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프림 매장은 어떻게 뉴욕 랜드마크 됐나
슈프림 매장은 어떻게 뉴욕 랜드마크 됐나
  • 정지원 (jiwon@jnbrand.co.kr)
  • 승인 2018.09.14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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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의 시간과 공간] 스케이터 보더들의 아지트, 목요일의 줄서기 만든 ‘쿨’함

‘브랜드의 시간과 공간’ 칼럼을 새롭게 선보입니다. 브랜드의 라이프스타일을 말하는 두 개의 시선을 통해 브랜딩과 마케팅 그 이면의 의미를 함께 짚어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뭘 해도 핫한 슈프림(Supreme)의 공간에 관한 것입니다. 

슈프림 매장은 뉴욕을 상징하는 일종의 랜드마크가 됐다. 사진은 뉴욕 브루클린 매장.
슈프림 매장은 뉴욕을 상징하는 일종의 랜드마크가 됐다. 사진은 슈프림 페이스북에 올라온 뉴욕 브루클린 매장.

[더피알=정지원] 특종도 없이 2시간 만에 뉴욕포스트 신문이 완판됐다. 하루 23만부 찍는 이 신문은 아침 가판대에 깔리자마자 모두 팔렸다. 뉴욕포스트를 사재기하고 다른 지역에서 이를 구하려고 인스타를 도배하고 있는 진풍경을 바라보며 뉴욕타임스는 이번 협업을 이렇게 평가했다. “열렬한 팬들에게 슈프림 로고가 찍힌 제품은 일종의 종교적 상징물이다. 뉴욕포스트는 이 열기를 이용해 어떤 브랜드와도 하지 않았던 협업을 시도했다.”

종교적 상징물이라는 뉴욕타임스 기사는 과장이 아니다. 쓰레기도 슈프림 로고만 찍어서 팔면 팔린다는 말도 있다. 이 역시 과장이 아니다. 단 하루 만에 벌어진 드라마틱한 이 사건은 두고두고 그 의미를 짚어볼 만한 또 하나의 콜라보레이션 기록을 만들어냈다. 움직이는 걸음마다 이슈가 되는 이 브랜드의 출발점이 어땠는지 새삼 거슬러 올라가 보면서 슈프림의 강렬한 정체성을 만들어 준 첫 ‘공간’에서 생각이 멈추었다.

협업의 명분 ‘뉴욕’

뉴욕포스트에 따르면 지난 4월 슈프림 측에서 먼저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창의적인 협업을 해보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제스 안젤로 발행인은 “뉴욕포스트와 슈프림은 모두 뉴욕에서 시작됐고, 겁이 없으며, 로고에 대한 애착도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어서 협업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슈프림 홈페이지에 올라온 뉴욕포스트와의 협업 영상 중 일부.
슈프림 홈페이지에 올라온 뉴욕포스트와의 협업 영상 중 일부.

이들이 밝힌 협업의 이유를 말한 세 가지 중 유일하게 우리를 납득시키는 부분은 ‘뉴욕’이라는 공간적 공통점이다. 더 구구절절한 설명은 필요 없다. 뉴욕은 그런 곳이다. 뉴욕이라는 공간이 제공하는 자유로움, 개성, 다양성, 생동감, 매력을 대체할 도시는 없다. 뉴욕을 배경으로 활동해 왔고 뉴욕이라는 DNA를 공유한 두 브랜드는 상이한 정치적 성향, 이질적 카테고리 등과 전혀 상관없이 한 목소리를 낸다.

슈프림이 수많은 힙합브랜드, 명품브랜드, 아티스트들과 다양한 콜라보레이션을 해온 배경에는 슈프림이 보유한 뉴욕에 대한 강렬한 인식이 거론되곤 한다. 그 중에서도 단연 손꼽히는 ‘역대급 콜라보’ 파트너였던 루이비통의 경우 “슈프림은 뉴욕 젊은이들을 상징하는 브랜드”라며 협업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슈프림이 뉴욕을 대표하는 방법, 그들의 정체성이 주요 이유가 됐던 셈이다. 슈프림은 어떻게 뉴욕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됐을까?

‘진짜’만이 허용되는 매장

최초의 슈프림 매장은 뉴욕 스트리트와 그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담아낸 새로운 개념의 공간이었다. 매장은 문턱이 없어 보드를 타다가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디자인 됐다. 처음부터 스케이트보드에 초점을 맞춘 시도였다. 보드를 탈 줄 몰랐던 창업자 제비아는 뉴욕 뒷골목의 스케이트 보더를 매장 직원으로 채용한다.

오픈 첫날부터 보더들이 몰려왔고, 매장은 곧 뉴욕 스케이트 보더들의 아지트가 됐다. 슈프림 매장 직원들은 실제 스케이트 보더들과 아티스트들이었으며, 직원과 고객들은 함께 보드 스킬을 나누며 문화를 만들어갔고, ‘슈프림’이라는 이름의 스케이트 보드팀을 결정하기도 했다. 그 곳에는 진짜로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요컨대 슈프림은 ‘진짜’만이 허용될 수 있는 곳이었다.

슈프림 뉴욕 브루클린 매장에 보드를 탈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사진=슈프림 페이스북
슈프림 뉴욕 브루클린 매장에 보드를 탈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사진=슈프림 페이스북

불친절하고 콧대 높기로 유명한 슈프림 매장의 운영 방식에는 확고한 이유가 있었다. 누구든 슈프림에서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사람, 슈프림에서 실제로 물건을 살 수 있는 사람들만이 이 매장을 방문할 것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마케팅 회사 버진 메가의 창업자 론 파리스가 브랜드가 팬덤을 만드는 핵심요소 중에서 첫 번째로 꼽은 것이 바로 ‘공간’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팬들이 모일 수 있는 물리적인 또는 가상의 공간을 만들고 다른 곳에서 채울 수 없는 경험으로 보상해 주는 것’에서부터 브랜드의 팬덤이 시작된다고.

온·오프를 들끓게

리테일 공간은 북적거려야 맛이다. 매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줄을 세울 수 있는 매장’을 꿈꿀 것이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그 공간의 제품, 서비스, 콘텐츠를 기대하고 열광하는 사람들로 늘 북적거린다면 이보다 더 좋은 홍보는 없을 것이다. 흔히 줄을 서게 만드는 매장이라고 하면 애플(Apple)을 떠올리곤 한다. 애플의 신제품을 제일 먼저 사기 위해 밤을 새워 줄을 서고 기다리는 광경 말이다.

슈프림은 애플보다 한수 위다. 이들은 매주 목요일마다 드랍(Drop) 방식을 통해 매우 적은 수량의 신제품을 선보인다. 한정된 물량이 출시되다 보니 대부분의 제품이 발매와 동시에 매진되거나 며칠 안에 완판된다. 현재 슈프림 매장은 도쿄, 런던, 파리, LA 등 전 세계에서 단 11개만 운영되고 있다. 이 11개 오프라인 매장에선 매주 목요일 신상품을 기다리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슈프림이 설정한 독특한 신제품 발매 방식에 의해 오프라인을 매주 들끓게 하는 것이다.

오프라인이 이 정도인데 슈프림의 온라인 매장은 어떨까? 말 그대로 전쟁터다. 출시와 동시에 완판이 되다보니 유튜브와 블로그 등엔 ‘카드 결제를 빨리하는 법’과 같은 꿀팁이 게시되고, 자동으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슈프림 봇(Bot)’이 거래되기도 한다. 봇을 만들 정도의 집착을 가진 이들이 게임의 승자가 된다. 이날 팔린 상품들은 또 다시 몇 시간도 안 돼 비싼 값으로 매겨져 이베이에 올라온다. 애초 발매가 150달러의 박스 로고 후드 티셔츠가 1200달러 이상으로 뛰는 광경이 흔하게 펼쳐지기도 한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사고방식, ‘쿨한 스트리트 브랜드’의 배타적 성격 때문에 매주 이들의 매장 공간을 둘러싼 광란이 20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들이 확신하는 것은 올 때마다 새로운 것이 있다는 점이다.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거대한 비용을 들여 광고를 하는 것 이상의 효과가 바로 기대감을 주는 공간에 있었다.

스스로 미디어 되다

슈프림이 공간을 통해 정말로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스토리’라고 생각한다. 슈프림에게 공간은 단순히 물리적인 것이 아니다. 뉴욕이라는 거대한 상징, 그 뉴욕의 골목골목을 스케이트보드로 훑어대는 서브 컬처의 힘에서 전달되는 스토리인 것이다.

독특한 신제품 발매방식에서 만들어낸 목요일의 줄서기를 통해 랜드마크가 되어버린 스토리, 광클릭을 해도 살 수 없는 슈프림을 온라인 공간에서 5배, 6배로 리셀링했다는 그 특별한 스토리들 말이다. 이젠 유니크하거나 가치 있는 스토리가 아닌 단순 팩트는 잘 전파되지 않는다. 뉴욕, 그리고 그들만의 온·오프 공간으로 촘촘한 스토리를 소유한 슈프림은 이 시대를 말해주는 또 하나의 미디어다. 스스로가 미디어가 되어 다 죽어가는 명품브랜드를 살려내고, 아무도 관심 없던 뉴욕 교통카드를 이슈화시키고, 심지어 보수적 언론까지도 핫하게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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