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무대서 독자와 맞장…언론의 잇단 ‘헛발질’ 왜?
소셜무대서 독자와 맞장…언론의 잇단 ‘헛발질’ 왜?
  • 박형재 기자 (news34567@the-pr.co.kr)
  • 승인 2017.06.0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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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구구식 운영이 부른 예견된 위기

[더피알=박형재 기자] 언론의 소셜 채널이 관리되지 않고 있다. 공식 페이스북에 ‘포르노 영화 찍냐?’ ‘#언제 #어디서든 #성관계’ 같은 부적절한 해시태그가 달리고, 기자가 “덤벼라 문빠들”이라며 독자와 감정적으로 부딪힌다. 원칙 없는 대응은 신뢰를 무너뜨리고 독자 소통 창구는 위기 발화점으로 변질된다.

최근 몇몇 언론사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독자와의 전쟁터가 됐다. 일부 누리꾼이 문재인 대통령 관련 보도행태에 불만을 제기하자 이에 맞서 기자들이 ‘붙어보자’고 도발하며 일이 커졌다. 구독중단, 광고주 불매운동 등으로 사태가 확산되자 논란의 당사자인 기자는 물론 소속 언론사까지 나서 사과했지만 쉽게 진화되지 않고 있다.

5월 12일 경향신문 트위터는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3일차 행보를 전하며 ‘밥도 혼자 퍼서 먹었다’고 표현해 구설에 올랐다. 13일 오마이뉴스는 대통령 영부인을 ‘김정숙씨’라고 지칭해 비판에 휩싸였다. 15일 한겨레의 한 기자는 개인 SNS에 문재인 팬덤을 가리켜 “덤벼라 문빠들”이라고 언급해 물의를 빚었으며, 16일 미디어오늘 기자는 독자들의 집단행동에 대해 “개떼처럼 몰려가 일점사”라고 말해 또 하나의 표적이 됐다.

이번 논란은 언론인들의 SNS 플랫폼 몰이해에서 비롯됐다는 평가다. SNS는 일기장 같은 사적 공간인 동시에 불특정 다수가 보는 공적 장소다. 기자 개인 의견을 올리더라도 일반 독자들은 언론사 브랜드와 연결지어 보기 쉽다. 이를 착각해 종종 문제가 발생한다. 

위기 수습도 매끄럽지 못했다. 언론사가 외부 대응 메시지를 정리해 기자에게 공유하고 하나의 목소리(one voice)를 내야하는 데 과정이 미숙했다. 오마이뉴스 기자는 호칭 논란이 불거지자 “대통령 부인을 여사로 칭하지 않는 것은 회사 내부 방침”이라고 해명했으나, 누리꾼들은 과거 오마이뉴스에서 일본 아베총리 부인을 ‘아키에 여사’라고 표현한 기사를 찾아내 쏘아붙였다.

이슈관리의 핵심인 이해관계자 설득에도 실패했다. 이른바 ‘한경오’(한겨레·경향신문·오마이뉴스)에 대한 문재인 지지자들의 분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에 닿아 있다. 이들은 노 대통령 서거가 언론들의 잇따른 왜곡보도의 결과이며, 보수언론은 물론 믿었던 진보언론마저 ‘노무현 때리기’에 앞장섰다고 주장한다.

진보언론에 대한 불만을 담은 이미지.

이번에는 같은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대통령을 향한 작은 비판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한경오 논란은 그동안 쌓인 진보언론에 대한 뉴스 소비자의 불신이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꼬인 매듭을 풀려면 언론의 철저한 반성과 신뢰 회복 메시지가 필요하나, 일부 언론은 ‘문빠’들에 의한 해프닝으로 사건을 규정지어 비난 여론을 키웠다.

문재인 지지자인 30대 회사원 박상미(가명) 씨는 “진보 매체의 SNS 실수와 그간의 보도 행태가 맞물려 참여 정부 트라우마를 건드렸다”면서 “(문재인) 지지층 사이에선 조중동과 한경오가 다를 바 없다는 인식이 팽배하다”고 말했다.

소 잃고 외양간

언론의 ‘소셜 삽질’은 이뿐만이 아니다. 조선일보 페이스북은 4월 13일 대선TV토론 중 문재인 후보의 말실수를 부각시킨 기사를 공유했는데, 기사 본문에 ‘#문재인 치매 루머’라는 문구가 버젓이 달려있었다. 이에 동조하는 이들은 문 대통령의 ‘치매설’을 놀리는 듯한 댓글놀이를 이어갔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조롱도 심각하다. 조선일보는 지난 3월 20일 “동성애자는 타인의 ‘어디를? 어떻게?’ 관찰할까”라는 해외토픽 기사를 페이스북에 내보내며 대표 사진으로 기사와 상관없는 연예인 홍석천 씨의 방송 화면을 노출했다. 그리고 ‘여섯 번이나 힐끔힐끔’이라는 설명을 달아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조성했다.

중앙일보는 5월 11일 페이스북 공식 계정으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을 비난하는 댓글을 달아 논란에 휩싸였다. 해당 기사는 조 수석 어머니의 사학재단 세금체납을 다룬 것으로, 중앙일보가 부정적 여론을 몰아가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낳았다. 중앙일보 측은 댓글 조작을 한 적이 없고 페이지 관리자 개인의 실수라고 사과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방송사 페이스북 역시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KBS페이스북은 4월 14일 군대 내 동성애 수사 관련 뉴스를 전하며 혐오성 글을 올려 파문이 일었다. 페북지기는 뉴스에 대한 설명으로 “포르노 영화 찍냐?”고 적은 뒤 ‘#언제 #어디서든 #성관계 #동성’이란 해시태그를 달았다. 일부 누리꾼이 “더럽지도 않냐”는 반응을 보이자 “우웩”이란 댓글로 혐오 발언에 동조하기도 했다. 

kbs 페이스북은 군내 동성애 수사 관련 뉴스를 전하며 ‘#언제 #어디서든 #성관계 #동성’이란 해시태그를 달았다.

SNS를 통해 내부 갈등이 표출돼 곤혹을 치르기도 한다. 2015년 스브스뉴스(SBS서브브랜드) 페북에는 ‘저를 잊으실 건가요? 스브스뉴스 영상구성작가입니다’라는 제목의 카드뉴스가 올라왔는데, 프리랜서 작가가 스브스뉴스 기자의 갑질을 주장하는 고발성 콘텐츠였다.

반복되는 ‘소셜 삽질’ 

언론의 소셜 채널이 자꾸만 구설에 오르는 이유는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대부분 언론사들은 소셜 전략이나 목표 없이 SNS를 단순히 뉴스 확산 내지 트래픽 유입 도구로 활용한다. 흥미위주의 콘텐츠와 종잡을 수 없는 드립이 잇따른다.

소셜 가이드라인이 없는 것도 매번 헛발질을 부른다. 일례로 한경오 논란에서 기자들이 독자들과 직접 맞부딪히는 데도 사태가 일파만파 퍼지기 전까지 뉴스 조직 내부의 대책은 보이지 않았다. 국내 일부 언론을 제외하곤 구체적인 소셜미디어 활동 지침이 없어 개인의 ‘상식적 판단’에 맡겨 운영하는 상황이다. ▷관련기사: 한겨레 페북 ‘싸질러 공방’, 남일 아니다 

반면 BBC 등 해외 언론은 소속 기자의 SNS 가이드라인을 두고 회사 보도 방향과 어긋나는 글은 올리지 못하게 하고 있다. 로이터 역시 2011년 ‘저널리즘 핸드북’을 만들면서 “SNS에 기자들이 사적 의견이라도 로이터의 공식 의견으로 오해할 수 있으니 신중하라”고 당부했다.

뉴스 소비 패턴이 신문에서 모바일과 SNS로 넘어가면서 ‘소셜독자’의 영향력이 커졌음에도 언론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태도도 문제다. SNS 운영은 여전히 서브조직의 몫인 경우가 많고, SNS 관리는 젊은 기자나 계약직 인력이 담당한다. 소셜을 중요한 업무로 인식하지 않고 투자도 소극적이니 위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한 일간지 온라인뉴스 부장은 “디지털 혁신을 하자는 공감대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신문 제작을 소홀히 하며 인적·물적 투자를 진행하긴 어렵다”며 “남는 자원을 소셜미디어에 투입하다보니 실수가 생긴다. 그렇다고 트래픽이나 비즈니스 기여도가 크지 않은 소셜에 자원을 무한정 투입하기 어려운 딜레마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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