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마케팅의 새 루트, e스포츠를 보다
글로벌 마케팅의 새 루트, e스포츠를 보다
  • 서영길 기자 (newsworth@the-pr.co.kr)
  • 승인 2017.10.30 12: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확실한 팬층 기반 홍보효과 가져와…침체기 딛고 올림픽 종목될까

[더피알=서영길 기자] “e스포츠가 올림픽 종목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전병헌 국제e스포츠연맹 회장(청와대 정무수석)이 e스포츠의 올림픽 종목화를 염원하며 자신의 SNS에 밝힌 일성이다. 이제 e스포츠는 게임이라는 산업의 울타리를 넘어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까지 그 위상을 높이려는 모양새다. 이에 발맞춰 글로벌 마케팅의 새로운 루트로도 부상하고 있다.

독일에서 매년 열리는 유럽 최대 규모의 게임쇼인 '게임스컴(gamescom)' 모습. 출처: flickr

스포츠 마케팅은 기업들에게 한 번쯤 시도하고픈 분야다. 제약이 많은 국내 미디어 환경에서 자사 브랜드나 제품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광고와 달리 스포츠 마케팅은 부지불식 간 소비자들에게 어필해 거부감을 최소화한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돈이다. 프로스포츠 구단을 소유해 운영하기까지는 그 규모가 만만치 않다. 국내 인기 있는 스포츠 팀을 대부분 대기업이 스폰하는 이유다.

이런 측면에서 e스포츠가 기업들의 마케팅 영역으로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고 있다. 여타 프로스포츠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돈을 들여 팀을 꾸릴 수 있는데다, 쏠쏠한 마케팅 효과도 올릴 수 있다는 기대감이 반영되면서다. 게다가 밀레니얼 세대에게 확실한 브랜드 각인 효과와 세계 대회가 많은 e스포츠 특성상 자연스레 글로벌 마케팅을 할 수 있어 매력적이다.

가성비 좋은 밀레니얼 세대 공략법

우선 프로스포츠 팀이면서도 운영에 큰 투자가 필요 없다는 점은 아직까지 성장기로에 있는 국내 e스포츠만의 장점으로 꼽힌다. 가령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야구에 한 기업이 쓰는 연간 운영비는 보통 400억원 선으로 알려져 있다. 이 돈을 1년 마케팅을 위해 선뜻 쏟아 부을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그에 비해 e스포츠 구단을 보유한 기업이 지난해 사용한 평균 운영비는 16억원 정도가 전부다. 프로야구단 운영비에 견줘 4% 수준에 불과하다.

물론 대기업이 운영하는 프로야구와 소수의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의 네이밍 후원이 대부분인 국내 e스포츠 규모를 단순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상대적으로 e스포츠가 얼마나 진입장벽이 낮은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e스포츠는 프로스포츠에 필요한 시스템을 충실하게 갖추고 있다. 바로 이 점이 e스포츠의 또 다른 장점이다.

e스포츠는 스포츠에서 필수인 저변 확대가 이미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수 수급이나 팬층을 확산시키는 토대가 마련돼 있는 것이다. 국내에 전국적으로 분포한 PC방은 대략 2만여개로, 스타크래프트로 전 세계를 호령했던 프로게이머 임요환, 홍진호, 이윤열 등도 동네 PC방에서 실력을 키운 선수들이다.

스타크래프트에서 화려한 플레이를 보이며 e스포츠 흥행의 견인차 노릇을 한 임요환(왼쪽)과 이윤열. 뉴시스

이와 함께 프로리그 등 e스포츠 대회도 꾸준히 열릴 뿐 아니라 케이블방송인 OGN, SPOTV 게임즈에서 중계방송도 이뤄진다. 특히 넥슨 아레나, 서울 OGN e스타디움 등 전용 경기장도 8군데가 만들어지는 등 e스포츠는 국내 손꼽을 수 있는 프로스포츠 종목으로 발돋움했다는 평가다.

확실한 팬층을 기반으로 적지 않은 홍보효과를 누리지만 천문학적 운영비용이 필요 없는 e스포츠에 기업들이 눈독을 들이는 배경이다. 이처럼 짧은 기간 내에 기본적인 인프라가 만들어진 국내 e스포츠 산업은 글로벌 시장도 호령하며 ‘한국=e스포츠 종주국’이라는 명예를 얻었다.

스타와 O2O로 커진 판, 잇단 파동에 급랭

국내에서 게임 시장이 커진 중심엔 역시 ‘스타크래프트’가 있다. 미국 블리자드사에서 개발한 게임이지만 우리나라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국내 e스포츠 태동의 기폭제가 됐다. 화려한 플레이를 앞세운 스타플레이어도 이때 속속 등장하며 국내 e스포츠는 양적·질적으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지금은 예능에서 큰 활약을 펼치고 있는 캐나다 출신의 기욤 패트리도 당시 국내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에 소속돼 뛴 프로게이머고, 프랑스에서 건너 온 베르트랑도 국내 한 프로팀에 소속돼 활약한 바 있다. 국내외 유명 선수들이 한데 모인 당시의 프로리그는 그야말로 다국적 리그로 발전, e스포츠 종주국의 면모를 과시했다.

또 비슷한 시기 ‘테란의 황제’로 불린 임요환은 단기간에 프로게이머 최초의 억대 연봉자 반열에 오르는 등 e스포츠는 비즈니스적으로도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특히 지난 2004년 스타 프로리그 결승전이 열린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엔 단일 경기 10만 관중이 운집하며, 여타 프로스포츠를 뛰어넘는 관중 동원력도 확인시켰다.

이는 e스포츠의 인기나 영향력, 홍보효과에 대한 긍정적 시선이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기존에 부정적 측면이 강했던 ‘게임’이라는 이미지가 양성화되며 대중적 놀이문화로 인식되기 시작한 시기도 이쯤으로 볼 수 있다.

2004년 만들어진 SKT T1 구단도 e스포츠의 이런 가능성을 보고 창단된 경우다. SK텔레콤 PR팀의 정우용 매니저는 “T1팀의 창단은 10대 중심의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확보해 보고자 한 것이 주된 이유였다”며 “e스포츠는 기본적으로 온라인에 바탕을 두지만, 강력한 팬덤을 기반으로 오프라인에서도 대형 행사를 기획할 수 있는 O2O(Online to Offline) 기능도 있어 매력적이라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lol 캐릭터(챔피언) 중 피오라. 출처: lol 홈페이지

이와 함께 지금은 제일기획으로 운영권이 넘어간 삼성 갤럭시 구단은 e스포츠의 태동과 그 궤를 같이 할 정도로 이른 시기에 창단됐다. 2000년에 ‘삼성 칸’이란 구단명으로 출발한 삼성 갤럭시는 초기엔 스포츠 마케팅 차원이 아닌 삼성전자 내 게임콘텐츠 사업 중 하나였다.

삼성 갤럭시의 산파역을 맡았던 한 관계자는 “창단 초기만 해도 게임단에 대한 사내 인식이 좋지는 않았다”며 “그러다 삼성전자가 월드사이버게임즈(WCG)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e스포츠 판을 키우면서 게임단에 대한 인식과 마케팅에 대한 개념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기업들이 게임단을 만들며 e스포츠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는 오래가지 못했다. e스포츠협회와 블리자드, 케이블 방송사와의 중계권 파동(2007년)에 이어 연달아 벌어진 선수들의 승부조작 사건(2010년·2015년)은 잘나가던 e스포츠 시장을 급격히 쪼그라들게 했다. 젊음, 순수, 열정 등을 내세워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어필해왔던 e스포츠의 가치와, 돈에 얽힌 중계권 싸움과 승부조작 사건은 크게 상충되며 팬들에게 실망을 안겼다.

이후 악화일로를 걷던 국내 e스포츠 산업은 팬들의 외면 속 후원을 했던 기업들마저 하나 둘 떠났고 급기야 해체되는 팀들도 생겨났다. 2005년 여러 종목에 걸쳐 360여명이던 프로게이머는 10여년이 지난 시점에 늘기는커녕 2016년 기준 220여명으로 140여명이나 줄었다. 결국 지난해 10월 e스포츠협회는 성명서를 통해 스타크래프트2 프로리그의 운영을 종료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협회 측은 “지속적인 참가 팀 축소와 선수 부족, 리그 후원사 유치 난항, 승부조작 사건의 여파 등으로 인해 더 이상 프로리그를 유지할 수 있는 동력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사정을 언급했다. 이에 따라 스타크래프트2 팀을 운영할 때의 마케팅 효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된 국내 기업들도 대부분 팀 해체를 선언했다.

이런 여파로 2000년대 중후반만 해도 대기업 뿐 아니라 중견기업들이 여러 종목에 걸쳐 프로게임단을 운영하던 것에서, 현재는 삼성 갤럭시·SKT T1·KT 롤스터 등 3곳의 대기업만이 e스포츠 구단을 직접 운영 중이다.

게임 종목도 스타크래프트2에서 리그오브레전드(League Of Legends, 이하 LOL)로 무게 중심이 옮겨갔다. LOL 게임제작사(이하 종목사)인 라이엇게임즈코리아 윤영학 대리는 “정성적으로 비교했을 때 상금 규모나 대회 규모로 보면, 스타리그에 견줄 수 있을 정도로 LOL 리그가 크다”고 설명하며 “실질적으로 국내 e스포츠를 스타크래프트1에 이어 LOL이 이끌어 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 e스포츠협회로부터 정식종목으로 공인된 게임 중에서 기업의 후원이나 스폰서 타이틀을 달고 팀별 리그가 진행되는 프로리그는 LOL이 유일할 정도다. LOL 리그에 참여하는 기업은 총 18곳으로 삼성·SKT·KT는 기업에서 구단을 직접 맡고, 나머지 대부분의 팀들은 중소기업의 네이밍 후원이나 팀별로 직접 투자자를 유치해 스폰서십을 받는 클럽 형태다.

국경 뛰어넘는 문화 콘텐츠

현재는 침체된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e스포츠는 밀레니얼 세대들을 공략하기에 가성비 좋은 마케팅 수단이다.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써 e스포츠만큼 매력 있는 산업도 드물다. 실제 웹툰 서비스 업체인 배틀코믹스가 올 초 ‘팀배틀코믹 스’라는 팀명으로 LOL을 주종목으로 한 선수단을 꾸렸고, PC관련 제조업체들의 게임단 인수나 네이밍 후원 등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매년 조사해 내놓는 ‘2016 e스포츠 실태조사’를 보면, e스포츠가 발생시키는 직접적 경제효과 중 생산유발효과는 연간 1413억원 규모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부가가치 유발효과는 총 554억원 규모로 집계됐다. 현재 침체기에 있긴 하지만 미디어나 기업들이 왜 e스포츠에 뛰어들려는지 짐작 가능한 대목이다.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