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때만 기자정신이 돋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태풍 때만 기자정신이 돋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8.08.24 11:0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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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토크] 생생한 현장 상황 전달코자 악천후 속 고군분투, 무엇을 위한 뉴스?
22일 강풍이 부는 바닷가에서 태풍관련 리포트를 하는 JIBS 구혜희 기자. SBS 뉴스 화면 캡처
22일 강풍이 부는 바닷가에서 태풍관련 리포트를 하는 JIBS 구혜희 기자. SBS 뉴스 화면 캡처

[더피알=문용필 기자] 강풍이 몰아치는 바닷가에서 한 여성이 마이크를 들었다. 안전모를 쓰고 비옷을 입었지만 온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비바람이 매섭다. 그럼에도 비닐로 칭칭 감싼 스마트폰을 손에 꼭 쥔 채 꿋꿋하게 멘트를 이어나간다.

태풍 ‘솔릭’의 상륙을 앞둔 제주도 현지 상황을 전하고자 22일 밤 서귀포 해안가에 선 JIBS 구혜희 기자의 모습이었다. 이날 구 기자의 ‘필사적인 리포트’는 SBS 뉴스화면을 타고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전해졌다.

다음날에도 그는 바닷가에 나왔다. 낮과 밤의 차이가 있었을 뿐 강풍에 휘청거리는 모습은 여전했다. 현장 스태프로 보이는 듯한 남성이 거센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화면이 전파를 타기도 했다. 흐트러지지 않은 옷매무새로 스튜디오에 앉아 질문을 던지는 앵커들과 비교하자니 이들의 모습이 더욱 애처롭게 느껴졌다.

악천후 속에서 시청자들의 ‘알권리’를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구 기자와 현장 스태프들은 박수받을 만하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현장을 꿋꿋히 지키는 ‘기자정신’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력한 태풍을 고스란히 마주하는 바닷가에서 굳이 진행할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급박히 돌아가는 현장을 실시간으로 전달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점은 감안하더라도 위태위태한 장면들로 인해 오히려 리포트에 집중하지 못한 것은 본 기자만이 아닐 거란 생각이 든다. 태풍의 기세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눈으로 보여주고, 안전에 대한 국민 경각심을 높이려 한 의도는 이해되지만 기자 멘트에 좀 더 귀 기울일 수 있는 장소를 찾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싶다. 높은 파도가 이는 바닷가 화면이 필요하다면 최소의 인력만으로 안전하게, 실시간 리포트가 아닌 사전 스케치로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었을 터다.

시청자들에게 태풍 대비를 당부하면서도 정작 기자나 스태프들의 안전은 등한시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만한 대목이다. 설령 현장기자가 자청했고 충분한 안전장비를 갖췄다고 해도 태풍이 기자만 비껴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태풍을 대하는 다른 방송사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 지상파와 종편을 막론하고 대부분 헬멧과 비옷을 장착한 기자가 해안가에 서서 자연의 엄청난 힘을 보여주는 데 열을 올렸다.

화제가 될 만한 모습들이 매번 각 방송사 메인뉴스에 등장했고, 이 때문인지 기자정신이 하나의 가십거리가 돼 소비되기도 한다. 이미 구 기자의 리포트 모습은 ‘움짤’로 만들어져 온라인상에서 돌고 있다.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라도 올랐다면 아마 이를 이용한 ‘어뷰징 기사’도 넘쳐났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태풍을 보도하는 언론들의 태도에서 납득가지 않는 장면은 이 뿐만이 아니다. ‘태풍 피해 대비’를 이야기하면서 본말이 전도된 듯한 뉴스가 쏟아졌다. 대책 마련 지시나 관련회의 주재, 철야 근무 등의 내용이 담긴 각 지자체장들의 동정 기사가 그것이다.

물론 선출직 공무원으로서 그들이 지역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진짜 필요한 대응 요령보다 더 많이, 그리고 비슷비슷한 내용이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긴급한 순간에 ‘뉴스 낭비’를 했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게다가 일부 매체의 경우 태풍의 진로변경 소식을 전하면서 서울 등 수도권 피해가 당초 예상보다 적어질 것이라는 데 강조점을 찍었다. 일견 문제 없어 보이는 기사지만 수도권 중심의 사고방식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아무리 수도권에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밀집해 있다고는 해도 진로변경으로 태풍을 직접 맞닥뜨리게 된 해당 지역 주민들의 정서도 고려해야 했다.

태풍 ‘솔릭’이 휩쓸고 간 자리에 한국 언론의 고질적 병폐들도 덩달아 노출된 것 같아 기분이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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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말이 2018-08-24 11:18:56
그런 열정으로 4대강이나 파헤쳐라

김아무개 2018-08-24 11:12:56
프로불편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