지원이 수시로 이뤄진다. 정책입안자그룹과 로비 에이전시 그룹 간의 관계는 지속 발전되어가고 있으며, 때때로 리볼빙 인사(revolving door)가 이뤄지는 수준에까지 올랐다. 의원들의 보좌관으로 전직 로비 컨설턴트가 스카우트되어 가거나, 전직 의원이나 관료들이 로비 에이전시에 임원으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가 그런 예다.

특수이해관계자그룹은 예전에 직접 정책입안자그룹과 관계를 맺으며 겪었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로비 에이전시를 고용하거나 계약하는 방식으로 대관업무를 진행하게 됐다. 로비 에이전시가 클라이언트의 수요와 필요에 기반해 법안 관련 컨설팅, 자문, 대리 업무를 해주고, 정책입안자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활동으로 클라이언트로부터 적정한 수수료(Fee)를 받는 구조다. 일부에서는 아예 자신의 조직 내에 특정 로비 에이전시 컨설턴트들을 고용해 계약 활용하는 곳도 생겨났다. 로비 에이전시는 일반적으로 변호사, PR전문가, 컨설턴트, 전직 의회 및 관료들로 채워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로비스트들이 (부패한) 정치인들과 밀실에서 이야기 나누고, 음주가무를 즐기고, 돈을 건네고 하면서 자신들의 이익만을 정책에 반영하려 한다고 믿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미국의 로비 에이전시들을 보면 그들 업무의 대부분이 정책조사, 법안조사, 각종 통계분석, 전략개발, 자료준비 및 개발 등에 투여된다. 그와 함께 에이전시 고위임원들은 정책입안자들과 특수이해관계자들 사이의 연결 작업을 위한 컨택과 미팅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기존에 양측이 서로를 찾아 헤매는 수고를 대신 해 덜어주는 고효율 환경을 만들기 위함이다.

한국 기업 대관, 이대로 외주화하면

이제 한국의 최근 환경으로 돌아와 보자. 청와대발(發) 정치권 스캔들이 반년 이상 나라 전체를 어지럽게 했다. 많은 기업들이 그 정치적 스캔들에 연루돼 곤욕을 치르고 있다. 한국의 기업 지배구조 특성상 오너들이 청와대와 연결고리 상에 있었다는 의혹으로 직접 수사를 받고, 일부 구속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 시점에서 많은 기업들은 한국적 환경에서 대관(對官)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일부 기업에서는 현재 대관조직을 해산하고 상당 부분 ‘외주화’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대관업무를 외주화 하느냐 고민하기 이전에 ‘과연 한국 기업에게 대관이라는 업무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어야 하는가?’‘하는 직무기술과 그 각각의 정의가 먼저 이뤄져야한다고 본다.

이제는 대관수요를 어떻게 투명하게 관리해서 발전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기존 같은 대관업무들을 그대로 외주화 하면, 이는 위험의 우회 또는 분산이라는 목적만 달성하게 된다. 비용은 더욱 올라간다. 기존에는 기업 고위직 인사들이 수사 받고 구속 되었다면, 앞으로는 대관업무를 대행한 개인이나 에이전시까지 수사 받고 클라이언트와 함께 구속되는 정도의 변화밖에 기대할 것이 없다는 의미다.

정부도 그렇다. 기업을 비롯한 여러 특수이해관계자그룹이 성장하고, 그들의 발전적 제안과 생각들을 충분하게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대관 수요를 어떻게 투명하게 관리해서 발전적으로 양성화 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음지에서 행해지는 ‘고비용 비효율’의 대관 구조로는 특수이해관계자들 또한 제대로 된 의견 전달이 불가능하다. 민주주의 후퇴 또는 미진한 발전이 당연해진다는 의미다.

한국에서도 미국의 전통적 로비업계 구도인 정책입안자그룹(PM)과 ‘일부’ 특수이해관계자그룹(SI)이 양대 축을 이루며, 비밀스러운 고비용 비효율 구조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정부는 이를 외면하고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더욱 더 수면 아래로 숨어들게 만드는 정책보다, 이를 응시하고 실체를 그대로 인정 분석하고, 수면 위에 올려놓아 올바른 게임의 법칙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허용하되, 견제하고 감시하고 규제하면 된다. 로비활동이 합법화되고 로비스트들이 등록제로 정부의 철저한 감시를 받게 된다면, 그 때부터 업계에는 시장의 원리가 작용하게 된다. 전문적인 로비 에이전시들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특화된 변호사들과 능력 있는 PR전문가들이 팀을 이룰 것이다. 그들이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상당 수준의 연구와 관계 형성을 위한 치열한 경쟁에 나서게 될 것이다. 보다 수준 높은 정책자료들을 우리나라 정책입안자들이 제공받게 될 것이다. 사회를 위해 필요한 정책 아젠다들은 더욱 더 활발하게 공유될 것이다. 시간이 가면서 밀실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오고 가던 돈봉투와 뭉칫돈들도 자리를 잃게 되어야 한다.

‘늙은’ 대관, 홍보 변천사 봐야

‘PR에이전시’라는 낯선 서비스 개념이 한국에 입성한지 30년이 돼간다. 그 후에도 몇 십 년간 한국에서 ‘PR또는 홍보’란 ‘피(P) 할 건 피하고, 알(R)릴 건 알린다’는 이야기로 희화화되었다. 오랫동안 대기업 홍보실이 언론에 뿌려대는 거대한 예산을 기반으로 홍보라는 업무가 굴러 갔다. 기자와의 관계도 대기업 홍보실은 밀실에서 뿌리를 내리고 성장·유지시켰다. 그런 환경에서 ‘PR에이전시’는 말 그대로 이방인이었다. ‘예산도 없고, 밀실작업도 못하는 회사가 무슨 홍보를 한다고 하나?’라는 비판을 수십 년간 받았었다.

그러나 현재를 보자. PR에이전시들은 국내 언론관계 전반의 투명화에 많은 기여를 했다. 예산이나 밀실에서의 속삭임으로 진행되던 한국의 홍보를 전략과 메시지로 상당 수준 대체시켰다. 더 이상 젊은 기자들은 기업이나 홍보대행사들에게 ‘갑’으로 접대 받거나, 밀실로 자신을 유도해 주길 원하지 않는다. 좋은 기삿거리를 다양하게 적시에 제공하는 경쟁력 있는 PR에이전시를 찾게 됐다. PR에이전시가 활성화되면서 한국 언론관계 토양이 양질화 됐다.

우리의 늙고 부패한 대관도 이제 그렇게 되어야 한다. 기존과 같이 방치하면 안 된다. 더 이상 수사 받고 구속될 날을 기다리며 담장을 걷는 대관 실무자들이 존재하면 안 된다. 일부 대기업만 독식하는 정책입안자들과의 밀실 문화도 없어져야 한다. 그래야 국가가 제대로 된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