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을 수 없다면 직접 판 깐다…기업에 다시 부는 ‘익게 바람’
막을 수 없다면 직접 판 깐다…기업에 다시 부는 ‘익게 바람’
  • 조성미 기자 (dazzling@the-pr.co.kr)
  • 승인 2018.04.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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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국민청원’ 익게 신설, 개편 활발…사측-직원 동상이몽 해결해야
익명 앱과 커뮤니티를 통한 폭로, 고발이 이어지면서 기업 내부로 불만의 목소리를 수렴하기 위해 익명게시판 활성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더피알=조성미 기자] 익명 앱과 커뮤니티를 통해 내부 고발 형태로 기업의 민낯이 드러나는 일이 많아지면서 익명게시판 바람이 소리 없이 다시 불고 있다. 막을 수 없다면 직접 판을 깔아 불만의 목소리를 회사 안에서 수용하겠다는 의지다. 이에 따라 기존에 있던 사내 게시판을 개편하거나 새로운 익명 채널을 만들어 리얼한 목소리를 담으려는 시도가 활발해지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이달 초부터 40여 명으로 구성된 별동 조직인 ‘프로불편러’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사내 불편·불만 사항을 속속들이 찾아 개선 방안을 도출해내는 역할이다. 프로불편러 중 일부는 사내 익명 게시판 ‘불라인드(불편+블라인드)’ 운영도 담당하고 있다.

불라인드는 직원들이 올린 게시물이 일정수 이상의 추천을 받으면 경영지원본부장(부사장)이 직접 댓글로 피드백을 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청와대에서 운영하는 국민청원 형태를 차용한 것으로, 단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을 넘어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창구를 만들려는 의지가 읽힌다.

특히나 게시글에 대한 답변 원칙 역시 직원들의 요구에 응답한 결과라는 것이 더욱 고무적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불라인드 게시판이 우리들만의 리그가 되지 않도록 경영층이 더 많은 관심이 있었으면 좋겠음’이라는 의견이 개진됨에 따라, 경영지원본부장의 답변 방침이 세워졌다”며 “임직원 스스로가 문제점과 해결책을 찾는 자율적인 조직문화를 정착시켜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우리은행은 지난해 12월 손태승 행장 취임에 맞춰 기존 익명게시판 ‘우리투게더’를 개편하기로 결정했다. 좀 더 허심탄회한 직원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함이다.

준비 과정을 거쳐 지난 3월부터 새롭게 선보인 우리신문고는 기획팀장을 필두로 한 전담관리팀을 뒀다. 또 개진된 의견에 대해선 영업일 기준 3일 내 회신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우리신문고는 아직 시행 초기인지라 의미 있는 이야기보다는 아직까지는 익명성 보장에 대한 질문이 많은 상황”이라며 “행장이 직접 보고 경영실무진들이 검토한다는 시스템을 갖춘 만큼 충분히 활성화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한국항공우주산업과 조달청도 새로운 수장이 취임하며 소통 강화를 위해 익명게시판을 개설했고, 모 대기업의 경우 외부 익명 커뮤니티를 거친 이슈가 논란이 되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자사 익게 개편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송동현 밍글스푼 대표는 “새로운 리더가 오면 리더의 핵심 역할인 내부컴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익명게시판이 활용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블라인드에 올라온 대한항공에 대한 불만의 글.

회사 불만 창구를 양성화하기 위해 최근 만들어진 익명게시판들은 다양한 의견이 올라오는 익명 SNS 블라인드 앱(이하 블라인드)과 활발한 대국민 소통 창구로 평가가받는 국민청원 시스템을 결합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최근 대한항공 오너가 갑질 고발로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된 블라인드는 ‘직장인들의 대나무숲’으로 갖가지 이야기가 오가지만 사실상 기업이 대응하기 어려운 모니터링 매체다.

특히나 미투와 갑질 등 공분을 일으키는 사회적 이슈와 결합돼 조직 내 감춰져 있던 추문과 불합리한 관행들이 블라인드발 ‘증언’이 돼 언론보도로 이어지는 일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기업 입장에선 관리할 수 없는 채널이 된 셈이다. ▷관련기사: 쉬쉬하다 탈탈 털린다

이런 이유로 불만의 목소리를 안에서 수렴, 건전한 토론으로 이끄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익명게시판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익명게시판을 구축 중인 한 기업에 다니고 있는 직장인 A씨는 “블라인드를 통해 우리 회사에 대한 구성원들의 불만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회사는 무대응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며 “이에 사내 게시판을 통해 이야기하면 회사가 해결책을 고민해보겠다는 식으로 직원들을 달래며 블라인드에서 사내 익명 게시판으로 옮겨올 것을 유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여전히 ‘진짜 익명’인지, 혹시 피해로 돌아오지는 않을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실제 대한항공은 지난 2015년 ‘땅콩회항’ 사건 이후 익명의 사내소통 게시판을 만들었지만, 최근 ‘물벼락 갑질’을 계기로 비판적인 의견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사측의 조직적인 조작이 있었다는 직원들의 폭로가 잇따랐다.

아무리 익명이 보장된다고 해도 회사를 온전히 믿을 수 없는 분위기에서 A씨는 “익명게시판이 기존 인트라넷과 서버를 분리해 시스템 관리자도 글 게시자를 특정 지을 수 없도록 했다고 하지만, 직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털어놓기 위해서 신뢰를 쌓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내부커뮤니케이션을 둘러싼 회사와 직원들 간 동상이몽을 바라보며 송동현 대표는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자는 취지에서 익명게시판 방식을 취하지만 익명성 역시 비생산적인 논란과 언쟁만을 반복하게 되는 역기능도 있다”며 “우선 익명을 통해 리스닝(listening)과 피드백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실명이든 익명이든 자유롭게 말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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