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책자는 왜 퀄리티가 그 모양일까요?”
“공공기관 책자는 왜 퀄리티가 그 모양일까요?”
  • 박형재 기자 (news34567@the-pr.co.kr)
  • 승인 2018.11.21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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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청원 통해 공공기관 갑질 성토…홍보용역 ‘끼워넣기 관행’ 또 도마위

“비용,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본인들이 해야할 홍보 업무 기획사에 떠 넘기고 있는 공공기관 홍보팀, 대외협력팀, 공보관 여러분 정신 좀 차리세요.”

[더피알=박형재 기자]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홍보용역에서 ‘끼워넣기 갑질’을 비판하는 국민청원이 또다시 올라왔다. 사업 비용과 인력은 한정돼 있는데 당초 계약에는 없던 내용들이 계속 추가돼 어려움을 겪는다는 주장이다. 관련 업계는 해당 내용에 ‘100% 공감’ 하며 현실과 맞지 않는 관행 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온 게시글.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온 게시글. *클릭시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지난 14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수협중앙회 소식지 <우리바다> 입찰 공고를 비롯, 공공기관 발주 사업의 불합리한 과업을 고발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청원자는 공공기관의 무리한 업무 요구 관행을 비판했다.

자신을 사보 편집·기획 디자이너라고 소개한 글쓴이는 “보통 ‘소식지 제작’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상식적으로 ‘책 만드는 일’로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업계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과업을, 책 만드는 일에 끼워서 시키고 있을까’부터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수협중앙회 실사례를 들어 문제를 제기했다. “수협 공고의 경우도 내용은 ‘우리바다’라는 격월간지와 ‘어업 in 수산’이라는 주간 타블로이드 2개 매체를 만드는 일이지만, 되도 않는 과업들이 독소조항처럼 끼어있다”는 것. 

수협중앙회 격월간 소식지 '우리바다' 9~10월호 표지. 출처: 수협
수협중앙회 격월간 소식지 '우리바다' 9~10월호 표지. 출처: 수협

구체적으로 △편집디자이너 5년차 이상 경력자를 수협중앙회 내에 상주시키고 △어업 in 수산 홈페이지에 기사 업로드 및 메인 페이지 기사를 관리하며 △포털 뉴스검색제휴 기사 전송 및 관리를 디자이너의 업무로 포함시킨다고 했다. 

그러면서 청원자는 “여러분의 세금으로 만드는 공공기관의 책자가 왜 퀄리티가 그 모양일까요? 정해져 있는 제작비에 비해 클라이언트들이, 택도 없는 본인들이 할 과업을 밀어넣고, 끼워넣고 있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타블로이드 판형으로 나오는 수협의 주간 소식지 '어업 in 수산' 465호 1면. 출처: 수협
타블로이드 판형으로 나오는 수협의 주간 소식지 '어업 in 수산' 465호 1면. 출처: 수협

디자이너에 SNS 맡기면서 “왜 이렇게 실력 없냐”

관련 업계에선 새삼스러울 것 없는 ‘비정상적 관행’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는 반응이다. 

디자인 회사 A대표는 “게시글 내용에 100% 공감한다”고 했다. 그는 “공공기관에서 일을 맡기며 공고문에 없는 내용을 추가로 요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간단한 건데 이것만 더 해달라’는 식으로 요청하는데 부담이 크다”고 실상을 전했다.

또한 “공공기관에서 디자이너에게 홈페이지 관리를 맡기는 건 양식요리사에게 한식을 요구하는 것과 비슷하다. 음식을 만들 수는 있지만 좋은 요리를 기대하기 어렵고, 복어 같은 전문적인 것은 다룰 수 없다”고도 말했다.

실제로 모 공공기관은 홈페이지 운영을 A대표 회사에 맡기며 다양한 추가 업무를 요구했다. 행사를 진행하며 홈페이지 내부 이미지를 활용해 SNS 콘텐츠, 현수막, 배너광고, 인쇄물 등을 만들어달라고 했다는 전언. 

공무원은 어차피 디자인이 있으니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생각하지만, 홈페이지용 이미지는 해상도가 낮아 다시 작업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요구하는 기관이 여러 곳이라 그에 들어가는 시간이나 인력 낭비가 상당한 수준이다.

더 황당한 것은 디자이너에게 본업이 아닌 SNS 콘텐츠 제작을 맡기면서 일 못한다고 큰소리칠 때다. 책 만들러 온 사람은 SNS 전문가가 아니니 미숙할 수밖에 없는데, ‘왜 이렇게 실력이 없냐’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경쟁 비딩을 뚫고 업체로 선정되면 발주처와 만나 우선협상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도 업무 끼워넣기가 공공연히 일어난다.

업계 B대표는 “우선협상장에 들어가면 공공기관들은 과업지시서 내용 플러스, 우리가 제안한 것 플러스, 다른 업체가 추가로 제안한 것 플러스, 과업지시서 상에 미처 넣지 못한 다른 내용까지 늘어놓곤 한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이런 요구사항을 수용하지 않으면 일을 하지 못하니 일단 받아들이지만, 한정된 비용과 인력으로 업무를 수행하다보면 놓치는 부분이 생기거나 창의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을’의 입장에선 싫어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협중앙회 용역입찰 공고 유의사항에 ‘용역 수행 중 본회 사정에 의해 사업을 중단 또는 변경하는 경우 계약 중도해지가 가능하다’고 적혀 있다.
수협중앙회 용역입찰 공고 유의사항에 ‘용역 수행 중 본회 사정에 의해 사업을 중단 또는 변경하는 경우 계약 중도해지가 가능하다’고 적혀 있다.

매번 ‘추가 서비스’ 요구, “품질 하락할 수밖에”

현실과 맞지 않는 규정들도 사라져야 할 구태다. 청원자가 언급한 공공기관 상주인력 배치의 경우 관련 업계 입장에서는 부담이 상당하다. 상주 인력을 뽑으면 다른 일과 병행하기 어려운데다, 공공기관이 세종시 등에 있으면 집도 따로 구해줘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주인력에게 본업과 다른 홍보업무를 시키는 경우도 종종 있다. 

공공기관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독소조항들도 꽤 있다. 청원글에서 거론된 수협중앙회는 계약 관련 유의사항에 ‘용역 수행 중 본회 사정에 의해 사업을 중단 또는 변경하는 경우가 발생할 시 계약 중도해지 가능하며 대금은 실비 정산’이라고 적었다. 업체에는 디자이너까지 상주 인력으로 뽑으라면서도 정작 수협 사정에 따라 용역을 마음대로 중단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 수협 관계자는 “아무래도 사업이다 보니 회사 사정에 따라 중단될 가능성도 없진 않아서 해당 조항을 넣었으나, 소식지 발행은 몇 년째 지속되고 있으며 중단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해명했다.

전남 고흥군의 경우 ‘2018년 고흥군 소식지 제작 과업지시서’에서 △소식지 내용 및 디자인 교정은 고흥군에서 원하는 성과물이 나올 때까지 진행하고 △과업지시서에 명시되지 않은 사항이라도 필요한 경우 고흥군의 요구에 따라 보완한다고 명시했다. 고흥군의 마음에 들 때까지 언제든 내용을 추가, 보완해야 한다는 의미다.

업계에서는 공공 제작물 뿐만 아니라 홍보 업무 전반에 걸쳐 손질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처럼 주변에서 좋다는 건 모조리 집어넣고 추가 업무까지 계속 얹어주면서 제대로 된 업무 진행을 바라는 건 욕심이란 지적이다. ▷관련기사: 청와대 따라잡기 바쁜 공공PR…변화 속 구태 여전

C대표는 “발주기관에서 커뮤니케이션 목표를 분명히 제시하고 그에 대한 아이디어와 실행을 요구해야 한다. 매번 이것저것 끼워서 추가 서비스를 바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결국 공공PR의 품질 하락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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