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국가재난관리 체질을 위한 조언
새로운 국가재난관리 체질을 위한 조언
  • 정용민 (ymchung@strategysalad.com)
  • 승인 2017.06.08 15:33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용민의 Crisis Talk] 문 닫는 국민안전처…문제는 컨트롤타워가 아니다

[더피알=정용민] 새 대통령 취임과 함께 새 정부가 만들어지고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굳이 꺼내지 않아도 많은 것들이 새로워지고 있다. 국가재난관리체계에도 메스가 가해질 것으로 보인다. 일단 이전 정부에서 세월호 사고 이후 급조한 국민안전처가 소방청과 해양경찰청으로 분리되고, 일부 기능이 행정안전부로 흡수되면서 해체 수순을 밟게 됐다.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서 영농기 가뭄 대비 관계기관 긴급 영상대책회의가 열리고 있다. 뉴시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국민안전처가 진행해 온 여러 사업들을 보면 일종의 ‘재난관리 홍보처’라고 할 정도로 완전한 의미의 재난관리 개념과는 거리가 있는 활동들이 상당수였다. 급조된 태생적 한계 때문일 수 있고, 여러 부처 조직들이 뭉쳐있어 내부에서 한 가지 방향을 가지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느렸고, 부정확 했으며, 국민들이 안전처의 역량에 자주 의문을 갖게 했다. 일단 새롭게 탈바꿈될 부처이기 때문에 이전 활동들은 그냥 그랬었다 정도로 남겨두자.

숙제는 이제부터다. 기업 위기관리 워크숍에서 종종 이런 질문을 한다. “만약 세월호와 같은 대규모 선박 침몰 사고가 지금 이 시간에 다시 발생한다면 2014년 그 때보다는 훨씬 더 많은 승객 구출을 해 낼 수 있을까요?”

수많은 기업 대표와 임원들이 대부분 고개를 가로젓는다. 정부의 재난관리 역량이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으로 보는 까닭이다. 필자도 그 생각에 동의한다. 세월호 이후 실제 현장에서 어떤 재난관리 역량의 급성장이 있었는지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새 정부 하에서는 재난관리도 새로운 체질을 갖춰야 할 것이다. 세월호에 대한 재난관리 실패가 국가적 비극으로 오래 지속된 것과 같이 또 어떤 대형 사고가 정부의 생사 또는 성패를 가를지 모른다. 2014년에는 준비돼 있지 않았다고 치자. 그때는 운이 없었다고 치자. 일선 인력들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했었다고 치자.

그러나 지금은 준비돼 있어야 한다. 운에 기대지 말고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적시에 할 수 있어야 한다. 일선 인력들도 3년 전보다는 훨씬 더 낫게 대응해 재난을 관리하는 역량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새로운 국가재난관리 체질에 있어 몇 가지 의견을 정리한다.

국민안전처가 소방청과 해양경찰청으로 분리되면서 2년 7개월 만에 해체된다. 뉴시스

다섯 가지 당부

첫째, 국가재난기관이 어디가 되든 ‘홍보’하지 않게 하라. 물론 미국의 FEMA(미국연방재난관리청)에도 커뮤니케이션 예산이 있고, 평시에 커뮤니케이션과 트레이닝이 핵심 업무 중 하나이기는 한다. 그러니 ‘홍보하지 않게 하라’는 말의 의미를 잘 새겨야 한다.

국가재난관리 기관이라면 두 가지 큰 커뮤니케이션 주제가 있다. 첫째가 국가재난 예방이나 재난관리를 위한 ‘국민행동요령’이다. 이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은 당연히 재난관리 업무의 일환이다. 둘째는 국가재난관리 부처가 어떤 새로운 국가재난관리 체계를 만들었는지, 어떤 투자를 해서 국민의 안전보호에 진일보를 이뤘는지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이다. 이는 발전한 국가재난체계를 국민들에게 교육한다는 목적이 있어 중요한 부분이다.

그 외에는 대부분이 말 그대로 홍보이니 자제하라는 것이다. 왜 해당 부처가 잘하고 있는지를 국민들이 알아야 하나?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부처는 당연히 일을 잘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해당 부처 고위 공무원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것은 왜 또 국민들이 알아야 하나? 당연한 것인데. 부처 자체를 위한 홍보를 하지 말고, 국가재난관리와 국민을 위한 ‘재난 커뮤니케이션’에 열중해야 한다.

둘째, 실전 역량으로 말하고 성과로 입증하게 하라. 국민과 새 정부는 국가재난관리 부처에게 지속적으로 물어봐야 한다. 세월호와 같은 대형 선박 사고가 다시 생기면, 일선에서 완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새로운 역량이 있는지를. 원전사고가 난다면 어떨까 질문해야 한다. 피해가 광범위한 대형 지진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무엇을 그들이 할 수 있을 것인지 물어야 한다.

그에 대해 국가재난관리 부처는 성실하고 정확하게 답해야 한다. 없는 역량은 없다, 부족한 장비와 물자는 부족하다 해야 한다. 사실 아직 체계가 준비돼 있지 못하다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완전한 대응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는 무엇이 그리고 얼마가 필요하고 어떤 로드맵을 따라야 한다는 자신들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에 기반해 국가와 국민은 생존 차원에서 우선순위를 두고 국가재난관리 부처를 지원해야 한다. 그들 스스로 실전 역량을 점검하게 한 뒤 필요한 지원을 통해 실전 역량을 새롭게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해당 부처는 그간의 지원과 투자를 재난시 성과로 보답 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 위기관리가 그렇듯 국가재난관리도 ‘돈’이 한다. 관심만 가지고는 힘들다. 국가재난관리 부처는 그 돈을 달라고 새 정부와 국민들에게 요청해야 한다. 그럴 수 있어야 하며, 그전에 그럴 만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책임으로 해경이 해체된 이후 ‘부산해양경찰서’ 간판 철거가 진행되던 2014년 12월 30일 모습. 뉴시스

셋째, 컨트롤타워 타령이나 핑계는 그만하자. 우리나라에서는 위기가 발생하면 사후평가를 하며 항상 비슷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컨트롤타워가 없었다. 만들자”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역할하지 못했다.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를 만들자” “컨트롤타워가 너무 많았다. 컨트롤타워를 컨트롤 할 그랜드 컨트롤타워를 만들자”… 이를 비판하는 쪽에서도 동일한 지적을 하며 재난관리 주체를 비판한다. 아주 흥미로운 부분이다.

만약 컨트롤타워가 문제라면 왜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를 갖추지 못했는지가 더 문제다. 또한 문제를 알면서도 국민이나 언론, 전문가들이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건 더 위험한 일이다. 컨트롤타워가 평소 잘되어 있다, 잘 할 수 있다고 했다가 실제 재난 발생시 전혀 역할을 못했다면 그건 더 큰 문제다.

결국 문제는 컨트롤타워 자체가 아니다. 컨트롤타워가 중요하다 생각하면서도 그것에 대해 평소에는 신경 쓰지 않는 습관이 문제다. 이전 정부에서는 어땠나? 자신이 컨트롤타워의 수장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고위공무원도 있었다. 정부 조직상 종류가 너무 많아 누가 수장이고 누가 구성원인지 헷갈린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종이 매뉴얼이나 조직 규정에만 있는 컨트롤타워가 실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 것 자체는 ‘미신’이나 ‘병’이다.

그러다 보니 실제 재난이 발생하고, 그 관리가 어처구니없이 진행되면 여지없이 동일한 핑계를 댄다. ‘컨트롤타워 부재’가 아주 효과적인 변명이었다. 실제로 문제 있는 의사결정과 대응을 한 많은 관련자들은 컨트롤타워라는 개념만 끌어다 십자가에 못 박으면 그만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변명과 손가락질과 욕은 지속 반복되었다. 이 정도 되면 집단적으로 병에 걸린 셈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다시는 재난관리 이후 컨트롤타워의 문제를 이야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 문제가 없도록 살피고 노력해야 한다. “위기가 발생한 것이 창피한 것이 아니라, 그 위기를 관리하지 못한 것을 스스로 창피해” 해야 맞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강원도 강릉 산불 현장을 찾아 밤샘 진화 작업에 투입된 소방관들을 격려하고 있다. 뉴시스

넷째, 대통령이 곧 재난을 관리한다. 대통령에게 침몰하는 선박을 직접 손으로 끌어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원전사고나 지진을 몸으로 막아내라는 것도 아니다. 어느 할리우드 영화처럼 대통령이 직접 전투기를 몰고 날아오는 운석에 몸을 날리라 말하는 것도 아니다.

기업 위기관리에서도 대표나 오너가 빠져있으면 성공 가능성이 극히 낮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위기관리는 ‘사람’이 하기 때문이다. 이는 깊은 의미가 있다.

만약 위기관리가 시스템이라는 것이 알아서 하는 것이라면, 로봇이나 기계들이 맡겨진 일을 해 관리할 수 있는 것이라면, 기업의 대표나 국가의 대통령이 위기를 관리한다는 개념은 빛을 잃을 것이다. 하지만 기업의 위기나 국가의 재난이나 공히 사람이 관리하는 것이기에 대표, 오너, 대통령의 ‘관심과 관여 그리고 관제’가 매우 중요한 실제 역량으로 발하게 된다.

재난시 일선에서 “이건 이래서 어렵습니다” 하는 보고를 들은 대통령은 해결의 실마리를 줄 수 있다. 오히려 “할 수 있는 방법이 뭡니까?”라고 물어볼 수도 있다. 그래야 재난을 관리하는 일선에서는 “이렇게 이렇게만 지원된다면 할 수 있겠습니다”는 긍정형 보고가 가능해진다. “그건 왜 안 되는 건가요?” “그건 누가 해서 그렇게 문제가 된 건가요?”라고 묻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기업 위기나 국가재난관리에서나 발생 초기부터 대표, 오너, 대통령이 관심을 가지고 관여해 해결책을 같이 찾아 관제하며 지원 조치했는데도 실패했다면, 그건 사람의 힘으로 애초 관리가 불가능했던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 정도가 되면 누가 잘했고 잘못했느냐는 논란의 주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그 반대이기 때문에 항상 발생한다.

마지막 다섯째, 국민이 재난을 관리하는 일선이다. 손가락질 하는 것은 재난관리가 아니다. 컨트롤타워가 문제라며 욕하는 것도 재난관리가 아니다. 실패했으니 VIP가 책임을 져라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재난관리는 일선에서 국민이 먼저 해야 성공할 수 있다.

한 역사학자는 우리의 역사는 정부에 의지해 국난을 극복한 경우보다 국민들이 스스로 일어나 외부의 적과 맞서 싸우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 극복한 경우가 더 많다고 이야기한다. 국가재난관리 관점에서도 국민들의 그런 관심과 참여는 매우 중요한 핵심 역량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중요한 생명과 안전은 일차적으로 누구의 것인가? 국민의 것이고 내 자신의, 가족의 것이다. 당연히 국가재난관리의 중심은 내 자신이고 우리 가족이 되어야 한다.

만약 우리 가족이 사는 동네가 자주 침수되는 지역이라면 홍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사전 조치들에 스스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 관심들이 모여 지역 차원에서 홍수 피해를 상당수 감소시킬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홍수가 발생한다면 우리 가족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생각해 놓아야 한다. 비상식량에 대해 알아보고 피난 장소와 장비들을 준비해 놓는 것이 우선이다.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키고 주말에는 피난을 가보는 연습도 해보자는 거다. 준비된 쉘터에서 일정 기간 생활하는 방식도 알아봐야 한다. 서로 지켜야 할 예의와 공동생활 규칙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맞다.

국민 스스로 ‘만약에?’라는 생각을 하면서 국가재난관리 부처의 체계적 노력에 부응해야 한다는 말이다. 오천만 국민들이 항상 생활 주변에서 ‘재난관리 마인드’를 지니고, 스스로 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와 연습이 완료돼 있다면 국가재난관리의 성공률은 한층 높아질 수 있다.

그것이 전제된 채로 국민들은 국가재난관리에 대한 정부의 준비 수준과 역량을 지속적으로 묻고 확인해야 한다.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인재(人災)’라고 부르는 국민적 습관을 이제는 버리자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정부는 항상 견제되고 감시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재난관리 부처 역시 국민의 가장 중요한 견제 및 감시 대상이어야 한다.

1073일 만에 물 밖으로 나와 전남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뉴시스

“잘 하세요”는 그만

마지막으로 새 정부가 경계했으면 하는 습관이 하나 더 있다. 관료 조직에서 윗사람들이 하는 가장 위험한 말이 있다면 그것은 “잘 하세요”라고 한다. 위로부터 대통령에서 국가재난관리 부처장까지 아래 책임 및 일선 직원들에게 “잘 하세요”하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대신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 하라”는 것인지 알려주는 게 맞다. 그냥 잘 하세요라고 하면 일선으로 갈수록 중구난방이 된다. 당황스러운 실행들이 여기저기 벌어진다. 재난관리가 이벤트가 된다. 당연히 일사불란은 있을 수가 없다. 과거 사례들만 봐도 “(나는 구체적으로 모르겠으니) 잘 하세요”라는 개념이 국가재난관리를 지배했던 것 아닌가 싶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필히 국가재난관리를 잘 아는 사람들을 써야 한다. 말 그대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고의 우선순위로 놓아본 경험이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무엇과 무엇을 해서 잘 해냅시다”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할 수 있게 해야 하고, 정확하게 책임을 지게 만들어야 한다. 일선에서도 구체적 지시에 따른 일사불란함을 갖춰야 한다.

국민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에게 신뢰를 부여해야 한다. 그들이 못하면 우리가 못하는 것이고 우리가 못하면 그 누구도 못한다는 생각을 갖고 평시부터 가깝게 협업해야 한다. 지금과 같이 국가재난관리는 다른 누군가의 몫이고 책임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함께 참여해야 한다.

새 정부가 새로운 조직을 갖춰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한다. 국가재난관리에 있어서도 그러한 자세와 철학이 있기를 바란다. 새로운 관심과 지원과 투자가 있기를 바란다. 새로운 역량과 시스템이 갖춰지기를 바란다. 국민에게도 새로운 공감과 참여의 기회가 생기기를 바란다. 이를 통해 한국에서도 성공적 국가재난관리라는 새로운 역사가 쓰이기를 바란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혜존 2017-06-09 11:21:11
처음으로본기사를보고 당황했습니다.
그동앗 지난 3년간 재난관련해서 제대로 이야기한 전문가는 못봤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대한민국이 아직 살아 있다는 큰기대와 희망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