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보호하는 사람들 ①] “오픈채팅방에서 실시간 상담합니다”
[을 보호하는 사람들 ①] “오픈채팅방에서 실시간 상담합니다”
  • 이윤주 기자 (skyavenue@the-pr.co.kr)
  • 승인 2018.07.16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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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갑질 119…네트워크 241명의 전문가 포진

[더피알=이윤주 기자]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갑질 이슈가 떠오른다. 외신은 한국 고유명사로 ‘Gapjil’을 소개하고, 초등학교 장래희망 란엔 갑(甲)이 새롭게 등장할 정도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을의 목소리에 주목하는 기관·단체·기업이 있다. 각각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갑을 문제에 있어서 실제로 무슨 이야기가 오가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해외 사례 등은 어떤지 등을 두루 살폈다.

직장갑질119 오진호 총괄스태프 

직장갑질119에서 실시한 익명 커뮤니티에서 사용했던 가면. 사진=이윤주 기자
직장갑질119에서 실시한 익명 커뮤니티에서 사용했던 가면과 사진을 찍은 오진호 총괄스태프. 사진=이윤주 기자

직장갑질 119는 어떤 곳인가요.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했던 시민사회단체와 노동 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법률단체들이 모여 만든 네트워크 민간공익단체입니다.

처음 논의를 시작했을 때가 2017년 4월 즈음입니다. 촛불집회 당시 매우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고, 직장인들은 토요일 밤 11시에 집회를 마치고 월요일이면 다시 출근했습니다. 그렇게 광장 민주주의는 자기 힘으로 달성했는데, 정작 직장에서는 갑질로 고통 받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직장을 민주적으로 바꿀 수 있도록 돕는 방안에 대해 고민했고, 2017년 11월 직장갑질 119를 출범했습니다.

현재 총 241명의 변호사, 노무사, 스태프 등이 자원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으로 실시간 상담을 해주고 있는데요. 휘발성이 강한 오픈채팅방을 커뮤니케이션 채널로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어떤 채널이 사람들이 접속하기 좋을까’를 중점적으로 봤습니다. 네이버 밴드, 별도의 앱 제작 등을 놓고서도 고민했어요. 장단점을 봤을 때, 오픈채팅은 입장하면 이전 대화를 볼 수 없고 모임 운영하는 성격으로는 부적절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제일 쉽게 접속할 수 있다고 판단해 오픈채팅방으로 결정했습니다.

하루 몇 건의 상담이 들어옵니까.

매일 세어 보진 않습니다. 다만, 얼마 전 출범 6개월을 맞아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지금까지 총 1만1938건의 제보를 받았다는 데이터가 나왔습니다. 대략 하루 70건으로 보시면 됩니다.

가장 많이 올라오는 제보는 어떤 건가요?

갑질 사례에 따라 임금, 해고, 괴롭힘, 잡무 지시 등 14가지로 기준을 만들었습니다. 이 중에서도 ‘퇴직금을 덜 받았다’, ‘연차‧주휴 수당을 못 받았다’ 등의 임금 체불 관련 제보가 전체의 26%로 가장 많습니다.

잡무 지시와 직장 내 괴롭힘도 각각 15%, 13%를 차지합니다. 상사가 욕하고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왕따 시키는 등의 갑질은 현행 노동법의 허점을 드러냅니다. 근로기준법상 ‘사용자에 의한 폭행 금지’라고 명시돼 있지만 상사는 사용자가 아니다 보니 법으로 (괴롭힘에 대해) 대처할 방법이 없습니다. 모욕죄 정도는 가능하지만 사람 많은 장소에서 폭언을 들어야 처벌이 가능하니 사실상 성립되기 어렵습니다. 정 안되면 병원이라도 가라고 말합니다. 나중에 산재 신청이라도 해볼 수 있으니까요.

미투 운동 이후 성적 피해 관련한 고발도 많이 늘었나요?

조금 늘었지만 눈에 확 띄는 정도는 아닙니다. 미투 운동은 사회적 권력을 가지고 있고, 발언력이 있는 사람을 폭로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직장 내 성폭력은 가해자가 우리 동네에 사는 과장에 불과합니다.

쉽게 얘기하면 회사는 보수적이라서 제대로 사건 처리를 해주지 않을 것이 자명하고, 이 사건이 언론에 나올 만큼의 파급력이 없다는 거죠. 직장 내 성폭력이 드러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보복 등 2차 피해가 두려워 신고하지 않는 피해자들도 많을 텐데요.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있는지요.

가장 어려우면서도 유의해야 할 부분입니다. 오픈채팅방은 100% 익명이니까 괜찮지만 이메일 상담에서는 사명, 직책 등 실제 개인정보가 들어옵니다. 그래서 스태프 중에서도 메일을 관리하는 사람은 세 명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들어온 제보를 변호사에게 배분하는 중간자 역할을 하죠. 만약 이윤주님이 제보했다면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변호사와 중간자 스태프 두 명뿐인 겁니다. 이렇게 하면 몇 명에게 일이 몰리지만 새나갈 일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갑과 을이 공존할 수밖에 자본주의 사회구조상 갑질이 사라질 수 있다고 보시나요?

안 바뀐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반 농담 식으로 드는 예가 흡연문화에요. 제가 어렸을 땐 버스나 식당 등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있었습니다. 근데 불과 몇 년 되지 않았어도 지금은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당연하게 됐잖습니까. 물론 직장 갑질은 좀 더 복잡한 문제입니다. 따라서 직장 내 갑질을 없애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첫째는 사회 인식의 변화입니다. 한국의 독특한 군대 문화, 유교적 문화 등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회사 계약은 공적 영역에 대해서만 맺는 것인데, 사적인 영역과 혼동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예전엔 사장이 부하 직원에게 잡무를 지시했다면, 이제는 부장이 과장에게, 과장이 대리에게 ‘내리갑질’을 합니다. 상사는 부하직원에게 일을 시킬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지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데도 말이죠.

두 번째는 노동부의 일대 혁신이 일어나야 합니다. 임금체불 제도가 많이 들어오는 이유가 사업주가 임금을 제대로 안 주기 때문이고, 근본적으로는 노동부가 사업주를 처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노동부에 진정했지만 갑과 적당히 합의해서 끝난다든지 증거가 없어서 처벌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사실 근로감독관 일이 공무원 중에서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불법을 바로잡으러 다녀야 하는 ‘노동 경찰’임에도 불구하고 사무실에 갇혀서 체불임금 계산만 하는 겁니다. 노동자가 찾아와서 ‘일이 너무 많아요. 체불 임금이 많아요’라고 해도 ‘네가 나보다 일이 많아?’ 이런 태세로 대응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가령 못 받은 월급에 대해 ‘사장도 돈이 없다는데 500만원을 200만원 정도로 대신하자’며 합의를 종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등한 관계가 아닌 일방적으로 갑의 이야기만 듣는다는 것이지 않습니까. 애초부터 이들이 평등하지 않은 계약 관계라는 걸 인지하면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법 제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외국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국내에도 ‘갑질 금지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동 시장 분위기가 시대에 따라 변하니 이에 맞게 법도 바뀌어야 해요. 최근 5060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요즘 애들은 이런 거로도 불만을 제기하더라’는 식의 말을 합니다. 그 세대는 정말 새벽에 각성제 먹으면서 일했고 그 자체가 자랑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특히 한국인은 우울증이 많습니다. 심리적으로 힘든 건 대부분 직장에서 벌어지는 일들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있는 자신이 직접 산업재해를 입증해내긴 어렵습니다.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는 한 말입니다.

하루 16시간 일하는 사람 앞에서 워라밸을 외치는 게 얼마나 공허한 소립니까.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건 업무로 인한 우울증이 생겨도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는 법을 만드는 겁니다.

시대에 따라 갑질의 행태도 달라질 것 같습니다.

최근 1년 사이에 계속 들어오는 제보 유형이 있습니다. 정부가 바뀌면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발표를 하고 난 이후에 많아졌어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의 취지가 어떻든 현장으로 가면 업체 소장의 개인적인 판단만 있을 뿐입니다. ‘너는 (정규직) 대상이 되고 넌 안돼’라고 정해버립니다. 분명 위에서 정규직 기준이 내려오지만 인사점수 낮게 주는 등의 편법을 씁니다. 업무실적, 출결 등이 다 좋아도 소장에게 찍혔다는 이유만으로도 떨어뜨립니다. 소장에게 생사여탈권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갑질을 고발할 수 있는 채널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현상입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건, 직장에서 벌어지는 일은 직장에서 푸는 게 가장 좋은 거라는 겁니다. 업무가 너무 많으면 회사랑 합의해서 조정하고, 성희롱 발언하면 재교육하고 피해자 격리하는 등 직장 내에서 체계가 완결돼야 합니다.

심한 갑질을 당했을 때 대처법 하나만 말씀해 주세요.

가장 중요한 건 내가 갑질을 당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폭언을 들었으면 녹음해야 하고, 부당한 야근을 많이 하면 기록을 남겨야 합니다. 업무 마무리 보고 메일을 보내면 시간 기록이 남아 있을 겁니다. 아니면 사무실 책상에 있는 시계를 보이게 사진을 찍습니다. 무조건 노동부에 신고하는 게 답은 아닙니다. 연장 근로했다는 사실을 본인이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증거를 갖추는 게 제일 필요합니다.

그 다음은 문제를 혼자서 해결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가령 한 명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 회사가 대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말은 개인의 문제로 돌리며 “너만 그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집단으로 모여서 얘기하십시오. 서로 함께 나눈 대화도 어느 정도 증거 효력이 있습니다. ‘김 과장 저 XXX. 또 욕하는 것 좀 봐’ ‘그래, 만날 저래’라는 대화가 오간 기록이 있으면 김 과장이 욕했다는 사실은 진짜가 됩니다. 그리고 항상 상담은 받으시고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직장갑질 119는 스태프의 100% 자원 활동으로 운영됩니다. 변호사와 노무사는 자기일 마무리 후 새벽에서야 이메일 답변을 보내줍니다.

더 많은 제보를 받기 위해서는 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가장 필요한 건 주치 노무사처럼 사무실에 상근할 사람을 구하는 일입니다. 이를 위한 후원금을 모으고 있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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