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관리 위한 ‘독재’는 필요하다
위기관리 위한 ‘독재’는 필요하다
  • 정용민 (ymchung@strategysalad.com)
  • 승인 2018.02.26 09: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용민의 Crisis Talk] 비상시 과감한 의사결정, 평상시 훈련된 권한집중에서 비롯

[더피알=정용민] 독재(獨裁)라고 하니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위기 시 기업 내에는 어느 정도의 독재자가 있어야 관리에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원래 독재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개인 또는 집단이 모든 권력을 쥐고 독단적으로 지배하는 정치 형태’을 의미한다. 어원적으로 공화정 로마의 관직인 독재관(獨裁官, dictator)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독재관이라는 직책은 상설 관직이 아니라 전쟁이나 내란 등 비상사태에 기간을 한정해 정치적 권한을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제도였다. 말 그대로 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특수 직책이었다.

의사결정 과정에 독재가 존재하지 않는 기업의 경우 위기시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기업 위기관리에서도 이 독재체계와 독재관이라는 특수직책이 필요하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위기관리 매뉴얼에서 위기관리팀 또는 위기관리위원회의 장(長)을 명기해 놓고 그 역할과 책임에 대해 기술해 놓는다. 대체적으로 위기 시 모든 권한을 그에게 집중하는 방향이다. 빠르고 과감한 의사결정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평소 경영활동에서 이러한 독재의 의미가 살아 있는 기업은 적어도 위기 시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어려움은 피해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지 못한 기업은 위기를 맞닥뜨리면 리더십 분산으로 많은 고통을 받곤 한다. 경영에 참여한 다수에 의해 민주적 토론과 합의를 거쳐 차근차근 의사결정을 하는 습관이 베인 경우다. 이런 기업의 CEO는 위에서 말한 독재라는 개념이나, 위기 시 독재관으로서 역할에 별로 익숙하지 못하다.

자유에 따르는 문제들

위기가 발생한 직후에도 습관은 이어진다. 매뉴얼에 따라 위기관리위원회를 소집했음에도 매뉴얼에 명기돼 있는 신속한 의사결정을 도출하지 못한다. 위기관리위원회에 소속된 각 부서장들로부터 다양하고 구체적인 정보와 의견을 듣는 데 상당한 시간을 보낸다. 몇몇 부서가 대응 전략과 방식에 이견을 보이게 되면 그 쟁점을 잘 풀어내지 못한다.

외부 상황과 이해관계자들로부터의 요구는 계속 증대되면서 변화해 나가는데, 내부적으로는 그조차 쫓아가지 못한 채 내부 토론만 이어진다. 평시 의사결정 습관이 위기상황에도 그대로 이어지게 된 것으로, 이런 기업들은 대부분 위기 발생 후 첫 번째 초기 대응에 실패한다.

대표적으로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고 뒤늦은 실행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다양한 의견이 합의되기 위해서는 물리적 시간이 소요되는 법이다. 그러한 위기 시엔 다량의 물리적 시간은 사치다.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면 더 빨리 대응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는 현장에서 미리 준비했던 많은 것들에 대한 실행을 지연시키면서 이어지는 토론만큼 황당한 것이 없다.

위기시 강력한 리더십의 부재는 일선에서 그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대증적인 대응에만 매달리게 만든다.

이런 기업은 첫 대응에 있어도 적절치 못할 가능성이 높다. 장기간 토론을 거쳐 결정된 실행은 일반적으로 보수적이라는 특성이 있다. 이런 저런 다양한 실행의 문제들이 검토되고, 실행 했을 때 새롭게 제기될 수 있 것들을 하나하나 점검하기 때문에, 실전에선 김빠진 맥주와 같은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과감성이 희석된 실행이 많다는 의미다.

이렇게 의사결정에 있어 독재적 리더십이 없는 기업의 또 다른 문제는 초기 실행이 뒤늦고 적절하지 않았음에도 그 이유를 찾거나 개선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자신들이 모두 대응을 위한 토론에 참여했고, 그 길고 긴 토론을 거친 후 결정된 시점과 실행 내용에 다 같이 합의했기 때문이다.

다 같이 고안해 낸 실행의 시점과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이해관계자들의 비판에 스스로 동의하기 어려워하는 것이다. 내심 ‘우리도 나름대로 고민해 결정한 것인데, 그게 왜 비판 받아야 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당연히 개선이나 수정 실행에 대한 논의는 사라지게 된다.

의사결정 과정에 독재가 존재하지 않는 기업의 경우 매뉴얼에 명기돼 있는 최고의사결정권자의 역할과 책임도 매뉴얼상에만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대표이사나 수석부사장 같이 고위 직책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실질적 독재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구조 하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평시 누가 누구를 강제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위기 시 부서별로 나눠진 역할과 책임의 실행을 강제하지 못한다. 누군가 스스로 나서서 협조해 주고 최고의사결정권자의 의지를 실현해 주면 좋겠지만, 실제로 이런 기업의 경우 아무도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위기 시 말 그대로 리더십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계속되는 위기대응 회의 속에서 의사결정 그룹은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한다. 반면, 일선에서 실행을 담당하고 있는 직원들은 스스로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대증적인 대응에만 매달리게 된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는 중장기적 방향성을 가진 안정된 메시지가 공유되지 않는다. 일선 창구 담당자의 단편적인 애드립이 이어질 뿐이다.

당연히 이해관계자들은 그에 다시 분노하게 되고 문제는 증폭된다. 이런 경우 일선 직원들이 무능한 것이 아니라, 일선 직원이 할 수 있는 것이 그뿐이다. 그렇게 상황을 만든 내부 문제가 핵심이다.

결국 시간이 흐르고 위기관리를 한다고 하는데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이내 각 부서 대응이 일선에서 단편적으로 이어지게 된다. 문제는 또 발생한다. 이때부터는 부서별 사일로(silo)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지난했던 그간의 대응 토론이 쓸모없었다고 생각되는 순간부터 부서별 대응 조급증은 극대화된다.

이미 놓쳐버린 타이밍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기기 때문에 빠른 선제적 대응을 고민하게 된다. 부서별로 각자가 비슷한 대응을 고민하고 준비해서 각자 실행한다. 당연히 엇박자가 생기고 상호 충돌이나 중복이 큰 흐름을 이루게 된다. 서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예 모르면서 실행에만 열중하게 되는 희극이 벌어진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