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관리에서 진정성이라는 건 대체 뭘까?
위기관리에서 진정성이라는 건 대체 뭘까?
  • 정용민 (ymchung@strategysalad.com)
  • 승인 2018.04.2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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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민의 Crisis Talk] 사과해도 “못 믿겠다” 반응…관점 따라 실행에 큰 차이
위기관리와 관련해 진정성이라는 말을 자주하지만 정작 그 의미는 모호하다.

[더피알=정용민] 위기관리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바로 ‘진정성’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저 대표이사의 사과에는 진정성이 없어” “좀 더 진정성 있게 공식입장을 꾸며주세요” “위기관리에는 진정성이 곧 핵심이지”… 사람들은 이런 표현으로 위기관리와 관련해 진정성이라는 말을 자주한다.

그러나 그리 말하는 사람들에게 “진정성? 그게 무슨 의미지?”라고 물으면 딱 부러지게 답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거 있잖아… 뭐, 지금 저 사람이 진짜로 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는 거 아니겠어?” 같은 정의가 대부분이다.

원래 국어사전에는 진정성이라는 단어가 없다. 우리가 쓰는 ‘진정’이라는 말에 ‘성’이라는 말을 붙여 만든 조어이기 때문이란다. 헷갈림은 이 진정성 단어가 두 가지 한문 표현으로 존재한다는 데에서부터 온다.

眞正性, 사실과 일치

먼저, ‘진짜’라는 의미의 진정성(眞正性)이 있다. 사실과 다르지 않다는 의미다. 요즘 아이들이 쓰는 말인 “진정?”이라는 말이 여기에 속한다. 이 경우 ‘진정성 없다’는 의미는 ‘진짜가 아니다’ ‘가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위기관리 관점에서 보면, 위기관리 주체가 ‘내부적 생각이나 상황을 진짜 그대로 전달했는지’ 여부가 이 진정성과 관련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진정성은 ‘생각과 행동의 일치’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眞情性, 감정에 대한 이미지

다른 개념의 진정성은 한자로 ‘眞情性’으로 쓰인다. ‘참된 마음, 애틋한 마음’과 같은 의미다. 가운데 ‘정(情)’이라는 단어가 앞선 진정성과 차이를 가르는 핵심이다. ‘진짜 그런 마음이 있느냐?’ ‘진짜 그런 감정이 있느냐?’를 묻는 것이라 보면 된다.

위기관리 관점에서 “저 대표이사의 사과를 보면 진정성(眞情性)이 없어”라고 하는 말은 “저 대표이사의 사과를 보면 스스로 진짜 그렇게 느끼는 것 같지 않아 보여”와 같은 의미라 보면 되겠다. 즉, 위기관리를 위해 사과문을 발표하는 대표이사인 화자의 표정이나 행동, 목소리, 말투, 메시지를 포함한 모든 이미지를 통틀어 해석해보니 그 사람 마음 속에 진실한 감정이 있지 않아 보인다는 ‘감정에 대한 이미지’다. 진실을 나타내는 표현 방식과 관련된 문제라고도 볼 수 있다.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는 광고회사에 대한 갑질 논란이 불거진 직후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했지만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출처: 관련 보도한 sbs 뉴스 화면

眞正性, 생각 그대로

위기관리 관점에서 사용되는 진정성이라는 의미가 과연 둘 중 어떤 것이냐에 따라 실행에는 큰 차이가 생겨버리기 때문에 위기관리 매니저들은 골치 아파한다. “우리는 진정성이 있는데 공중들이 우리의 진정성을 알아주지 않는다”라는 말을 종종 한다. 여기에서 문제의 원인이 보인다.

회사와 공중이 사용하는 진정성이라는 의미가 공히 ‘진정성(眞正性)’으로 동일한 것이라면, ‘우리의 진정성(眞正性)을 공중들이 신뢰하게 할 수 있게 만들면 된다’는 간단한 해답이 나온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이나 PR 등의 활동이 이런 해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우리 회사 제품에서 인체에 유해한 것으로 알려진 중금속이 검출됐다는 소비자단체 조사 결과가 나왔다. 회사에서는 수년간 수회에 걸쳐 반복적으로 안전성 평가를 했어도 그런 인체 유해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대표이사가 앞에 나서서 기자회견을 한다. “저희 회사의 모든 기술 연구 역량을 믿어 주십시오. 인체에 유해한 성분은 절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저희 회사를 믿고 제품을 사용해 오신 여러분 저희가 여러 공인 시험 기관에 재조사 의뢰를 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 발표문에는 진정성(眞正性)이 들어 있을까? 들어 있다. 진짜 회사 내부에서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확신을 가졌기 때문에 이런 강력한 전략과 메시지를 들고 나온 것이다. 이를 진정성(眞正性) 있다 믿는 공중들이 많으면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은 성공하게 된다.

(자료사진) 일본 자동차 부품회사 다카타의 다카타 시게히사 회장이 지난해 6월 도쿄에서 파산 신청에 대한 기자회견 도중 허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뉴시스

그러면 이 경우는 어떨까? 소비자 단체의 조사 결과가 나왔을 때 해당 회사 대표이사와 핵심 임원 몇 명이 모여 논의를 한다.

“큰일이네. 하필이면 그 제품만 딱 뽑아 안전성 조사를 했지? 그거 중금속 수치가 좀 나온다는 게 몇 년 됐죠? 그래도 그동안 내부적으로 많이 줄인다고 줄인 건데… 이번에 딱 걸려 버렸네. 어쩌지?” 이런 상황에서 해당 회사가 진정성(眞正性)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정말 잘 못했다. 매출을 올리기 위해 유해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판매를 했다. 중금속 함유량을 줄인다고 했는데 완벽하지 못했다”라고 사과한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그 자체 또한 ‘진정성(眞正性)’이 있는 것이다. 진짜를 그대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기업들은 이렇게 이야기 할 것이다.

“아주 일부 제품에서 소량 논란의 물질이 검출됐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인체에는 유해하다 볼 수 없지만, 소비자께서 걱정하시지 않게 일단 자발적 리콜을 실시하겠다. 그러나, 우리는 지속적으로 안전성 검사를 해왔다는 점은 강조하고 싶다.” 이런 경우 이 회사는 ‘진정성(眞正性)’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봐야 한다. 진짜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眞情性, 생각을 제대로

회사와 공중이 사용하는 진정성이라는 의미가 진정성(眞情性)이라면, ‘우리가 더욱 진실한 감정을 실어서 공중들이 우리에 대해 진정성(眞情性)을 느끼게 하자’라는 해답도 가능하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는 훈련 및 리허설을 통해 완벽하게 연출하고, 전략적인 레토릭(수사학)을 사용하면 위기가 관리될 것이라는 주장이 이런 개념에 어울린다.

예를 들어 보자. 제품 유해성 이슈에 대해 강력한 대응을 발표하는 대표이사의 모습에 강한 자신감이 들어있는 경우다. 대표이사가 당당하게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자세한 조사결과들을 여러 개 공개하고, 신뢰감 가게 행동하는 것을 여러 국민들이 보게 되는 것이다.

많은 소비자들이 “저 대표이사의 설명을 들으니 왠지 믿음이 가는 걸. 저렇게 당당하고 단호하게 말하는 데 설마 문제가 있겠어?”하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진정성(眞情性)이 통했다는 개념이 바로 이런 것이다.

반대로도 예를 들 수 있다. 유해물질 함유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해 쉬쉬하면서 판매를 계속해 오고 있었음을 가정하자. 대표이사가 전문 컨설턴트의 자문을 얻어 기자회견을 준비한다. 여러 번 반복되는 리허설을 통해 아주 절절한 표정과 고개 숙임을 각도까지 재가면서 연습한다.

기자회견장에서 대표이사가 “우리가 잘못했다”하면서 고개를 한 없이 숙이며 눈물을 떨군다. 손을 덜덜 떨면서 “다 내 부덕의 소치”라 하면서 사죄와 사죄를 구한다. 회견장에 앉은 기자들조차 ‘세상에 참 딱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진짜 사죄를 하는 것으로 보였다.

많은 소비자들이 “이전까지는 그런 나쁜 생각을 했어도 이번 교훈을 발판 삼아 이제부터는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겠지”하는 믿음을 가지게 됐다. 이런 경우 공중은 이 회사가 진정성(眞情性) 있게 사과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부적인 진정성(眞正性)과 표현으로서의 진정성(眞情性)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와 달리 대표이사가 사죄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기자회견에 대한 아무런 준비 없이 달랑 사과문 메모만 가지고 단상에 올라가 버린 경우를 보자. 딱딱하게 “사과드립니다”는 말 몇 마디로 마무리하려 했다.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임원들에게 답변하라는 제스처를 한다. 포마드를 발라 정갈하게 탄 가르마와 빤짝빤짝한 시계가 공중들의 눈에 들어온다. 기자들이 화를 내고 회견장은 다시 아수라장이 된다.

소비자들은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 수 있지? 알면서도 유해물질을 그대로 섞어 팔았으니 정부에서는 최대한 처벌을 해야만 한다”는 반응을 한다. 이런 경우에는 내부적인 진정성(眞正性)이 미처 표현으로 연결되지 못해 공중들이 진정성(眞情性) 없다는 느낌을 받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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