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할머니는 ‘봉’?
할아버지 할머니는 ‘봉’?
  • 서영길 기자 (newsworth@the-pr.co.kr)
  • 승인 2017.11.20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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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도 따지지도 못하게 하는 꼼수마케팅

[더피알=서영길 기자] “늙어간다는 것의 불안을 노리는 사회.” 시니어 대상 꼼수마케팅을 비판하며 한 대학교수가 한 말이다. 몇몇 기업들은 광고를 하며 불리한 조건은 깨알 문구로 처리해 기만하기도 하고, 친근한 연예인을 내세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두 줄 것처럼 거짓된 신뢰를 강조한다. 노인들의 가장 큰 약점인 건강과 외로움을 파고들어 잇속을 챙기는 일도 있다.

노인들의 가장 큰 약점인 건강과 외로움을 파고들어 잇속을 챙기는 마케팅이 활개를 치고 있다.

한국사회가 급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인구폭발기에 해당하는 베이비붐(1955년~1963년 태생) 세대들이 노인층으로 편입되고 있는 이유가 크다. 하지만 이들은 과거 ‘뒷방 늙은이’ 취급 받던 노인들과 달리, 상당한 지적·경제적 능력을 갖춰 새로운 소비층으로 부각되고 있다.

빠르게 늘어나는 고령 인구가 소비 시장의 새로운 큰손이 되면서 이들을 겨냥한 마케팅 역시 교묘한 방법으로 진화하고 있는 추세다. 노인들의 주머니를 노린 일명 ‘떳다방(홍보관)’ 같은 전통적인 대면방식뿐 아니라 TV나 신문 등 공신력 있는 매스미디어의 광고·마케팅 영역에서도 불편한 흐름은 감지된다.

노인들이 젊은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꼼꼼하지 못한 점을 노리는 경우가 많다. 불리한 내용은 작은 글씨로 표기해 눈속임을 하는 ‘악덕상술’이나, 노인들의 공통 고민인 건강 등을 부각시켜 불안감을 조성하는 ‘공포마케팅’ 등이 대표적이다.

노인층을 겨냥한 꼼수마케팅의 피해는 수치에서도 잘 드러난다. 2015년 한국소비자원의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소비자의 77%가 악덕상술을 경험했고, 이 중 23.3%는 실제 피해로까지 이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같은 기관에서 지난 7월 내놓은 소비자 불만상담 내용을 보면 전체적으론 2012년 이후 불만 건수가 감소하는 데 반해, 60세 이상 고령 소비자 불만은 17.9%(2012년 3만1638건→2016년 3만7287건)로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대해 호남대 한혜경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시니어 관련 시장이 커지는 것과 비례해 이들의 피해나 불만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 교수는 “시니어 시장을 노리는 기업들은 그들의 불안 심리를 주로 이용한다”며 “일종의 공포마케팅인데, 외로움과 건강에 대한 불안감이 높은 어르신들이 집중 공략의 타깃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국노인복지단체연합회 임춘식 회장(한남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도 “시니어층의 연령대가 다양해지는 본격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며 실버산업이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며 “이런 이유로 (관련 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 시니어들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건강이나 요양, 장례문제 등 민감한 약점을 파고들어 꼼수마케팅을 펼치는 곳들이 많아졌다”고 진단했다.

그렇다면 노년층을 겨냥한 꼼수가 많은 제품은 어떤 것이 있을까. 이는 고령 소비자들이 불만이 있다며 소비자원에 접수한 상위 5개 품목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는데 이동전화서비스, 스마트폰, 치과, 상조서비스, 건강기능식품(2016년 기준) 등이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간 약간의 순위 변동만 있을 뿐 품목에선 큰 차이가 없다. 노인층을 타깃으로 한 꼼수마케팅이 해당 업종들에 몰려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대부분 건강이나 장례, 소통과 관련돼 있다는 점도 주목할 포인트다. 요컨대 건강에 대한 ‘두려움’이나 은퇴 이후 느끼는 ‘외로움’이 노인 대상 꼼수마케팅의 키워드가 되는 셈이다.

비극에 초점 맞춘 공포소구

상조서비스는 꼼수마케팅의 키워드를 복합적으로 사용한 케이스다. 대표적인 꼼수로는 친근한 연예인을 앞세워 회원에 가입하면 안마의자가 공짜라고 주장하는 광고가 있다. 안마의자로 건강을 챙기고 미래에 있을 장례도 준비하라 게 핵심 메시지다. 하지만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은 광고에서 애매모호하게 언급하거나 깨알 같은 글씨로 처리해 노인들로 하여금 인지를 어렵게 한다.

상조서비스는 꼼수마케팅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광고화면 캡처

상조서비스는 지난해 기준으로 60세 이상 노인이 소비자원에 접수한 피해구제 신청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또 공정거래위원회 상담센터에도 1년에 1만여 건의 관련 신고가 들어오는 등 악질적인 꼼수마케팅으로 불만을 사고 있다.

무료인 것처럼 광고하지만 실제로는 고객이 가입하는 상조상품에 안마의자 값을 포함해 판매하는 이른바 ‘끼워팔기’다. 쉽게 말해 상조회원비 따로, 안마의자 값 따로 월 할부금을 내야한다는 뜻이다. 끼워팔기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애매모호한 설명으로 정보 판단력이 떨어지는 노인들은 공짜 사은품으로 오인할 수 있어 문제다.

또 ‘지금 가입하면 반값’ 등의 광고도 상조회사들이 고령 소비자를 낚는 대표적 방법이다. 이 경우도 결국 기만광고에 해당하는데, 월 납입금이 반값이긴 하지만 돈을 내는 기간이 기존보다 갑절로 길다.

이와 함께 TV만 틀면 나올 정도로 봇물을 이루는 보험광고는 노인들의 불안감을 조장해 상품을 파는 공포마케팅의 대표 격이다. 나이가 들며 건강을 챙기려는 심리와 언제 닥칠지 모를 죽음과 병에 대한 두려움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수법이 주로 사용된다. 때론 자녀들에게 누를 끼치기 싫으면 당장 가입하라고 좀 더 자극적인 표현을 쓰기도 한다. 보험 가입으로 인한 이점보다 가입하지 않았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비극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런 식으로 우선 관심을 유도한 후 연예인 등 유명인을 등장시켜 자사 보험상품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개그 소재로도 많이 쓰였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유행어를 남긴 보험 광고도 비슷한 소구방법을 사용했다. 마냥 퍼줄 것 같이 표현된 이러한 보험광고에는 사실 함정이 숨어 있다.

예를 들어 주 계약에 대한 보험 혜택은 적극적으로 설명하지만, 정작 중요한 ‘갱신형’이라든지 ‘80세까지 보험료가 오를 수 있다’는 등의 메시지는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빨리 소개하거나 깨알 글씨로 고지하는 게 전부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인상폭이 커질 것이 자명하고, 얼마나 오를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보 판단이나 비교·분석 능력이 떨어지는 노인층들은 앞선 내용만 신뢰하고 보험을 가입하는 경우가 많다.

자식까지 들먹이며 불안감을 고조시키는 한 보험회사 광고. 광고화면 캡처

이동통신서비스도 노인 피해가 많은 업종으로 꼽힌다. 그 중 통신비를 절감해 정보 격차를 해소한다는 알뜰폰에서 피해가 심각하다. 싸다는 광고만 믿고 아무 필터링 없이 알뜰폰을 마련한 노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젊은 세대도 이해하기 어려운 계약 내용으로 인해 고령 소비자들은 정확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약정 불이행’과 ‘부당 요금 청구’ 등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실제로 지난 5년 간 알뜰폰 관련 피해자 중 60세 이상 고령 소비자는 무려 47.2%에 달한다. 피해 소비자 열 명 중 절반이 노인인 셈이다.

이처럼 많은 노인들이 꼼수마케팅에 속고 있지만 문제를 혼자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이며 피해를 키우고 있다. 임춘식 회장은 “노인들은 자신들이 어떤 피해를 입어도 자식들에게 폐를 끼칠까 염려되거나, 체면 때문에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이렇게 신고하지 않은 것까지 합하면 교묘한 광고로 피해를 입은 노인들의 사례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 전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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