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지 않는 ‘살충제 계란’ 공포, 정부소통은 이래야 한다
가시지 않는 ‘살충제 계란’ 공포, 정부소통은 이래야 한다
  • 유현재 (hyunjaeyu@gmail.com)
  • 승인 2017.08.25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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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재의 Now 헬스컴] 반복되는 건강·보건 이슈, 사회적 혼란 최소화하는 전략적 대응 필요

[더피알=유현재] 요즘 미디어를 장식하는 건강 관련 최대 사안은 단연 ‘살충제 계란’이다. 밥상에선 계란이 찾기 어려워졌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계란이 사용되는 가공 음식물 또한 기피 품목이 된 경우도 관찰된다. 우리보다 앞서 논란이 불거진 유럽과 비교해 국내 계란은 문제가 없다고 단언했던 식약처장의 발언은 이미 공염불이 된지 오래고, 성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나라 각지에서 판매되는 계란에서도 일정 성분의 살충제가 검출됐다는 이야기도 속속 전해졌다.

살충제 계란 파동이 연일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이 계란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하루에도 몇 개씩 계란을 소비하던 대중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계란 껍질에 표기되어 생산자와 생산지, 그리고 안전검사 등에 활용될 것이라고 의심의 여지 없이 믿었던 난각코드마저 엉터리 투성이라는 보도가 전해지면서 혼란은 분노와 허탈로 바뀌었다. 관련 뉴스가 최소 일부라도 진실이라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가늠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벌레를 죽일 목적으로 만든 살충제가 뿌려진 계란을 먹어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놀라움과 짜증 그리고 어이없음의 연속이었으나, 식생활에서 계란 섭취를 완전히 중단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후속조치로써 정부의 명쾌한 발표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관계 기관의 구분짓기·떠넘기기, 혼란→분노

하지만 번갈아 등장하는 정부기관의 수장과 담당 관리들은 누구 하나 똑 부러지게 의문점을 해소해주지 못했고, 건강·보건의 혼란 상황에서 단골로 발견되던 책임과 권한에 대한 구분짓기와 떠넘기기가 여지없이 재연되고 있다.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농식품부가 해결할 사안이라든가, 식약처의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든가 등의 발언이 국민에게 황망하게 전달된 것이다.

사태 수습에 미숙함을 보이고 있는 기관장의 거취에 대해 총리가 고민한다는 소식, 국회에 나와 작금의 상황에 대해 원론만을 반복하는 책임자들, 국민 건강에 직결된 사안조차 정치 쟁점화하려는 인사들의 발언 등은 뭐 하나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지 않고 불안만 중첩되고 있을 뿐이다. ▷관련기사: ‘계란 불똥’ 맞은 식약처, 위아래로 ‘곤혹’

대통령과 총리가 식약처와 농식품부의 중복발표 등이 국민에게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있고 얼마 안 되어, 두 기관은 외부 전문가 등이 실행한 조사결과를 함께 발표하기에 이른다.

결론은 국내에서 그동안 유통되고 최근까지도 시중에 팔린 계란에 살충제가 가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건강을 중대하게 위협할 정도로 위험하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피프로닐과 비펜트린 등 살충제 성분이 가해진 계란을 ‘평균 이상으로’ 과도하게 섭취한다고 해도 건강에 위해한 수준은 아니라고 발표했다. 또한 살충 성분이 계란에 의해 섭취된다고 해도 길지 않은 시간에 몸 밖으로 배출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차관과 최성락 식품의약품안전처 차장이 지난 21일 살충제 계란 유통량 추적조사와 인체 위해성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뉴시스

하지만 관계 부처의 이 같은 발표 후에도 다수의 미디어는 조사결과의 팩트(fact)를 전하면서도 대중들의 우려가 덜해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언론인은 정부는 아직도 국민들이 무엇을 걱정하고 염려하는지, 어떤 점에 의해 당혹하고 분노를 느끼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며, ‘위기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이 안 보인다는 논평을 전하기도 했다. 유해 가능성과 관련해서도 일부 전문가들은 해당 조사가 만성독성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급성독성 위주로만 진행돼 결과를 전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밝히고 있기도 하다.

먹거리 공포시 소통 체크리스트

필자가 위기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는 아니지만 대중이 먹거리 혹은 건강 관련 사안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상황에서 정보원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소통 수행에 있어 체크리스트로써 활용 가능한 원칙들이기에 현 시점에서 제언해보고자 한다.

제주시 조천읍 모 영농조합법인 저장창고에 살충제 비펜트린 성분이 검출된 '08광명농장' 생산분 계란이 폐기되고 있다. 뉴시스

첫 번째는 대중이 정확한 사태파악을 할 수 있는 빠르고 명료한 브리핑이다. 이 과정을 통해 정보원은 투명성(Transparency)을 인정받을 수 있고, 투명성은 대중의 마음 판에 생성되는 신뢰(Credibility)의 중요한 필요조건이 된다.

발생한 사실에 대해 ‘폐쇄적이고 다중적인’ 단계(Layers)를 가동해 은폐하려 하지 않았음을 반드시 소통해야만 한다. 불합리한 상황이 발견된 직후 책임 있는 주체로서 선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사태가 만만치 않았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잘못은 했지만 해결하려는 의지가 명확해 보이면, 대중은 그 순간부터 피아(彼我)의 경계를 허물기 시작한다. “내 편이기는 하네”라는 반응이 나오면 최선이다.

두 번째로 정보원이 명확하게 설정해야 할 사항은 국민이 본 사안에 대해 누굴 비난해야 하고, 결국엔 또 누굴 믿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주체/대상(Counterpart)이다. 한껏 격앙된 사람들은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욕하고 미워할 상대, 그렇지만 결국엔 또 기대야 할 상대를 원한다. 쉽게 말해 애증의 대상이 필요하다. 대중은 특정 사건에 대해 분노를 쏟아내지만, 가장 중요한 책임자가 안 나오거나 모호한 상황에서는 더욱 큰 짜증과 화를 표출하기 마련이다.

상당수의 건강사안은 얄궂게도 복수의 정부기관이 묘하게 연결돼 있다. 살충제 계란에서도 회자되었듯, 계란의 생산단계는 농식품부 소관이며 계란의 유통 및 소비는 식약처 영역이었다. 이 때문에 사태 초기 농식품부와 식약처는 기자들에게 각각의 자료 제공과 함께 책임에 대한 선긋기를 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사실 기관 입장에서는 당연한 매뉴얼일 수도 있겠지만 일반 국민들 입장에선 부처가 달라도 ‘정부’로 귀결될 뿐이다. 이는 결국 관련 기관들이 합의하거나 상급기관이 국민의 카운터 파트를 일원화시켜야 하는 사안임을 시사한다. 국민은 누가 뭘 담당하고 책임지든 큰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여유도 없다. 그저 사태가 신속하게 해결되길 바랄 뿐이다.

세 번째는 전문성(Professionalism)에 대한 사항이다. 대중은 건강 관련 혼란이 발생할 경우 해당 분야 지식과 경험을 고루 갖춘 정보원이 등장하기를 갈망한다. 화도 나고 걱정도 태산이지만, 결국 사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궁금증을 풀어줄 전문가를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다.

특정한 전문가 혹은 전문가 그룹에 대한 선택은 대단히 합리적이고 실제적이어야 한다. 일정 부분 ‘전략적’일 필요도 있다. 이번 살충제 계란 관련 조사결과가 발표된 다음, 해당 조사를 진행한 전문가의 견해는 여타 관련 전문가들에 의해 높은 수준의 비판을 받았다. 곱씹어야 할 부분이다.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살충제 성분이 적힌 계란 모형을 들고 '살충제 계란먹인 대한민국 전현직 책임자' 고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네 번째는 책임성(Responsibility)에 대한 결단이다. 단순한 희생양 차원이 아니라, 본 사안과 관련해 업무상 가장 오류가 많았던 주체에 대해 문책 등을 과감하게 진행하는 것도 고려돼야 한다. 물론 사태의 진정과 해결을 우선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책임을 묻는 일에 대한 한시적 유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유보 또한 정확하게 알려야 하며, 내부적 기강확립 혹은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의지천명의 중대한 시그널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다섯 번째는 향후 계획(Plan/Vision)에 대한 안내이다. 이는 당분간 정기적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높은 대국민 발표에서 필수적으로 포함돼야 하는 콘텐츠이다. 향후 벌어질 상황, 정부의 계획된 대처 방안 등에 대한 안내인 것이다. 이는 담당 기관 혹은 정부 전체가 사태의 본질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으며, 최선의 수습 및 재발 방지를 위해 비전을 가지고 있음을 국민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대목에서 국민이 일정 부분 공감하게 되면, 국민들은 지원(Support)의 단계로 진입하기 마련이다. 벌어진 상황에 대한 비난도 중요하지만 일단은 전 사회적으로 ‘한 편이 되어’ 해결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며, 그동안 증발했던 신뢰가 조금씩 생길 수도 있는 순간이 된다. 물론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모색하겠다”는 식의 말잔치는 지양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진정한 사과(Sincere Apology)를 잊으면 안 된다. 우리 정서상 소통의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사과의 모습을 보여야겠지만, 동시에 잘못한 사항을 적확하게 인정하고 일말의 말 돌림 없이 담백하게 사과하는 순서를 가져야만 한다. ‘잘못했다’라는 말 대신 “유감이다” “심심한 사과” “안타깝게 생각함” 등은 진솔함과는 거리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지겨울 정도로 계속 잘못했음만 반복하는 것도 효과적이지 않다. 겸손함이 지나치면 신뢰와 의지함(Relying on)에 흠집도 나고, 지질함(?)도 전달하기 때문이다.

메르스 사태 때도 그랬고 해마다 찾아오는 각종 전염병 등 다양한 건강·보건 사안에 있어서도, ‘소통’의 기본이 결여돼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경우는 자주 있었다. ▷관련기사 바로보기 상기 6가지 원칙들의 핵심은 결국 역지사지(易地思之)다. 아주 평범한 국민의 한 사람이 되어보면 가려운 부분에 대한 파악은 쉽다. 향후 건강 관련 소통에 있어 진솔하고 전략적인 모습이 더욱 나타나길 기대한다.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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