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투표제에 대한 한 경제학자의 이의제기
현행 투표제에 대한 한 경제학자의 이의제기
  • 이영환 (thepr@the-pr.co.kr)
  • 승인 2017.04.27 13:1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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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뚜렷…가장 지지받는 후보가 가장 싫어하는 후보 될 수도

[더피알=이영환]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는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중차대한 행위로서 선거가 공정하고 자유롭게 치러지는가에 따라 그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대통령선거는 주권자인 국민 모두가 동등한 자격으로 한 표의 권리를 행사해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를 지지하는 중요한 행사다. 이때 투표는 개인적인 선택행위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으로 선호하는 후보를 선택한다는 대표적인 사회선택(social choice) 행위다.

그런 의미에서 곧 치러질 장미대선에 앞서 이 시점에서 우리 모두 투표의 의의와 한계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제19대 조기 대통령 선거 재외국민투표 첫날인 25일 오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주불 한국대사관 투표소에서 교민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우선 합리성을 강조하는 주류 경제학의 관점에서 보면 투표는 대표적인 비합리적인 행동에 속한다. 투표 행위를 통해 개인이 얻는 이득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다.

그런데 선거에서 개인이 특정 후보의 당락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개인적인 이득은 사실상 지극히 작다고 봐야 한다. 반면 투표하기 위해서는 일정을 조정해야 하고 투표장까지 가야하며 사람이 많은 경우에는 오랫동안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려야 하는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한 마디로 비용과 이득을 비교한다면 당연히 비용이 훨씬 더 큰 행위이므로 주류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성, 이른바 도구적 합리성의 관점에서는 투표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한다는 사실은 사람들이 합리성 외에도 공정성이나 정의 같은 공동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투표율은 공동선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알 수 있는 척도라 할 수 있다.

투표율이 높을수록 사회구성원들이 정의나 공정성과 같은 공동선의 실현에 관심이 높은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투표율이 높아야만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이 유지될 수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사회에서 실제로 투표, 그것도 다수결에 기반을 둔 투표 말고는 사람들의 선호를 집약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투표가 이상적인 방법이라는 것은 아니다. 사실 투표는 논리적으로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는 방식이다. 투표와 관련된 여러 가지 모순에 관해서는 프랑스 학자들이 많이 연구했다. 아마도 프랑스혁명 이후 프랑스의 지식인들이 최초로 투표의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역설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으로 콩도르세의 역설(Condorcet’s paradox)과 보르다의 역설(Borda’s paradox)이 있다. 둘 다 다수결투표와 관련된 문제점을 지적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지만 구체적으로는 다른 성격의 문제를 제기한다.

콩도르세의 역설에 의하면 다수결을 통해서 다수가 원하는 후보를 선택하는데 일관성의 관점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물론 항상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조건하에서는 일관성이 결여된 모순된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보르다의 역설은 다수결에 의해 선출된 후보가 다른 한편으로는 다수가 가장 원하지 않는 후보일 수도 있다는 모순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우리에게 닥친 대선과 관련해서는 보르다의 역설이 더 관련되어 있기에 이에 대해 좀 더 상세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 역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한 사례를 검토해 보자. 7명의 친구들(편의상 A부터 G라고 부르기로 한다)이 뉴욕, 방콕, 파리 중 한 곳을 선택해 여행가려고 한다. 그런데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투표로 여행지를 결정하려고 하는데 각자 선호하는 도시가 다음과 같다고 하자.

이제 7명의 집단에서 다수결에 의해 가장 가고 싶은 도시를 하나 고른다면 뉴욕(3표), 방콕(2표), 파리(2표)가 되어 뉴욕으로 결정된다. 그런데 반대로 가장 가고 싶지 않은 도시를 하나 고르는 투표를 하면 뉴욕(4표), 파리(3표), 방콕(0표)이 되어 이번에도 뉴욕으로 결정된다. 따라서 “가장 가고 싶은 도시=가장 가고 싶지 않은 도시”라는 모순된 결과를 얻게 된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상위 두 도시를 놓고 결선투표를 하는 방식을 생각해보자. 실제로 이 방식은 여러 경우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다시 7명의 친구가 여행지를 놓고 투표하려는데 각자 다음과 같이 선호한다고 하자. 여기서는 앞에서와 약간 차이가 있는 것으로 가정했다.

이 경우 가장 가고 싶은 도시를 놓고 일차 투표를 하면 뉴욕(3표), 파리(3표), 방콕(1표)이므로 뉴욕과 파리를 놓고 결선 투표를 하면 뉴욕(4표), 파리(3표)가 되어 뉴욕으로 결정된다.

그런데 반대로 가장 가고 싶지 않은 도시를 놓고 일차 투표하면 뉴욕(3표), 방콕(3표), 파리(1표)가 되어 뉴욕과 방콕을 놓고 결선투표를 하면 뉴욕(4표), 방콕(3표)이 되어 뉴욕으로 결정된다. 이와 같이 이차 결선투표 방식을 도입하더라도 여전히 “가장 가고 싶은 도시=가장 가고 싶지 않은 도시”라는 모순이 발생할 수 있다.

물론 이 사례와 같이 실제 투표에서 보르다의 역설이 자주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다수결투표 방식에는 원천적으로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수결투표란 개개인의 선호를 바탕으로 사회적으로 가장 선호되는 후보를 선택하는 현실적인 방법이다.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이 이상의 좋은 방법을 강구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원칙에 따른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비롯해 선출직 공직자들을 선발해 일정 기간 국정운영의 권한을 위임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보르다의 역설을 통해 드러난 모순을 그대로 방치하기 보다는 보완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다시 앞의 사례로 돌아가 보자.

<사례 1>의 경우 가장 가고 싶은 도시의 득표수에서 가장 가고 싶지 않은 도시의 득표수를 빼면 뉴욕은 –1표, 파리는 –1표, 방콕은 2표가 된다.

따라서 투표 방식을 수정해 각자 가장 가고 싶은 도시와 가장 가고 싶지 않은 도시를 동시에 적은 후 그 격차가 가장 큰 도시로 여행 간다는 원칙에 입각해 투표를 실시한다면 이런 모순을 피하는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기준에 의하면 방콕으로 여행을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진=픽사베이

<사례 2>의 경우에도 결선투표 대신 이런 방식으로 한 번에 최종 여행지를 선정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  이 방식에 의하면 파리 2표, 뉴욕 0표, 방콕 –2표가 되어 파리 여행을 선택하게 된다. 

결선투표 방식을 실시하는 경우에도 “가장 가고 싶은 도시=가장 가고 싶지 않은 도시”라는 모순을 해결하지 못할 수도 있으므로 차라리 이런 방식으로 격차가 가장 큰 도시를 선택하는 방식을 합리적인 대안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제 이 사례에서 인용한 도시들 대신에 이번 대선에 출마한 유력한 후보 세 명을 대입해 보면 필자가 말하려 하는 의도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특정 후보가 다수의 지지를 받더라도 과반수이상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가장 선출되지 않았으면 하는 후보 기준에 의하면 최우선순위에 오를 수 있다. 따라서 다수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5년간 국정운영을 담당할 수도 있다.

물론 현행 선거를 통해 반드시 이런 결과가 발생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현행 다수결투표제도에는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일부 국가에서 실시하고 있듯이 과반수득표를 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상위 후보자 두 명을 대상으로 2차 결선투표를 하는 방식에는 직·간접적으로 막대한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그리고 <사례 2>에서 봤듯이 여전히 보르다의 역설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추가 비용을 발생을 막을 뿐만 아니라 최선과 최악이 일치하는 모순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각자 가장 좋아하는 후보와 가장 싫어하는 후보를 동시에 기재하는 투표방식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후 각 후보별로 각 기준에 의해 얻은 득표수를 차감해 가장 많이 득표한 사람을 당선자로 선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대표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이 방식으로 득표한 숫자가 전체 투표자의 일정 비율, 예컨대 20퍼센트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단서를 추가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는 아이디어 차원에서 제안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앞으로 대통령을 비롯한 국회의원, 지자체 대표 등의 선거에서 이런 투표방식을 도입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적어도 최선과 최악이 일치하는 모순은 피해야하기 때문이다. 

이영환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 이사
미시경제학 등 다수 출간

*이 글은 논객닷컴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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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호투표제 2017-04-30 00:22:30
좋은 제안입니다. 저도 평소에 현행 단순 다수제 투표방식의 문제점에 대해 깊이 인식하고 있었기에 흥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현행 투표 방식에 대안으로 가장 좋은건 선호투표제(호주 등에서 실시하고 있음) 또는 보르다 투표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선호투표제는 투표자에게 입후보자 전원의 선호 순위를 매겨 기표케 하고, 1순위 선호를 기준으로 우선 집계해 여기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최저 득표자를 탈락시킨 뒤, 최저 득표자가 받은 표를 해당 표에 적혀 있는 2순위 후보들에게 나눠주어 합산하는 방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