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키우는 사회적기업이 있다?
걸그룹 키우는 사회적기업이 있다?
  • 이윤주 기자 (skyavenue@the-pr.co.kr)
  • 승인 2018.02.27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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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을 찾아서 ⑧] 엶엔터테인먼트

“엔터테인먼트에서 술 접대를 시켜요. 어떡해야 되죠?”

“계약파기 문의드립니다”

“얼굴이 안 예쁜데 괜찮나요?”

[더피알=이윤주 기자] 엔터테인먼트 분야 관련 지식인에 올라온 질문들이다. 아직까지 이 업계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인식이 곳곳에 깔려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한 사회적기업이 출사표를 던졌다.

걸그룹을 키우는 사회적기업 엶엔터테인먼트 한 쪽 구석에 비치된 걸그룹 cd들.

서울 중구 정릉의 아파트 단지 옆 평범해 보이는 상가. 지도는 이 곳을 가리키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간판이 보이질 않는다. 전화해보니 “큰 카페 옆 작은 노란 문 보이세요? 거기로 들어오시면 됩니다”는 답이 돌아왔다.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한쪽 벽면이 거울로 된 아지트 같은 공간이 펼쳐졌다.

걸그룹 CD만 꽂혀있는 서랍장, 전자키보드, 둘둘 말린 요가매트 그리고 마이크까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상징하는 물품들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인사를 건넸다.

이철우 엶엔터테인먼트 대표였다.

이철우 엶엔터테인먼트 대표.
이철우 엶엔터테인먼트 대표.

와. 엄청 젊으신 분이셨군요. 반갑습니다. 그런데 간판이 없네요?

젊어 보이지만 나이는 적지 않아요. 올해로 40입니다.(웃음) 엔터테인먼트사라고 하면 어린 친구들이 면접 보러 막 들어올까 봐….(웃음)

그렇군요. 엶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정보를 찾기가 어려워요. 궁금한 것들 다 여쭤볼게요. 우선 사회적기업형 엔터테인먼트라니 신기해요. 정체성이 뭔가요?

제가 광고회사에 10년간 근무하다가 이후 행복나눔재단에 들어가게 됐어요. 광고는 상업의 끝, 재단은 사회공헌 사업. 완전 반대잖아요. 사회적기업은 돈을 벌어야 하는 기업이면서 사회적가치도 실현해야 하니 재밌게 할 수 있겠다 싶어서 2013년 10월 엶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습니다.

벌써 4년차시네요. 많고 많은 분야 중에서 왜 엔터테인먼트를 선택한 거죠?

일단 광고회사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오래 했으니 이어나갈 수 있다고 판단했어요. 보통 엔터테인먼트하면 매니지먼트만 생각하잖아요. 저는 그런 분야도 다 포함해서 종합 엔터테인먼트, 즉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회사를 원했어요.

의도한 건 아닌데 어렸을 때부터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운영하겠다고 주변에 말하고 다녔어요. 사람 발굴하는 걸 좋아했거든요. 끼 있는 친구들에겐 나중엔 캐스팅할게라고도 얘기하고요.(웃음) MSN, 네이트온 프로필 말머리는 항상 ‘CW엔터테인먼트’였어요.

지금은 종종 친구들이 왜 CW안 붙였냐고 물어보는데, 제가 이수만이나 박진영처럼 유명한 사람이 아니잖아요? 제 이름을 넣긴 부끄러워요.(웃음)

염. 렴. 엶. 발음이 어려워요. 왜 엶인가요?

삶의 모습 중에는 막히고 답답한 부분이 많아요. 우리가 노력해서 열어나가겠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엶은 두 개의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기획과 미디어요.

처음엔 기획일로만 시작했어요. 행사, 공연, 전시, 축제 등 여러 대행 일을 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가치를 담아 다른 곳과 다르게 풀어낸다한들 우리 콘텐츠가 아니잖아요. 끝나면 사라져버리죠.

그래서 우리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서 시작한 게 미디어예요. 성북마을공개방송 팟캐스트를 하다가 음성보다 영상이 더 뜬다고 해서 영상을 배웠어요. ‘사라질 것들 살아갈 곳들’이라는 15분짜리 단편영화를 제작했는데 운 좋게도 2016년 인디다큐페스티벌 본선에 올라가고 노인영화제에도 출품됐어요.

‘사라질 것들 살아갈 곳들’은 어떤 내용인가요?

당시엔 사무실이 월곡동에 있었는데 주변에 오래된 가게가 많았어요. 이들 가게가 언제까지 계속 존재할까 싶어서 인터뷰를 했죠. 문방구, 이발소, 전파소, 쌀집 주인아저씨들의 인터뷰를 엮어서 영화로 만들었어요.

이 영화를 계기로 영상미디어로 영역을 넓혔고, 그 다음해에는 전통시장을 활성화시켰으면 해서 ‘시장이 반찬이다’라는 유튜브 예능을 찍었어요. 두 팀이 나뉘어서 시장에서 게임을 통해 물건을 사고 요리하는, 지금 JTBC ‘냉장고를 부탁해’와 비슷한 콘셉트에요. 저희가 더 먼저 기획한 거죠.(웃음)

그리고 올해 걸그룹을 데뷔시키려고 합니다. 우리들로 인해 세상이 만개하고 넘쳤으면 좋겠다는 뜻을 담은 플로어스(Flor-us)입니다.

사회적기업이 걸그룹을 키운다는 것 자체가 정말 독특해요.

아이돌을 키우는 매니지먼트 사업을 하는 사회적기업 자체가 없어요.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사람들에게 별로 인식이 좋지 않은데, 전 이런 분야일수록 사회적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봐요. 신뢰도 줄 수 있고요. 그런데 너무 상업적이다 보니 진출하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이 없더라고요. 엔터테인먼트계는 레드오션이지만 사회적기업으로는 블루오션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왜 걸그룹인가요?

걸그룹이 청소년들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칠 수 있는 아이돌이라고 생각해요. 또 보이그룹은 제가 별로 안 좋아하니까.(웃음) 보이그룹은 남자끼리 서로 봤을 때 약간 보기 민망한 허세가 있어요. 나중에 잘 돼서 팀을 확장하면 그때는 남자 솔로로.(웃음)

엔터테인먼트 회사에는 연습생들이 있기 마련인데…

다른 연습생은 없어요. 데뷔하려는 그 친구들만 데리고 트레이닝하는 중이예요. 보시다시피 장소도 여기가 전부인데 연습생까지 있으면 뒤엉켜서 해야 하니까요. 그들까지 케어할 역량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또 하나는 연습생이라는 제도가 좋게만 보이진 않더라고요. 데뷔할지 안할지도 모르는데 어린 친구들의 꿈을 이용하는 거잖아요.

엶엔터테인먼트 연습실 풍경. 사진=이윤주 기자
엶엔터테인먼트 연습실 풍경. 사진=이윤주 기자

물론 연습생이 기획사 입장에서는 굉장히 좋은 제도죠. 데뷔할 팀이 갑자기 건강, 가족의 반대 등의 이유로 빠질 수도 있거든요. 그럴 때 연습생에서 끌어올려 채우면 되는데 연습생이 없으면 계속 오디션을 봐야 해요.

저희도 얼마 전에 한 친구가 부모님의 반대로 빠져 4명이 됐어요. 5명이어야지 춤을 추더라도 동선도 예쁘게 나오고 무대가 비어보이지 않긴 한데, 지금 4명이 가진 매력이나 팀웍이 너무 좋아서 이대로 가기로 했어요.

오디션을 볼 때에도 엶만의 기준이 있을 것 같아요.

걸그룹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외모, 실력, 인성 등 굉장히 많은 것들이 필요해요. 그렇지만 완벽한 사람을 뽑는 건 아니거든요. 실력이 완벽하면 굳이 레슨 받고 연습할 이유가 없죠. 외모 역시 스타일링과 메이크업으로 완전히 바꿀 수 있어요. 굳이 성형을 하지 않더라도 말이죠. 저희는 성형을 지양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살려서 매력으로 끌어내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물론 춤 잘 추고, 노래 잘하고, 예쁜 친구를 보죠. 어쨌든 대중에 보여지는 직업이니까요. 그런데 그 부분은 외적인거고 내적으로는 이 일을 결심하는 데 과정에서 얼마만큼 고민이 있었는가를 중점적으로 봐요. 의지가 있고 스토리와 절실함을 가진 친구가 필요해요.

지금 플로어스를 보면 한 명은 대학교 4학년 졸업반 때 걸그룹의 꿈을 갖게 됐어요. 늦게 시작한 만큼 절실함이 있죠. 다른 한 명은 다른 기획사에 있다가 막말과 금전요구 등 안 좋은 일들을 모두 겪고 엶과 만나 안착한 케이스입니다.

엶은 연습비가 없나요?

일체의 연습비도 받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행 사업을 하면서 나오는 수익으로 투자하는 거예요. 이들 모두 우리가 처음 시도하는 사업인 걸 알고 있고요.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겠네요. 연습생 입장에서도 신생회사에 대한 막연한 걱정이 있을 듯해요. 상호 간 신뢰가 중요할 텐데 이 부분에서 어떻게 노력하셨는지 궁금해요.

다른 오디션들은 모집공고를 낼 때 지원 분야, 장소, 일시 등만 딱딱하게 공개해요. 그런데 입장 바꿔놓고 보면 모르는 회사에서 그런 공지를 내면 신뢰가 안 가요. 회사를 원하는 지망생도 많고 아티스트가 없어서 모집공고를 내는 곳도 많지만 서로 컨택이 잘 안 되는 이유죠. 못 믿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는 어떻게 하면 이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엶의 모집공고를 보면 아시겠지만 우선 굉장히 길어요. 읽으면 여기는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를 알 수가 있게끔 했어요. 그 모집공고 이후에는 지원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더라고요. 그 중에서 오디션을 볼만한 친구들은 뽑아 실제 오디션을 봐요. 지금까지 거의 100명 정도 만난 것 같아요.

한 사람당 1시간 이상씩 할애해 가능성을 위주로 보면서 대화를 많이 해요. 왜 이걸 하고 싶고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점을 얘기하다보면 많이들 울더라고요. 그래서 면접이나 상담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지금도 일주일에 1시간씩 저와 상담을 하고 있어요. 같은 프로젝트를 하는 하나의 팀으로서 생각을 공유해야 한다고 보거든요.

이철우 엶엔터테인먼트 대표.
이철우 엶엔터테인먼트 대표.

요즘 아이돌 발굴 오디션이나 예능 프로그램이 많잖아요. 그 속에서 작고 유명하지 않은 회사가 살아남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차별화 무기나 경쟁력이라면?

일단 다른 걸그룹과 활동하는 건 거의 비슷할 겁니다. 다만, 저희 포지셔닝은 사회적 가치를 노래하는 아이돌이니 가사나 퍼포먼스를 통해 이슈가 되는 사회 문제나 의미를 담으려고요.

아이돌이 미치는 파급력과 영향력은 어마어마해요. 수지의 폰케이스와 양요섭의 팔찌로 마리몬드 브랜드가 유명해졌듯 말이에요. 사회문제를 알리고 싶거나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는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가 엄청 많아요. 그들이 좋은 아이템으로 활동하지만 이슈화에는 잘 성공하지 못하더라고요. 거기에 저희가 조금이나마 일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연예인의 긍정적인 에너지로 사회문제를 보여주고 풀어내는 거죠.

사회적기업의 아이템들을 홍보해주는 대행사 역할인거네요.

그럴 수 있죠. 직접 광고를 하는 건 아니지만 이 친구들의 가치를 통해서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려고 해요.

멋진 비전을 안고 스타트를 끊었지만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고민도 있을 것 같아요.

연예기획사의 계약은 보통 7년이에요. 저희도 마찬가지고요. 20대 초중반 친구들이 우리를 믿고 7년을 계약해준 거잖아요. 결국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가 됐으면 해요. 그들은 20대 인생을 여기에 걸고, 우리도 그 친구들에게 사업의 가능성을 걸었으니까요.

한편으로는 사회적기업을 앞세우면 소속 연예인에 대해서도 도덕적인 잣대가 지나치게 높아지지 않을까 우려스러워요. 사회적기업으로 출발하는 것이 다른 팀과 비교해 차별성이 될 수 있지만, 데뷔 후에는 이들의 언행에 제약이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그건 이 친구들이 극복해나갈 문제라고 생각해요.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자립할 수 있고 영향력과 파급력 있는 보이스가 되고 싶습니다. 일단 한 곡은 나왔고요. 올해 이 친구들을 데뷔시키고 궤도에 올라야죠.

이것만큼은 꼭 선을 지킨다 하는 부분이 있다면?

사회적으로 터부시되는 것들이요. 담배나 술 광고는 안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또 사회적으로 호불호가 있거나 문제라고 판단되는 제안들은 거부해야죠. 돈 된다고 다 할 순 없으니까요.

영상촬영, 편집, 대행업무, 매니지먼트까지… 모든 일을 다 하시려면 일손이 부족하시겠어요.

그렇죠. 그렇지만 이렇게 해야 해요. 사업이란 게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준비가 돼 있어야 하더라고요. 그 사람들과 언제 어떻게 도움을 주고받을지 모르는 거니까요. 현재 직원이 저까지 포함해서 3명이예요. 한 명은 성북 청년들 모임에서 만났고, 나머지 한 명은 다문화가정을 위해 일하시는 분이었는데, 지금은 플로어스에게 영어와 일어를 가르쳐주고 있어요.

지금도 위층 카페에서 외국어를 배우고 있어요. 잠깐 보러 가보실래요?

일본어를 공부하는 플로어스. 데뷔 전이라 얼굴은 공개하지 않았다.
일본어를 공부하는 플로어스. 데뷔 전이라 얼굴은 공개하지 않았다.

인터뷰를 마치고 올라간 카페에는 네 명의 ‘예비 걸그룹’이 모여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 힘들진 않느냐는 질문에 “행복해요” “재밌어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플로어스가 엶의 기둥이 되는 거잖아요. 첫 번째 걸그룹이고요. 부담감은 없어요?”라고 다시 한 번 묻자, 돌아온 것은 인터뷰 내내 이 대표가 강조한 절실함이었다.

“부담감을 가지고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잘하면 좋겠어요”

“개국공신이죠”

“확실히 연습실이 좁다던가 하는 부분에선 다른 곳에 비해 열악하다는 느낌은 받아요. 하지만 저희가 열심히 하면 언젠가 달라지지 않을까요?”

+ 인터뷰를 마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엶엔터테인먼트로부터 두 장의 사진이 도착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찾은 플로어스의 모습이었다.

 

평창올림픽을 찾은 플로어스. 엶엔터테인먼트 제공
평창올림픽을 찾은 플로어스. 엶엔터테인먼트 제공
평창올림픽을 찾은 플로어스. 엶엔터테인먼트 제공
평창올림픽을 찾은 플로어스. 엶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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