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면 5단 오보내면 1면 5단 정정보도, 법적으로 가능할까?
1면 5단 오보내면 1면 5단 정정보도, 법적으로 가능할까?
  • 강미혜 기자 (myqwan@the-pr.co.kr)
  • 승인 2018.09.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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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국민청원 통해 ‘언론사 허위보도시 동일지면, 동일분량, 동일시간 정정보도 시행’ 주장…JTBC 뉴스룸 보도에 대한 법원 1·2심 판결 주목돼

[더피알=강미혜 기자] 청와대 국민청원에 또다시 언론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번엔 허위보도 시 정정보도에 관한 요구다. 실현 여부를 떠나 국민 개개인이 그 어느 때보다 언론문제를 심각하게 지각하고, 지속적으로 공론화한다는 점에서 ‘기레기’ 오명을 벗지 못하는 한국 언론계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적용 가능성에 대한 전문가 의견은 어떨까.

▷관련기사①: “기자들 광고·협찬 영업 금지시켜 달라”
▷관련기사②: ‘디스패치 폐간’ 청원 20만 돌파의 함의
▷관련기사③: ‘기레기’ 외침 이후 언론계는 얼마나 달라졌나

지난 14일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언론사 허위보도시 동일지면, 동일분량, 동일시간으로 정정보도 시행해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신문, 방송의 잘못된 오보로 인하여 국민 개개인의 피해가 매우 심각한 상태다”며 “피해를 본 개인, 회사는 사회에서 매장되거나 수많은 욕설과 비판을 들어야 합니다. 그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피해 발생에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할 언론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또 다른 뉴스거리를 찾아 보도하기에만 급급하다는 것.

허위보도시 ‘무기대등의 원칙’ 하에 합당한 정정보도를 요구하는 국민청원. 10월 20일 10시 기준 총 9897명이 동의했다. (*클릭시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허위보도시 ‘무기대등의 원칙’ 하에 합당한 정정보도를 요구하는 국민청원. 10월 20일 10시 기준 총 9897명이 동의했다. (*클릭시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이에 청원자는 “(언론중재위원회 등에 의해 명확히 잘못된 내용으로 판단되면) 오보를 기재한 신문은 동일 지면에 동일 분량으로 정정보도를 해야 한다. 방송사 뉴스의 경우 동일 시간대 동일한 순서에 동일한 시간으로 정정보도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신문 1면에 오보가 이틀 연속 나갔다면 A신문은 이틀 간 1면에 정정기사를 싣고, B방송 메인뉴스 첫 꼭지에 오보를 내보냈다면 같은 뉴스 프로그램 첫 꼭지에 동일한 시간으로 정정보도를 하는 식이다.

이 같은 내용의 청원은 불과 며칠 만에 총 9337명(19일 기준)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언론법 전문가인 양재규 변호사는 반론보도의 같은 지면·같은 분량 요구에 대해 “(법률적으로) ‘무기대등의 원칙’이다”며 “언론중재법 등 제도적으로 다 있는 내용으로, 중요한 건 실천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실제 ‘정정보도문 등 작성에 관한 세칙’은 정정보도 적용범위와 정정보도문의 작성기준, 후속보도 등을 매체별로 세세하게 적시해 놓고 있다.

▲정정보도문 등의 본문은 2단락 이상으로 나누어 게재하며, 첫 번째 단락에는 조정·중재 대상기사 중 문제된 내용을 요약하여 적고, 두 번째 단락에는 정정보도문등의 내용을 적는다(제4조)

▲신문의 경우에는 조정·중재 대상기사가 보도된 지면에 게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잡지 등 정기간행물의 경우에는 게재 지면의 범위를 지정하는 형태로 정한다(제6조)

▲방송은 조정·중재 대상 보도가 방송된 프로그램에 하며, 조정·중재 대상보도가 여러 프로그램에서 방송된 경우 각 프로그램마다 정정보도문등을 방송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진행자의 낭독 속도는 프로그램 진행자의 통상의 진행 속도보다 빠르지 않게 하며, 해당 프로그램 내에서의 구체적인 방송 시간대를 정하여야 한다(제7조) 등이 이에 해당된다.

다만, 모든 법적 구제는 피해가 발생하기 전 상황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 없다는 본질적 문제를 안고 있다. 교통사고를 당한 피해자가 보상을 받는다고 해도 사고 발생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울러 양 변호사는 “원론적으로는 (청원자 주장이) 맞는 말이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변수가 너무 많다”며 현실적 한계를 짚기도 했다. 가령 1면 머릿기사에 실린 원보도의 일부만 문제가 될 경우 정정보도 내지는 반론보도 시 분량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도 이런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문제 개선을 위한 보다 적극적·실효적 방안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 사무처장은 “언론중재위에서 정정보도를 결정할 정도면 원보도 내용이 상당히 심각한 수준임에도 대부분의 언론은 가급적 작게 내려 한다”며 “청원자의 주장이 그대로 관철되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왜 그런 청원을 했는지에 대해선 충분히 공감이 간다”고 말했다.

정정보도 시행 관련해서도 “내용을 보면 변명만 늘어놓고 제대로 된 정정이나 사과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꼬집으며 “심지어 (피해자와)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먼저 수정보도나 해명보도 식으로 내버림으로써 면피하려는 경향도 있다”고 비판했다.

종편을 중심으로 뉴스 형식을 띤 ‘패널 토론’이 활발해지면서 스리슬쩍 ‘묻어가는 정정’도 빈번하다.

김 사무처장은 “방송에서 패널이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해도 필터링 되지 않다가 나중에 진행자가 ‘아까 한 발언에 대해 바로 잡는다’는 식으로 정정하려 하는데 방송 앞부분만 보다가 채널을 돌리는 사람들은 전혀 알 수 없는 셈”이라며 “오보로 인한 정정보도 기준을 강화해서 일벌백계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언론이 좀 더 책임감을 갖고 행동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무적인 건 과거에 비해 정정보도 기준이나 실제 적용이 원보도에 가깝게 엄격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언론중재법 뿐만 아니라 강제력 있는 법원 판결에 있어서도 언론보도 피해로 인한 반론·정정보도권을 보장하고 있다.

일례로 JTBC 뉴스룸이 2016년 6월 21일에 보도한 ‘장애 유모차 못 들어간다는 박물관’ 리포트에 대해 해당 박물관 관장이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건에 대해 법원은 1·2심 모두에서 “JTBC 뉴스룸 첫머리에 반론보도문을 낭독할 것”을 주문했다.

당초 보도가 뉴스룸 첫 꼭지에 나가지 않았음에도 반론보도를 첫 꼭지에 배치하는 것은 일반적 수준의 ‘무기대등의 원칙’을 상회하는 판결이다. JTBC가 상고해 최종 결론은 대법원에서 가려지겠지만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동일한 판단이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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