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지 몰라서 같이 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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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성미 기자 (dazzling@the-pr.co.kr)
  • 승인 2018.06.22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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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관계 피로도↑…흔적없이 이야기하는 ‘팬텀세대’ 주목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서 의견을 표출하고 타인과 소통하여는 이들을 ‘팬텀세대’라고 한다.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서 의견을 표출하고 타인과 소통하여는 이들을 ‘팬텀세대’라고 한다.

[더피알=조성미 기자] “가면 뒤에 얼굴을 감추니 떨지 않고 온전히 내 목소리로 노래할 수 있었다.”

한 예능프로그램 출연자들이 자주 밝히는 소감이다. 자기 신분을 드러내지 않으니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다는, 익명의 장점을 명확히 드러내는 이야기이다.

온라인에서 이른바 팬텀식 활동이 주목받고 있다. 온라인상에서 유령처럼 본인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서 개인의 의견을 마음껏 표출하고 타인과 소통하려는 모습이다.

이와 관련, 김금희 대학내일 20대연구소 연구원은 한국심리학회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팬텀세대는 (익명 활동이) 악플 혹은 댓글에 국한될 거라는 선입견과 달리 익명 채팅, 커뮤니티, 익명 페이지, 익명 어플 등 각자의 관심사와 취향에 맞는 채널에서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개인주의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익명으로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며 사회적 의견을 표출한다”고 했다.

SNS가 발달하며 사람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채널이 많아졌지만 그에 따른 감시도 커지고 있다. 어떤 이야기든 그 안에는 자신의 사생활이나 감정, 생각, 성향 등이 담겨있을 수밖에 없는데, 온라인상에서 기록으로 남아 논란이 되거나 나도 모르게 나의 개인정보로 활용되기도 한다. 팬텀이 많아지는 이유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대 사회에서 SNS 등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 거리낌 없고 이를 적극 활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대로 사생활이 노출되는 것에 불편함을 넘어 공포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요즘 사람들은 수많은 채널로 연결된 관계들에 지쳐가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가 형성되면 사회적 역할에 걸맞은 행동수준을 보여야 하기에, 자기표현에 소극적이 되고 타인의 시선에 어떻게 비칠지를 먼저 생각해 스스로 검열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이에 따라 젊은층을 중심으로 ‘관태기(관계+권태기)’ 현상이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

손영화 계명대 심리학과 교수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는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다 보니, 타인의 반응을 걱정해 무언가를 얘기하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한다”며 “이렇게 불안한 상황 속에서 요즘 젊은이들은 여러 가지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대인관계 맺기에 피곤함을 느끼는 듯하다”고 말했다.

관태기가 부추기는 익명문화

관태기와 더불어 타인에게 노출한 자신의 사생활이 나중에 어떻게 이용될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을 가진 이들이 자유롭게 소통하기 위해 익명 SNS로 모여들고 있다.

최근 가장 주목 받는 곳은 뭐니 뭐니 해도 블라인드나 대나무숲과 같이 부당함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익명 채널이다. 바른말이라고 해도 후폭풍을 염려할 수밖에 없기에 익명의 힘을 빌려 털어놓고 또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끼리 연대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이렇듯 불이익이 있을 수 있는 고발성 이야기를, 관계 때문에 해야 할 말을 숨어서 하는 것은 어쩌면 익명대화의 가장 기본이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요즘에는 나를 감추고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 플랫폼들도 활용되고 있다.

심리상담 SNS ‘마인드카페’.
심리상담 SNS ‘마인드카페’.

2014년 말 서비스를 시작한 익명 SNS 앱 ‘모씨’는 100만건 이상의 다운로드를 기록하고 있다. 모씨는 잠 안 오는 밤 써내려간 감성 충만한 글에도 (비록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킥을 할지라도) 결코 ‘오글거린다’고 핀잔주지 않는다. 또 지인들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위로가 필요할 땐 함께 토닥여준다.

익명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방식도 다변화해 해시태그(#)를 통해 관심사별로 카드(이미지 위에 완성된 개별 글)를 모아보거나 타인의 의견을 물을 수 있는 설문, 익명으로 채팅을 할 수 있는 공간 등도 추가됐다.

심리상담을 하는 SNS도 등장했다. 차 한 잔의 여유를 가지는 것처럼 부담 없이 지친 마음을 위로해준다는 의미의 ‘마인드카페’가 그것. 심리상담의 사회적 편견을 벗어나 스트레스와 우울증 등의 문제를 부담 없이 말할 수 있는 공간이다.

고민글을 올리면 다른 이용자들의 공감과 위로는 물론 ‘엔젤’이라는 이름의 전문상담사가 댓글로 무료 상담을 해준다. 바깥으로 쉽게 꺼내기 힘든 말들을 낯선 이들에게 털어놓음으로써 공감을 통해 자연스레 마음의 병을 치유해 나가려는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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