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보다 능력…‘편견의 눈’ 가리는 기업들
스펙보다 능력…‘편견의 눈’ 가리는 기업들
  •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 승인 2018.10.3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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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채용ⓛ] 공기업‧대기업 중심으로 확산…회사마다 특색있는 전형
재계에서 블라인드 채용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자료사진). 뉴시스
(자료사진) 블라인드 채용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 뉴시스

최근 취업준비생들과 기업 인사담당자들의 주된 화두는 블라인드 채용이다. 학벌이나 지연 등을 타파하고 직문에 걸맞는 숨은 인재를 찾자는 취지가 얼마나 실현되고 있는지 살펴본다. 

① 스펙보다 능력…‘편견의 눈’ 가리는 기업들
② 자소서-이력서 따로따로, 결국은 학벌?  
③ 채용시장에서 블라인드 제대로 치려면 

[더피알=문용필 기자] ‘88만원 세대’ ‘노오력’ ‘흙수저’ ‘삼포세대’… 청년들의 팍팍한 삶을 대변하며 몇 년 전 유행처럼 번졌던 단어들이다. 이제는 신조어 축에도 끼지 못할 만큼 익숙해졌지만 2018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청년들에게는 여전히 폐부를 찌르는 말들이다.

학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찾아 헤매고 무한 학점경쟁을 위해 도서관을 전전하는 직업준비생 생활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래. 젊어 고생이야 사서도 한다고 치자. 그러나 취업만큼은 고생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수천만 원 등록금 들여 대학공부 마치고도 별도의 ‘스펙’을 쌓기 위해 별별 노력을 기울이지만 취업문은 점점 좁아지는 까닭이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으로 20대(20~29세) 실업률은 9.9%였다. 일견 낮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전체 실업률 4.0%에 비해 6%포인트나 높은 수치다. 참고로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동월과 소수점까지 똑같다.

20대 고용률은 58%로 전체 고용률(60.9%)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30대(75.1%), 40대(78.7%)와 비교하면 10%포인트 이상 낮았다. 청년실업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체감되는 대목이다. ‘우리 때는 닥치는 대로 일했는데...’ 이런 기성세대의 훈계는 세상 바뀐줄 모르는 ‘꼰대질’이다.

그나마 이건 20대 전체 이야기다. 어느 곳에나 계층은 존재한다. 서열 낮은 지방대를 나왔거나 가정형편이 넉넉지 못해 고(高)스펙을 쌓지 못했다면 문제는 더욱 커진다. 안 그래도 좁은 취업문은 바늘구멍이 되고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대기업은 언감생심이다.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채용전형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는 블라인드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학력과 나이, 출신지, 때로는 어학성적에 이르기까지, 편견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직무능력만을 보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블라인드 채용은 최근 들어 확산 추세를 보이고 있다. 우선 모든 공기업과 공공기관은 지난해부터 이를 의무화한 상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공공기관은 7월, 지방공기업은 8월부터 입사지원서와 면접에서 편견이 개입될 수 있는 항목을 삭제했다. 이에 대해 이경희 사람인 컨설턴트는 “올해까지 공공성을 띄는 웬만한 기관은 다 의무도입이 됐다고 보면 된다. 국가에서 컨설팅을 지원하고 있고 감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정부 가이드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재계에서도 블라인드 채용을 적용하거나 보다 낮은 수준의 인적사항을 요구하는 사례가 속속 늘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11월 506개 기업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블라인드 채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년도 조사에 비해 학력사항을 요구하는 비율은 94%에서 86.9%로 감소했다.

남녀차별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병역사항의 경우에는 86.7%에서 68.4%로, 특혜 취업의 요소가 될 수 있는 가족관계 질문은 78.8%에서 41.9%로 대폭 줄어들었다.

각 기업에서는 일반적인 공채전형과 함께 저마다 특색 있는 블라인드 제도를 병행하고 있다.

지난 2013년부터 시작된 KT의 ‘스타오디션’은 부분 블라인드 형식을 취한다. 이름과 생년월일, 성별과 연락처를 제외한 일체의 스펙이나 학력은 기입하지 않는다. 5분간 직무와 연관된 경험과 포부를 자유롭게 표현한다. 합격자는 서류전형 면제 혜택이 부여되는데 다만 필기전형부터는 일반 지원자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입사시험을 치르게 된다.

CJ의 ‘리스펙트 전형’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돼 올 상·하반기에도 지속되고 있다. 자기소개서에서 이름과 사진, 학교를 블라인드 처리하고 현업 부서 실무자가 이를 평가한다. 서류전형에서는 어학점수 입력란을 제거했다. 면접에서도 특별한 스펙을 체크하지 않는다는 것이 회사 관계자의 설명. 이 관계자는 “처음에는 식품영업 등에 한정돼 있었는데 CJ ENM의 콘서트 제작 분야나 CGV의 멀티플렉스 매니저 등 스펙보다는 끼와 열정, 경험이 중요한 직무분야로 늘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는 ‘SPEC태클’이라는 블라인드 채용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9월 열린 롯데의 하반기 공채 채용상담회. 뉴시스
롯데는 ‘SPEC태클’이라는 블라인드 채용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9월 열린 롯데의 하반기 공채 채용상담회. 뉴시스

롯데는 ‘SPEC태클’ 채용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서류 접수 시에는 이름과 연락처, 직무 관련 기획서나 제안서만을 받는다. 롯데 관계자는 “기획서나 제안서에 학교나 경력사항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불이익을 준다”며 “면접에서도 면접관들에게 일반적인 스펙을 제공하지 않는다. 이는 일반전형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름만 기재하기 때문에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고 언급했다.

한샘은 올해부터 ‘홈 리더’라는 이름으로 블라인드 채용제도를 도입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아예 없애고 이름과 연락처만 기재하도록 했다. 주 업종인 가구 관련 질문에 대해 그림이든 글이든 업로드하면 이를 토대로 평가가 이뤄진다. 단, 4년제 대학 출신으로 지원자를 한정하는데 전형이 다 끝난 후 서류를 제출받아 검증하는 시스템이다.

보다 전문성이 요구되는 업종에서도 블라인드 채용을 시행하는 기업들이 있다.

제주항공은 지난 2016년 상반기부터 ‘재주캐스팅’이라는 블라인드 전형을 실시해왔다. 채용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의 역량을 뽐낸 영상을 제출하는 방식이다. 회사 관계자는 “승무원으로서 기내 안전요원 역할도 수행해야겠지만 본인의 개성이나 창의성도 있지 않겠느냐”며 “기내 특화팀도 운영해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가 있는데 그런 부분에서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 지원자에게 채용의 문을 여는 것”이라고 밝혔다.

IT업계에서는 카카오가 대표 사례로 꼽힌다. 지난해 개발자 신입 공채부터 블라인드 채용방식을 도입했는데 올해도 동일하게 적용중이다. 별도의 서류전형 없이 온·오프라인 코딩 테스트를 하고 합격자에 한해 인터뷰를 진행한다. 필요한 정보는 이름과 연락처, 이메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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