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과 군함도
광복절과 군함도
  • 서영길 기자 (newsworth@the-pr.co.kr)
  • 승인 2017.08.15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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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토크] 역사적 사실 간과한 영화적 상상, 관객 외면으로 이어져

[더피알=서영길 기자] 영화 ‘군함도’의 흥행 페이스가 주춤하다. 개봉 초반만 해도 1000만 관객은 무난히 넘길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젠 손익분기점을 걱정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무슨 까닭일까.

시작은 좋았다. 영화 ‘베테랑’으로 이미 1000만 관객을 경험한 류승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황정민, 송중기, 소지섭, 이정현 등 스타군단이 캐스팅 되면서 제작 전부터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영화 군함도 스틸컷.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자본도 든든히 받쳐줬다. 순수 제작비만 220억원, 홍보·마케팅 비용까지 합쳐 총 260억원 가량이 이 영화 한 편에 들어갔다.

이 같은 흥행 요소에 힘입어 국내 영화 시장을 양분하는 CGV와 롯데시네마는 스크린 대부분을 군함도에 내줬을 정도로 기대감이 대단했다. 그리고 군함도는 개봉 하루만에 100만 관객을 쓸어모으며 예상대로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스크린 독과점 논란에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가볍게 다뤘다는 비판이 더해지며 바이럴 보다는 노이즈에 휩싸였고, 결과적으로 대중에 미운털이 박혔다.

영화 소재로 군함도를 내세웠지만 역사적 진중함은 간과한 채 시각적 볼거리에만 치우쳤다는 쓴소리가 나왔다. 특히 일제의 조선인 강제 징용으로 비롯된 비극의 공간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곱지 않은 시선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류승완 감독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무조건 일본이 나쁘다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려고 했다”는 해명을 내놨다. 역사적 사실도 중요하지만 영화적 상상을 봐달라는 완곡한 표현으로 해석됐다.

물론 ‘조선(인)은 선이고, 일본(인)은 악이다’는 단순 논리는 지금 시대에 맞지 않다. 특히 상업영화에서 이런 식의 전형적 구도는 작품을 식상하고 진부하게 만들 수도 있다.

영화 군함도 장면(위)과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추모대행진.

하지만 군함도는 우리 역사의 뼈아픈 상징이다. 당시 피해자가 실존함에도 일본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조차 받지 못한 비통한 현장이기도 하다. 72년 전 지옥 같은 섬에 갇혀 청춘을 바치는 것도 모자라 목숨까지 잃어야만 했던 조선인 강제 노역자들에게는 고통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이런 민감한 역사적 배경을 두고 사실과 동떨어진 영화적 허구를 버무려 놓으니 재미 대신 불편함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같은 기간에 개봉한 ‘택시운전사’라는 영화가 있다. 이 또한 우리 근현대사의 비극적인 역사를 다뤘지만 서사적 정당성을 담보함으로써 군함도와 차이를 나타냈다.

군함도에 비해선 스케일도 작고 캐스팅도 화려하지 않지만 관객들이 역사적 사실에 공감하면서 벌써 800만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다. 군함도가 2000여개의 스크린을 확보했으면서도 현재까지 640만여명의 관객 동원에 그친 것과는 대조적이다.

군함도는 개봉 당일 당시 징용 생존자인 이인우옹과 최장섭옹이 가족과 함께 단체 관람을 한 바 있다. 이들 두 노인이 자신들의 경험과 다른 영화 속 조선인들의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나마 위안이라면 군함도 개봉으로 인해 일제로부터 독립해 ‘빛을 되찾은’ 광복(光復)이라는 의미를 깊게 되새기는 72주년 광복절이 되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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