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블리시스의 국제광고제 불참선언, 그 배경과 의미
퍼블리시스의 국제광고제 불참선언, 그 배경과 의미
  • 신인섭 (1929insshin@naver.com)
  • 승인 2017.09.14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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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섭의 글로벌PR-히스토리PR] 디지털 환경 속 ‘진짜 창의성’이란?

[더피알=신인섭] 올해로 64회째를 맞은 세계 최대의 광고제 칸 라이언즈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Cannes Lions International Festival of Creativity, 편의상 칸광고제로 표기)에서 ‘폭탄선언’이라 할 만한 사건이 일어났다. 130개국 8만명의 사원을 거느리며 지난해 142억8000만달러(한화 약 16조4200억원)의 수입을 올린 세계 5대 광고회사 퍼블리시스그룹이 내년에는 칸을 포함한 모든 국제광고제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이다.

출처: 칸 라이언즈 공식 홈페이지

자세한 숫자는 없으나 퍼블리시스가 올해 칸광고제 수입에 기여한 바는 약 1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니 퍼블리시스의 선언이 주는 영향은 대단했다. 칸광고제가 한창 무르익기 시작하던 때 6월 중순 세계 광고, PR, 마케팅 분야 전문지들은 온·오프라인 할 것 없이 앞다퉈 헤드라인 기사로 관련 소식을 전달했다. 가장 놀란 것은 해당 사실을 전혀 모르고 칸에 간 수백명의 퍼블리시스 계열 광고회사 직원들이었다.

세계 광고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 발표를 한 사람은 지난 6월 퍼블리스시그룹 회장이 된 아서 사둔(Arthur Sadoun)이었다. 퍼블리시스는 6월 20일자 보도자료를 통해 관련 내용을 공식화했고, 이틀 후 사둔 회장은 전 세계 사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 일부는 다음과 같다.

“칸광고제도 이제 마감이 다가옵니다. 중대한 일이 있은 한 주였음을 여러분 모두 동의하리라 믿습니다. (…) 물론 이번 주 가장 큰 뉴스는 우리의 마르셀(Marcel) 발표였습니다. 인공지능(AI)과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으로 작동하는 세계 최초의 전문 어시스턴트(Assistant)가 마르셀입니다. 여러분이 많은 질문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주가 다 가기 전에 마르셀에 관해 중요한 몇 가지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사돈 회장이 언급한 마르셀은 130개국에 흩어져 200가지 역할로 분류된 자사 직원들을 최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일종의 광고주를 위한 플랫폼이다. 특정 국가·지역의 회사가 퍼블리스에 업무를 의뢰했을 때, 8만명의 직원 중에서 그 일을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다. 말은 간단하나 많은 시간과 돈이 소요되는 프로젝트임에 틀림없다.

2018년 국제광고제 불참을 예고한 것은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을 마르셀에 투자하겠다는 의미다. 정확히 얼마를 절약하는 것인지 밝히진 않았지만 수천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측된다. 마르셀의 최종 목적은 퍼블리시스가 맡은 고객사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즉시 찾아내서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창의적으로 하는 것이다.

화려한 칸의 명암

한국 사람들에게는 프랑스 칸은 영화제 개최지로 익숙하다. 그런데 광고·PR 등 커뮤니케이션을 업으로 하는 이들에게는 매년 6월 개최되는 칸광고제로 잘 알려진 곳이다. 1954년 유럽의 극장광고영화업자들의 모임으로 시작된 이 광고제는 올해 64회를 맞아 지난 6월 17일부터 23일까지 일주일 간 열렸다.

퍼블리시스그룹의 탈퇴를 헤드라인으로 다룬 6월 21일자 애드버타이징에이지 기사. 필자 제공

올해 출품작은 4만1170개로 2016년에 비하면 4%쯤 줄었다. 주 원인은 인쇄매체와 출판 부문에서의 감소 때문이다. 그럼에도 칸광고제는 가장 출품이 많은 세계 최대의 광고제이며, 가장 많은 참가자들이 몰리는 가장 화려하고 가장 긴 축제이다. 칸광고제의 라이온즈는 세계 광고인들이 선망하는 상이기도 하다.

또한 광고제 기간 동안엔 여러 세미나와 회의도 열리는데 각계의 저명인사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낸다. 수년 전에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참석했고,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경우 재직 시절 칸을 다녀가기도 했다.

유명세를 입증하듯 칸광고제는 가장 사치스럽고 비싼 행사로 꼽힌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아시아국가의 경우 항공료와 숙박비를 포함한 참가비가 1인당 최소 8000달러에서 1만달러 (920만~1150만원)에 이른다.

출품료도 다른 광고제보다 훨씬 비싸다. 전체 24개 카테고리 가운데 16개 부문의 출품료가 작품당 515파운드(약 67만원)이다. 크리에이티브 효과 부문의 경우 작품당 출품료가 약 175만원에 달한다. 입장료는 다양한데, 모든 행사를 제대로 참관하려면 3452달러(약 397만원)의 클래식 패스(Classic Pass)가 필요하다.

칸광고제 주최사인 영국의 어센셜(Ascential)의 경영 실적을 보면, 2017년 행사 수입은 6290만파운드로, 우리 돈으로는 945억원에 이르는 거액이다. 내역을 보면 총 수입의 42%는 입장료(패스 구입비), 41%가 출품료다. 이 수입의 상당한 부분은 세계 광고계를 지배하고 있는 5~6개 거대 다국적 광고그룹에서 출품비, 입장료 및 기타 비용으로 내는 돈이다. 그러니 칸광고제에 몇몇 대형 광고회사가 미치는 영향은 대단할 수밖에 없다. 더 들어가면 그 뒤에 연간 수십억 달러의 광고판촉비를 투자하는 다국적 기업인 광고주가 있다.

WPP 마틴 소렐의 조언

퍼블리시스의 불참 발표가 나오자 칸광고제는 온통 그 이야기로 일대소동이 일어났다. 수년 전부터 나름대로 비판적 견해를 피력해왔던 세계 최대의 광고회사 그룹인 WPP의 마틴 소렐 회장도 거들었다. 그는 PR전문 매체인 홈즈리포트(Holmes Report)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이곳(칸)이 적절한 장소이고 제대로 구조가 되어 있는지, 또한 너무 비싸지는 않는지가 저의 궁금한 점입니다. 광고 산업은 지금 효과적이고 효율적이어야 하는 만큼 더 일을 잘 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세계 2위의 광고주인 유니레버 마케팅 책임자인) 키이스 위드(Keith Weed)가 인터뷰에서 한 말, 소액다산(少額多産) 즉 비용은 더 줄이고 생산은 더 늘려라(More for less)는 말을 아실 겁니다. 칸광고제는 이 말을 좌우명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중략) 칸에 온다는 것은 벅찬 일입니다. 뉴욕, 런던, 파리 등 더 (접근이) 편리한 장소도 있습니다. 소수의 사람이 아니라 더 광범위한 다수의 사람들이 올 수 있을 것입니다.“

WPP그룹은 칸광고제 참가자를 지난해 1000명에서 올해 절반인 500명으로 줄였다. 광고주와 관련 없는 사람을 배제한 결과였다. WPP는 칸광고제에 첫째 혹은 두 번째로 많은 작품을 출품하며 그에 상응해 많은 직원들을 참가시키는 그룹이다.

그러나 소렐 회장은 퍼블리시스가 내년 광고제 전면 불참을 선언한 것에 대해선 반대의 뜻을 피력했다. 문제가 있으면 관련된 회사와 의논해서 해결해야지 무조건 버리고 떠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소렐 회장에 비해선 우회적 표현을 했지만 프록터앤갬블(P&G)에서도 유사한 반응이 나왔다. P&G의 연간 총광고비는 100억 달러를 넘어서는데, 이는 세계 10위인 한국 광고비보다도 많은 금액이다.

세계 최대 광고주 P&G의 반응

미국 나아가 세계 최대의 광고주인 P&G의 브랜드 총책임자인 마크 프리처드(Marc Pritchard)는 퍼블리시스 회장의 폭탄선언을 들은 뒤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번 일은 칸광고제 소유주에게는 경종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창의성을 집중적으로 보기 위해서 여기에 옵니다. 올해가 15회째입니다. 많은 것을 얻어 갑니다. 여기서 최고의 크리에이티브를 보고 크게 고무됩니다. 칸광고제 주최자는 한발 물러서서 이런 것을 보아야 합니다.”

프리처드에 따르면 P&G는 칸에 간 김에 협력사인 여러 광고회사 관계자들을 만난다고 한다. 세계 최고의 크리에이티브를 대하는 흔치 않은 기회로 보고 필요한 영감을 얻기 위해서다.

한편, 프리처드는 올 초 인터랙티브 광고국(IAB) 연례회의에서 광고회사가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에서 일체의 ‘낭비’를 없애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 바 있다. 그의 30분 연설은 미국 광고계를 놀라게 할 만큼 힘 있는 것이었다. 디지털 미디어 시장에서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관행을 연내 뿌리 뽑겠다고 했다. ▷관련기사: 세레나데로 시작한 광고계의 폭탄선언 또한 “크리에이티브에 집중하지 않는 모든 것을 삭제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P&G는 지금까지 칸광고제에서 라이언즈상을 많이 받은 회사이며, 퍼블리시스 산하 광고회사 작품도 상당수 있다.

급변하는 세계 광고 환경

세계 최대 광고주와 광고회사 그룹 경영자의 이같은 비판적 소견에도 여전히 칸광고제를 적극 지지하는 사람도 많다. 특히 광고제작에 종사하는 크리에이터들은 칸광고제의 절대적인 신봉자인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디지털 시대에 광고 환경은 너무도 급변했다.

스마트폰으로 무장한 소비자를 공략하기 위해선 전통 크리에이티브뿐만 아니라, 데이터 분석가와 소셜미디어 전문가가 필요해졌다. 디지털에선 광고도 프로그래매틱(Programmatic)으로 구매하는 세상이고, 어느덧 광고 산업에는 IT회사와 함께 딜로이트, 액센츄어 같은 컨설턴트 회사가 신흥세력으로 부상했다.

세계 10대 광고회사 리스트에 3개의 경영 컨설턴시 이름이 나타난 것은 달라진 상황을 대변한다. 뿐만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 구글과 페이스북은 물론 스냅챗, 트위터 등과 함께 수많은 IT 관련회사가 칸광고제에도 얼굴을 보이는 실정이다. 이들은 엄청난 돈을 써가며 칸 해변가 요트를 빌려 광고주들을 유치하고 있다.

올해 칸광고제 국제회의장 앞에 스냅챗이 설치한 거대 회전 관람차. 필자 제공

칸의 밤은 춘향전에 나오는 주지육림(酒池肉林)과 비슷한 장소가 됐다. 중요한 크리에이티브나 세미나 장소보다 프랑스 포도주 로제가 흘러넘치는 요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광경이 나타나고 있다. 칸광고제 행사의 중심 장소인 국제회의장 팔레(Palais) 앞에는 올해 거대한 회전 관람차가 등장했다. 스냅챗이 대여한 것으로 이것이 주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좋든 싫든 시대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반짝이는 크리에이티비티가 중시되던 광고계에서 테크사와 경영 컨설턴시의 대두는 이제 엄연한 현실이다.

시카고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광고·마케팅 전문지 애드버타이징 에이지(Advertising Age)는 지난 6월 말 칸광고제 특집호를 발행했는데 그 첫 페이지는 퍼블리시스 회장의 사진과 함께 ‘칸 해변가 모래 위에 그어 놓은 선, 이제 광고 산업은 어느 쪽에 설까를 결정할 때(LINE IN THE SAND AT CANNES AND NOW THE INDUSTRY HAS TO PICK SIDE)’라는 의미심장한 헤드라인이 장식했다.

칸 해변가 사진 위로 '우리는 너를 증오한다'는 말이 쓰인 애드버타이징에이지 기사. 필자 제공

그와 동시에 ‘이번 주 비디오에 외치는 소리 : 칸 닫아 버려’라는 헤드라인 기사와 함께 ‘우리는 너를 증오한다(WE HATE YOU)’라는 말이 쓰인 칸 해변가 사진이 실렸다.

퍼블리시스의 철수 발표는 이렇듯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칸광고제를 주최하는 영국의 어센셜은 국제회의 전문 회사이다. 그들은 부랴부랴 자문회의를 소집했는데 사실상 돈주머니 끈을 쥐고 있는 다국적 광고주를 위주로 칸 시장도 명단에 있었다. 회의 결과는 아직 발표되지 않고 있다.

퍼블리시스가 던진 교훈

올해 칸광고제에서 ‘평생 공로상’이라 할 만한 상을 받은 오스트레일리아 광고회사 드로가5(Droga5)의 창립자이자 회장인 데이빗 드로가는 멋지고 뜻 깊은 명언을 남겼다. 그는 칸광고제에서 그랑프리도 16번이나 수상한 사람이다.

“저는 사물(광고)의 창의성을 가지고 물건을 팔아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찾아낸 (창의력) 천재를 남이 보지 못하면 막 화를 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가 광고주라면 창의적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사지 않겠습니다. (…) 사물이 옳고, 사업에 도움이 되고, 또한 (기업이)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시켜야만 사겠습니다.”

일생을 광고회사에서 창의적 광고를 만드는 일을 해온 사람의 고백 같은 말이다. 칸광고제는 수년 전 행사 이름을 ‘창의성 축제(Festival of Creativity)’로 바꾸었다. 퍼블리시스 불참의 의미를 간단히 풀이하면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에서 ‘진정한 창의성’이란 ‘크리에이비티+데이터)’일 것이다. 그리고 마르셀은 새로운 크리에이티비티를 찾는 몸부림이라고 보면 퍼블리시스의 선언은 폭탄이 아니라 보약이 될 수 있다.

신인섭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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