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업계 10년 전쟁’으로 본 네거티브 전략 위험성
‘소주업계 10년 전쟁’으로 본 네거티브 전략 위험성
  • 양재규 (eselltree92@hotmail.com)
  • 승인 2018.07.19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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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규의 피알Law] 소송전 대비 안하면 큰코 다친다
네거티브 전략은 그 뛰어난 '효과성' 때문에 선거전은 물론 기업 홍보전에도 종종 동원된다.
네거티브 전략은 그 뛰어난 '효과성' 때문에 선거전은 물론 기업 홍보전에도 종종 동원된다.

[더피알=양재규] 지난 6·13 지방선거 최대 격전지 중 하나로 꼽혔던 경기도지사 선거. 방송 토론회에 나온 김영환 바른미래당 후보는 가정사를 비롯한 여배우와의 스캔들 의혹 등 부정적인 이슈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사정없이 몰아세웠다. 많은 사람들 뇌리에 ‘네거티브 전략’의 개념이 선명히 새겨지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한 장면이었다.

세우기는 어려워도 무너뜨리기는 쉽다고 했다. 부정적인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선거철마다 네거티브 공세가 펼쳐지는 것은 그 뛰어난 ‘효과성’ 때문이다. 1등만 기억하는 선거에서 경쟁 상대를 깎아내리는 것은 곧 자신의 승리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으니 시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관련기사: ‘정치인 이재명’에게 필요한 승자의 자세

경쟁의 치열함 측면에서 보면 기업 홍보 역시 결코 선거전에 뒤지지 않는다. 그래서 기업 간에도 종종 ‘네거티브 전략’이 동원되는 모양새다.

최근 법원에서는 경쟁사에 대한 부정적인 언론보도를 자사에 유리한 쪽으로 활용한 기업에 고액의 손해배상 지급을 명하는 판결(2013가합16690)이 선고됐다. 경쟁사에 대한 부정적 기사를 자사에 유리한 쪽으로 활용하려는 전략을 검토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한 번쯤 눈여겨 봐야할 사례다. 기업 홍보에 있어서 네거티브 전략이 안고 있는 법률적 문제점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사건의 당사자들은 우리나라 소주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두 개 주류업체다. 업계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A사(‘○이슬’ 제조사)는 50%를 넘나드는 시장점유율에도 불구하고 경쟁사인 B사(‘처음○○’ 제조사)와의 한판 전쟁을 불사했고 결국 소송으로까지 이어졌다. 싸움의 경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처음○○이 출시된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광고 싸움→법적 다툼

2006년 출시된 처음○○은 세계 최초 알칼리수로 제조했다며 소주 원료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물의 차별성을 내세웠다. 이에 질세라 A사는 자사 제품인 ○이슬이 인공 알칼리수가 아닌, 천연 대나무 숯 알칼리수로 제조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광고전을 펼쳤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이 치열한 싸움에 뜻밖의 변수가 등장한다. 처음○○이 출시된 이듬해 여름, C씨에 의해 처음○○의 원료인 전기분해 환원수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아 인체에 유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참고로 C씨는 B사에 사업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바 있다고 한다. 이후로 C씨는 처음○○ 관련 민원을 지속적으로 제기했고 허위사실 유포 등을 이유로 형사처벌까지 받았다.

C씨의 주장은 처음○○ 출시 후 시장점유율이 줄곧 떨어지고 있던 A사에겐 호재가 아닐 수 없었다. 실제 C씨의 주장은 A사의 광고대행사를 통해 글과 동영상으로 제작돼 온라인상에 유포됐다. 이것이 A사와 B사 간에 벌어진 1차전이다.

소주업계 라이벌의 네거티브 공방은 법적 분쟁으로 비화했고 방송사에까지 수십억 배상 판결이 내려졌다. 자료사진
소주업계 라이벌의 네거티브 공방은 법적 분쟁으로 비화했고 방송사에까지 수십억 배상 판결이 내려졌다. 자료사진

시간이 흘러 2012년이 됐다. 1차전 당시 확전의 시발점이 된 C씨가 다시 움직였고, 한 방송사가 C씨 제보를 받아들여 그해 3월 5일 전기분해 환원수가 건강에 해로울 수 있고, 심하면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내용의 방송을 보도했다. 이 방송을 A사는 네거티브 공세의 근거로 삼고자 했다.

그달 19일 A사 내에는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졌고 해당 방송을 영업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논의했다. 회의 결과는 지침으로 정리돼 A사 영업팀 및 전국 영업지점에 조직적으로 하달됐다. 그렇게 해서 B사에 대한 부정적인 방송 내용은 주류 도매상, 업주, 소비자 등에게 퍼져나갔으며 결국 B사의 매출 하락으로 이어졌다. 2차전이다.

이후 B사는 A사는 물론이고 부정적인 방송을 내보낸 언론사까지 피고로 삼아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의 결과는 B사의 승리였다. 2016년 1월 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방송사와 A사가 공동으로 33억원의 배상금을 B사에 지급하도록 판결을 선고했다. 해당 판결에 대해 양 당사자들 모두 항소를 제기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언론보도가 보호장치 될 수 없어

이 사안이 던져주는 메시지를 몇 가지로 정리해본다.

우선 네거티브 공세는 소송을 부른다. 네거티브란 문자 그대로 약점을 이용해 상대방을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이 보다 유리한 위치에 서고자 하는 것이다. 깎아내리지 않으면 네거티브가 아니기에 필연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명예훼손, 영업방해, 사생활 침해와 같은 법률적 이슈를 불러일으킨다. 네거티브 전략을 취할 때에는 고소나 소송을 당연히 예상하고 그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둘째로, 최소한의 공익적 가치라도 담고자 노력해야 한다. 공익적 차원의 문제제기를 네거티브 공세라 부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생명이나 안전, 건강과 직결된 문제라서 공론화가 불가피하다면 그것이 비록 경쟁사에 대한 것이라 해도 이야기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물론, 현실에서 네거티브와 공론화를 명확히 구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선거에서도 경쟁 후보에 대한 추한 인신공격이라 여기며 네거티브 공세를 펼치는 사람은 없다. 다들 공직후보자의 도덕성 내지 자질 검증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문제제기를 한 사람의 의도와 목적, 그리고 공론화가 애당초 불가능한 영역(예를 들어 남녀 간의 애정문제나 가정사에 해당하는 문제 등)에 해당되는지 여부가 법적 책임 유무를 가르는 결정적인 기준이 된다.

셋째로, 기사 내용을 무조건 신뢰해서는 안 된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언론의 보도도 얼마든지 틀릴 수 있다. 국가기관이라든가 공인된 기관이 낸 공식자료라면 모를까 기사에 언급된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었다고 해서 그러한 신뢰가 보호받는 것은 아니다. 법률에서 ‘상당성’이라고 부르는 문제인데, 기사에 그렇게 나왔기에 나 역시 그렇게 믿었다고 하면 소송에서 거의 틀림없이 진다고 보면 된다.

마지막으로, 네거티브에 이용된 언론사에 거액의 배상금이라는 심각한 불똥이 튈 수 있다. 위에서 소개한 사건의 경우, 핵심 쟁점이 방송사의 보도행위와 A사의 네거티브 공세가 ‘공동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 여부였다. 하나라고 볼 수 있는 행위에 다수가 참여하거나 관여한 경우, 그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 참여자 혹은 관여자 전원이 공동으로 책임을 지게 하는 법리가 ‘공동불법행위’다.

문제는 우리 법원이 “공동불법행위의 성립에는 공동불법행위자 상호 간 의사의 공통이나 공동의 인식이 필요하지 아니하고 객관적으로 각 행위에 관련 공동성이 있으면 된다”고 하여 다소 그 인정범위를 넓게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방송사가 A사의 네거티브 공세에 아무런 관여도 하지 않았지만 양자의 행위가 시간상으로 근접하고 하나의 손해를 발생시켰기 때문에 공동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33억의 배상금을 부과했다.

참고로 고액의 손해배상금이 인정된 것은 네거티브 공세로 인한 경쟁사의 매출 하락과 그로 인한 재산상 손해까지 고려됐기 때문이다. 언론사 입장에서는 보도만 놓고 보면 나오지 않았을 금액이 기업의 관여로 나왔으니 얼마나 황당한 노릇이겠는가. 통상적인 언론분쟁 사건에서 인용되는 배상액이 몇 백만원대인 것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이러한 결과는 경쟁사에 대한 비판적 기사를 자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기업의 전략에 신중한 판단의 책임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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